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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譜詳節』 권24 해제 4
일러두기 28 석보상절 권24 31 찾아보기 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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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권24에서 저본으로 쓰인 『석가보』 제5권의 「아육왕조팔만사천탑기阿育王造八萬四千塔記」 제31은 『잡아함경雜阿含經』 제23권(K650/T2)의 제604 소경小經인 「아육왕경阿育王經」 에서 나온 것이고, 「석가획팔만사천탑숙연기釋迦獲八萬四千塔宿緣記」 제32는 『현우경賢愚經』 제3권(K983/T4)의 「아수가시토품阿輸迦施土品」 제17을 저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거들이 역사적인 사료나 객관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불기佛紀는 일반적으로 불멸 연대를 기준으로 서기전 544년을 원년元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석보상절』 권24에서는 마우리아왕조(공작왕조, 서기전 322~185)의 제3세인 아소카왕(서기전 273~232, 아육왕阿育王)이 불멸후 100년경에 출현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여러 경론에서 언급되고 있는 제1결집은 500명의 아라한이 모였기 때문에 오백결집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1천 명의 아라한이 모인 것으로 되어 있고, 불멸후 100년경에 비사리毘舍離(ⓢVai??l?, ⓟVes?l?)에서 개최된 제2결집이나 아육왕의 재위기간에 화씨성華氏城(ⓢP??aliputra, ⓟP?taliputta)에서 개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제3결집에 관한 내용도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같은 내용들을 다르게 기술하고 있는 것은『석보상절』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에서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그와 같은 배경에는 불교가 전래된 과정이나 번역의 문제, 종교문화적인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요한 부분은 상세하게 쓰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줄여서 쓴 책이라는 의미를 상기해 볼 때 신앙적인 측면에서 역사적인 당위성이나 객관적인 숫자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조가『월인석보』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을 편수編修하는 과정에서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김수온을 비롯하여 당시에 선교양종禪敎兩宗의 고승대덕高僧大德으로 손꼽히던 신미信眉, 수미守眉, 설준雪峻, 홍준弘濬, 효운曉雲, 지해智海, 해초海招, 사지斯智,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이와 같은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