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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남조(南朝) 양억
남조(南朝) 전유연
남조(南朝) 유균
남조(南朝) 이종악
궁궐 뜰의 나무(禁中庭樹) 양억
궁궐 뜰의 나무(禁中庭樹) 전유연
휴가로 한가히 지내다 소경학사 전유연이 생각나서(休沐端居有懷希聖少卿學士) 양억
휴가로 한가히 지내다 소경학사 전유연이 생각나서(休沐端居有懷希聖少卿學士) 전유연
휴가로 한가히 지내다 소경학사 전유연이 생각나서(休沐端居有懷希聖少卿學士) 진월
휴가로 한가히 지내다 소경학사 전유연이 생각나서(休沐端居有懷希聖少卿學士) 이유
다시 수창에 차운해 짓고 화답함(再次首唱題和) 전유연
다시 수창에 차운해 짓고 화답함(再次首唱題和) 양억
무궁화(槿花) 유균
무궁화(槿花) 양억
무궁화(槿花) 유척
무궁화(槿花) 전유연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첫째 수(一) 양억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둘째 수(二) 양억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이종악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정위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조간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첫째 수(一) 유균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둘째 수(二) 유균
마음을 대신해(代意二首) 유척
한 무제(漢武) 양억
한 무제(漢武) 유균
한 무제(漢武) 전유연
한 무제(漢武) 조간
한 무제(漢武) 임수
한 무제(漢武) 유척
한 무제(漢武) 이종악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유균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양억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전유연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장영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이종악
한림원의 첫 매미(館中新蟬) 유척
밤 연회(夜?) 전유제
밤 연회(夜?) 양억
밤 연회(夜?) 유균
밤 연회(夜?) 전유연
학(鶴) 유균
학(鶴) 양억
학(鶴) 장영
학(鶴) 임수
학(鶴) 전유연
공자(公子) 양억
공자(公子) 유균
공자(公子) 전유연
옛 장군(舊將) 양억

해설
서곤체(西崑體)의 시사적(詩史的) 위상(位相)에 대한 재고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楊億

자(字)가 대년(大年)으로 개보(開寶) 7년(974)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뛰어나 11세에 신동으로 알려져 비서성(秘書省) 정자(正字)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이후에도 태상시봉례랑(太常寺奉禮郞), 광록시승(光祿寺丞), 저작좌랑(著作佐郞), 좌정언(左正言), 좌사간(左司諫), 지제고(知制誥),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 호부낭중(戶部郞中), 공부시랑(工部侍郞) 등을 역임했다. 경덕 2년(1005)에 왕흠약과 함께 『책부원귀』를 편찬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었다. 대중상부 6년(1013)에 『책부원귀』 편찬이 완성되자 비서감(秘書監)으로 그 품계가 올랐다. 천희(天僖) 4년(
자(字)가 대년(大年)으로 개보(開寶) 7년(974)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뛰어나 11세에 신동으로 알려져 비서성(秘書省) 정자(正字)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이후에도 태상시봉례랑(太常寺奉禮郞), 광록시승(光祿寺丞), 저작좌랑(著作佐郞), 좌정언(左正言), 좌사간(左司諫), 지제고(知制誥),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郞), 호부낭중(戶部郞中), 공부시랑(工部侍郞) 등을 역임했다. 경덕 2년(1005)에 왕흠약과 함께 『책부원귀』를 편찬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었다. 대중상부 6년(1013)에 『책부원귀』 편찬이 완성되자 비서감(秘書監)으로 그 품계가 올랐다. 천희(天僖) 4년(1020) 46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양억은 일생 동안 교유를 중시했고, 성격이 강직했으며 명예와 절조를 중시했다. 『서곤수창집』에 75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이 밖에도 많은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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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玟貞, 이백시문연구회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중국 고전 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저장대학에서 대외한어교학(對外漢語敎學)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와 대외한어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어 정태어미와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정태동사(韓語情態詞尾與漢語相應情態動詞)』, 『중국문화알기』(공저), 『중국문지리알기』(공저), 『시사중국어사』, 『서곤체 시선』, 『4色4味 중국시 산책』(공저)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서곤체 시선』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칠언율시의 형식적 특징으로 본 서곤파와 안수」, 「송초
세종사이버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중국 고전 시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저장대학에서 대외한어교학(對外漢語敎學)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고전 시와 대외한어교학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어 정태어미와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정태동사(韓語情態詞尾與漢語相應情態動詞)』, 『중국문화알기』(공저), 『중국문지리알기』(공저), 『시사중국어사』, 『서곤체 시선』, 『4色4味 중국시 산책』(공저)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서곤체 시선』 등이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칠언율시의 형식적 특징으로 본 서곤파와 안수」, 「송초 삼체시의 형식적 특징 비교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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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94쪽 | 210*297*20mm
ISBN13
9791128834868

