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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상실 넘어서기
가장 슬픈 일은 나의 죽음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먼저 잃는 경험이다. 이 책은 애도 상담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고선규 저자가 영화 속 장면을 통해 삶과 애도 과정을 탐구한다. 자살, 사고, 질병, 존엄사 등 죽음의 방식에 따른 애도를 전달했다.
2026.01.27.
손민규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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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 문을 열며: 상실은 삶의 본질이자 인간의 숙명이다
엄마의 죽음을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내를 자살로 떠나보낸 어느 남편의 이야기: 영화 〈라우더 댄 밤즈〉 눈물이 나지 않아요. 제가 비정상인가요? 외상적 사별 그 직후: 영화 〈데몰리션〉 출산과 동시에 떠난 아이, 무엇을 애도해야 할까요?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는, 이름 없는 슬픔 마주하기: 영화 〈그녀의 조각들〉 죽었지만 살아 있는 남편과 계속 얘기해도 될까요? 삭제하지 못한 죽음, 디지털 데이터로 멈춰 세운 상실: 블랙 미러 시리즈 2 〈돌아올게〉 교사의 죽음, 아이들도 애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실 경험을 상실한 학교: 영화 〈라자르 선생님〉 왜 미리 막지 못했을까요? 자살이 던지는 비통한 질문: 영화 〈환상의 빛〉 아이를 잃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식을 잃은 부부의 애도: 영화 〈래빗 홀〉 아들이 죽인 아이의 부모가 전하는 용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용서와 애도: 영화 〈매스〉 아빠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야 할까요? 어린 시절 떠난 부모를 기억하는 법: 영화 〈애프터썬〉 무엇이 아내를 끝까지 아름답게 지켜주는 길일까요? 삶의 끝자락에서 묻는 존엄한 죽음과 사랑: 영화 〈아무르〉 상담실 문을 닫으며: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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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겪기 전까지 세상에 이렇게 많은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다가 그가 떠나고 나서야 모든 죽음들이 선명해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잘 떠나보낼 수 있는 사람만이 기어코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제가 이해하고 발견한 상실과 애도의 이야기를 펼쳐놓고 나누고 싶어 이 책을 통해 애도 상담실과 강의실을 열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애도의 이야기를요. 혼자서는 애도하기 힘든, 누군가가 꼭 함께 해야 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 p.11~12 어른들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적절하게 애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자살’이라는 사망의 방식은 감출 수만 있다면 끝까지 숨기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어린 자녀들이 죽음의 진실을 알았을 때,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일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입을 닫기도 하죠. ‘지금 나도 이렇게 엉망인데 아이의 고통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어른도 그렇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은 특히 더 ‘거짓’에 민감합니다. 함께 겪은 일에 관해 거짓이 느껴진다면 진실 찾기에 더 몰두합니다. 그 결과 알아낸 진실이 어른이 말해준 것, 내가 아는 것과 다르면 거짓말을 한 어른에게 배신감을 비롯한 아주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p.28 외상적 사별에 관해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상실(loss)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삶 어디든 상실이 존재하고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상실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하지만, 어떤 상실은 ‘잃었다’는 감각조차 없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종류의 상실이 해당됩니다.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멀리하는 것, 끝나버린 연애, 아이가 독립해 집을 떠나는 것, 부모님이 암에 걸리는 것,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로 이사를 가는 것, 노화로 점차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p.55 상담실에서 가족 이외의 다른 여러 관계에서 사별을 겪은 이후 아파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도할 자격’이란 무엇인지, 과연 그런 게 있긴 한지 생각해볼 때가 많습니다. “제가 가족도 아닌데 이 정도로 아파하는 게 맞나요?”, “부모가 죽은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래 슬퍼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는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어떤 존재에게 우리가 마음을 쏟았다면, 관계에서 주고받았던 감정과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를 잃은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요. 스스로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자고요. --- p.80 아직 우리나라에는 고인이 인터넷상에 생성해놓은 정보, 디지털 유산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해 법적 근거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험이나 통장 예금, 연금, 부동산 등의 재산권은 법에 따라 상속권자에게 상속이 되고, 상속인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디지털 유산은 그런 대상이 되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 p.105 저는 학교가 인간이 경험하는 슬픔과 고통에 관해서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 p.115 학교에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면 학교 구성원 각자가 받은 상처의 위치와 크기를 살펴보기도 전에 얼른 딱지를 만들기 위해 가장 크고 두꺼운 밴드를 붙이려 애씁니다. 그렇게 하면 일단 찢어져 진물이 흐르는 상처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똑같은 외부 충격에 저마다 받게 되는 상처의 크기와 회복 속도가 다른 것이 당연한데도, 개인의 고유한 반응들이 간과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의 상처는 작고 가벼워서 깨끗이 씻어만 줘도 괜찮은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항생제가 들어 있는 연고가, 어떤 사람에게는 습윤 밴드가, 어떤 경우에는 꿰매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 p.123 저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다시 삶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우연’에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 것처럼 죽음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이것은 상담실에서 만났던 자살 사별자들이 저에게 가르쳐준 교훈입니다. --- p.151 우리는 각기 다른 한 개인의 고유한 애도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자녀를 잃은 부부라 해도 드러나는 애도 양식의 차이에 매달리기보다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경험을 나누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그때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시간이 필요합니다. --- p.184 용서는 상실의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해나가야 할 끈질긴 내적 투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210 사별 초기에 상실을 삶의 핵심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말이죠. 