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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를 들고 우리역사의 수도를 걷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이현군
청어람미디어 2012.09.11.
베스트
역사와 문화 교양서 top100 1주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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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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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지은이의 말
답사를 떠나기 전에 - 옛 수도를 보는 눈

제1장 고구려의 수도, 집안.평양에 가자
1. 압록강변을 따라 대륙의 통로, 집안(국내성)을 걷다
넓은 세계를 만나면 생각도 커진다
한반도가 대륙으로 통하던 옛길을 따라
북한에서 중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둘로 나뉘기 전의 한반도를 상상하라
강과 산을 따라 한반도를 보라
고구려 건국 신화 속으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흔적을 찾아서
사신 행렬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다
백두산일까, 장백산일까
두만강일까, 토문강일까
명동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2. 대동강변을 따라 고구려 남쪽 수도, 평양을 걷다
우리는 평양을 얼마나 알까
고구려는 왜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을까
평양은 성곽도시였다
평양의 진산, 금수산
평양의 명승지를 찾아서1 ; 을밀대, 연광정, 부벽루
단군의 땅인가, 기자의 땅인가
단군의 흔적을 강화도에서 찾다
평양의 명승지를 찾아서2 ; 목멱산, 창광산, 만경대
고구려의 온달과 평강공주를 단양에서 찾다

제2장 백제의 수도, 공주.부여에 가자
1. 금강변을 따라 백제 남쪽 수도, 공주(웅진)를 걷다
서울에서 백제를 만나다
백제는 수도를 왜 한강에서 남쪽으로 옮겼을까
공주답사를 떠나기 전에
공주의 옛 지도를 보는 법
백제의 수도, 공주로 출발
공주답사 1코스, 공산성
공주답사 2코스, 공주향교와 공주감영
무령왕릉에 들어가다
금강변의 푸른 절벽을 찾아서
고개는 공주로 가는 길이 되고
공주답사 3코스, 계룡산 일대
2. 백마강변을 따라 백제 마지막 수도, 부여(사비)를 걷다
부여 답사를 떠나기 전에
부여의 옛 지도를 들고
부여의 중심부, 부소산성
부소산성에서 낙화암과 고란사를 보다
백마강에서 용을 낚시하다
부여의 명승지를 찾아1, 천정대
부여의 명승지를 찾아2, 수북정과 정림사지
부여의 명승지를 찾아3, 궁남지

제3장 신라의 수도, 경주에 가자
1. 추령을 따라 대륙의 도시, 경주(금성)를 걷다
경주는 어디인가
한양과 경주는 보는 법이 다르다
신라의 기원을 찾아서
박씨 시조, 박혁거세왕의 신화를 따라
석씨 시조, 석탈해왕의 신화를 따라
김씨 시조, 김알지왕의 신화를 따라
2. 추령을 따라 동해의 도시, 경주(금성)를 걷다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신라를 읽다
경주가 동해도시인 이유
통일신라를 만나는 키워드 장소들
신라의 과학기술, 첨성대
신라의 문화중심지, 포석정과 안압지

제4장 고려의 수도, 개성에 가자
1. 예성강변을 따라 후삼국의 수도, 개성(개경)을 걷다
개성은 왜 고려의 수도가 됐을까
해상 무역의 도시
옛 지도에서 송악산과 개성을 찾다
개성의 명승지를 찾아1: 대흥산성, 박연폭포
개성의 명승지를 찾아2: 만수산, 두문동
개성의 명승지를 찾아3: 선죽교, 숭양서원, 덕적산
개성의 명승지를 찾아4: 예성강, 벽란도
개성은 한양과 어떻게 다를까
조선시대에는 개성이 어떻게 됐을까
2. 개성의 흔적이 있는 섬, 강화도를 걷다
강화에서 고려를 만나다
강화에서 북한을 만나다

부록1 : 답사를 떠나는 이들에게
부록2 : 저자와 함께 옛 수도를 걸어볼까요?
부록3 : 이 책에 나오는 옛 지도와 고서를 알고 싶어요!

