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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서론: 보이지 않던 죽음을 드러내기까지 1장 우리 곁의 이상한 죽음들 - 현대 한국의 고독사 - 통계로 읽는 고독사 - 사람들은 왜 고독사를 두려워할까 - 고독사와 지역사회 -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 - 고독사와 사회적 부검 2장 누적된 실패와 고립된 삶 -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단절을 선택하다 (이준영) - 잘나가던 인테리어 사업자의 죽음 (최정준) - 중년 남성은 왜 더 고립되는가 3장 제도의 공백과 서비스의 지연 - 어느 기초생활수급 탈락자의 죽음 (김선화) - 고독한 정착민의 투병 (장복민) - 코로나19의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둔 독거노인 (한순례) - 존재하지만, 연결되지 않는 제도 4장 자존과 생존 사이에서 - 파란만장한 삶, 또는 쓸쓸한 죽음 (차영일) - 어느 고양이 아빠의 죽음 (박종후) -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5장 그 동네는 왜 고독사가 많을까? - K동 사례연구: 한 도시의 고독사 절반이 집중된 동네 - S시의 경제·사회적 변동과 1인 가구 밀집의 배경 - 고독사를 함께 겪는 동네 - 도시와 인구의 변화가 낳은 고립 6장 취약하다는 것은 단절되었다는 것 - 중노동으로 망가진 몸 (전창원) - 어느 자립준비 청년의 죽음 (정선철) - 난치병으로 고립된 중년 (소민호) - 중독의 수레바퀴에 빠진 쪽방촌 생활자 (김철민) - 도와줄 동료와 이웃, 어른이 필요하다 보론 외로움과 고립 예방을 위한 각국의 노력 - 영국: 외로움은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 -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슬기로운 역할 분담 - 독일: 외로움의 증가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 한국: 촘촘한 연결 사회를 위하여 * 더 읽어보기: 나의 사회적 고립도와 외로움 상태 점검하기 맺음말: 고독사는 줄지 않을 것이다 주 나가는 글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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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고독사 연구는 고립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 동안 사회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독사를 통계 속 숫자로만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인들의 기록을 통해 그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 p.8 그 과정에서 내가 관계망 단절의 증거로 정한 것은 ‘시신의 부패’였다. 물론 시신의 부패 정도는 계절과 실내 온도에 따라 편차가 크다. 그럼에도 부패한 상태로 발견된 시신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나 집에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했다. --- p.17 나는 우리 삶과 일상을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긴밀한 지지가 있던 과거로 되돌리자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방향을 세우기에는 이미 개인의 삶이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가족과 지역공동체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과 사회적 인프라 속에서도 답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 p.24 특히, 20~30대 젊은 연령대의 고독사 가운데 절반 정도가 자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자살과 고독사가 겹치는 영역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어떤 고립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죽음인가. 젊은 연령대일수록 자살로 인한 고독사가 많다는 사실은, 청년의 고독사가 노년의 고독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 p.37 사람들은 가족이나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죽음보다, 자신이 어느 정도 준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죽음을 좋은 죽음의 우선순위에 놓고 있었다. 또한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 부담을 남기지 않는 것도 좋은 죽음의 중요한 조건으로 보았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고독사처럼 준비되지 못하고 관리되지 못한 죽음은 비참한 죽음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p.40 방 안에서는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다. 준영 씨가 집주인에게 남긴 편지였다. 자신의 시신을 잘 처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보증금 1000만 원을 방 정리와 장례에 쓰고 나머지는 집주인에게 드리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pp.66-67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성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일을 계속하는 경우, 이를 사회적으로 적절히 지원할 수 있는 장치는 매우 제한적이다. ‘쉴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임금 노동자에게만이 아니라 자영업자에게도 휴식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며, 동시에 ‘쉰다’는 선택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 p.76 혈연이나 법적으로 맺었던 관계가 과거의 상처와 사건들로 인해 끊어졌더라도, 그것으로 인간관계가 전부 끝나는 건 아니다. 가족과 멀어진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만남과 이어질 수 있다. 