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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부모라는 함정 2 심장이 터질 때까지 3 번아웃 게임 4 네가 뭘 하든 5 작은 소년 6 들개들 7 당신에게 기대되는 것 8 어린 시절이 드리운 그늘에서 9 GI 빌이 누구라고? GI 조 동생인가? 10 문제아 11 사치 신념 12 이리저리 휘고 도는 사람 감사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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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사다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실제로도 종종 그러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설령 버려지고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다 해도 그 아이는 여전히 상처 입고 괴로워할 수 있다. (중략) 불안정한 환경과 신뢰할 수 없는 보호자가 아이에게 나쁜 이유는 아이들의 대학 진학 가능성을 낮추고 자립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아이들이 고통을 겪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 p.11 나는 가난하게 자랐다. 군대에서 중산층을 만났으며 예일대에 진학한 뒤에야 안락한 삶을 살게 됐다. 서로 다른 이 집단들에 대한 고찰을 빼놓고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빈곤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미국의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야기.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사다리 꼭대기 혹은 그 근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고 ‘사치 신념(luxury beliefs)’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사치 신념이란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이다. --- pp.18-19 나는 늘 ‘진짜’ 부모님을 가진 애들을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족들은 TV에나 나왔지 내 삶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와 내 위탁 형제자매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그게 내게 익숙한 모습이었으니까. 내 삶이었으니까. 이제 곧 흩어지게 될 나의 새 가족을 보며, 이제 내 삶이 특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변하게 됐다. 어른들은 오고 간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 엄마 아빠라 할지라도. --- p.79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나는 교육을 새롭게 보게 됐다. 책은 우리가 사회 계층을 정의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이 실은 우리의 계급을 보여 주는 지표라고 주장한다. 퍼셀에 따르면,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계층을 돈으로 규정한다. 이 점에서 나는 어렸을 때 함께 자란 친구들과 비슷했다. 우리는 돈을 아주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중산층은 계급이 경제 사정만큼이나 교육과도 관련 있다고 믿는다. --- p.275 수많은 학생이 매일, 체제의 압력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러한 장애물을 극복한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기꺼이 증명했다. 이는 피해의식과 우월감이 뒤섞인 강력한 감정을 낳았다. 엘리트 교육 기관에 자리를 잡은, 상대적으로 혜택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궁지에 몰린 존재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최고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이런 이중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당신들은 미래에 세상을 이끌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지워지고 소외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이런 곳에 입학하는 순간, 이미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운이 덜 좋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해야 한다는 임무와 함께. 하지만 많은 학생이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전문적 이득을 좇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그들이 역사적으로 잘못 대우해 온 집단과의 공통점을 전용해서 말이다. --- p.299 나는 낯선 사람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머니더라도 희생시킬 건지 물었다. 그는 곧바로 그러겠다고 답했다. 나는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한 지인들 중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을 한 명도 떠올릴 수 없었다. 후에 나는 상류층이 공리주의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신념을 더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읽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공감 능력을 가지며 의사 결정에 있어 냉철하게 판단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읽는 동안 때때로 좋은 인턴십 자리를 위해 전략적으로 경쟁자들의 사기를 꺾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 p.305 나는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내 왕성한 호기심은 곧 학위 범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계급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싶었다. 계급 갈등과 사회 계층에 관한 책들을 읽고 배운 바를 내 경험과 비교하며 나는 차츰 ‘사치 신념’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는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을 뜻한다. 상류층에는 (꼭 이러한 경우만 뜻하는 건 아니지만) 명문 대학 재학생 혹은 졸업생이면서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학사 학위 소지자인 사람이 포함된다. --- p.309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교육 수준은 사회 계층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하고 객관적 지표다. 