저자 소개 1

농촌에서 자라서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로 왔다.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리학과 대학원에서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의 지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조선시대 한성부 도시구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적 시간과 장소의 문화콘텐츠적 성격과 관광자원화」, 「역사도시 교육의 특성과 내용 구성의 문제」, 『한강의 섬』(공저) 등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썼다.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한국고지도연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양, 경성부, 서울을 답사하며 연구하는 모임인 서울스토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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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440g | 161*205*20mm
ISBN13
9788997162284

출판사 리뷰

“한반도의 역사수도는 서울뿐일까?”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한반도의 다양한 역사수도를 여행하자!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도 우리 역사는 살아 있다!”
지리적 상상력을 펼쳐, 대륙과 바다로 뻗어나간 한반도의 찬란한 역사를 만나자!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요즘 걷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 등을 걷는 이른바 자연과 함께하는 레저로 인식되고 있다. 거기에 최근에는 한 가지가 더 첨가되었으니, 바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걷기여행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서울성곽길 걷기’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가 2015년까지 한양도성의 성곽 전 구간을 완전히 연결시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출판계에서도 ‘서울’과 ‘성곽’을 키워드로 하는 책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러니 ‘서울성곽길 걷기’ 행사는 나날이 풍부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러한 관심이 서울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관심이 조선 한양에만 머물러 있는 사이, 한국의 역사와 국토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 단적인 예로, 남북으로 분단된 오늘날 우리는 지리나 역사를 배울 때 남한으로 제한하는 버릇이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도 우리 역사가 살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중국은 고구려나 발해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말하고, 장성을 연결하여 물리적 경관까지 구체화시키고 있다. 발해의 역사적 무대가 되는 동북 지역의 성까지 만리장성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현실에 놓여 있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복원과 사고의 확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역사와 지리에 대한 좁은 시각, 치우친 관심, 선입견 등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역사와 지리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등 주변국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반박할 힘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반만년 역사를 지닌 한반도에서 역사와 문화가 지층처럼 남아 있는 역사수도는 단 서울뿐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은 많겠지만, 과연 그 질문에 금방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선 한양 중심 탈피, 고구려?백제?신라?고려의 역사수도를 답사한 책!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이사인 이현군 역사지리학자는 한반도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중고교 사회과 교사, 대학생,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는 답사 강의를 진행해왔다. 그 동안 한양 도성을 중심으로 서울의 변화상을 살펴보았던 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조선 한양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역사수도 7곳을 답사하여 책으로 펴냈다. 역사지리학자인 저자 또한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등에 가보고서야 한반도가 대륙과 연결된 곳임을 알았다”며,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까지 말한다. 대륙과 바다로 뻗어나갔던 고구려의 국내성(집안)과 평양, 백제의 공주(웅진)와 부여(사비), 신라의 경주(서라벌), 고려의 개성(개경)과 강화 등에서 발견한 우리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울 중심 사고와 남북 분단이라는 좁은 시각을 극복하고, 지리적 상상력을 확장시켜준다.
한편, 쉽고 재미있는 답사 강의를 고수해온 그답게 책 또한 저자가 발길을 옮기는 데로 옛 이야기들을 전개함으로써, 마치 독자가 저자와 함께 답사를 다니는 듯 생생한 현장감과 재미를 안겨준다. 이 책을 읽고 답사를 떠나려는 독자들을 위해 ‘답사를 떠나는 방법’이나 ‘역사수도를 보는 법’, ‘역사수도 답사경로’, ‘옛 지도를 읽는 법’ 등도 자세히 담았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지역 체계는 서울 중심입니다. (…) 단군,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의 역사는 한반도와 북방의 넓은 지역과 연계되어 펼쳐졌습니다. 분단에 의해 공간적으로 제약된 현 상황에서 사고의 틀도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 수도를 큰 틀에서 봄으로써, 지리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역사를 보는 시각을 폭넓게 키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지은이의 말

국내성, 평양, 공주, 부여, 경주, 개성 등 수도별로 시간의 층이 다르고, 담고 있는 역사가 다릅니다. 도시의 특성도 다릅니다. 그럼 그 시대 문화는 어디에 있나요? 바로 땅 위, 도시에 나타나지요. 도시는 당대문화를 담는 그릇입니다. 각 시대의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도시가 어디죠? 바로 수도입니다. 당시 문화의 핵심은 수도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옛 수도를 알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습니다.(14쪽)