단절된 관계를 뒤로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연결은 고립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수 있다. --- p.82 혼자 독립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선화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호구 잡히고’ 무시당하는 일을 여러 차례 겪었을지도 모른다. 돈을 낭비하거나 사치한 흔적이 없는데도 통장이 압류되어 있었다면, 오래도록 식당 일을 하며 번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주었거나 반복적으로 금전적 피해를 봤을 가능성도 있다. 그녀에게는 이런 상황을 의논하고 개선하기 위해 나서줄 수 있는 지인이나 친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자신을 향한 부당한 공격과 여러 걸림돌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그저 견뎌왔던 것으로 보인다. --- pp.87-88 여든 살 후반의 순례 할머니에게 거주지를 옮기는 일은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순례 할머니가 그 시기를 잘 견디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있었으며, 누군가는 그 일을 도와야 했다. 그러나 이사 온 지 불과 6개월 만에 순례 할머니는 팬데믹을 겪게 되었고, 이는 정서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노인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 것이다. --- p.109 영일 씨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거부했는지를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거부는 돌봄 관계가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일 수도 있고, 타인의 도움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으며, 혹은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것이 없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도움에 대한 거부는 하나의 의사 표현이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싫다’라는 거부 안에 다양한 맥락이 숨어 있을 수 있다. --- p.128 유독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이 세 보였다는 종후 씨는 소득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생계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공적 지원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주거급여까지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주거급여는 신청하지만, 자신이 완전히 경제활동을 못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어야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는 신청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 pp.132-13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적 상상을, 자기방임 상태에서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기억할 만한 추억 하나를 품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면, 삶의 마지막에 사람의 온기를 느낀 순간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 p.146 K동의 사례는 단기간의 효율에 매몰된 재개발 정책이 시간이 흐른 뒤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질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p.168 단 한 명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나 동료, 이웃이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된다. 이 안전망은 정부의 제도보다 먼저 작동한다. --- p.209 고립되거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 중에는 누군가의 관여와 지원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 그들의 생활상이 지속되는지를 창 밖의 불빛, 문 여닫는 소리, 인기척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지켜보기다. 지켜보기는 대지진 이후 생명안전 확보를 위해 고안된 지원체계이자 고독사를 막기 위한 지역주민의 안전 네트워크다. 지켜보기는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빈틈 없이 파악하고, 누락되지 않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활동을 의미한다. --- p.229 이제는 이웃, 친구, 동료, 어른으로서의 역할이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관계를 인위적으로라도 이어주는 서비스가 필요해 보인다. 인적 지지체계가 부재한 상황을 기본권이 위협받는 상태로 보고, 적극적으로 관계망을 연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 p.2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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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죽는 사회