책 속으로

다섯 번의 북소리가 궁문에 울리고 물시계 소리 희미해져 갈 때
새벽을 알리는 댓개비 소리 끊어지자 화려한 수레 날듯이 궁문을 나서네.
별 가득한 새벽 제방을 닭 울음소리 들으며 지나더니
봄비 내리는 사냥터에서 꿩 잡아 돌아온다.
금 연꽃 위의 비단 버선 걸음에 일렁이는 물결,
「옥수후정화」를 부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용이 서렸던 제왕의 기운도 300년으로 끝나 버렸으나
그래도 열린 사립문 앞의 맑은 강물은 얻었네.

五鼓端門漏滴稀
夜籤聲斷翠華飛
繁星曉?聞?度
細雨春場射雉歸
步試金蓮波?襪
歌?玉樹涕沾衣
龍盤王氣終三百
猶得澄瀾對敞扉

---「남조(南朝) - 양억(楊億)」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곤체(西崑體)는 북송(北宋) 초(初) 시단(詩壇)을 대표하는 3대 시체(詩體) 가운데 하나로, 만당(晩唐)의 이상은(李商隱)을 종주(宗主)로 삼아 그의 시작(詩作) 특징을 본받으려 한 점이 특징이다.
북송 초라고 하면 태조 원년인 960년부터 제3대 황제 진종 말년인 1021년까지 약 60여 년간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의 생활 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했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은 점차 단조로운 것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인 태조(太祖)·태종조(太宗朝)에 유행한 백체 시(白體詩), 태종 연간 후기부터 진종 연간 사이에 유행한 만당체 시(晩唐體詩), 그리고 진종 경덕(景德) 연간에 시작되어 인종조(仁宗朝)까지 그 이름을 떨친 서곤체 시 등이 바로 이 시기 시단을 대표한다. 왕우칭(王禹?)을 중심으로 한 백체 시는 백거이(白居易)의 평이하고 꾸밈없는 창화(唱和) 시풍을 계승했는데, 이는 당시 관리들이 시를 주고받을 때 많이 사용한 시 형식이었다. 따라서 벼슬길에서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창화와 맞물려 백체 시가 성행한 것이다. 그러나 백체 시가 지나치게 평이하고 천속(賤俗)한 경향을 보이자, 이에 일부 시인들이 반기를 들고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만당체 시인들이다. 만당체 시인들은 중당(中唐)의 가도(賈島)와 요합(姚合)을 종주로 삼아 시 창작에서 전고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구성에 주력하는 등 청고(淸苦)한 시풍을 본받을 것을 제창했다. 천속하고 평이한 쪽으로 편향되었던 당시(當時) 백체 시의 병폐를 극복하긴 했지만, 이들의 시풍은 만당 후기의 기울어 가는 시대에나 어울릴 만한 소극적이고 협소하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점은 북송 초 한참 발전을 앞두고 있는 시대 풍조를 반영해 내지 못하면서 점차 쇠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억(楊億)을 중심으로 해서 만당(晩唐)의 이상은(李商隱)의 시를 본받아 시를 창작한 서곤체 시의 등장은 당시(當時)의 시대 분위기와 사람들이 추구하던 심미 취향에 매우 적합했다.

이렇게 볼 때, 백체 시와 만당체 시는 당시의 연속이고, 그것에 새로운 시도를 더해 다른 풍격을 보인 서곤체 시는 새로운 송시 출발의 맹아로 볼 수 있겠다. 서곤체 시는 백체 시의 창화시풍은 계승하고 백체가 말류에 지나치게 평이하고 통속적으로 흐르는 경향에 대해서는 변화를 주었다. 즉 이상은의 작법(作法)을 본받아 풍부하고 아름다운 시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전고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시의 함축성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학문적이고 문인화된 시풍을 형성했고, 이는 당시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므로 큰 환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송시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딛는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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