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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로서의 감정
뭐?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졌다고?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 문장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온당한 희망 : 존 던의 한 문장 오 깊도다 : 토머스 브라운 경의 한 문장 다게레오타입 등등 : 토머스 드퀸시의 한 문장 루시 스노우의 환희 : 샬럿 브론테의 한 문장 빛과 그림자의 유래 : 조지 엘리엇의 한 문장 하늘의 전통 : 존 러스킨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 거트루드 스타인의 한 문장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어떤 어떤 어떤 어떻게-언제 : 버지니아 울프의 한 문장 온갖 모호한 긴장감 : 사뮈엘 베케트의 한 문장 (작은 그림들 1915-1940) : 프랭크 오하라의 한 문장 현실의 파편들 : 엘리자베스 보엔의 한 문장 곡선의 형태를 따르는 : 제임스 볼드윈의 한 문장 위대한 환상 : 조앤 디디온의 한 문장 기념비로의 여행 : 로버트 스미스슨의 한 문장 단지 종이로 된 단도 : 메이브 브레넌의 한 문장 먹는 건 메뉴를 따르는 것과 같지 않다 : 롤랑 바르트의 한 문장 컬트적 지지를 받았을지라도 : 휘트니 발리엣의 한 문장 파괴의 간계 :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한 문장 베네치아 스위트 : 수전 손택의 한 문장 의례적 행위 : 애니 딜러드의 한 문장 파열된 언어 : 테레사 학경 차의 한 문장 모호함을 위한 변명 : 재닛 맬컴의 한 문장 신발이 놀랄 만큼 : 플뢰르 이애기의 한 문장 그녀가 굳기 전까지 : 힐러리 맨틀의 한 문장 열정에도 불구하고 : 클레어-루이즈 베넷의 한 문장 혹은 그럴싸한 어떤 문장들 : 앤 카슨의 한 문장 가령 만일 : 앤 보이어의 한 문장 읽을거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_말로는 거의 표현된 적 없는 추천사_매력적인 글에 대한 매력적인 글(이슬아) |
Brion Dil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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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28개의 문장들 중 어떤 건 방금 언급한 노트들에서 왔다. 무수한 글자들이 아로새겨진 하늘에서 더 밝게 반짝이며 잠시나마 무늬를 이루는 몇 안 되는 문장들. 하지만 별자리는 우리의 제한된 시점에서 보이는 우연일 뿐,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사실 내가 문장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내가 발견한, 아니, 다시 발견한 그 모든 문장들의 더 큰 그림 안으로 벌써 접혀 들어가버렸다.
--- 「구조로서의 감정」 중에서 학자들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뱉는 “O! O! O!”가 따로 독립된 세 번의 비명이 아니라 죄책감과 공포에서 나오는 외마디 비명이라고 말한다. 삶의 끝에 가까워지는 리어왕 또한 울부짖는다. “O, O, O, O!” 레이디 맥베스의 “O, o, o”는 의사에게 반복되며 이어지는 ‘한숨’ 소리로 들린다. 그렇다면 햄릿의 “O, o, o, o”는? 그건 분명, 다름 아닌 침묵의 음성적 표현일 터. “O”는 무(無)의 비극적 절정이다. --- 「뭐?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졌다고?(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 문장)」 중에서 그러나 우리는 병렬적이고 단편적이며 연쇄적인 느슨한 던의 문장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며, 이는 「죽음의 결투」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 죽음의 승리를 묘사하는 데 가장 적절한 형식인 듯하다. 그중 최고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잉태의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 자라는 수의를 갖고 태어나, 그 수의를 입고 세상에 나오나니,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무덤을 찾기 위한 것이기에, 죄에서 풀려난 죄수들이 벌금 때문에 남듯, 자궁이 우리를 풀어준 뒤에도 우리는 살로 이루어진 끈들, 그 줄에 묶여, 거기서 나아갈 수도, 거기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기서 던은 이미 그의 신도들인 우리로 하여금 앞이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자궁 안에서 ‘피를 공급받는’, ‘어둠의 행위에 어울리는’ 태아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 「모든 것이 끝나리라는 온당한 희망(존 던의 한 문장)」 중에서 그의 담론의 요지는 죽은 이를 매장하거나 화장하고, 땅에 유폐시키고, 부장품을 함께 매장하는 등의 다양한 관례는 경이로이 살펴봐야지 이를 어떤 종교적, 역사적 관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들은 전부 헛되이 행해질 뿐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아무리 정교하게 의식을 행하고 안전하게 매장해도 우리의 운명은 잊히는 것. 