혼자 살던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에 발견된다. 우리는 그런 죽음을 ‘고독사’라고 부른다. 매년 한국에서는 전체 사망자의 약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다. 동네에서 ‘고양이 아빠’로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제가방 제조공장에서 가방을 만들던 기술자였다. 공장이 폐업하면서 쉰 중반에 조기 퇴직하게 된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불운하게도 작업장에서 낙상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일을 쉬는 날이 늘면서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놓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는 동네 한쪽에 길고양이 급식소를 사비로 마련했다. 사료와 물그릇을 챙겼으며, 아픈 고양이들의 치료비도 직접 부담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모임을 함께하던 캣맘 회원은 “본인은 찌개 하나 끓여 밥을 먹거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고양이들한테는 최고로 먹였어요”라고 그를 기억했다. 이웃들이 왜 그렇게까지 고양이를 돌보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불쌍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어느 날 매일 급식소에 나오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캣맘들이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주거지에서 숨져 있는 그를 발견했다. 2020년, 예순한 살에 반지하 방에서 숨을 거둔 박종후 씨(책에 등장하는 사례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야기다. 『혼자 죽는 사회』는 한국 최초로 고독사 통계와 판정 기준을 마련한 사회복지 연구자이자 스스로랩 대표 송인주의 첫 책이다. 저자는 2016년부터 2만 건이 넘는 경찰 변사 기록을 검토하고 고독사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떻게 고립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지 추적해왔다. 현재는 1인 가구, 고독사, 사회적 고립, 돌봄서비스를 연구하고 강의하며,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는 대화 모임 ‘카페사담’도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고독사 통계와 현장을 오가며 쌓아온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고독사를 개인의 불행으로만 보지 않고, 우리 사회가 함께 살펴야 할 문제로 다시 꺼내놓는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고독사라는 사건 자체보다는 사람들이 그런 죽음을 맞기 전까지 고립 상태에 놓이는 과정이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듯, 고독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이 아니다. 관계의 단절, 빈곤과 질병, 주거 불안, 제때 닿지 못한 지원이 한 사람의 삶을 서서히 고립 상태로 밀어 넣은 결과에 가깝다. 저자는 이 과정을 ‘사회적 부검’의 방식으로 되짚는다. 법의학적 부검이 몸에 남은 흔적으로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이라면, 사회적 부검은 고인의 삶에 남겨진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며, 그 죽음의 사회적 배경을 살피는 일이다. 이 책에는 열한 명의 사례자와 한 곳의 지역 사례가 등장한다. 사업 실패와 이혼 뒤 홀로 생활하는 중년 남성, 기초생활수급 신청에서 탈락한 뒤 생활고를 견뎌야 했던 여성, 낯선 거주지에서 팬데믹의 고립을 겪은 노인, 아동보호시설에서 나온 뒤 외롭고 무거운 삶을 감당해야 했던 청년 등이다.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을 통해, 그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질문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에게 고독사 연구는 “고립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시간 동안 사회는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 일”이며, 동시에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다짐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 고독사는 흔히 노년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한국의 고독사 통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중장년 남성이다. 2024년 전국 고독사 3,924건 가운데 남성이 82~83퍼센트를 차지했고, 50~60대 남성의 고독사는 전체의 54퍼센트에 이른다. 왜 남성, 그중에서도 특히 중장년들은 고독사에 취약할까? 저자는 그들의 생애 과정을 따라가며, 어떻게 사회적 고립으로 빠지는지 들여다본다. 준영 씨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했고, 결혼해 자녀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를 나온 뒤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불화가 깊어졌고,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 그는 재기를 다짐하며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지만, 이후 10여 년 동안 찾아오는 사람도,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거의 없이 홀로 지냈다. 알코올 중독과 흡연으로 건강도 점점 나빠졌다. 제주도에 다녀온 집주인이 돌아왔을 때, 준영 씨가 주문한 택배가 문 앞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집주인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열흘이 지난 뒤였다. 정준 씨는 부산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2013년, 그는 경기도권으로 사업을 넓히기 위해 홀로 경기도의 한 소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나 사업은 점차 어려워졌고, 부산 생활을 정리한 뒤 다시 경기도의 원룸으로 돌아와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건강도 눈에 띄게 나빠져 정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했고, 건물 관리인에게는 “입맛이 없고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어 달 동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관리인이 걱정되어 방을 찾았고, 정준 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온 중장년 남성에게 실직과 사업 실패, 이혼과 질병은 단순한 경제적 위기가 아니다. 노동을 통해 쌓아온 자부심과 관계망이 함께 흔들리는 사건이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길을 찾아줄 사람이나 사회적 안전망은 충분하지 않다. 