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그리고 『어쩌면 스무 번』 등이 있고,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The Hole』,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다.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우리가 가는 곳」을 수록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젊은작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셜리 잭슨상, 김유정문학상,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상은 목을 가눌 수 없는 갓난아기와도 같았다. 평온히 엎드려 자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돌연사의 위험을 안고 있는 갓난아기였다. 제멋대로 두었다가는 목이 꺾이거나 침대에서 굴러 부상을 입거나 얼굴을 침구에 박고 숨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니 계속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와 빨강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워지는가. 『에케 호모』는 폐허가 된 세계를 자전거 한 대로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이 낡은 질문을 새롭게 되묻는다. 초인의 등장으로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진 세계에서 한 중년 남자 노먼과 소녀 서브는 파괴된 세상을 유랑한다. 파괴자이자 구원자이며 수리공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No Man)인 ‘노먼’은 오직 눈앞의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길을 걷는다.
아포칼립스라는 익숙한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작품은 폐허 너머의 세계를 응시한다. 신성함과 폭력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으로써 인간으로 남는지,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지에 답하기 위해서. 서브가 끝내 간직하려는 ‘책’은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자 한 사람을 기억하는 행위이며,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인간에게 남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그리하여 폐허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어느새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로 묵직하게 넓어진다.
이 작품이 단지 암울한 노동의 디스토피아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로봇 수리공 수아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인간이 결코 규격화된 부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해낸다. 그리하여 소설은 우리가 효율을 위해 무엇을 내어주고 있는지, 그럼에도 끝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그녀는 안도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치료법을 찾아내서는 아니었다. 비로소 자기가 아는 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다행이라고, 그녀가 작게 말하자 의사가 호응하듯 운이 좋다고 했다.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뜻 같았다. 그러면서 의사는 이렇게 다쳤다가 운신을 하고 와병 생활로 이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운이 좋다니. 이런 통증을 겪어 본 적도 없으면서. 하
어둠 속을 배회하다가 가구에 부딪혀 낑낑 거리는 살구를 볼 때면 그녀는 슬쩍 눈을 피했다. 함몰된 눈이 너무 검고 깊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인생에 대한 산수를 해보게 됐다. 삶에서 받은 걸 애써 헤아려야만 딸에게 의탁하는 처지가 된 상황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끝없이 내준 것만 떠올랐다. 인생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언제나 가져간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여행자인 그녀와 나는 이쪽에 있고, 여행지의 풍경과 사람들이 저쪽에 있다. 이쪽과 저쪽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유리벽 같은 게 있다. 우리는 유리벽 저편의 세계를 구경하고 저편의 세계는 우리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수수료를 받는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우리가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간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세상의 모든 목적지들이란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사람에게 목적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목적지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 떠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인간들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알록달록한 표지로 된 서양 잠언집의 문장 같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