부모의 소득에 비해 부모의 교육 수준이 아동의 미래 라이프 스타일, 취향, 의견을 예측하는 데 더 강력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아이비리그 학생 중 80퍼센트 이상은 부모가 학사 학위 소지자였다. --- pp.309-310 그는 우리 반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생물학적 부모님 아래서 안정적으로 자랐다. 그리고 본인도 결혼을 할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가족상은 구식이며 사회가 이를 넘어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처럼 어떤 이상(“일부일처제는 구식이다”)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은 이상과 다른 삶(“그러나 나는 결혼할 생각이다”)을 추구하는 현상이 다른 학생들에게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가령, 그들은 군대를 대단히 높이 사거나 직업 학교도 대학만큼 존중받아야 한다고, 성공을 위해 대학이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자식에게 입대를 하라거나 배관공, 전기기사가 되라고 권하겠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곧장 반대한다고 말하거나 화제를 돌렸다. --- pp.311-312 부유한 계급의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한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자신을 악영향에서 보호한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이득까지 취한다. --- p.312 과거 사람들은 물질적인 재화를 통해 자신이 상층 계급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보다 사치품을 구하기가 더 쉬워졌다. 이 변화가 부자들에게는 문제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 가지 영리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사회적 지위를 상품과 분리하고 신념과 연결시키는 것. --- p.313 〈해밀턴〉 티켓 가격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비쌀 때는 뮤지컬을 좋아하다가,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 시작하자 이를 비웃었다. 우연이 아니다. 뭔가가 너무 큰 인기를 얻으면 엘리트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취향을 바꾼다. 2015년에 〈해밀턴〉을 보는 행위는 지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2020년에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게 바로 부자들이 갑자기 그 뮤지컬에 등을 돌린 이유다. 이 모든 게 지위 게임이다. --- p.323 이들은 최신 지식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좀 배우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자식을 돌보며, 사회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볼 만한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는 최신 베스트셀러를 읽을 시간이나 수단이 없는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다. 〈해밀턴〉의 경우처럼 이들이 따라잡았을 때쯤이면 유행하는 문화는 또 바뀌어 있다. 부유층은 좋은 대학에 다니고, 좋은 팟캐스트를 듣고, 좋은 책과 기사를 읽는 사람들만이 내부 서클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 p.325 한 연구에서 20년에 걸쳐 미국의 젊은 성인 6천 명 이상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인생이 외부 요인보다는 자기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성공했으며 더 높은 소득을 얻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략) 성공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력과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성공한 이들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세상에 말하면서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력과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pp.332-333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내가 뭔가로부터 달아났고, 뭔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격동 속에서 도망쳤다. 돈, 교육, 명예와 같은 사회적 신분 상승을 향해 달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성공의 상징이라 불리는 것들을 몇 가지 이루고 나자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가족에 비하면 외적 성취는 정말 보잘것없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 당신이 매일 학교에 가는지 관심을 갖는 부모가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 pp.353-354 어린 시절에 겪는 트라우마가 나쁜 이유는 단순히 자라서 대학을 가지 못하거나 적은 소득을 벌게 돼서가 아니다. 술, 마약에 중독되거나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도 아니다. 그것이 나쁜 이유는, 아이들이 트라우마를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쁜 경험은 그 자체로 나쁘다. --- p.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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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로버트 킴 헨더슨,