이들은 여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며(“팔다리가 멀쩡한데 왜 나라의 지원을 받느냐”), 노인이나 장애인처럼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도 잘 인식되지 않는다. 경제 형편이 나빠지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추스를 틈도 없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고, 이전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 남성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경제활동 불능자, 국가에 완전한 신세를 져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며, 도움을 받기보다 차라리 거부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쓰러지기 전까지 일을 멈추지 못한다. 재기를 돕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 혼자 버티는 데 익숙해진 삶의 방식으로 인해, 중장년 남성들은 인생의 전환기에서 쉽게 고립 상태로 밀려난다. 존재하지만 닿지 않는 제도 고독사의 원인은 과연 제도의 부재에만 있을까. 복지 제도와 지원 정책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당사자에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제때 닿지 못하거나,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뒤 긴급입원까지 했던 선화 씨는 두 번이나 기초생활수급에서 탈락했다. 자신이 일하던 식당 주인에게 명의를 도용당해 자동차가 자산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증빙 서류만 떼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마저도 높은 장벽이었다. 순례 할머니는 여든 살 후반에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노년기에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정서적 부담이다. 할머니는 익숙한 장소와 오래된 관계망에서 멀어진 채 새 동네에 적응해야 했고, 이사 온 지 6개월 만에 팬데믹을 맞았다. 비록 경제적 부담이 적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물리적 주거 환경은 좋아졌지만, 팬데믹 와중에 오래된 관계망에 멀어진 일은 정서적 지지가 필요했던 할머니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탈북이주민 복민 씨는 “병이 있다고 다시 탈북민이 되는 것은 싫다”라며 탈북민 지원 기관의 사례관리를 거부했다. 정착과 자립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그에게 ‘탈북민’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는 지원 체계는 다시 벗어나고 싶은 관계망이었다. 반면 행정복지센터와 보건소처럼 ‘탈북민’이라는 꼬리표 없이 제공되는 공적 서비스에는 비교적 거부감이 없었다. 저자는 정책이 있음에도 당사자에게 닿지 않는 이유가 “정책의 주인공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선화 씨의 사례는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행정 절차와 증빙 요구가 얼마나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행정복지센터가 심사 과정에서 해당 자산이 사기 피해로 생긴 것임을 비교적 명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면, 서류를 나중에 보완하더라도 먼저 지원할 수는 없었는지 묻는다. 순례 할머니의 사례는 노년기의 주거 이동이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익숙한 관계망과 지지 체계의 단절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할머니의 기존 주거지 근처에 살 곳을 마련해줄 방법은 없었을까? 복민 씨의 사례는 지원이 어떤 이름으로, 어떤 관계를 통해 제공되는가에 따라 당사자의 수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제도가 당사자의 상황과 마음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며 다가가느냐이다. 고독사를 함께 겪는 동네 K동 사례연구는 고독사를 지역 환경과 연결지어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장이다. 저자는 한 도시의 고독사 발생 지점을 지도 위에 구현해, 죽음이 특정 지역에 어떻게 집중되고 있는지 살핀다. 2021년 S시 전체 고독사 가운데 48퍼센트가 K동에서 발생했고, K동의 고독사 11건은 모두 특정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안에서 확인됐다. 다가구주택 한 채를 사이에 두거나,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러 건이 인접해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K동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고독사가 일어나고 있을까? K동은 낡은 주택이 몰린 전형적인 원도심 쇠퇴 지역이라기보다, 과밀한 주거지로 빠르게 개발되면서 행정과 공공 영역이 지역 안에 자리 잡을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곳이었다. 저자는 지역 활동가와 부동산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대규모 공장 이전과 거주자 변화, 원룸 밀집지역의 관리 공백을 함께 살핀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주택관리·부동산 종사자는 집주인 대부분이 외지인이고, 퇴직 뒤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매입하거나 건축해 임대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자가 많아지면서 주택관리와 세입자 돌봄에서 사각지대도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K동 원룸 밀집지역에는 파출소와 공공 행정시설, 병원과 약국, 어린이집, 노인정이 없었다. 한 인권 활동가는 “여기는 파출소가 하나쯤 있거나 행정센터 하나 정도는 들어와줘야 해요”라고 말했고, 부동산업 종사자는 “사건·사고가 하도 많아서 건물주들이 요청해 시에서 CCTV를 설치해줬어요”라고 증언했다. 