이후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그 사건이 사별자에게 어떤 의미로 통합되는지 탐색하고 구성해야 합니다. 이는 애도 상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상실 경험을 나라는 존재 전체를 지배하는 사건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삶의 중심에는 ‘그때의 일’이 아니라 ‘한때 그 일을 겪었던’ 내가 서 있어야 합니다. 나의 정체성 중 일부분으로 상실을 겪은 사별자의 정체성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 p.237 여러분은 연로하신 부모님과 죽음에 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많지 않으실 겁니다. 어르신들은 흔히 ‘살날이 많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며 수의나 영정 사진 준비, 장지 마련, 상조 보험 가입 등 물리적인 대비는 하시지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지 깊이 성찰하거나 이에 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은 꺼립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죽음을 주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우리 모두를 준비되지 않은 이별로 내몰곤 합니다. --- p.264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언젠가 내 삶 역시 죽음으로 끝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삶의 어떤 순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입니다. 조금 이르거나 늦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공평한 조건인 죽음을, 그리고 상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평온한 일상에 무례하게 침입한 괴물처럼 죽음을 대하고 죽음이 떠난 후 짓밟히고 파괴된 흔적 한가운데에서 홀로 고통스러워하지요. 죽음을 알지 못하니 애도 또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죽음과 죽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언젠가 사별자가 될 우리가 온전히 슬퍼하고 치유될 것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조건입니다. --- p.277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관계는 치유적입니다. --- 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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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의 슬픔 안에도 쓸모가 깃들어 있음을 헤아리고,
공동체를 추스르고 부축하는 방법을 짚어준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왜 우리는 슬픔 앞에서 이렇게 서툴까”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을 만드는 법을 탐구하는 책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한다. 언젠가 내 삶 역시 죽음으로 끝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상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애도해야 하는지는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평온하던 일상에 무례하게 침입한 사건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이후의 시간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임상심리학자 고선규의 신작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죽음과 상실, 애도와 회복을 다루지만, 흔히 기대되는 위로나 치유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슬픔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대신 ‘왜 우리는 슬픔 앞에서 이렇게 서툴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또한 슬픔을 극복해야 할 감정이나 통제해야 할 상태로 보지 않고 이해하고 배워야 할 인간 경험의 하나로 제시한다. 2014년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으로 일하며 한국형 심리부검 체크리스트(K-PAC) 개발에 참여한 저자는, 오랜 시간 자살 사별자와 예기치 않은 상실을 겪은 이들을 상담해왔다. 상담실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한 것은 ‘슬픔이 지나치게 큰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에 대한 불안,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인한 당혹감은 많은 사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이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이러한 반응을 개인의 약함이나 심리적 결함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죽음과 상실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애도 또한 서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책은 “죽음과 죽은 이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언젠가 사별자가 될 우리가 온전히 슬퍼하고 치유될 것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조건”이라며,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고 흘러나오도록 돕기 위해 ‘애도 상담실’과 ‘애도 강의실’이라는 두 장치를 활용한다. “영화 속 주인공 열 명을 상담실로 초대하다” 가상의 내담자를 통해 펼쳐내는 상실의 구체적 장면들 저자는 “다양한 죽음과 그보다 더 다양한 애도의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 열 명을 상담실로 초대”했다고 밝힌다. 실제 내담자의 사례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윤리적 조건 속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자주 피하거나 덮어두는 상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 장마다 한 편의 영화, 한 사람의 상실, 그 상실이 남긴 질문과 주제가 등장한다. 책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영화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저자는 말해지지 않은 슬픔,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기억이 가족 안에서 어떤 긴장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데몰리션〉에서는 외상적 사별로 아내를 잃은 남성이 겪는 혼란을 다룬다. 이어서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잃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녀의 조각들〉을 통해 저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슬픔이 어떻게 개인을 고립시키는지, 슬픔을 말할 언어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한다. 〈블랙 미러 시리즈 2: 돌아올게〉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디지털 데이터를 통해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상실의 양상을 다룬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상실의 문제는 영화 〈라자르 선생님〉을 통해 살펴본다. 교사의 죽음을 겪은 교실에서 어른들의 불편함 때문에 아이들의 애도가 지워지는 장면은, 죽음과 상실을 ‘공동체’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겹쳐보이게 한다. 