그러나 브라운이 이 글을 쓸 때 사용한 언어는 지워지지 않고 그의 숭고한 문장들은 그의 무덤보다 더 오래도록 남으리니. --- 「오 깊도다(토머스 브라운 경의 한 문장)」 중에서 드퀸시 산문의 부랑자 같은 흐름과 이것이 드러내는 바야말로 드퀸시 작품의 핵심이며, 글에 그림과 같은 매력을 부여한다. 드퀸시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항의하는 것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와 케직에 가는 가장 빠른 길을 거듭 물어대는 참을성 없는 도시 관광객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지역 여관 주인들과 우편 마차 배달부들에게 질문한 그들이 드퀸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날 선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가능한 모든 길 중 가장 짧은 길이라면 정중히 말하건대 런던을 떠나지 않는 것일 거요.” --- 「다게레오타입 등등(토머스 드퀸시의 한 문장)」 중에서 브론테는 개스켈에게 말한다. “구름” 장을 쓰기 전 매일 밤 누워, 반쯤 잠들고 반쯤 깬 상태로 아편을 과다복용하면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다 어느 날 아침 뭔가를 깨달았다고. 그녀는 약 없이 만들어냈다wrought. 정말로 거기 있었던 드퀸시처럼, 브론테는 진정제이자 진통제가 만들어낸 세계를, 마치 각성제와 환각제가 만들어낸 듯 그린다. 그러니까, 마치 약이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며 문학적인 힘을 지닌 것처럼. 마치 문장이 이렇게 말장난을 하듯. “약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the drug wrote.” --- 「루시 스노우의 환희(샬럿 브론테의 한 문장)」 중에서 스물한 살의 나는 조지 엘리엇을 완벽하게 이해해 하나의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화의 열쇠에 대한 캐서본의 믿음이나 인체 기관의 보편성에 대한 리드게이트의 믿음처럼 잘못된 신념이었다. 그러나 내 실수는 교훈을 주기도 했다. 책에 흔히 붙는 꼬리표처럼 작가를 “빅토리아시대 작가”, “리얼리즘 작가”라는 식의 큰 카테고리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고전을 사랑하는 교수님 같은 다른 독자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평상시에 관습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도. 그들은 실은 내가 하지 않은 어려운 작업, 모험적인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나는 몇 년 후에야 『미들마치』를 가르치며 비로소 엘리엇의 “망막의 질병처럼”이 가진 기묘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누구의 망막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엇 자신일까? 아니면 화자? 도러시아? 혹은 독자인가? --- 「빛과 그림자의 유래(조지 엘리엇의 한 문장)」 중에서 러스킨은 한평생 구름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살았다. 구름은 자연의 영광 중 하나였으며, 화가들과 시인들, 그리고 시적 산문을 쓰는 작가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형태가 있으면서도 없고, 뚜렷하게 존재하면서도 해체되는 구름은 순수한 에테르적 존재이기도 하면서 하늘에 붙들려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구름은 분석되고, 스케치되고, 그림으로 그려지고, 글 안에서 묘사되었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부터 구름은 낭만주의 시대의 영화 스틸이었던 것이다. --- 「하늘의 전통(존 러스킨의 한 문장)」 중에서 ‘가정하다to suppose’라는 동사를 향한 그녀의 애정은 아마도 논리학과 작문법을 공부하며 싹텄던 것 같다.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에 교수들이 문법에 대한 그녀의 무신경함을 나무랐지만, 거트루드 스타인은 자신은 늘 규칙을 배우고 시험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며 훗날 이렇게 말한다. “문장들을 도식화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없다.” ---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거트루드 스타인의 한 문장)」 중에서 1930년 수정본에 실린, 시에 대한 병자의 태도에 관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시인들에게서 꽃을 훔친다. 우리는 시 한두 행을 꺾어 그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게 한다.” 