옛 지도를 들고, 어떻게 답사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주로 왕 중심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왕 때 무슨 일이 있었나를 주로 배웠다.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떤 모습으로 도시가 만들어졌고, 왜 그런 모습이었는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시대 순으로 역사를 암기하기에 바빴다.
이 책은 각 나라와의 관계나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시간과 만나면서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에 주목하였다. 즉,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비고』, 『택리』 등의 옛 문헌을 통해 옛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고, ≪대동여지도≫, ≪조선후기 지방지도≫, ≪해동지도≫, ≪동여도≫, ≪지승≫ 등의 옛 지도를 통해 옛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한반도 전체를 그린 ≪대동여지도≫를 통해 그 지역의 상대적 위치, 주변 지역과의 연결성, 산줄기와 강줄기를 해석하여 왜 수도로 선정되었는지 설명하였다. 1872년 조선후기에 제작한 도시별 군현 지도인 ≪조선후기 지방지도≫를 통해서는 당대 사람들이 중요하게 인식한 장소, 도성 내부의 구조, 궁궐, 도성의 위치, 역원과 주요 교통로, 나루와 바다의 포구, 문화 경관, 종교 시설 등을 발견하여, 당시 수도가 문화적 총체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를 마치 저자가 옆에서 강의 하듯 쉽게 풀어낸다.
단, 저자는 삼국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구할 수 없어, 조선시대에 만든 지도와 역사서를 들고 답사한 점, 그리하여 역사를 인식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또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웅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주장들도 고려해야함을 잊지 않는다.

어디를 가는가, 가서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생각하는 게 달라집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수도의 변화를 보는 것은 한반도 문화지도의 변화를 파악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 수도에 대하여 보고 듣는 시점은 현재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눈으로 옛 도시를 생각하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시각을 그 시대에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답사는 외운 지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장소를 들어가는 일입니다. 때문에 나와 그 장소가 하나가 되어 옛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그것이 옛 수도를 담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본문 14쪽)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서…
지금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복원과 사고의 확장이 절실하다!

문화지리학에서 ‘민족’은 중요한 주제다. 고구려의 역사가 남아 있는 중국은 오늘날 다민족중화주의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 여러 민족을 하나의 중국으로 녹아내려는 것이다. 2012년에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이를 원래보다 3배가 넘는 총 21,196.Km로 부풀려 고구려와 발해의 성까지 포함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만리장성과 장성의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돈 시켜 산해관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지만, 여기에다 장성을 더 연결하여 동북 3성 지역까지 만리장성인 것처럼 느끼게 말한다”고 비판한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단순하게 사고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조선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나라인 고구려를 지금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국내성 일대를 찾아 나서지만, 안타까운 현실과 조우한다.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불리는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이지만 중국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중국에서 토문강으로 불리는 두만강은 또 어떠한가? 만주 일대가 고구려 유적지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가 아닌, 단순히 한국인을 상대로 중국에서 만든 관광 상품지가 된 현실은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저자는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이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대로 보이도록 역사적 경관이 점점 바뀌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호태왕이라고 합니다. ‘국강상광개토평안호태왕’이 정식 명칭인데, 끝부분만 따면 호태왕이 됩니다. 우리는 중간 부분인 ‘광개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요. 비석도 우리는 광개토대왕비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호태왕비라고 부릅니다. (33쪽)

고구려의 도성인 국내성의 흔적은 시가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양 도성의 흔적이 서울 빌딩숲에 있는 것처럼, 국내성 성벽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습니다. 도로에 의해 끊어진 곳도 있고요. 국내성은 네모반듯한 성입니다. 아파트 사이로 계속 성벽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한양 도성은 산 능선을 따라 쌓았기 때문에 곡선이지만, 이곳은 사각형으로 성이 만들어졌습니다. 북성가 등의 길 이름으로 이곳에 성벽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37쪽)

중국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경제난 속에서 압록강, 두만강 유역이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될 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북한은 더욱 더 중국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61쪽)

백두산 천지에 올라 「애국가」를 부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땅은 중국에, 역사는 우리에게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육로를 통해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갈 수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63쪽)

우리는 평양을 얼마나 알까?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인 평양은 답사가 어려우므로, 저자는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 등의 옛 지도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의 옛 문헌을 바탕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울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평양은 한양과 마찬가지로 성곽도시다. 북한산 아래에 한강을 따라 자리 잡은 서울과 금수산 아래 대동강을 따라 자리 잡은 평양은 그 밖에도 유사한 것이 많다. 종합운동장이 있는 잠실과 5?1경기장이 있는 능라도, 개발된 섬인 여의도와 양각도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을밀대, 모란봉, 부벽루, 영명사, 연광정 등 말로만 듣던 옛 평야의 모습을 옛 사진과 옛 지도, 일러스트 지도 등으로 이미지화시켜 쉽게 설명한다. 그러나 끝내 답사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저자는 단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화도의 마니산과 삼랑성, 고구려의 온달과 평강공주 흔적이 남아 있는 충북 단양 답사로 달랜다.

