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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물컹한 땅 비밀 수익 3년 후 내일의 문제 악몽 299 자연치유 예방적 차원 청정국 죽음 없는 무덤 공범 동물의 사정 다시, 구제역 비닐 아래 근면한 작물재배 부메랑 환삼덩굴 투고 묵묵부답 구토 메르스 묻다 그녀의 아버지 가격 제의 아이들 인큐베이터 행복의 조건 형벌 국가의 명령 마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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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799 곳에 매몰지가 조성되었다. 피로 물든 지하수가 논과 하천으로 흘러나오고, 땅 속에 가득 찬 가스로 인해 썩다 만 사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는 엽기적인 뉴스가 쏟아졌다. 3년 후, 전국 4,799 곳의 매몰지가 고스란히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
어떤 매몰지는 물컹거렸고 어떤 매몰지는 단단했다. 어떤 매몰지는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고, 또 어떤 매몰지는 푹 꺼져있었다. 어떤 매몰지는 플라스틱 관이 몇 개 쯤 꽂혀 있었고, 어떤 매몰지는 그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설치된 플라스틱 관들은 터지거나 막혀 있기 일쑤였고, 지독한 악취를 뿜어댔다. 구제역은 사람에게 옮기지도 않으며 식품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20세기 초만 해도 구제역에 걸렸다 회복된 소 중에서 고품질의 고기와 우유를 생산해 상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모든 생명체는 태양과 땅, 물 그 외에 다른 생물들에게 빚을 진다. 자기가 쓸 에너지를 직접 만드는 건 식물뿐이다.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사자의 도덕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 육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육식이 범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매몰지에서 불에 탄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죽은 풀을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못했다. 다음 번 매몰지에서 끈적이는 액체를 토해내며 기이하게?죽은 풀을 보았다. 전문가에게?물으니 땅 속의 유독?물질에 풀의 뿌리가 닿았거나, 땅 밑에서 피어오른?유독 가스로 인한 변고 같다고 했다.?독을 내뿜는 땅, 매몰지 옆의 깨밭은 트럭이 밀고 지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밭 가운데의 깨들이 양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벼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눈에 띄게 웃자랐다. 논에서는 벼와 잡초가 마구잡이로 섞여 자랐다. 물이 찬 논에는 날벌레가 들끓었다. 겁이 날 정도로 엄청난 밀도였다. 매몰한 지 4년이 지났으니 대지가 회복 중일까?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버린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며칠 사이에 비닐 아래의 풀들은 새하얗고 투명하게 말라죽어버렸다. 아직 여기 동물이 있다. 대지는 삼킨 죽음을 토해내고 싶어 한다. 2014년 강력한 고병원성 조류 독감으로 1,396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 했다. 2016년에는 두 배에 달하는 3,781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다.?이는 전체 사육 조류의?30퍼센트를 웃도는 숫자였다. 동일한 시기에 같은 바이러스로 조류독감이 발생한 독일, 프랑스, 덴마크는 100만 마리 이하의 동물을 살처분 했다. 햇빛이 차단되어 자외선 살균의 우려도 없고, 환기가 되지 않아 오랜 시간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으며, 감염시키기 용이한 숙주들이 옮겨 다니기 좋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 밀집사육 시설은 바이러스가 치명적으로 진화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인큐베이터였다. 누군가는 갓 태어난 새끼들까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살아 있는 동물들 위로 흙을 쏟아 붓고 땅을 다지는 일에 투입되었다. 동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을 직접 담당해야 했던 사람들. 무겁고도 무서운 기억에 짓눌려 잠 못 이루는 밤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독한 형벌을 받고 있을까?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자 2015년부터 정부는 용역업체에 살처분을 떠맡겼다. 이제 공무원을 대신해 가난한 청년과 외국인 근로자가 살처분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살처분 매몰지를 2년 이상 추적하고 기록한 유일한 사람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살처분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와 치유를 전한다 살처분 현장을 보며 사람들은 생명을 함부로 하는 불경함, 생명의 가치보다 경제성이나 합리성이 우선시 되는 냉혹함을 목격하고 가슴 아파하고 두려워했다. 과연 지금의 대량 살처분 방식이 합당한지 의문도 가졌다. 이 책은 가축 전염병의 예방과 대처법, 살처분 방식에 대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던 작가가 살처분 매몰지를 기록한 경험을 사진과 함께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매몰지를 찍은 사진을 사진전과 같은 형식으로 보여주고, 저자가 매몰지 촬영을 하면서 품었던 살처분 방식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사진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살처분이 남긴 상처와 치유를 전한다.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묻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화내고, 고마워했다.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물 매몰지를 기록한 작가 덕분에 그간 우리가 먹는 동물을 대하는 방식과 그들이 아플 때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첫 전시회 후 죽은 동물들을 위한 제의의 의미로 사진을 다 태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이 또한 작업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3년째 작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전시장에서 사진만 볼 수 있었다면 책에서는 사진과 함께 모든 작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덕분에 독자는 더 쉽고 아프지 않게 살처분이라는 힘든 주제에 비로소 다가갈 것이다. 살처분 매몰지에 관한 이야기지만 단지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묻다] 전시장을 찾았던 유치원생들이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찌하면 되는지 알게 된 후 깔깔깔 웃고 나갔던 것처럼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