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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수상소감 수상작 이장욱 - 우리 모두의 정귀보 수상 후보작가 김성중 - 늙은 알베르토의 증오 김숨 - 초야 김이설 - 복기 이기호 -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이승우 - 복숭아 향기 전성태 - 성묘 편혜영 - 식물 애호 |
Lee, Jang-wook,李章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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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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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초상 혹은 그림자 혹은 실존!
보잘것없는 천재 화가 정귀보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야유와 패러독스. 예민한 감각으로 낯설고 수상한 세계를 조감해온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장욱, 그의 이번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단편소설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무명이었다가 사후에 ‘요절한 천재’ 화가로 일컬어지는 정귀보의 일생을 유머러스한 서사와 감칠맛 나는 문체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며 아울러 우리들의 위악적인 실존 혹은 어두운 초상을 되비쳐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정귀보’라는 화가의 평전을 쓰기 위해 작중화자가 그의 삶을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귀보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청을 받자마자 의문의 사고로 실종되어 세계적 명성과 함께 돌연한 죽음으로 신화가 된 사람이었다. 작중화자는 그런 정귀보의 평전을 쓰고자 그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춰 보게 되는데, 그의 삶의 단면들을 찾아낼수록 보잘것없는 ‘보통’의 삶이었음이 드러난다. 그의 삶이란 특출할 것 없는 출생과 성장, 그저 그런 연애와, 생각지도 않았던 화가로서의 우연, 명작의 문장을 베낀 유서 등이 작중화자를 통해 발견되고 또한 정귀보가 특별한 인생관을 가진 적도 없으며 삶의 의미 같은 걸 추구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재 화가가 아닌, 다른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균’적 삶의 전형이었던 정귀보의 숨겨졌던 아니 다르게 오해했던 그의 사실에 입각한 ‘진짜’ 삶은 ‘천재성’과 남다른 ‘운명성’ 같은 특출함과 대비된다. 미술계 평단에서 어떤 방식으로 천재 화가로 둔갑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소설이 진행될수록 생뚱스럽고 해학적으로 그려진다. 평균적 삶의 전형이었던 화가 정귀보를 통해 우리들은 소설에서 빠져나와 지금 현실의 초상 혹은 그림자 혹은 위악한 실존까지 비쳐주는 거울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현란하고 모호한 수사와 선정성이 요란스러운 이 시대에 시사”(심사평, 오정희)하는 바가 크고 세상을 향해 던지는 경쾌하고 날카로운 야유를 깨닫게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다른 면에서 오늘날 한국문학의 중요한 의미, 즉 “전(傳)의 양식적 특징을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원용하면서, 삶과 문학의 근원적인 관계에 대한 섬세한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뛰어난 소설이라고 본심 심사위원인 김동식 문학평론가는 평했다. 다양한 표정에서 독창적인 특징을 읽게 하는 주옥같은 7편의 수상후보작 대상 수상작 외에도 ‘사후에 발견된 편지’라는 상이한 소재를 차용, 비극적 사랑과 그 대상에 대한 질투가 인간의 파멸과 구원에 어떻게 간섭하는지를 형상화한 김성중의 「늙은 알베르트의 증오」, 이십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이제 막 장례를 치른 아버지와의 합장을 통해 가족의 모진 의미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균열을 그린 김숨의 「초야」, 아내의 실종과 자살, 시신이 발견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남겨진 남편의 기억과 애도, 회복을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표현한 김이설의 「복기」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또한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위악과 패러독스의 날선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자신의 유년 시절을 추적해가면서 알게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독하고 암담한 운명, 그 운명의 사슬에 자신 또한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린 이승우의 「복숭아 향기」도 고유한 개성을 발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여태껏 한국전쟁의 잔해 속 영향 하에 삶을 꾸려왔던 사람들을 통해 역사의 후유증과 시대가 남겨주고 간 참과 거짓의 정의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전성태 「성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과 그의 성치 못한 몸을 간병하는 장모와의 묘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비밀 그리고 의심을 통해 인간의 ‘추(醜)’에 관한 심리적 역량을 보여준 편혜영의 「식물 애호」도 주목해볼 만한 수작이다. ◆수상소감 흔히 작가는 신(神)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홀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완성하는 자니까요. 물론 이 알량한 작가-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저에게 이 신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지배되는 자로 느껴집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자이며, 피조물들의 희로애락에 고통받는 자이며, 깊은 밤에 혼자 통음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고, 자신을 확신할 수 없으며, 자신이 만든 세계를 구원할 수 없는, 그런 존재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인물들을 혐오하고, 냉소하고, 그러면서도 끝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 피조물들의 무관심을 견딜 수 없어서 그 피조물들에게 끊임없이 개입하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자,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세계를 짓는 신-작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작가 김유정은 저를 꾸짖을 듯합니다. 그분은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으며, 인물들을 ‘만들지’ 않았으며, 원래 그곳에 그렇게 있는 세상인 듯이, 그 세상의 인물들과 더불어 그저 살아가듯이, 소설을 썼기 때문입니다. 창조니 구원이니 하기 이전에 그분은 등장인물들과 함께 지지고 볶고 뒹굴며 울고 웃는 작가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분의 세상에는 여전히 「동백꽃」이 피고 「땡볕」이 내리쬐고 「소낙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웃음과 눈물 속에서 흘러가는 「봄, 봄」의 하루처럼 말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된 상을 받는 것은 저에게 기쁘고 무거운 사건입니다. 무겁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저의 약력에 적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고, 기쁘다는 것은 그의 이름을 저의 약력에 적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과 무거움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2014년 여름 이장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