능라도에는 1989년 4월 평양 축전을 위해 건설된 5?1경기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1990년 10월에 ‘남북한 통일 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잠실 종합운동장 정도 된다고 봐야 할까요? 잠실도 한양 도성 밖 한강 동쪽의 섬이었고, 이곳에 올림픽을 위해 종합경기장이 들어섰으니까 상대적 위치와 기능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평양성의 남쪽 대동강에 개발된 섬이 양각도입니다. 양각도는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섬이면서, 축구 경기장, 육상경기장, 평양 국제영화관, 양각도 국제호텔이 세워진 곳입니다. 여의도도 한양 도성의 서남쪽에 있던 섬이었고 새로 개발된 지역이니까, 서울로 치면 여의도쯤 된다고 봐도 될까요? (69쪽)

백제의 흔적을 찾아서… 역사는 얼마나 진실을 말하는가?
우리는 백제에 대해 잘 모른다. 백제를 역사적 측면에서 이야기할 때, 한강 유역에서 밀려났다는 점, 나당연합군에 패망했다는 점, 고려 태조가 후손에게 남겼다는 『훈요십조』 때문에 백제의 문화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백제의 수도가 위례성에서 웅진, 부여로 옮겨지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러한 부분을 지적, 백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다.
공주는 크게 초기 거점이었던 공주산성 영역, 옛 공주감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 계룡산 부근으로 나누어 돌아볼 것을 권한다. 공주산성을 올라 공주 시내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관아건물, 포정사, 객사, 향교 등의 행정 중심지의 흔적을 돌아본다. 다음으로 계룡산 일대를 찾아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의 건물을 통해 옛 모습을 되살리는 것이다.
공주의 금강이 부여로 내려오면 ‘백마강’으로 불린다. 저자는 백마강을 중심으로 부여 답사를 시작한다. 공주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부소산성에 올라 부여 시내를 둘러본 후에 낙화암과 백화정, 고란사, 조룡대, 천정대와 수북정 등 부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을 찾는다.
한편, 저자는 백제의 흔적을 찾기 전에 옛 지도를 들고 답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답사를 떠나기 전에는 떠오르는 이미지를 모두 적어보고, 관련 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은 지도에 유적지나 갈 만한 장소 등을 표시한다. 마지막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안내소에서 문화관광 안내지도를 구한 후에, 답사 경로를 짜면 된다. 이때 저자는 옛 지도를 꼭 들고 가서, 현대지도와 비교해본다고 한다.

개로왕이 사망하면서 백제도 더 남쪽으로 옮겨 가야 했으니까, 개로왕에 대한 기록은 좋지 않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도림이라는 승려를 개로왕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개로왕이 바둑을 무척 좋아했는데, 승려 도림은 바둑의 고수였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백제에 해가 되는 조언들을 하게 되고 이를 개로왕이 실천하면서 백제가 쇠락하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102쪽)

부여의 궁녀가 3천 명이라면 도시 규모가 상당했어야 하는데, 당시의 인구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실 여부를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천 명이 강에 떨어졌다면 댐이 생겼을 것 같은데, 이 작은 강에 3천 명이 빠지는 게 가능할까 싶습니다. 의자왕이 방탕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3천 궁녀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146쪽)

신라의 흔적을 찾아서… 경주는 한양과 보는 법이 다르다?
저자는 백제와 마찬가지로 신라 또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환상이나 나당연합군에 의한 삼국통일 때문에 신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역사수도는 당시의 관점으로 보아야한다며, 수도권에서 경주를 찾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해안을 따라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31번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이 바로 옛 문화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낙동 정맥의 동쪽 해안에 자리한 경주는 한양과 보는 법이 다르다고 말한다. 한양은 보통 풍수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경주는 그렇게 봐서는 안 되는 도시라고. 왜냐하면 경주는 그 이전부터 서라벌이란 이름으로 존재하였고, 풍수는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시한 것.
책에서는 추령을 중심으로 경주를 동서로 나누어 답사지를 소개한다. 박 씨 시조인 박혁거세왕의 신화가 있는 나정과 오릉, 석 씨 시조인 석탈해왕의 신화가 있는 월성과 석탈해 탄강유허, 김 씨 시조인 김알지왕의 신화가 있는 계림, 그리고 경주가 동해를 품은 도시임을 알려주는 대왕암과 이견정, 불국정토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석굴암과 불국사, 마지막으로 통일신라를 알 수 있는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 장군묘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옛 도시를 설명할 때 풍수개념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풍수는 자연을 의미화, 이데올로기화 해서 설명하는 방식인데요, 사상도 시대적 산물이라고 합니다. 경주도 풍수원리로 볼까 하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수는 신라 말 도선 국사에 의해 창시됐다고 배웠는데, 경주는 그 이전부터 서라벌이란 이름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경주는 풍수원리로 볼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한양을 풍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주도 한양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본다면 경주를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입관을 버리고 경주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듯합니다.(167쪽)

