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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시인의 말
제1부 015 시작 016 치매라서 몰라볼지도 몰라요 018 봉평장터 번호표 019 거미와 나 020 새빨간 거짓말 021 텃밭은 가을 023 그 여자는 방, 그 남자는 거실 024 흔들리고 싶었다 025 부활 후 계약자 변경 026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027 닥터헬기 028 상처에 사과를 했다 029 미러링, 내가 없어도 031 봉창 033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2부 037 개심사 백일홍 038 꽃등 040 불티나루 042 구절초 043 노랑배 둘레길 044 섬의 내력 046 외연도 가는 길 047 청단풍 048 닥풀 050 상서리 꼭대기 집 051 사남매의 꿈 052 손 그늘 054 감자에 싹이 나서 055 꿀꺽 057 자라나는 소금 제3부 061 참, 오래 걸렸어 062 배추흰나비 063 흔들리지 않았다 065 그 집 066 마다가스카르 바나나 068 시월의 허기 069 은근하다는 것 071 끼어들지 말고 비켜가세요 072 저, 꽃들은 073 해후 074 나는 닭이로소이다 076 나보다 더 쓸쓸한 안녕 078 주검 앞에 빗소리가 079 혼자만의 것은 아니어서 080 야누스 CCTV 제4부 083 핑크뮬리가 홍가시나무에 물었다 085 풀밭에서 087 익숙해지기 전에 089 저도 그게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090 귤 속에 귤 밖에 없었습니다 092 나를 흔들었다 093 그 손 094 출구 없는 하루 096 해막 097 외연도 엘레지 099 책받침 100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 102 아직도 우리는 연인입니다 103 짐 104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어요 105 해설 |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깨닫게 된 것 | 조해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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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전생은 고양이 아니면 여우
쉽게 드러내지 않는 발톱을 보여주거나 새침했던 손을 꽉 잡아주었을 때 차가웠던 손끝으로 수혈하는 기분이랄까 내 손가락이 그녀의 손바닥을 꼭 쥐게 하는 실금의 꼬리 눈빛만으로는 알 수 없는 속 그녀의 발걸음에선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양이 아니면 여우였을 그녀 비좁은 골목에 진눈깨비 매달려 있다 ---「흔들리고 싶었다」중에서 모름지기 너무 조이지 말고 미끄럼 없고 흘러내리지 말고 그래야 내 발이 편하지 오늘 아침 양말을 신는데 산타할아버지 선물 주머니인 줄 깜짝 놀랐어 양말 입구는 괄약근이 늘어졌는지 속은 허파에 바람 빠졌는지 모두 헐렁했어 매일 신었던 양말이지만 몰랐어 그 속에서 내 발가락은 엄청 편했을 거야 내 마음 양말처럼 헐렁해졌나 봐, 오래 걸렸어 많이 너그러워졌지 새것은 자꾸 발목에 자국이 패여 비표처럼 새겨지면 쉽게 사라지지도 않아 딱 맞는 건 불편해 사람도 인생도 헐렁한 게 좋아졌어 ---「참, 오래 걸렸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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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사라집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피고 지는 것일 테지요 상처를 입은 자연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아픈 사람 더 아프게 해서 힘든 사람 더 힘들게 해서 상처를 준 모든 것에게 사과합니다 잘못하고도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고집으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서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부끄러운 핑계로 우긴 적 많았습니다 이 시집을 빌어 모든 상처에 사과합니다 -----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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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은 지난한 삶의 역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릇 생명 있는 존재의 삶이란 순간순간이 고통스런 암색이며 선택이며 낯선 길의 나그네같이 불안을 동반하는 여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때로는 행복과 기쁨의 순간이 없지 않으나 근원적으로 생명이란 연민스러운 것이며 삶의 근간에는 항시 슬픔과 고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내와 극복 의지가 오시인의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중요 모티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시인은 온몸으로 도전하는 삶에의 의지를 드러내며 일상에서 받는 무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시인의 소임을 이 시집에서 다하고 있습니다. - 허영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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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삶의 한 궤적이다. 시는 우리들 삶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삶에의 노래가 아니라, 보다 진지하고 보다 속 깊은 삶을 들여다보고, 또 반추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의 평소 보이지 않던 내면이, 내적인 삶을 바라볼 수가 있다. 평소에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남들 다 잠이 든 밤이면 홀로 깨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앉아, 자신을 들여다보며 시를 쓰기 때문에, 그래서 평소 보이지 않던 아픔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또는 그리움이라든가 하는 모습들이 시의 안에는 들어앉아 있는 모양이다. 오영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상처에 사과를 했다』를 읽으면서도 바로 이런 생각을 했다. 무심히 살아온 날들에서 어느 날 문득 ‘너와 나 사이에 봉창이 있었다는 걸’ 발견한다거나, 또는 백일홍 붉게 핀 개심사 배롱나무 아래에 가서는 ‘실컷 울고 싶은’ 자신을 새삼 만나기도 한다. 이번 오영미 시인의 시집은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그런 과정을 차분히 읽어낼 수 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 윤석산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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