저자는 이러한 공공시설물의 부족과 유흥시설의 밀집이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기고, 파출소와 공공기관의 부재가 행정·복지의 사각지대를 낳을 수 있음을 짚는다. K동은 이웃 간 교류가 적어 고립의 징후를 알아차리기 어려웠고, 그 위험 신호를 행정과 복지 체계로 연결하는 통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처럼 저자는 고독사가 특정한 생활환경과 주거 구조, 약한 이웃 관계 속에서 동네가 함께 겪는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자리를 찾아 잠시 머무는 사람들, 짧은 임대 계약, 원룸과 고시원 중심의 주거 환경, 부족한 행정·복지 인프라가 겹칠 때, 그 지역의 사회적 고립도가 올라갈 수 있다. 저자는 고독사가 반복되는 동네일수록 주민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공공이 개입할 필요가 더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촘촘한 연결 사회를 위하여 1인 가구 1000만 시대,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3,924명이 고독사를 맞았다. 고독사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고립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AI를 통한 소통이 늘어나고 사람과 직접 관계 맺는 일이 어려워지는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고립도 더 깊어질 수 있다. 일터 안팎의 관계가 빈약한 사회에서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가까운 관계 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가족이 더 이상 유일한 안전망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 삶과 일상을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긴밀한 지지가 있던 과거로 되돌리자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개인의 삶은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족과 지역공동체만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과 사회적 인프라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 장기요양, 1인 가구 돌봄, 일상돌봄서비스 같은 공적 제도가 운용되고 있지만, 그 빈자리는 결국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저자는 “도와줄 동료, 이웃,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맹이었고 휴대전화도 없었던 창원 씨에게 장애인 등록을 알아보라고 권했던 동료처럼, 보호종료 청년 선철 씨에게 절실했던 믿을 만한 어른처럼, 누군가를 제도와 관계망에 연결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나 동료, 이웃이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된다. 이 안전망은 정부의 제도보다 먼저 작동한다.” 저자가 말하는 연결은 단순한 호의나 관심이 아니다. 인적 지지체계가 부재한 상황을 기본권이 위협받는 상태로 보고, 적극적으로 관계망을 연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책은 참고할 만한 해외 정책 사례도 함께 살핀다. 일본의 ‘지켜보기’는 고립된 사람을 당장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보다 생활의 변화를 살피고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외로움이 공공기관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외로움 예방을 사회 전체의 과제로 다룬다. 결국 고독사 예방은 먼저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데서 시작하며, 고립된 사람이 공적 지원과 일상의 관계망에 닿을 수 있도록 사회적 연결을 새로 짜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립의 위기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일상의 감각이다. “고립되어 자기를 돌보지 않게 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때 자신을 버티게 하는 것은 일상의 힘입니다. 나를 위해 밥을 짓고, 구수하게 된장찌개를 끓이며, 자신을 위해 김치볶음밥을 뚝딱 해낼 수 있다면, 꼭꼭 씹어 맛있게 먹고 그릇들을 뽀드득하게 씻어 건조대에 잘 엎어 놓을 수만 있다면, 나중에 치워야지 하고 묵혀 두었던 재활용 쓰레기들을 깨끗하게 분리하여 잘 묶어 내놓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책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향한 ‘사회적 애도’라는 뜻을 밝히고 있다. 모쪼록 이 책이 한때 우리 곁에 있었지만 외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주변의 이웃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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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안녕을 논할 수 있을까? 저 멀리, 선정적인 뉴스 보도와 드라마 사이에서 부유하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여기, 내 가족과 동료, 이웃에게 엄습하는 죽음과 소외의 현실을 밝히는 이 뜨겁고 면밀한 기록을 외면하고서.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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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쟁사회에서 실패와 주거 불안, 질병이 한꺼번에 덮쳐올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외로움의 모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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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공동체가 희미해져가는 시대에 이 도시는 우리를 어떻게 홀로 남기고, 홀로 죽게 만드는 걸까? 이 도시는 ‘서로를 잇는 관계망’이란 인프라를 새로이 구축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외롭지 않게’ ‘함께’일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친절한 응답이 이 책 안에 있다. - 김만권 (정치철학자, ≪외로움의 습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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