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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녹음테이프입니다. 테이프 속에는 모두 여덟 곡의 노래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저에겐 특별한 노래들입니다. 오래 전 친구의 생일선물로 만들던 녹음테이프가 기억납니다. 나만의 특별한 노래들을 모아 만들었던 녹음테이프도 생각납니다. LP나 CD를 재생시킨 후 카세트 데크의 빨간색 녹음버튼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소리를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소리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란, 그리고 음악이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사라진 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 녹음테이프 속에는 제가 이 년 동안 세상 여러 곳에서 붙잡아둔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의 취향과 마음과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카세트 데크에 있는 파란색 플레이버튼을 눌러 제가 녹음한 소리를 들어봐주십시오 --- 작가의 말 중에서 |
“사라진 음악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 김중혁 두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집광이다. 첫 작품집에서 그가 독특하고 오래된, 그러나 이제는 쓸모없어진 사물들―예컨대 자전거, 라디오 타자기, 지도 등―을 고르고 모아 이름을 불러주고 그 사물들을 일반명사가 아닌 어떤 고유한 존재 하나의 ‘고유명사’로 되살려놓았다면, 두번째 작품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작가는 온갖 소리들―피아노, LP음반, 오르골, 600여 가지의 악기 소리가 채집된 음악파일, 전기기타……―을 한데 모아 다양한 그리고 한층 성숙해진 변주를 선보인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순간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소리의 마디마디, 음표와 음표 사이의 빈 곳에서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의 이야기들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들이 바로 이 소리(/음악)로 꽉 차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태어난 소리, 그 속에서 끄집어낸 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레그로’에서 ‘안단테’로 김중혁이 ‘들려주는’ ‘소리’의 기본적인 음색과 멜로디는 경쾌하고 발랄하고 유쾌하다. 말하자면, 그의 악보는 언제나 ‘장조’로 시작하고, 군데군데 음표에는 ‘#’이 붙어 있으며, 잇단음표와 꾸밈음으로 경쾌함을 살리고, 빠르기 또한 알레그로 혹은 알레그로 모데라토가 기본인 듯 보인다. 연주기법은 물론 스타카토.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되는 소리/이야기는 듣는(읽는) 동안 관객/독자들의 귀를 한없이 즐겁게 한다. 문제는 연주가 끝난 이후이다. 디크레셴도도, 변주도 없이, 지겨워질 틈도 없이 새로운 음들로만 채워지던 음악이 뚝 끊어지고 남는 그 빈 자리. 그 빈 공간 안에 갑작스레, 단조와 ‘b’의 새로운 소리가, 안단테와 아다지오의 음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 새롭게 생겨난 음악/소리는 더구나 피아노도 기타도 여타의 어떤 악기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연주되며, 그마저도 성량이 풍부하고 고음처리가 매끄러운 성악가/가수들의 그것이 아니라 조금은 음치이고 또 조금은 박치인, 평범한 사람들의 수줍은, 낮은 목소리이다. 우리 모두가 “엇박자”!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말한다. 각각의 개별적인 ‘소리’가 아니라, 목소리를 비롯한 모든 악기들이 하나가 되어 전체를 이루는 ‘음악’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또 꾸밈음과 엇박도 구분을 못하는 음치들이지만, 그 음치들이 모여서, 서로 박자도 음정도 다르지만, 하나의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이 소설집은 작가의 말대로 마음 한구석 어느 한 군데쯤은 모두 ‘엇박자’인 우리에게 주는 녹음테이프이다. 레코드숍에서 적당히 고르거나 MP3로 다운받은 음악이 아니라, 선물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고르고 직접 녹음한 특별한 노래. 바로 거기에서 어쩌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감동’이 생겨나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