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6
"만약에 평생 거기서 살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꿈속 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안 들어가요?""아연 씨, 저는요, 과정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인데요. 사는 게 어차피 결론이 정해져 있잖아요. 모든 사람 이 죽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정해진 결말이잖아요. 그 렇다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뭘 어떻게 중간에 반전을 줘 도, 엄청나게 자극적인 엔도르핀 주사를 맞아도, 결론은 정해진 거잖아요. 그럼 어쩌겠어요? 저는 오늘 하루 즐거울 거예요.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거, 안 믿어요.""죽는다는 생각하면 안 무서워요?""무섭다기보다는 궁금하죠. 죽을 때의 나는 어떤 상태일 까? 매번 나는 변하잖아요. 죽을 때쯤 어쩌면 저는 치매 상 태일지도 몰라요. 그럼 죽음이 닥쳐도 무섭지 않겠죠. 기억 을 다 잃어버린 상태일지도 몰라요. 그러면 죽음은 완전히 다른 의미일 거예요.""갈라에 들어가면 다 해결되잖아요. 거긴 행복한 상태의 현실 같아요. 고통도 없고 싸움도 없고, 그냥 좋은 일들이 계속 이어지잖아요.""거긴 내가 없잖아요.""왜 없어요. 행복한 기억이 윤서 씨를 둘러싸고 있고, 그 모든 기억이 윤서 씨잖아요.""내가 선택해서 얻는 게 아니고, 그냥 주어지는 거잖아 요. 오늘 실수하고 바보 같다고 후회하고, 다음 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어떤 날에는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런데 전보다는 덜 힘들어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오는 삶이 아니면 난 재미없어요.""나도 윤서 씨처럼 생각하고 싶네요.""그렇게 생각하면 되잖아요.""그런 사람도 있어요. 나한테 닥치는 모든 나쁜 일이 내 선택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서,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요. 그냥 가만히 배경화면처럼 사는 건, 또 어떤가 싶었는데, 갈라 속에 들어가보니까 그게 되잖아요.""아연 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갈라에서 그렇게 유연하게 흘러다니는구나. 그건 대단한 일이고 우리에게 좋은 일이긴 한데요. 그런데요, 갈라에서 놀지 말고 나와서 우리랑 같이 놀아요. 진짜 재미있게 해줄게요."한가진과 오윤서는 정말 나를 재미있게 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좋은 식당에 데려가기도 하고, 작은 소품들 을 자주 선물해주었고 재미있는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했 다.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내가 벼랑 끝에서 뒷걸음치는 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려는 개를 구출 할 때처럼 맛있는 먹이를 던져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뒤로 가면 위험하니까 이리로 오라고, 여기 맛있는 게 있으니까 다가와 맛있는 걸 잡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