그러나 1926년의 판본에서, 울프는 비단 이 꽃만이 아닌 산문이라는 꽃도 활짝 피어나게 했다. “우리는 시 한두 행을 꺾어 그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게 하며, 환한 날개를 펼치게 하고, 푸른 물속의 화려한 빛깔 물고기처럼 헤엄치게 한다.” 1930년에는 이러한 장식들을 계속 쳐낸다. 그 결과 이미지가 사라지고, 형용사들이 자취를 감췄으며, 첫 문장처럼 긴 문장들은 그녀의 서식스 정원에 있는 몸이 긴 장미들처럼 잔가지들이 잘려 나갔다. 넘쳐버린 구절들은 때로는 완전히 버려지는 대신 근처에 옮겨지거나 접붙여졌다. ---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어떤 어떤 어떤 어떻게-언제(버지니아 울프의 한 문장)」 중에서 작가라면 누구나 쓰고 싶어할 만한 그런 문장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를 밀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아마 크라프나 베케트도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완벽한 서정성일 것이다. 절박하고 감동적인 문장, 장면의 탁월함은 단순히 내면적인 것이 아니다. 그건 이 순간이 과거를 회상하는 크라프의 자기혐오와 조이스의 영향을 떨쳐버리려는 베케트 자신의 처절한 노력과 뒤엉켜 있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 문장은 보이거나 들리는 그대로가 아닌,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것의 정서는 이 모든 걸 견디고 살아남는다. --- 「온갖 모호한 긴장감(사뮈엘 베케트의 한 문장)」 중에서 프랭크 오하라가 마지막 문장에서 파울 클레의 엉뚱한 제목들을 비판하는 것이 사소한 트집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지는 아주 재빠르고 섬세하게, 작품에 대한 반응을 통제하려는 클레의 조바심 섞인 노력에 대한 공감 섞인 분석으로 전환된다. 오하라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구절, “그는 스스로를 너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버렸다he had made himself too accessible”에 대과거를 사용한 탁월함과 파토스를 감상할 수 있다. --- 「(작은 그림들 1915-1940)(프랭크 오하라의 한 문장)」 중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 1960년에 출판된 『로마에서의 시간』의 3분의 2쯤 되는 부분을 지나고 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내 마음이 따르는 작가를 찾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읽기 인생에서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감히 몇 번이나? 열 번쯤 되려나? 아마도? 평생을 바쳐 읽고 흠모할 수 있는 작가들과 왠지 모르게 친밀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놀라운 문장들 때문에 엘리자베스 보엔이 단숨에 후자 중 하나가 돼버린 걸까? --- 「현실의 파편들(엘리자베스 보엔의 한 문장)」 중에서 노먼 메일러의 문제는 그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해방 상태를 비겁하게 열망한 데 있다. 그가 그것을 흑인 남자들에게서 목격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제임스 볼드윈에게 있어 이 모든 것, 즉 오해받는 힙에 대한 추종, 희화화된 흑인 남성성을 향한 숭배, 진짜 약탈을 겪어본 적도 없이 미국이라는 권력에 맞서려는 야망은, 볼드윈이 쓴바 “삶과 사랑에 관한 모든 공포를 회피하는 방식”일 뿐이었다. --- 「곡선의 형태를 따르는(제임스 볼드윈의 한 문장)」 중에서 소리, 알맞은 소리를 찾는 것은 디디온의 글쓰기에 있어 평생의 과제였다. 그녀는 『상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로서,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오기 훨씬 전인 어릴 적부터, 나는 의미가 단어와 문장, 문단의 리듬 안에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 감각을 키워왔다. 나는 파고들기 어렵도록 점점 다듬어지는 글 뒤에 내가 생각하거나 믿는 것을 숨기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녀는 단어들이 옳게 들릴 때까지, 그리하여 옳게 될 때까지 글에 매달려 다듬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듣지만, 보기도 한다. --- 「위대한 환상(조앤 디디온의 한 문장)」 중에서 나는 스미스슨의 여정을 따라 퍼세이익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가 「뉴저지 퍼세이익, 기념비로의 여행」을 쓰고 있던 때는 공사중이던 고속도로가 이제는 완공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보니, 다리 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건너면 퍼세이익 교외로 들어갈 수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시 관리자에게 메일을 보내 안전 여부를 물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고속도로를 건너서는 안 됩니다. 