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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 평전
양장
김택근불심도문 감수
모과나무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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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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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용성 스님의 진실을 찾아 _이이화
독립과 건국이라는 빛을 향해 나아가신 분 _박남수


제1장 | 망국의 육자진언 “대한독립 만세”
전야前夜
동행同行
횃불 그리고 들불
그날

제2장 | 3·1혁명의 한가운데
서대문 지옥도
공명共鳴
독립운동의 복판에 서다
독립운동사에 영원히 남을 것

제3장 | 이놈이 무엇이 되려는가
태몽 그리고 죽림촌
왜 고기를 놓아주느냐
꿈속의 부처님
나는 너를 안다

제4장 | 고기잡이 배는 어디로 갔는가
마군은 강하고 법은 약하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완전하지 않구나
해동율맥을 잇다
오도悟道
자신과의 법거량

제5장 | 달과 떡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솟아나는 친일승들
세상 속으로
초전법륜
보개산 참선법회
새 절과 첫 책을 짓다

제6장 | 해와 달에 주인이 있는가
대적광전의 주장자
백련암의 호랑이들
사자후, 서쪽으로 가다
염불이 곧 참선
한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구나
근원은 바른 데로 돌아간다

제7장 | 무엇을 버려야 법륜이 구르는가
종을 울리십시오
도성 안에 울리는 사자후
명성은 누리를 덮고
포교당의 거대한 죽비

제8장 | 꽃과 풀은 너의 뜻이다
감옥에 갇힌 불교경전
지혜의 한글화, 진리의 대중화
치아사리의 방광
환갑

제9장 | 도봉의 포효가 봉암사결사로
사찰의 큰 도둑들
62세에 다시 일어서다
망월사의 포효
오탁의 바다를 뒤집는 선풍

제10장 | 풍금 치며 노래하는 스님
대각교를 세우다
도심에 울려 퍼진 찬불가
수국이 불국으로
화과원과 선농불교

제11장 | 간도의 별
간도의 대각교
깨달음의 바다, 진리의 빛
내 말을 들어보라
대각교 문을 닫다
용성과 만해

제12장 | 법기들의 숲
한암이 서울을 가리킨 까닭
동헌과 도문
뱃속 충에 사자가 쓰러지네
대각사에서 몸을 벗겠다

결장 | 삼밭 위에 한가로이 누웠도다
열반


글을 마치며
용성진종조사 행장
참고문헌

부록/
용성진종조사 유훈십사목
용성진종조사의 법맥과 율맥
용성진종조사가 지은 찬불가

저자 소개 2

언론인 김택근은 오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2010년 출간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김대중 자서전』의 대표 집필자로 알려져 있다. 1990년 겨울, 생전에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권정생을 인터뷰한 뒤로 그 인연을 깊이 새기고 있다가 그의 일대기를 이야기로 엮었다. 1954년에 태어나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에서 자랐고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독특한 문체의 산문은 예리함과 따스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환경과 문명 비평의
언론인 김택근은 오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2010년 출간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 『김대중 자서전』의 대표 집필자로 알려져 있다. 1990년 겨울, 생전에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권정생을 인터뷰한 뒤로 그 인연을 깊이 새기고 있다가 그의 일대기를 이야기로 엮었다.

1954년에 태어나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에서 자랐고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독특한 문체의 산문은 예리함과 따스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환경과 문명 비평의 글을 많이 썼다. 저서로는 『사람의 길 -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 산문집 『뿔난 그리움』,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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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心道文

용성조사의 ‘아난’이라 불리는 스님은 1946년 8월 용성조사의 상좌 동헌완규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이래 70여 년을 용성조사 유훈 실현에 정성과 신명을 바쳐왔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며 현재 3·1독립운동 민족대표 유족회와 광복회 회원으로서 용성조사의 독립운동을 고증하고 홍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용성조사의 탄생성지에 조성한 죽림정사, 용성조사가 창건한 대각사, 부처님 탄생성지 룸비니 대성석가사의 조실을 맡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697g | 140*201*35mm
ISBN13
9791187280323

책 속으로

아수라장을 불국토로 만드는 일, 그것은 그나마 나라가 있어야 가능했다. 나라가 없으니 백성의 눈물이 강을 이뤄도, 그 강물이 흘러갈 곳이 없었다. 승려는 개인으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이뤄야 하지만 깨달은 후에는 자신이 사는 곳을 불국토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땅의 승려는 한없이 무기력했다.
_37쪽

용성과 만해는 똑같이 산사에서 내려와 도심에 거점을 마련했다. 민초들의 설움과 아픔은 결국 도시로 흘러들었다. 그것들을 품지 않으면 어떻게 종교라 할 수 있는가. 용성도 만해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만해가 있으니 거사는 시작과 끝이 야무질거야.’
법당을 나와 뜰을 거닐었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 했다. 종로 쪽에서 날아들던 불빛도 끊겼다. 사위四圍가 고요했다. 하늘에는 별들이 제 빛을 찾아 얌전했다. 새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_40쪽

용성은 태화관에 들어서려다 문득 탑골공원을 돌아봤다. 장소가 바뀐 줄도 모르고 군중이 민족대표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은 물론 사동과 종로거리에도 사람물결이었다. 민심은 분출구를 찾는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_56쪽

