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가격
14,800
14,8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 [POD] 주문 제작 도서로 주문취소 및 변심 반품이 불가하며, 발송까지 3일 정도 소요됩니다.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관련 상품

빵집 (큰글씨책)
[도서] 빵집 (큰글씨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김창화역 지만지드라마
17,800
빵집 (큰글씨책)

책소개

목차

나오는 사람들

푼돈을 위한 싸움
과부인 니오베 크베크 부인의 목재
빵으로 싸우는 전투와 워싱턴 마이어의 죽음
노래와 가곡

부록: 연극을 위한 짧은 오르가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베르톨트 브레히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1908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한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시 작업을 시작해 학생 잡지 [추수]를 발행하는 등 친구들과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을 통해 그의 문체는 도발적이 된다. 이때 같이 활동하던 판첼트, 카스파르 네어, 뮌스테러 등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특히 카스파르 네어는 망명에서
1898년 2월 10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Augsburg)에서 종이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브레히트(Berthold Friedrich Brecht)와 브레칭(Brezing)에서 태어난 어머니 조피(Sofie)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거쳐 1908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 입학한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시 작업을 시작해 학생 잡지 [추수]를 발행하는 등 친구들과 문학 동아리를 만들었고 이 활동을 통해 그의 문체는 도발적이 된다. 이때 같이 활동하던 판첼트, 카스파르 네어, 뮌스테러 등과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특히 카스파르 네어는 망명에서 귀국한 브레히트의 무대를 만들었다. 1928년에는 [서푼짜리 오페라]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나치 집권기인 1933년 2월 28일 망명길에 오른 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미국을 전전하면서 15년간 독일 외부에서 활동했다. 1948년 동베를린으로 귀환한 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1949)을 공연하여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부인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을 창단하여 연극 작업에 몰두하다가 1956년 8월 14일 베를린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한밤의 북소리』, 『남자는 남자다』, 『서푼짜리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 『어머니』, 『제삼제국의 공포와 참상』,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사천의 착한 사람』, 『갈릴레이의 생애』, 『푼틸라 나리와 그의 하인 마티』, 『코카서스의 분필 원』 등이 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다른 상품

김창화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4년부터 독일 뮌헨대학에서, 연극학 전공, 사회학, 철학 부전공으로, 유학했고, 1991년 연극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서,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I.T.I. Korea)에서 활동했으며, 1995년 3월에는 천안에 있는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18년 8월까지 23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독일 유학 이전에는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 1992년에는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평론과 극작술 연구활동에 주력했고, 한국 극작워크
김창화는 고려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고, 1984년부터 독일 뮌헨대학에서, 연극학 전공, 사회학, 철학 부전공으로, 유학했고, 1991년 연극전공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해서,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I.T.I. Korea)에서 활동했으며, 1995년 3월에는 천안에 있는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18년 8월까지 23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독일 유학 이전에는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 1992년에는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평론과 극작술 연구활동에 주력했고, 한국 극작워크숍 대표로 신인 극작가를 양성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있는 문화예술교육 연구소, ‘함덕 32’의 수석 연구원이다.

김창화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28*188*20mm
ISBN13
9791128836626

책 속으로

남아 있는 실업자들: 그렇게 해서 워싱턴 마이어는 오늘 밤 저녁 7시에 죽었습니다. 거리에서 어떤 부인의 일로 싸움에 휘말려, 스스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집도 없습니다. 밑바닥에서 살다가 정의를 위해 다시 아래쪽으로 떨어졌습니다.

마이닝거: 마이어가 죽었다! 이제 과부의 나무를 가져가도 괜찮아!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1929년에서 1930년 사이에 썼지만, 1956년 브레히트가 사망한 이후 1967년에야 동독의 ‘베를리너 앙상블’ 극단이 초연했다. 이 작품은 1929년 베를린에 몰아닥친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 그리고 수많은 실업자들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브레히트가 의욕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희곡이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의 중심적인 줄거리를 ‘일곱 아이를 키우는 과부 니오베 크베크’ 이야기로 잡았다. 그래서 이 부인이 자본가에게 약탈당하고, 결국 호텔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 처음 브레히트가 구상했던 전체 줄거리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과정만 묘사된 채 이 희곡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브레히트 연극 미학을 다룬 <연극을 위한 짧은 오르가논>을 부록으로 수록했다. 브레히트가 1948년 헬레네 바이겔의 권유로 스위스에서 집필한 이론서로, 그가 다시 독일로 되돌아가 연극 작업을 시작할 때, 희곡 작가로서 ‘새로운 연극’을 구상하기 위해 연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인지 한 번 더 정리해 기록한 것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14,800
1 1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