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스미스슨이 그곳에 가져온(혹은 다시 가져온) 무너진 아름다움을 보고 들으려 애쓰며, 새로운 폐허를 찾아 길을 나섰다. --- 「기념비로의 여행(로버트 스미스슨의 한 문장)」 중에서 다시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그녀의 푸른 눈 외에 진짜라고는 없는 그 자리를 둘러볼 때 독특한 관점이 그 아가씨에게는 있었다.” 내가 오가는 그 시선을 잘못 본 것도 같다. 이제 문장은 거울로 둘러싸인 방 안을 찍은 파노라마 사진처럼 읽힌다. 아가씨가 보고 우리도 본다, 아니, 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그녀에게 그것들은 다 진짜가 아니니까. 이를 알아차리기도 전에(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구두점도 없이) 우리는 꿈 혹은 디오라마의 일부가 되고, 이 비현실적인 도시로 빨려 들어가, 우리도 그 푸른 눈에 비친 허상이 된다. --- 「단지 종이로 된 단도(메이브 브레넌의 한 문장)」 중에서 바르트를 설레게 한 건, 도쿄의 식당에 있든 파리의 식당에 있든, 자신의 욕망과 취향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든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에 담긴 타인의 미묘하고도 열렬한 욕망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든, 그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한 건 이런 변화의 광경, 어쩌면 환상일 뿐일지도 모를 그것이다. 그의 방식,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스타일은, ‘이 사기로 가득한 세상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걸 내가 어떻게 드러냈는지 보라’ 하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자, 나와 함께 지켜보자, 환상, 욕망, 해석의 압력에 이 세상의 일부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 「먹는 건 메뉴를 따르는 것과 같지 않다(롤랑 바르트의 한 문장)」 중에서 어떻게 해야 이렇게 복잡한 경험을, 짜증이 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경험을, 독자를 그곳으로 데려가면서도 그가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처럼 충분히 멀고도 차분한 거리를 유지한 언어는 어떤 것인가. 휘트니 발리엣은 재즈 비평이라는 자신의 작은 예술 안에서 가장 간결하고 반복적인 구조를 발명해 극도로 대담한 프레이즈를 보여주었다. 문장은 여전히 신비롭다. --- 「컬트적 지지를 받았을지라도(휘트니 발리엣의 한 문장)」 중에서 하드윅의 문장은 언제나 혼자이며 서로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아예 관심이 없어 각 문장이 자기본위적이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는 (이런 표현이 맞다면) 병렬적으로 나아간다. 인상 위에 인상을, 비유 위에 비유를 쌓아, 마침내 그 효과가 다 떨어진 뒤에 꽤 엄격하고 직접적인 것이 우리에게 드러날 때까지. --- 「파괴의 간계(엘리자베스 하드윅의 한 문장)」 중에서 영화 「안내 없는 여행」에는 극적 전개나 인물의 의외성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손택은 소설을 실체가 있는 진짜 장소에 위치시키고 미스터리한 고요 속에 이야기를 펼침으로써 (가벼움에 있어 그녀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바셀미에 필적하려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 이 야단스러운 시도를 멜랑콜리한 걸작으로 탄생시킨다. 그리하여 이 문장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원래의 이야기는 이미지들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와 새로운 언어를 통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며 낯선 모험을 시작한다. --- 「베네치아 스위트(수전 손택의 한 문장)」 중에서 애니 딜러드는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 알고 있었을까? 일식의 순간이 오기 훨씬 전부터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심연은 벌어지고 있다. 그 공동(空洞) 안에 내동댕이쳐진 작가는 무엇을 움켜잡고 올라와야 하나? 그것은 이미지일 것이다. 이미지는 진짜일 수도, 은유일 수도, 기이한 비유의 그림일 수도 있다. 