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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조한진희·홍은전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 장혜영 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 조기현 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 고선규 누군가의 온 세상이 되는 일 - 박소영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 백정연 다시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 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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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 결심했다. 18년째 시설에 살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과 ‘탈시설’해 함께 살아가기로.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혜정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혜정을 사랑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관계망이었다. 그것은 혜정이 지난 18년을 시설에서 살아오는 동안 가장 근본적으로 박탈당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탈시설 직후 나와 혜정의 최우선순위 과제는 혜정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을 만드는 것, 쉽게 말해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격리되고 분리된 채 살아가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갑툭튀’한 30대 성인 여성 탈시설 발달장애인은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상처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느니 상처받지 않는 관계에 머물겠다고 다짐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삶은 더 외로워지기만 했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아는 좋은 삶은 곁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다. 타인의 외로움을 외면하기 좋게 만드는 세상에 고개를 가로젓는 삶이다. 우리는 충분히 외로웠고 이제는 연결될 차례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우리의 세상은 더 단단히 연결되고 촘촘히 확장되어야 한다. --- 「장혜영 -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중에서 아버지 곁에 있던 시간 속에 지극한 효심 따위는 없었다. 그저 약해져가는 한 사람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하며 견딘 시간이었다. 할 수 없다는 결과보다 할 수 있다는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관계를 맺어가자. 삶을 쌓아가자. 일상을 보완하자. 마음속에서 무언가 서서히 달궈지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볼 수 있겠다는 용기였다. 요양원이라는 결말이 꼭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고 타인의 일상을 보존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게 만든다면 나쁘다. 우리가 인지 저하된 당사자와 조금 더 친숙해질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지를 상정하고 누군가를 거기에 미달한 존재로 만들지 말자고, 조금 인지가 저하되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삶의 의지가 있고 그의 곁에서 취약함과 관계 맺는 방법을 찾을 의지가 있다면 된다고, 여전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고. --- 「조기현 - 취약함과 다시 관계 맺는 삶」 중에서 사별자 곁에서 이들을 위로하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은 사별 당사자의 감정은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이동하는 폭풍 같다는 것이다. 곁에 다가가기조차 힘든 강렬한 감정을 내뿜을 때도 있으며 기분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는 같은 고통을 겪지 않는 주변인의 이해를 훨씬 초월한 것이며 쫓아가기도 어렵고 피상적인 위로나 공감 따위로 쉽게 변화시킬 수 없다. 애도 상담에서는 “비록 고인은 죽었지만, 관계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끝나지 않았기에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관계는 변화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에 내담자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은 각자의 상실과 애도의 이야기가 흘렀으면 좋겠다. 그래야 상실을 겪은 사람이 벌거벗은 약자가 되어 숨을 필요가 없다. --- 「고선규 - 각자 몫의 눈물단지를 채울 수 있도록」 중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고양이들을 챙기면서 알량한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려 한다고. 선한 사람인 척 위선을 부린다고. 그러나 도덕적 우월감 따위를 얻기 위해 매일 네다섯 시간을 꼬박 길 위에서 보내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몰라서일 것이다. 일상의 많은 것들을 문자 그대로 포기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혹한이나 혹서에도, 몸이 아플 때나 집안에 일이 있을 때도 떨치고 일어나 문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 한 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동물에게 손 내밀어본 사람은 알게 된다. 함께 만드는 관계에서는 인간이 주체이고 동물은 객체인 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결코 일방향의 회로가 아니라는 것을.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 안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존재와 엮이고 서로의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세계에 의해 다시 영향을 받는다. --- 「박소영 - 누군가의 온 세상이 되는 일」 중에서 가장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결혼식장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승일의 손님 중 휠체어 사용자가 많은 편이라 우리는 편의시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보통 예식장은 대부분 짧은 시간 동안 일정에 맞춰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예식 후 또 다른 예식이 이어지며 붐비는 인파를 피하고 싶었다. 또한 예식장에서는 신랑 신부가 잘 보이도록 높은 단 위에서 예식을 진행하는데, 승일이 오르기 어렵다는 점도 걱정되었다. 휠체어 사용자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 결국 우리를 인연 맺게 한 장소, 각자의 회사가 속한 건물의 지하 강당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삶이 고단함이나 불행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은 장애인의 삶을 모르는 무지에서 출발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둘러싼 일상을 비장애인이 모두 대신해줘야 한다거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비장애인이 책임져야 할 장애인의 일상은 크지 않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 「백정연 -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중에서 나는 정신질환자며, 일부러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왜 건강한 사람을 만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내게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은 언제나 좋은 친구가 된다.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은 좋은 말상대가 된다. 세간에서는 정신질환자들 또한 다른 여러 집단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지탱하고 의존하며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을 놓치곤 한다. 관계에 작용되는 편파와 치우침을 나는 중요하게 여긴다. 한 사람이 50퍼센트가 아닌 100퍼센트를 다할 때 다른 사람은 그것을 비로소 진정 어린 돌봄으로 받아들인다. 할당받은 분량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돌진해야 우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진심임을 깨닫는다. --- 「리단 - 다시 만나도 정신질환자겠지만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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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거나 고립되지 않고, 약함을 미워하지도 않으며