스님들과 학생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사찰 주위의 모든 마을을 깨웠다. 그것은 서울에서 있었던 독립선언의 거대한 공명이었다. 이들 중 더러는 상해, 만주 등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또 누구는 상해임시정부를 돕고, 또 누구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는 일제의 무력 진압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믿었기에, 또 불법이 곁에 있었기에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섰다. 범어사에서도, 통도사에서도, 표충사에서도 젊은이들이 독립선언서를 들고 내달렸다.
_73쪽

그해 가을 용성은 서울 종로에 세운 사찰 대각사로 옮겨가야 했다. 큰스님은 손상좌 성철을 대각사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성철은 서울로 가고 싶지 않았다. 번잡한 도시보다는 산속에 머물며 더 공부하고 싶었다. 노스님을 따라갔다가는 평생 시자 노릇만 할 것 같았다. 성철은 기차역까지 따라갔다가 큰스님 용성이 보이지 않자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정겨운 일화가 아직도 선방에서 회자되고 있다.
_226쪽

죽은 자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문을 베풀어 무명심無明心을 깨뜨리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법문은 생전에 맺은 모든 인연과 업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준다. 천도의식을 통해 죽은 자는 산 자들로부터, 산 자들은 죽은 자로부터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그래서 법문은 오히려 산 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해야 한다.
용성의 법문은 살아있는 자들을 감동시켰다. 그것은 죽은 자와 산 자의 해원解?이었다.
_393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독립운동의 실질적인 기둥,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에 기여하신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
용성진종조사의 삶 조명한 『용성 평전』 출간!

독립운동의 실질적인 기둥,
용성진종조사


2019년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이제 그 시절의 의인義人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굳은 뜻은 면면히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용성진종龍城震鍾(1864~1940)조사는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선각자였다. 그 후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일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용성 스님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였다.

“아수라장을 불국토로 만드는 일, 그것은 그나마 나라가 있어야 가능했다. 나라가 없으니 백성의 눈물이 강을 이뤄도, 그 강물이 흘러갈 곳이 없었다.”

우리나라 근세 불교의 역경초조譯經初祖, 선농초조禪農初祖, 정화초조淨化初祖로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섰지만 그 역사적 무게에 비해 아직까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에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용성진종조사의 삶과 사상, 깨달음의 발자취를 담은 『용성 평전』을 출간하였다.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를 이끈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


용성 스님은 조선의 억불과 일제의 만행으로 이어진 전통불교 죽이기에 맞서 청정한 수행가풍을 올곧게 지켜냈다. 또 삼장역회를 만들어 한문에 갇힌 경전을 번역해 홍포하는 등 역경 불사를 견인한 포교의 선구자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풍금을 치면서 작사한 찬불가를 보급하는가 하면 어머니들이 참선 수행할 수 있도록 사찰에 부인선원을 개설해 운영한 전법의 개척자이기도 하였다.
불제자 양성을 위한 포교와 수행, 인재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외친 스님이기도 하다.

“제자들은 용성의 가르침을 붙들었다. 제자 동산혜일東山慧日과 고암상언古庵祥彦 외에도 손제자 퇴옹성철退翁性徹이 조계종 종정을 맡아 불교계를 이끌었다. 이들이 있어 한국 불교가 바로 섰다. 용성의 제자와 법손들은 용성을 닮아 계율을 중시했고, 선풍을 바로 세우는데 앞장섰다. 용성문중은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두어 비범한 법기法器들이 숲을 이루었다.”

경·율·논 삼장을 꿰뚫은 절세의 선승,
삼장역회를 통한 경전의 번역과 홍포


지은이 김택근 작가는 용성 스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3·1독립선언 불교계 대표로만 알려진 자리매김이 오히려 스님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민족대표이기 전에 절세의 선승이었다. 용성은 병이 들어온 말년에도 저술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도의 진리』 『오도는 각』 『천수경』 『지장보살원경』 『조선글 화엄경』 등을 짓거나 번역했다. 이 저술들은 하나 같이 영원한 자유를 찾는 길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특히 《임종결臨終訣》에서는 죽음과 결별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문답 형식으로 서술했다. 죽음을 맞기 이전에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하기 위해서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비극의 시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잊혀진 시대에 스스로 주인이 되자고 외쳤던 선승의 외침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추천평

이 시대에 우리는 거룩한 스승 한 분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용성평전』을 통해 스승과 대화를 나누게 된 것입니다. 백용성 스님은 민족모순이 치열하게 전개될 시대에 살면서 두 가지 큰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는 부처님 말씀을 대중에게 어떻게 올곧게 전달할지 고심한 일이고 또 한 가지는 민족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헌신입니다. 글 쓰는 이는 역사학자로서 그분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분의 굳은 의지와 신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이이화 (역사학자)
실제로 3·1운동과 관련하여 일반 국민들에게는 만해 스님이 널리 알려졌으니 그 나름의 인연이 있겠지만 역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면 반드시 용성조사님의 이름이 높이 올라갈 것이라 믿습니다. 용성조사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3·1운동은 그 모습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용성조사님의 일생을 살펴보는 이 책은 우리 근대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편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이이화 (천도교 전 교령,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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