작가는 사건을 놓치지 않고, 망친 묘사로 채소 머리를 한 광대 얼굴 같은 문장을 글에 남기지 않으려 노력할 뿐. --- 「의례적 행위(애니 딜러드의 한 문장)」 중에서 그러나 베케트처럼-아니, 그녀에게는 망명과 친밀감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베케트보다 더욱-차는 그 어떤 언어도 자신의 진정한 언어이지 못한 곳에서 쓴다. 언어는 그녀 자신이 거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요구하고 되찾고, 만들고 부수고, 개조하고 버려진다. --- 「파열된 언어(테레사 학경 차의 한 문장)」 중에서 “침대 위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쩌면 느낌뿐이었는지도or maybe only a sense of them. 그곳엔 딱 한 번 가본 것이었기에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느낌뿐이었는지도.” 곧 사라질 인상이라는 걸까? 아니면 맬컴처럼 재빠르고 예리한 사람의 감각에만 느껴진다는 걸까? 그녀는 마치 기상관측 기구처럼 분위기를 느낀다. --- 「모호함을 위한 변명(재닛 맬컴의 한 문장)」 중에서 하지만 이 문장, 이애기의 것이라기보다는 번역가의 문장인 이 문장은 너무나 많은 것을 끌어들여, 우리로 하여금 결점과 (광물학에서 말하는) 내포물, 무질서하게 보존된 재료들을 보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산문에서, 적어도 영미 문학의 산문에서 드퀸시처럼 방대한 특성을 가진 글을 재차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 「신발이 놀랄 만큼(플뢰르 이애기의 한 문장)」 중에서 문장이 죽은 왕세자비를 어디에 위치시키며 어디에서 해방시키는지 보자. “흐르고 변하는 것, 차오르고 기우는 것, 고정될 수 없고 측정되지 않으며 가둬지지 않는 것”, 이게 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녀의 사후세계 이미지인가? 아니면 더 분산되고 전면적인 힘, 죽음으로 풀려난 에너지일까? --- 「그녀가 굳기 전까지(힐러리 맨틀의 한 문장)」 중에서 베넷은 아주 훌륭한 문장가로, ‘문장가phrase-maker’라는 말이 존경받는 표현이어야지, 언어가 매혹적일 뿐 충분히 단단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는 작가들에게 쓰는 모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쌓는 문장을 빼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 「열정에도 불구하고(클레어-루이즈 베넷의 한 문장)」 중에서 그리고 우리는 여기, 카슨의 놀라운 글 안에서, 우선 어린 시절 일요일 밤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목욕하기 싫어하는 화자를 보며, 문장을 쓰고, 그것을 다시 무가 되게 하는 일이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 「혹은 그럴싸한 어떤 문장들(앤 카슨의 한 문장)」 중에서 그러나 파편들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보이어의 파편은 흔치 않은 견고함을 갖고 있다. 논리적이고, 서정적이지 않으며,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사색이 아니라, 종이 위에 기념비처럼 존재한다. 그녀는 문단으로 쓰는 작가다. --- 「가령 만일(앤 보이어의 한 문장)」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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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이 오랜 시간 거닐었던 ‘··의 한 문장’
그 ‘끌림’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스물여덟 번의 시도 어떤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단순히 “정말 좋다”고 말하고 지나가버리진 않는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어딘가 적어두고 또 바라보는 것 외에, 그 문장이 “왜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 ‘끌림’을 설명해보려 시도한 적은 있는지. 비평가이며 작가인 브라이언 딜런은 “나는 사진에 대해 쓰면서 다른 모든 것(그러니까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데,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에서 마치 사진 속 디테일을 빠짐없이 읽어내듯 문장 속 단어 하나, 콤마 하나에까지 주의를 기울이는 정밀한 읽기 방식을 보여준다. 그렇게 치밀하게 읽힌 문장은, 기존의 문장에서 잘려나와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 ‘작품’이 된다. 나는 잘라내기로서의 읽기의 이미지에 매료됐다. 마치 비평가의 눈이 콜라주 작가의 메스인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절제(切除)와 병치의 예술인 포토몽타주와 비슷한 무언가로 보기 시작했다. 또는 뒤샹적 레디메이드로서의 한 문장, 맥락으로부터 끄집어낸 추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수께끼로 만들어진 사물(코트 걸이, 소변기, 눈삽)로.