당사자와 관계 맺으며 만들어간 연결과 상호 의존의 시공간 혁명과도 같은 ‘지금 여기’ 구체적인 돌봄의 세계들 여섯 명의 저자가 ‘누군가의 곁에 있는’ 과정이 절대로 쉽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취약함과 마주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제도의 공백에 허덕이기도 하며, 쉽사리 바뀌지 않는 사회적 인식에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라는 선택지를 거부한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관계와 삶을 만들어나갔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인지 저하 환자가 병원 밖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사별자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고양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휠체어를 탄 배우자와 평범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신질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사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저자들은 자신과 상대의 관계를 주변에 소개하고, 부지런히 관계망을 만들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됐다. 시설과 병원에서 살아오느라 인간관계가 단절되었던 이가 더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애썼다. 관계망에 연루된 친구들을,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또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자기 돌봄의 방법을 모색하고, 자신이 마주한 현실과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탐색했다. 고립되거나 소진되지 않을 수 있는 체력의 적정선을 찾았고, 기존의 낡고 전통적인 언어에서 탈피해 새로운 단어로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게 됐다. 더불어 상대와 자신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고찰하며 거리감을 조절하고, 관계에서 발생하는 실수와 잘못을 있는 반성하고 인정하며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관계 속에서 일방향의 돌봄과 헌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취약한’ 이와 일방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시혜나 희생으로써가 아니라 동등한 존재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상대방과 함께하기를 선택했고, 적극적으로 관계 맺음으로써 자신의 삶과 세상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사회에서 ‘이상한’ 존재로 여겨지는 존재의 곁에서, 세상이 규정한 ‘이상함’은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된다. 또한 누군가의 취약함을 돌보며 자기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이런 저자들의 모든 시도와 실험과 시행착오들은 혁명과도 같은 ‘다른 삶’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나간 구체적인 상호 의존과 돌봄 관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개인에게 떠넘겨지거나 외주화된 ‘돌봄’을 넘어 관계 맺기 각자도생 사회에서 혼자 살아남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돌봄’은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의 위기로 호명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아프고 늙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돌봄받게 되는 순간이 오지만, 우리는 이런 현실을 겁낸다. 또한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택할 수 있는 길은 돌봄으로부터 도망치듯 회피하거나, 가족 등 전통적인 관계 속에서 고립된 ‘독박 돌봄’을 하거나, 시장화된 돌봄노동을 구매하는 선택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돌봄은 시혜와 동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가족 등 전통적인 특정 관계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회서비스’로 대표되는 국가 시스템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이 책에는 특정한 누군가가 해야 하는 특수한 일이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계 속에서 행하게 되는 ‘돌봄’과 ‘관계 맺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를 돌보게 되기도 하고, 돌봄을 받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섣부른 동정과 성찰되지 않은 전통적 언어, 미비한 국가 시스템과 돌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길을 잃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누군가의 곁에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손해 보지 않고 각자도생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이는 때로는 빠른 ‘손절’이 미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칼로 무 자르듯 떠날 수 없는 관계, 그래서는 안 되는 관계가 있다. 누군가의 곁에 있음으로써 지키거나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은 언제든 누구든 될 수 있는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한 대비이자 현재 내 곁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한 구체적인 ‘돌봄의 매뉴얼’이며, 그 실질적인 관계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자세한 에세이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를 선택하고, 그의 곁에서 자신의 기준과 상식과 삶을 바꿔나간 이야기들이며, 관계 맺음으로써 자신의 세상이 확장되었던 경험담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곁에 있기를 고민하거나 망설이고 있는 독자에게는 관계를 시도할 용기를 주고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며, 누군가와 이미 함께하고 있는 독자에게는 길을 밝히는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 장혜영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충분히 외로웠고 이제는 연결될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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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민들의 여러 관계 속 돌봄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출간이 유의미하고 반갑다. 여섯 명의 저자가 각자의 삶에서 만들고 있는 돌봄의 세계는 우리 사회의 ‘지금 여기’ 돌봄의 모습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저비용으로 안전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돌봄’을 넘어 기꺼이 가족, 시민,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돌봄의 책임과 의무를 나누고 누리는 이들의 이야기다. 다양한 시민들이 다른 존재와 돌봄 관계를 맺으면서 좌절하고, 만족하고, 비참함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고군분투하는 장면들은 우리 사회의 돌봄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각자가 누구를 왜 돌보고자 하고, 어떻게 돌보고 있으며, 무엇이 돌봄을 가능하게 했는지는 우리 사회 돌봄의 의미와 위치에 관해 주요한 단서들을 제공해준다. 또한 저비용으로 ‘처리’하는 돌봄이 아닌, 일상의 돌봄을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데 여러 영감을 준다. -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돌봄이 돌보는 세계》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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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동생, 인지가 저하된 아버지, 신체장애가 있는 배우자, 정신질환이 있는 애인, 사별자, 그리고 길고양이들. 이 책의 저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들의 곁에 선 자들이다. 취약한 이들을 돌보느라 현실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만 두고 미래로 떠나버릴 거라는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취약한 이들의 곁을 지키면서 동시에 길을 떠났다. 서로의 발목을 단단하게 묶고 함께 세상으로, 미래로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며 그렇게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곁을 떠나지 않음으로써 세상과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 눈물겹게 고단하고 눈부시게 찬란한 이 여정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 홍은전 (《그냥, 사람》, 《나는 동물》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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