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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5
머리말·10 들어가는 말 남편도 자신도 바친 한국 사랑 39년 - 19 제1장 빛과 어두움의 굴레에서 사부인 내한 전 1899년 여성선교사회 창립 - 33 11명이 모인 1900년 여성선교사회 - 34 1901년 사부인 이름 처음 등장 - 35 평양에서 열린 연회에 첫 보고서 제출 - 36 결혼 전 미스 해먼드로 제5회 연회 보고서 제출 - 39 이화학당 본관에서 열린 로버트 샤프와의 결혼식 - 43 1904년 연회서 충청도 첫 선교 경험 보고 - 47 1905년 연회 손풍금 전도에 몰려든 현지인 보고 - 49 남편 잃은 슬픔 속에 보고한 1906년 연회 - 58 제2장 충청 여성 선교의 개척자 1907년 연회, 스웨어러“ 사부인 빈자리 너무 아쉬워” - 75 케이블 부인이 보고한 1908년 연회 - 78 귀임한 사부인과 케이블 부인의 공동 보고(1909년) - 82 사경회 시험공부 하는 여신도들(1910년) - 97 궤도에 오른 충남의 여성 선교(1911년) - 104 지령리교회에서 맺은 유관순과 신앙의 어머니 사부인 - 117 “강건하라!” 시 읽으며 각오 다진 1912년 보고 - 122 빈 배, 마른 풀 위에서 밤새운 섬 지방 전도(1913년) - 129 선교구역 두 번씩 순회하며 여성 구원(1914년) - 137 새 삶 찾는 사람을 보는 기쁨(1915년) - 144 배어 선교사“ 사부인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1916년) - 155 한국 땅 다시 디뎌 기쁘다(1917년) - 160 사부인을 교육한 뉴욕 유니온선교사훈련원 - 174 감사할 줄 아는 신도들의 본격 등장(1918년) - 181 제3장 3·1운동과 교회의 시련 3·1운동으로 연회 연기…“ 많은 목회자 감옥 속에” - 187 3·1운동 참가 이화학당 학생들의 고문 증언 - 198 3·1운동 여파로 지역별 연회(1920년) 보고서 없어 - 211 선교 보고도 못 하고 휴가 떠나는 사부인(1921년) - 216 제4장 3·1운동 이후의 선교 사부인 미국에서 돌아와 선교보고 연회(1922년) 참석 - 221 포드차로 선교여행의 날개를 단 사부인(1923년) - 223 양반 출신 황 부인의 전도부인 변신(1924) - 234 전도부인의 고군분투를 지휘하는 사부인(1925년) - 239 무르익은 모습 보여주는 1926년의 선교 - 244 헌금하기 위해 땔감 더 많이 모은 마르다의 신앙(1927년) - 251 선교구역 조정으로 공주 논산만 담당(1928년) - 255 1928년 영명 입학생 박한나의 증언 - 258 선교에 활용된 다양한 교통수단(1929년) - 263 구호품을 활용한 선교의 지혜(1930년) - 265 논산 광리교회의 사경회를 통한 부흥(1931년) - 274 제5장 제도속에 가려진 여선교사들의 열정 ‘지방목사서리’로 임명된 사부인(1931년) - 282 지방선교 중 실족으로 중상 입은 사부인(1932년) - 284 1년간 교회당 4곳 봉헌(1933년) - 287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수양회(1934년) - 294 공주교회의 금주 선전 깃발 대규모 행진(1935년) - 295 격년제로 열린 지방 연회(1937년) - 299 사부인 선교기념비 제막식(1938년) - 302 은퇴 무렵의 사부인 만난 김영한 장로 - 306 사부인 은퇴로 특별 임명자 명단에 없어(1939년) - 308 한국 떠나기 전 소장도서 이대 기증 311 제6장 한국을 떠난 사부인의 삶과 죽음 뉴욕주 실버크릭에서 1940년 여름 보내 - 315 ‘로빈크로프트 - 봉사의 역사’에 기록된 은퇴자의 하루 - 318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들으며 소천 - 323 제7장 후손들이 말하는 사부인 그의 고향 캐나다 작은 마을 야머스를 찾아서 - 329 전기를 마치며 사부인, 한국과 한국 여성을 사랑한 충청 선교의 상징 - 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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