각각 나를 버린 세 어른에게서 따 온 이름이다” 로버트 킴 헨더슨은 7년 동안의 군 복무 후 아이비리그 최고의 대학인 예일대에 진학해 심리학 학위를 딴 후 케임브리지 게이츠 장학생으로 선발돼 케임브리지에서 박사까지 취득한 인재다. 유수의 언론에 글을 기고하는 정치 평론가이기도 하며 또 현재 그의 서브스택을 8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구독하고 있기도 하다. 맨해튼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아홉 살부터 술을 마시고 매일 담배와 마리화나를 피는 등 온갖 말썽을 일으키고 다닌 “문제아”이기도 했다. 구제불능의 문제아는 어떻게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그의 이름은 모두 세 명의 어른에게서 왔다. 로버트는 얼굴도 모르는 친부의 이름이고, 킴은 그를 낳고 세 살까지 키운 한국인 생모의 성이다. 마지막 성인 헨더슨은 그를 파양하고 두 번 다시 얼굴을 보지 않은 양아버지의 성이다. 이 세 명에게는 모두 그를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헨더슨의 삶은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생부는 헨더슨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졌고, 생모는 마약에 취해 그를 방치했다. 생모가 양육권을 박탈당한 세 살 이후로는 일곱 곳의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살았다. 입양 이후로도 가정의 해체를 지속적으로 겪으며 도무지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환경에서 컸다. 이 경험의 그에게 큰 상흔으로 남아 그는 군에 입대한 이후로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을 겪는다. 삶의 밑바닥에서 예일대 입학이라는 전무후무의 성취를 거둔 그는 곧 공허함에 빠진다. 상류층 동기들은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이야기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토록 어렵게 계층 이동을 하는데, 왜 이미 자본을 가진 상류층은 자신의 지위를 이렇게 쉽게 높이고 있지?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던 헨더슨은 자신의 출신을 숨기고 동기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거나 책을 읽고 주변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순간을 경험한 헨더슨은 마침내 ‘사치 신념’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상류층의 ‘사치 신념’은 어떻게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가 ‘사치 신념’은 ‘사치재로 기능하는 신념’으로, 상층 계급에는 거의 아무런 비용 없이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하층 계급에는 종종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이디어나 의견을 뜻한다. 헨더슨은 자신이 예일대에서 마주한 사치 신념의 예시로 친구와의 대화를 든다. 예일대 친구 중 한 명은 “일부일처제가 시대에 좀 뒤떨어졌다”며 사회에도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부유한 가정 출신에 친부모님 아래서 자랐으며, 자신 역시 일부일처제식 결혼을 할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가족상은 구식이며 사회가 이를 넘어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로 인해 손해를 입더라도 재정 능력과 사회 자본 덕에 더 쉽게 회복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지고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면 자본이 적은 계층은 고통을 겪게 된다. 사치 신념은 사회적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부터 공격한다. 일견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사회가 사치 신념을 받아들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일정 한도 이상으로 용인하게 되면 자본을 가지지 못한 계층은 그 결과를 고스란히 실패로 떠안게 된다.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자유로 포장해서 그 책임조차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치 신념은 사회 구조가 기형적임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물론 진보적 신념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신념들을 주장하면서도 이 신념들에 이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이 살아온 삶의 맥락을 지우고 진보적 신념을 하나의 ‘잣대’로 들이밀 때, 이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기형적인 사회 구조를 지우는 ‘사치 신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경찰 인력 감소를 주장하는 미국내 일부 특권층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경찰 조직의 폐지를 옹호하는 일은 당신이 엘리트의 일원임을 과시하는 좋은 방법이다. 2020년 조사에 따르면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이 경찰 예산 삭감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반면, 가장 가난한 미국인들은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불안정한 치안 등으로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가난한 하층 계급이지만 정작 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상류층인 셈이다. 상류층은 공권력 축소를 비롯한 진보적 개념을 지지하더라도 실제 그 파장을 직접 겪지 않는다. 우리를 감쪽같이 속인 ‘교육’이라는 사치 신념에 대하여 교육은 우리 사회에 가장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사치 신념’이다. 사람들은 교육이 계층 이동을 위한 사다리이고, 모두가 평등하게 그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일정 부분 틀린 말이다. 교육은 그 자체로 계급 이동을 막는 ‘장벽’으로 기능할 수 있다. “교육 혜택을 누리는 데 있어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방치되고 학대받는 아이들은 그러한 기회에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좀 더 평범한 환경의 사람들보다 대학 졸업으로 훨씬 더 큰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 아이에게 안전한 가정이 필요한 이유는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해서도 아니다. 바로 방치되는 경험, 어떤 어른도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고 느끼는 감각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나쁘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았는지, 얼마나 좋은 교육 자본을 가진 가정에서 자랐는지의 여부로만 아이의 행복을 치환하기에는 아이의 삶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아이가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아이가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마찬가지로 아이의 삶을 재단할 기준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얼마나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성공한 어른이 된 롭 헨더슨은 이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게 선택권이 있어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이룬 상위 1퍼센트의 성취와 맞바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