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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김학철 교수
[글머리에] 지뢰밭을 건너고 금광맥을 뒤지며 [바울의 로마행 과정]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지도] [글을 열며] 사도 바울의 최후 유언서 제6부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 스물여섯 번째 마디 |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9:1-13] 스물일곱 번째 마디 |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9:14-18] 스물여덟 번째 마디 | ‘토기장이’ VS. ‘그릇’ [9:19-29] 스물아홉 번째 마디 |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이스라엘 [9:30-10: 4] 서른 번째 마디 |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10:5-13] 서른한 번째 마디 | 복음을 다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10:14-21] 서른두 번째 마디 |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11:1-10] 서른세 번째 마디 | 거룩한 시샘 [11:11-36] 제7부 이웃과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윤리 서른네 번째 마디 | 산 제물 [12:1-2] 서른다섯 번째 마디 | 분수에 맞게 사역하기 [12:3-8] 서른여섯 번째 마디 |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12:9-16] 서른일곱 번째 마디 | 선으로 악을 이기라! [12:17-21] 서른여덟 번째 마디 | 복종과 저항 [13:1-2] 서른아홉 번째 마디 | 칼을 찬 하나님의 사역자 [13:3-7] 마흔 번째 마디 | 이웃사랑 = 율법의 완성 [13:8-10] 마흔한 번째 마디 | 밤의 끝 [13:11-14] 마흔두 번째 마디 | ‘약한 자’ VS. ‘강한 자’ [14:1-12] 마흔세 번째 마디 |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4:13-23] 마흔네 번째 마디 |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15:1-13] 제8부 맺음말: 바울의 선교 비전과 로마교회의 실상 마흔다섯 번째 마디 | 복음의 제사장 [15:14-21] 마흔여섯 번째 마디 | 스페인 가는 길목에 [15:22-33] 마흔일곱 번째 마디 | 로마교회 엿보기 [16:1-16] 마흔여덟 번째 마디 |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시려고 [16:17-27] 참고문헌 [붙임 글]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윤리 -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받으라! | 이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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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야말로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지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민을 평준화시키며, 여하한 인간의 자랑과 공로도 무력화시키며, 일체의 인종적, 종교적, 계층적 장벽을 넘어서 온 인류를 화해와 일치로 이끄는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가장 온전하게 서술해놓은 바울신학의 결정판이기에 교회가 적으로 위기에 빠질 때마다 반드시 되돌아가야 할 기초 교리서입니다.
---「글을 열며」 중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은혜로 불러주심 앞에서 우리는 하등의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를 불러주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부르심의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불신자보다 더 우월해서 선택됐다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구원을 만드는 저자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심지어 믿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조차도 하나의 공로가 돼서는 안 됩니다.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해주신다.” 그렇다면 불러주신 하나님께만 겸손히 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26마디 _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중에서 신명기가 하나님의 계명 말씀이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에 착안해서,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연관시켜서 입과 마음에 적용합니다. 모세의 인용문에 일치시키고자 일부러 순서를 입부터 먼저 말하고 마음을 나중에 언급했지만, 실상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 먼저 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주님 되심’과 ‘부활하심’을 먼저 마음으로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양심만이 우리의 속마음을 알 수 있기에 마음이야말로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역이지요. 흥미롭게도 바울은 마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때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시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내적 믿음’은 반드시 ‘외적 고백’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마음과 입, 즉 내적 믿음과 외적 고백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함께 가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속으로 믿기만 하면 되지 굳이 밖으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뱅이 말한 것처럼 “불꽃도 없고 열도 없는데 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듯이, 마음속에 있는 믿음이 없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뿐이지,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머레이Murray가 말한 것처럼 “마음의 믿음 없는 입술의 고백은 헛되고, 고백 없는 믿음은 가짜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입술의 고백이 구원을 얻기 위한 별도의 이차적 조건이 아니라, 마음 믿음의 외적 표현에 불과하기에 단연 믿음이 먼저 와야 하고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30마디 _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 중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굳이 ‘‘로기켄’이라는 형용사를 쓴 이유는 우리가 교회나 가정, 직장, 시장 등 장소나 어느 시간을 불문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야말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죽은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유대교 예배나 우상 잡신들에게 드리는 헬라인들의 이치에 맞지 않는 거짓 예배와 구별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에 합당한 ‘진정한true’ 예배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이 말을 골라서 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몸 전체를 제물로 바치는 행위야말로 혼과 몸 전체를 드리는 진정으로 적 예배에 다름 아니라는 역설적 진리를 강조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34마디 _ 산 제물 」 중에서 약자와 강자가 서로를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나 권한이 없고, 이 일이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의 손에 달려 있기에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be accountable to해야 할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한 일을 사실대로 아뢰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약자나 강자나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신앙양심대로 한 일에 대해서 판단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 여부를 판가름할 만큼 심각하지 않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한 바울의 처방전은 ‘상호용납mutual acceptance’과 상호존중mutual respect’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자나 강자를 불문하고 받아주신 것은 그들의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그들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받으신 형제자매들을 양자 모두는 환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42마디 _ ‘약한 자’ VS. ‘강한 자’」중에서 로마서는 마침내 ‘종결 송closing benediction’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바울 서신들 가운데 가장 긴 송으로 유명합니다. 이 송은 로마서 서문(1:1-17)에 상응합니다. 일생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살아온 바울의 신학과 목회를 고스란히 대변하듯이 송의 핵심 주제는 ‘이방인에게 계시된 그리스도 복음’입니다. 원문이 워낙 난삽하고 우리말 개역개정도 번역상의 오류가 있기에,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새번역을 주본문으로 삼습니다. 바울은 먼저 복음이 하는 일부터 칭송합니다. ---「48마디 _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시려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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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리교회의 김흥규 목사님의 강해 설교를 묶은 책이지만, 설교는 설교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 설교의 청중 역시 공동작성자이자 공동책임자다. 설교는 설교자와 청중의 공동 작품이다. 설교자는 말씀을 신뢰하고 성령님에 기대지만, 동시에 청중들이 양쪽에 날이 선 칼과 같은 설교를 기꺼이 들으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훌륭한 설교를 하기 힘들다. 청중은 설교자에게 어떤 주변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진리 복음을 남김 없이 전하라는 눈빛과 태도로 설교자를 압박한다. 그때 성령님은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서 말씀 사건을 일으킨다. 이 책은 그 말씀 사건의 현장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한 설교, 아름다운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장탄식이 이어지지만, 주님은 그분의 말씀의 능력을 거두시지 않으셨다. - 김학철 (교수, 연세대학교,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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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윤리는 한 마디로, ‘사랑의 윤리’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는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문구의 빛에서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문구에 대한 신약학자들의 해석은 무척 다양합니다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의 참여”(our participation in the love of Triune God)라는 뜻으로 풀이해봅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현됐습니다. 우리는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participation한 것뿐입니다. - 이광훈 (교수, 버지니아 위싱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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