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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전사戰士로서의 작가, 작가로서의 전사
1. 슬프고 담담하고 아름다운 것들 2.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한 줌의 희망 3. 슬프거든 슬퍼하라. 가벼워질 테니 4. 밤의 어둠 속에서 세계와 삶이 보인다 5. 토토와 사랑과 우주와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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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파괴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경계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큰 사건 이전에 어떤 큰 상징이 먼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큰 상징은 그리 크지 않은 사건의 가면을 쓰기 마련이다. 후일. 한 시대가 무너져 새로운 시대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아, 그때 그게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는다. 자신이 역사 앞에서 바보였다는 사실을. 나는 그러긴 싫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과 상징을 다루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현실과 상징」 중에서 소설가로서 나의 신념은 이것이다. 인간은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며 개별적 인간이 되어야 인간이다. 나는 그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소설가로서의 자유이자, 인간으로서의 자유이다. 가장 지독한 모더니스트인 나의 완전한 리얼리즘이다. --- 「이것」 중에서 잘 나가는 타인과 평범 이하의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소리다. 그런데 평범 이하의 현재 자신과 잘 나가던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면서 우울해하는 것은 곧바로 파멸이다. --- 「최악의 비교」 중에서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딜레마에 있다고들 하지만 딜레마야말로 인생 최고의 맛이다. 딜레마에서야말로 결정력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그 결정에 의해 놓아버리게 된 것을 통해 그 인생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딜레마」 중에서 나는 한국인이 쓴 글 중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은 거의 읽지를 않는다. 이유는 말하기 싫다. --- 「죽은 사람의 것」 중에서 오늘. 토토, 동물병원에서 진료받고 목욕했다. 몸무게가 5.2kg 나왔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리고 와 앓고 있을 때보다 1k 가량 늘었다. 새로운 만남은 가슴 아픈 이별만큼 어려운 과정이었다. 토토는 어둠을 돌파한 아이고, 녀석의 무게는 내 사랑의 무게다. --- 「무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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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베일 듯 위험한 책!
그러나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핵심을 가로지를 수 없다. 프란츠 카프카를 만난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그렇게까지 고독하신가요?”라고 물었다. 카프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보다 더하지요. 난 프란츠 카프카처럼… 고독합니다.” 이응준이 작가수첩 형식으로 기록한 단상을 읽으며 이 일화가 떠올랐다. 이응준이 쓴 짧고 명징한 글은 “난 이응준처럼… 고독합니다”라는 후렴구를 달고 귀를 맴돌았다. 진즉 알아보았지만 이응준은 공격적인 글쓰기로 세상에 응전한다. 피로 쓴 그 글이 가져올 온갖 불행을 감당하겠다는 오기가 작렬한다. 이 책은 그런 불행을 견딜 수 있는 독자에게만 보내는 이응준식 기도다. 오직 ‘작가’라는 장르로만 말할 수 있는 밤의 편지, 슬픈 연서다. 문학 외에 세상 그 어느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독한 자의 유언이다. 부디 원컨대 이 책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읽으시기를. 이 책에 체하거나 감염되면 약이 없나니. 대신 고아가 된 작가와 연대해 연옥을 여행하는 희귀한 체험을 하시리라. 그곳에서 각기 “나는 나처럼… 고독합니다”를 염불 외신다면 더없이 좋은 일. - 정재숙 (문화재청장) 자유로운 영혼의 언어로 직조한 ‘작가’라는 장르 검열받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소중하고도 강건한 세계 이응준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 세태와 세계를 관찰하고 헤아려 기록해오고 있다. 글쓰기의 전략이 배제된 직관적, 감각적 글쓰기 형식으로 쓰인 이 짧은 글들에는 우울과 냉소, 성찰과 결의가 가감 없이 드러나 있으며, 해학과 기지, 촌철살인이 빛을 발한다. 이 단편적인 생각들은 파편화된 작가의 사상이며 글의 부속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응준은 자유롭게 종횡무진하는 전방위적 작가다. 그는 이 시대가 문학과 문학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세상이었다면, 무언가를 지독히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그런 세상이었다면, 사상의 정리 과정 없이 곧바로 시나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나 에세이나 칼럼 등을 썼으리라 한다. 문단의 관계망에서 벗어나 있는 그에게 통찰이란 난해하기보다는 고통스럽다. 세상과 인생이 비극적이거나 심지어 절망스러운 것은 보편적인 사실일 수도 있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 밀려오는 비극과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글을 쓴다. 무엇인가를 만들어갈 때 비극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는 노트 한 권과 펜 하나만으로 그것을 이겨내려 한다. 그는 글은 지옥에서 잘 써진다고 한다. 이응준에게 자신의 글은 누구에게도 검열받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소중하고도 강건한 세계다. 그는 자신의 희망을 자신의 고통 위에 기록하고자 한다. 그에게 기록하는 인간은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기록하는 인간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신앙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은 일종의 신앙 행위와 통한다. 이 책은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문학 공장이자 인간과 세계에 관한 고뇌와 모든 글들의 전생前生이고, 전쟁이자 본론이며 수사학이다. 또한 희한한 책이자 ‘성찰하는 괴물’의 책이며, ‘작가’라는 장르를 직조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당신에게 글로 드러내지 않으면 그 무엇도 허깨비에 불과하다 이응준은 반드시 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글을 쓰려는 욕망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도움을 줄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문학은 감히 누가 누군가에게 지도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제자가 스승을 닮아버리면 그 스승과 제자는 함께 망해버리기 때문이다. 그에게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창성이다. 짧지 않은 세월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저자는 학생들에게 ‘읽기’보다는 ‘쓰기’를 권하고 강조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작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읽는 것’을 ‘쓰는 것으로부터 도피처’로 삼은 이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하여 천만 번 논하기보다 단 한 번이라도 사랑을 해보는 자가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다. 아무리 무엇을 느낀들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슬프고 담담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싸우면서 찾아진다. 싸우기를 싫어하면, 인간과 세상이 곧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며, 종이로 된 책만 많이 읽은 바보가 된다.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길어올리나 창조적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인문적 아포리즘 작가는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바깥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서 끄집어내라고 한다. 이는 특히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이에게 해주는 조언이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인 당신 자신과 당신의 주변에서 글감을 찾아라.” 일종의 메모랜덤Memorandum으로, 그것만이 이 세계에 대해 연기하고 저술할 수 있는, 영혼이 죽지 않은 각서覺書가 된다.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약속은 각자가 정한다. 침묵을 무시하지 않고 느낄 수 있으면, 사람의 말도 짐승의 말도 그리고 바람과 햇살의 말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 한 마리 안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불성이 깃들어 있음을 믿는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불성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그런 것에 관해서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글을 길어내었고 그 글은 세계를 구축한다. 그의 글은 카프카의 명구 “책은 도끼다”처럼, 우리의 뇌리를 때린다. 그렇게 우리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을 해방하고, 잘 쓰지 않았던 생각의 근육을 활성화하는 데 효과적인 자극과 영감을 투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