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12쪽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는 명문장을 써낸 위대한 작가들의 글솜씨를 찬양하는 책도, ‘최고의’ 문장을 골라 왜 최고인지 해설하는 책도 아닌, 읽고 쓰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노트에 필사된 뒤 오래 ‘감상되어온’ 문장, 혹은 읽고 쓰는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장을 모은 책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 문장에서 앤 보이어의 한 문장까지 28개 문장들을 처음 출판된 시점을 기준으로 연대순으로 ‘컬렉팅한’ 브라이언 딜런은 자신이 모은 문장들을, “무수한 글자들이 아로새겨진 하늘에서 더 밝게 반짝이며 잠시나마 무늬를 이루는 몇 안 되는 문장들”이라 소개한다. 나는 내가 문장을 향해 어떤 일반적인 이론이나 권위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역사에 대해 쓸 의향 같은 것도 없다는 걸 이내 알아차렸다. 만일 내가 나와 문장의 관계에 대해 써야 한다면(써야 한다고 느낀다면) 특정한 것을 향한 내 본능을 따라야 할 터. 그리하여 (25편을 목표로 했지만 넘치고 만) 28편의 에세이는 저마다의 길이로 단 하나의 문장만을 살피게 되었다, 아니, 그 주변을 거닐었다고 해야 할까.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11쪽 “이게 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끊임없이 질문하며 ‘한 문장’을 보고 듣기 문장이, 수집해 가까이 두고 감상하는 ‘작품’일 수 있다면, 문장을 읽는다는 건 문장과의 ‘대화’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한 번에 모든 게 이해되진 않는 법. 그래서 브라이언 딜런은 문장 앞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게 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는 단어 하나, 콤마 하나의 정확한 의도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장 속의 수수께끼 같은 이미지와 비유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려 한다. “번개가 흐릿하게 떨”린다니, 이상한 표현이다. 번개는 본래 떨리는quiver 게 아니라 번쩍여야flash 하지 않나? 그런데 또 지금 우리는 번개의 섬광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번개가 땅에 꽂히며 지그재그로 꺾이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는 “떨리다”가 맞지 않을까? “떨리다”는 그렇다 치고. 그런데 “흐릿하게 떨리다quivering vaguely”라니? 실은 완전히 제 모습을 갖춘 번개가 아직 아니란 말인가? 다음 절에야 이미지는 분명해진다. 갈라지거나 지그재그의 모양이 아니라 “개울에 파문이 일듯” 떨리는 불꽃 줄기.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당혹스러운 시각적 이미지에 또다시 당황한다. 대체 어떤 번개가 파문 같고 개울 같단 말인가?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86-87쪽 그러나 문장들이 딜런의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주진 않는다. 가령 앤 카슨의 한 문장을 읽던 중엔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려던 노트에 “알 수 없는 낙서”만이 남는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브라이언 딜런은 왜 이렇게 ‘정확한 답’을 찾으려 하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정밀성은 일종의 윤리다. 케스텐바움의 말처럼 존재를 극한까지 해석하지 않는 건 존재에 대한 폭력일 수 있기에. 딜런은 최후의 순간에 미학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심미적 감상을 증오한다. (…) 내가 느끼기에 딜런의 윤리는 시도하고 질문하는 태도 자체인데,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의 제목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는 그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방점은 물론 ‘해보자suppose’에 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같이 지켜보자는 그의 권유. 하지만 역설적으로, 단정 짓지 않는 그의 이 태도, 이 목소리로 인해 우리는 그 대상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딜런은 늘 에세이의 어원이 ‘시도essayer’임을 밝힌다. 대상을 재고exagiare, 측정하기examen. 그리하여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시도.