고려의 흔적을 찾아서… 한양이 중국 도성 원리를 차용했다?
고려시대 배경의 사극과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에서 가장 다른 점은 ‘바다’라고 할 수 있다. 벽란도라는 무역항과 해상무역, 그리고 아라비아인 등 외국 상인의 등장이다. 그만큼 개성은 해상무역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평양과 마찬가지로 개성에 갈 수 없으니, 「대동여지도」나 「해동지도」 등의 옛 지도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의 옛 문헌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또한, 독자들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한양과 비교하여 이야기하는데, 두 도시가 꽤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놀랍다.
한양에는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이 있고, 개성은 송악산 아래 만월대가 있다. 한양 북악 뒤에는 삼각산이 버티고, 개성 송악산 뒤에는 오관산이 자리한다. 개성도 한양도 산을 입지 기준점으로 하여, 외성도 산을 중심으로 쌓았다. 대흥산성과 북한산성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양 도성 안에 흐르던 청계천이 한강으로 이어지는데, 개성도 궁궐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 수구문으로 나가 임진강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저자는 한양 도성이 중국 도성 원리를 차용했다는 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고려 개성과 더 닮았다고 말한다. 중국 『주례고공기』에 나오는 도성 모델은 사각형인데,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지형조건에 맞지 않다는 것도 저자의 말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그 밖에도 선죽교, 숭양서원, 태평관, 경덕궁, 만월대, 벽란도, 박연폭포 등 말로만 듣던 옛 개성의 모습을 옛 사진과 옛 지도, 일러스트 지도 등으로 이미지화시켜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개성을 답사하지 못해 아쉬운 저자는 멀리서나마 개성을 보기 위해 강화도를 찾는다. 서해, 임진강, 한강, 예성강 등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보고, 고려 고종 19년 6월부터 원종 11년 5월까지 39년간 궁궐로 있었던 강화도성을 둘러본다.

신라 말 장보고가 서남해상 세력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지요? 고려 태조 왕건은 예성강, 임진강, 경기만 일대를 장악한 해상 세력이었고, 개성을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큰 강과 바다를 끼고 있으면 교역이 가능하고, 이로써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포구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육지 중심으로만 생각하다가 바다를 같이 보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습니다.(210쪽)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도읍을 쌓았다는 점은 개성과 한양이 닮았습니다. 평지에 도성을 쌓을 때는 가능하지만, 산줄기를 이용하여 도성을 만들면 사각형과 원형이 나올 수 없습니다. 행정 구역의 측면에서도 개경도 한양도 모두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부 체제로 만들어집니다.(225쪽)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시리즈 3권 출간!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시리즈는 옛 지도를 통해 우리 땅의 옛 모습을 보는 책이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답사기나 저자 개인의 감정을 여행으로 발산하는 여행기와 달리, 장소를 먼저 인식하고 구체적 장소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색다르게 접근한다. 옛 지도를 들고 역사적 장소를 걸으며, 옛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한 권의 책으로 지리와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1권인『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에서는 조선시대 한양, 서울의 사대문 안을 이야기했고, 2권『서울, 성 밖을 나서다』에서는 사대문 밖의 서울?경기 수도권을 담았다. 3권에서는 고구려의 국내성(집안)과 평양, 백제의 공주와 부여, 신라의 경주, 고려의 개성과 강화 등의 역사수도에 가본다.
시리즈의 주제와 맞게 1권에서는 한양 성곽을 중심으로 한 답사코스를 소개하였고, 2권에서는 강과 산, 들과 하천 등 수도권의 자연지형을 중심으로 한 답사코스를 담았다. 3권에서는 역사수도의 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답사코스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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