자살로 인한 죽음이 남기는 질문은 영화 〈환상의 빛〉을 통해 제시된다. “왜 미리 막지 못했을까요?”는 자살 사별자들이 자신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죄책감과 분노, 끝없이 반복되는 ‘망상적 서사’가 자살 사별의 핵심적인 특징임을 짚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애도는 영화 〈래빗 홀〉을 통해서 살펴본다. 자식을 잃은 부부가 각기 다른 속도로 슬픔을 통과하는 모습은, 애도가 얼마나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관계적인 경험인지를 보여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애도는 영화 〈매스〉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용서해야 회복된다’는 통념을 경계하며 각자의 애도에는 저마다의 윤리와 속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이야기는 〈애프터썬〉을 통해 펼쳐진다. 저자는 기억이 애도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그것이 ‘치유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뜰히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존엄한 죽음에 관한 질문 앞에 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무르〉를 통해서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처럼 영화가 바뀔 때마다 죽음의 방식도, 남겨진 관계도, 애도의 질문도 달라진다. 저자는 내담자를 재단하지 않고, 슬픔의 모양을 평가하지 않으며, 질문이 생겨난 맥락을 끝까지 붙잡는다. 독자는 ‘영화 속 인물’이라는 타인의 서사를 경유해 어느 순간 자신의 상실과 마주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슬픔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슬픔을 바라보고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같은 죽음은 없다” 죽음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애도의 풍경 책의 또 다른 축은 ‘애도 강의실’이다. 상담실이 상실의 내러티브를 보여주는 자리라면, 강의실은 그 내러티브를 조금 더 이론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심화하는 자리다. 저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죽음의 방식과 사별 관계에 따라 애도의 경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밀하게 구분한다. 여기서 저자는 애도를 ‘정답 있는 단계’로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의 방식(사고·질병·자살·존엄사)과 사별 관계(배우자·부모·자녀·공동체)에 따라 애도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외상적 사별에서는 충격이 먼저 삶을 덮고, 질병 사별에서는 긴 시간의 돌봄과 피로가 애도에 섞이며, 자살 사별에서는 죄책감과 낙인이 애도의 공간을 급격히 좁힌다. 존엄사와 같은 죽음은 존중의 마음과 상실의 고통이 동시에 존재하며, ‘과연 옳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남긴다. 애도 강의실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려는 핵심 주제는 명확하다. “고통은 혼자 겪을 수 있어도, 회복은 홀로 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애도는 개인의 내면에서만 완결되는 감정 작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화되고 담길 때 비로소 이어지는 과정이다. 결국 이 책은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언어를 열고, 강의실에서 ‘개념’으로 그 언어를 단단하게 만든다. 전자가 감정의 경험을 드러낸다면, 다른 한쪽은 그 경험을 해석할 이성적 토대를 제공하는 셈이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다” 위로보다 이해가 필요한 순간, 단단한 좌표가 되어줄 책 마지막에 저자는 상담실 문을 닫으며 애도가 개인의 문제로만 남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말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이며,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으며 “슬픔이 흐를 수 있는 관계는 치유적”이라고 말한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에 있다. 슬픔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슬픔이 흐르도록 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공간을 갖는 일. 애도는 ‘끝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삶을 다시 구성해가는 과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여전히 자주 침묵 속에 놓이고, 상실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방치되기 쉽다. 이 책은 그 침묵을 감정 과잉 없이, 그러나 회피하지 않는 방식으로 깨운다. 영화라는 공통의 서사를 통해 독자가 안전하게 상실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상담과 강의의 언어로 애도의 구조를 설명하며,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슬픔을 개인에게만 맡겨둘 것인가, 아니면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위로를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상실 이후의 삶에 필요한 가장 현실적인 조건(듣는 관계, 말할 언어, 머물 공간)을 제안하는 책이다. 위로보다 이해가 필요한 순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언어로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단단한 좌표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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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슬픔이 서툰 사람이다. 슬픔을 피해 다녔다. 슬픔을 만나면 괜한 농담을 해가며 멀리 쫓아냈다. 그런다고 슬픔이 어디 가지 않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다시 돌아온다. 한번쯤 슬픔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책은 슬픔과 독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끼어 삼자대면하는 것 같지만 영화는 곧 사라진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면, 나의 슬픔을 마주하고 있다. 주인공의 상실에 공감하다 보면 내가 뭔가 잃어버린 상태란 걸 깨닫게 된다. 책을 읽다 여러 번 울컥했다. “죽음을 제대로 마주해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요”라는 문장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김중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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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겪는다. 죽음의 돌이킬 수 없음이야말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없음’을 이해하려 안간힘을 쓰며 무너진 삶을 이어 붙인다. 어쩌면 죽음은 삶의 영원한 스승. 우리는 죽음이라는 불가해한 사건 앞에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오래된 학생일 뿐이다. 상실과 부재가 만든 “고통은 혼자 겪을 수 있지만, 회복은 홀로 해낼 수 없”어서 심리학자 고선규는 ‘애도를 위한 처방전’을 썼다. 영화 10편을 경유해 도착한 이야기 속에 나와 당신의 조각들이 있다. 속수무책의 슬픔 안에도 쓸모가 깃들어 있음을 헤아리고, 공동체를 추스르고 부축하는 방법을 짚어준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죽음이 사랑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고. 슬픔의 미궁 속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이 책을 손수건 대신 건네고 싶다. - 장일호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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