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옮긴이의 말 브라이언 딜런이 “극도의 집중은 작가를 대상에서 멀어지게도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른바 ‘현미경 같은’ 문장 읽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 바로 “한 발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소중한 것을 얻게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딜런은 스스로 “내 문장들의 수호성인”이라고 말하는 롤랑 바르트의 한 문장을 집중해 읽으며, 문장이 바르트의 주요 철학 개념인 “중립”의 세계에 들어서 있음을 알아차린다. “구멍들의 집합… 완전히 틈으로만 이루어진 사물… 공기 뭉치처럼…”. 우리가 문장의 3분의 1쯤을 지날 때 문장은 스스로를 비워 더 가볍고 듬성듬성해지며 공기가 더 들어차게 한다. 실은 너무 가벼워져 좀 전의 “작은 텅 빈 공간 덩어리tiny clump of emptiness”를 잠시 잊었다. 무언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수많은 변주로 말해진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미 바르트가 후에 “중립”이라 부르는 것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모드, 분위기 안에서는 이분법적 구분이 갖는 무게를 거부하고, 파르르 떨리는 저울추가 결정하는 순간을 유예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에, 이 작은 틈새에 머무를 수 있을까?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180쪽 딜런이 잘라낸 바르트의 한 문장은 『기호의 제국』에 실린, 덴푸라 요리를 묘사한 문장이다. 딜런은 이 문장을 읽으며 바르트가 “한 물질이 인접하거나 정반대에 있는 것이 되는 그 순간 혹은 그것으로 폭로되는 순간”, 즉 “성변화(聖變化)의 기적”이라 할 만한 순간을 끊임없이 묘사하는 작가임을 재확인한다. (덴푸라가 꼭 덴푸라이기만 한 건 아닌 것이다.) 조앤 디디온, 샬럿 브론테… 문장을 작품으로 빚어낸 작가들의 비화(祕話) 하지만 그 시절 디디온이 다다른 경지에 이르려면 이따금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이 말했듯, 튼튼한 로열 타자기 앞에 앉아 헤밍웨이의 글들을 연습 삼아 타이핑한 것 말고도 훨씬 더 많은 걸 했다. 무엇을, 다른 어떤 것을 더 했단 말일까?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142-143쪽 스타일리시한 문장으로 유명한 조앤 디디온. 그녀의 수많은 문장들을 제치고 딜런의 눈에 들어온 것은 1965년 『보그』에 실린 디디온의 사진 캡션이다. “당시 이미 매우 능숙하고 심도 있으며 요령 있는 작품을 쓰고 있던 작가의, 이름 없이 실린 초창기 조각 글”. 딜런은 그 문장이 1978년 『텔링 스토리』에 인용되면서 (우리 눈에는) 사소하게 달라진 디테일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따라가며 “무자비한 편집자이자 상사”였던 얼린 탈미의 지도 속에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끼고 “흥분과 우아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찾기 위해 다시 쓰는, 몇 번이고 다시 쓰는 법”을 배웠던 디디온의 드러나지 않은 시간을 조명한다. “약이 효과를 발휘했다The drug wrought.”라는 샬럿 브론테의 한 문장을 읽으면서는 딜런 자신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꺼내 든다. “wrought”가 유래된 본래의 동사에 대해 추리를 거듭하면서, 브론테가 전기 작가에게 ‘“구름” 장을 쓰기 전 매일 밤 누워, 반쯤 잠들고 반쯤 깬 상태로 아편을 과다복용하면 어떤 기분일지를 상상하다 어느 날 아침 뭔가를 깨달았다’ 말했다는 전기적 사실까지 동원해가며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딜런식으로 읽어낸다. 문장을 통해 나에게, 세계의 진실에 다가가기 버지니아 울프가 “어려움을 겪으며 썼다”고 하며 “너무 장황하게 쓴 것을 후회”했던 「병에 대하여」의 첫 문장에 대해서는 딜런 역시 “문장이 스스로를 견고히 유지하는 데 실패”했음을 느끼지만, 첫 문장 속 대시가 “조종 가능한, 광기 어린 글이 되리라” 속삭이고 있다며, 광기 어린 글을 향한 애정을 드러낸다. 수집된 문장에서 ‘읽는 사람’이 보이는 대목이다.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의 서문 끝에서, 그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신과 수십 년간 함께해온 문장들이 상당 부분 죽음과 소멸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이 주제에 끌렸던 것 같다. 그는 확실히 어딘가 엉망이 되어버렸거나 실패한 것들에 매료되는 듯하다(하지만 동시에 의도한 곳에서는 치밀한 제어력을 가진 것들에).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을 죽 보면 무언가가 대체로 죽었거나, 죽을 것이거나, 죽음의 상태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그는 이런 글들에서 세계가 언어로 재구성될 수 있으며, 애초에 언어로 재구성되어 있음을 장담받고 싶어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신적, 육체적 질병으로 망가진 결과물인 나 자신에 종속되어버릴 것” 같아서.