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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로少年易老
우리가 나란히 식물 애호 원더박스 개의 밤 잔디 월요일의 한담 다음 손님 작가의 말 |
Hye-Young P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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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잘못이래?”
어른이 된 우리 앞에 놓인 뜻 모를 함정들 표제작 「소년이로少年易老」는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의 앞부분을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흔히 ‘소년은 늙기 쉽지만 학문을 익히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로 잘 알려져 있다. 소년이 어른이 된다는 변화에 초점을 두고 보았을 때 「소년이로少年易老」가 작품집 제일 앞에 놓인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나이 들어버린 소년, 즉 소설 속에서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도 의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걸까. 편혜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삶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도 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너무나도 다정하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그 다정함을 잃어가고(「다음 손님」), 성실히 일했을 뿐인데 속수무책으로 큰 부상을 입게 되고(「원더박스」), 용량대로 제초제를 사용했지만 왜인지 마당은 엉망이 되어버린다(「잔디」). 상상도 못 한 일 앞에서 우리는 온몸이 굳어버린 듯 당황하고, 더러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결국 하나의 질문에 집착하기에 이른다. 대체 누구 잘못이냐고, 누구의 잘못으로 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냐고. 돌아갈 곳을 잃었다. 지금 잃은 건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잃었다.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모든 걸 결국 잃게 될 줄도 모르고 애써 달려온 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식물 애호」 부분 소영이 보기에 수만은 더 신랄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왜 자신이 김이 사는 아파트까지 찾아가게 되었는지 하는 것 말이다. 수만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나 무책임한 행동에 피해 입은 것만 생각하느라 거래 당시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제 실수는 잊어버렸다. 일부러 상관없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명백히 다른 사람 탓이 되니까. ―「원더박스」 부분 한번 묻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이 불운을 책임질 자를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에. 누구 탓이냐는 질문에 질문을 더해보지만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답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피하고 싶었던 답, 바로 이 모든 불운의 시작에 내가 있다는 것. 언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마치 내가 빠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인생은 우리의 다리 한쪽을 당겨 이미 준비되어 있던 함정으로 끌어들인다. 자기 자신 외에 누구도 탓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얼굴은 어둠 속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무너지는 우리의 관계들, 그 허약했던 기반에 대하여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일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 옆에는 그들의 허우적거림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 도대체 누구 잘못이냐고 묻는 수만 옆에 “그렇다면 나는 누구 잘못으로 종일 간병을 하느냐고” 되묻는 소영(「원더박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처남의 잘못을 왜 변호하고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명(「개의 밤」), 유준의 집이 망해가는 걸 가까운 곳에서 모두 목격한 소진(「소년이로少年易老」)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 ‘지켜보는 자’들 역시 삶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선다. 대신 우리가 잃은 것을 생각했다. 그것을 어떻게 되찾을지 궁리하고, 못 찾는다면 없는 채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했다. 남편에 대해 잘 알 만큼 오래 살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는 남편이 상대와 화제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나를 툭 치고 가는 임시교사에게 분노를 느끼는 인간이 될 줄 몰랐다. ―「잔디」 부분 그것은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관계에 대해 너뿐 아니라 나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에서 온다. 때때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을지언정 안정적이고 잔잔한 나날이 대부분이었던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폭탄이 터졌을 때 우리 사이를 지탱하고 있던 많은 것들은 한번에 무너져 내린다. 나 때문에 누군가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상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잃은 것”, 오로지 거기에 몰두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주는 서늘함은 아마도 단순히 서사의 미스터리에서 오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계가 단숨에 엉망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 앞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온다. 다시 「소년이로少年易老」로 돌아와본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나이에, 유준과 소진은 단숨에 어른이 된다. 비정한 비밀을 감춘 채 혹은 사악한 함정을 파놓은 채 삶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