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해설처럼 딜런은, 존 던이 죽기 전 마지막 설교를 준비하며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무덤을 찾기 위한 것이기에”라고, 마치 희망의 말처럼 적어 내려간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다. 논리적으로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어딘가 비뚤어진 이 문장은, 그 비뚤어짐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이상한 힘이 있다. 자신의 산문과 함께 “흐트러진” 존 러스킨, 문장을 쓰고, 그것을 다시 “무가 되게 한” 앤 카슨, “그 어떤 언어도 자신의 진정한 언어이지 못한 곳에서 쓴” 테레사 학경 차….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의 28개 문장들은, 필멸의 인간이 세계의 진실을 문장으로 재구성하려 한 시도이다. 그 시도는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브라이언 딜런은 쓰려는 이에게 “끈질긴 신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들려올 것임을 알고 있다. “필멸의 인간이여. 네 보잘것없는 언어로 ‘이것’을 써보아라.” 자신의 보잘것없는 언어로 ‘문장을 향한 문장’을 써보겠다고 나선 브라이언 딜런 자신도 이 목소리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를 읽는다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문장과 관계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읽기와 쓰기, 그 성공과 실패를 같이 들여다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혹은 세계도, 우리 인간도 언어에 의지해 (언제든) 재구성될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 모종의 구원이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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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이 책은 글쓰기 교재가 아니지만, 어쩐지 최상의 문장 쪽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아주 뾰족하게 자기 자신이 된 예시로 가득해서일까. 남다른 문장의 구성 요소를 살피는 게 사실은 레시피와 비슷해서일까. 딜런이 주목하는 건 대체로 “작은 차이”들인데 그것을 조정하면 뭔가가 크게 달라진다. 글의 매력을 좌지우지하는 디테일. 이 디테일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문장의 비포 앤 애프터를 들여다보면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 윤문과 퇴고는 메이크오버 쇼 프로그램만큼이나 흥미진진한 과정이다.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쟁쟁한 작가들이 대거 출연하는 예능을 상상하게 된다. 어째서 문장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는 없는지, 왜 문학판에는 「쇼미더머니」나 「흑백요리사」 같은 쇼가 탄생하지 않는지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이슬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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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이 놀라운 책을 읽으며 나는 거듭 감탄했다. 책에 실린 각각의 짧은 에세이가, 하나의 문장, 오로지 한 문장이 사건을 품고 또 드러낼 수 있다는 진실을 완전히 매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딜런의 손안에서 ‘글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 케이트 브릭스 (『이토록 작은 예술(This Little Art)』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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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책은 차갑고도 재치 있는 매력적인 지성인과의 대화처럼 매혹적이고 영감을 주어, 당신을 밤늦도록 붙잡아두고,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메모하게 하고, 심지어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다양한 구문적, 감정적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 리디아 데이비스 (『못 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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