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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칼 구스타프 융: 의사 아닌 의사 1. 융을 말한다는 것 2. 시골 무지렁이 환자들 3. 아버지의 이름으로 4. 융의 건강법 5. 의사 아닌 의사 융 [읽을거리] 융, 자신 안의 선사시대와 만나다│리비도 이론을 통해 본 사회화 과정 2부 콤플렉스: 내 마음의 별자리 1. 리얼한(real) 것이란? 마음이 만드는 세상│작용하는 것이 현실 2. 감정이 강조된 콤플렉스 콤플렉스의 핵요소와 이미지 062│무의식 속 콤플렉스 3. 인격의 다중성 성좌(星座)로서 콤플렉스│자아콤플렉스│모성콤플렉스 4. 삶의 물리학 삶을 움직이는 힘, 감정│원본과 복사본 5. 콤플렉스 안에서, 콤플렉스를 넘어서 인과의 열쇠는 나│감정을 다루는 치료│콤플렉스 아래로 [읽을거리] [1984] 101호실의 비밀│지금 나의 스타일은? 3부 집단무의식: 나를 가로지르는 시공간 1. 집단무의식으로 가는 두 개의 물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나의 의식, 나의 무의식? 2. 의식을 만드는 집단무의식 존재는 모순이다│집단무의식이 먼저 3. 생명은 언제나 집합적 나를 가로지르는 시공간│안락한 가족, 무서운 자연│울타리 속 당신, 이제 떠나라 4. 원형들과의 마주침 그대 안의 나, 내 안의 그대│소망 환상으로서 상징 │자아의 변장술?:페르소나 │ 첫번째 변신: 그림자│두번째 변신: 아니마/아니무스│세번째 변신: 자기(Selbst) [읽을거리] 필레몬과의 대화│피카소 작품에 나타난 시대적 증후 4부 자기실현: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1. 병 vs 병 병 또는 건강│병의 원인은 자아의 회피 2. 변신을 위하여 푸닥거리는 이제 그만│신비의 열매는 없다│성장하지 말고 변신하라│이해의 불가능성, 대화의 가능성 3. 변증법을 통한 합일 역설, 모순을 살아가기│나의 구원이 너의 구원 4. 세상과의 공명능력 : 집합적 신체 보편적일수록 개성적이다│자기(Selbst)실현│융이 멈춘 자리 [건설적 치료의 변주1] 스승이란│[건설적 치료의 변주2] 글쓰기 작업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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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본주의의 최대 병폐가 자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부정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나는 융이 훌륭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융은 말한다. 존재는 그 자
체로 긍정되어야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게 될 어려움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고. 이제까지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았기에, 우리로부터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머리말」 중에서 “콤플렉스를 다루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벌인 콤플렉스 역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인정이 과도한 자책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융은 이런 비장함이 오히려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콤플렉스가 무의식에 내맡겨져 있는 한, 그것은 내가 아니기도 한다. 콤플렉스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다. 무시도 과도한 책임감도 버리고 담백하게 콤플렉스를 바라보아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의식을 치고 들어오는 무의식과 합성하는 대신에 자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른 척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것. 자의식이 강한 경우는 두 가지 모두를 선택지로 가질 수 있다. 사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무능력하다는 얘기고, 자신의 무능력을 아는 의식은 방문자를 대면할 용기가 없다. 이런 자아는 결코 자신을 재조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무의식을 무시하거나, 또는 버티다 버티다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반면 의식의 강도가 약해서 자의식이 너무 없으면 자아는 자신을 치고 들어온 무의식에 그대로 흡수되어 버린다. 첫번째 선택지는 신경증을, 두번째 선택지는 정신병을 유발한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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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아닌 의사 칼 융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가장 쉽고 특별한 입문서!
융은 생각했다. 삶의 어느 것에서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해 줄 수 없다. 어떤 선의건 그렇게 대신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상대의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배려해 준다는 명목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상대방이 겪어야만 하는 중요한 경험들을 박탈한다. …… 융은 환자와 함께 병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다. 그는 환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환자들 스스로 삶을 살아갈 능력을 키우도록 도왔다. 그것만이 앞으로 올 삶의 무수한 변화들 속에서 환자들이 다시는 환자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의술의 박학한 지식에 매달리지도, 의사의 권위에 기대지도 않았다. 그 의사 앞에서 환자들은 스스로의 의사로서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갔다. 융은 이렇게 의사가 아님으로써 의사가 될 수 있었다. (본문 41쪽) 언제부터인가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는 듯하다. “자존심에 상처받았다”는 말보다는 “자존감이 무너졌다” “자존감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는 보통 남에게 자기 존재를 인정받느냐, 스스로가 인정하느냐에 있다고들 말하지만, 요즘 쓰는 용도를 보면 어느쪽이나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과의 관계에 전적으로 목매달며 “자존감이 무너졌다”는 식의 말들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기묘하게도 가장 진보된 문명과 가장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가감없이 토로하는 사회에 살면서 ‘자존’에 대해 자신없어 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보편적 모습이다.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받길 원하고(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끊임없는 생산물을 만들어 내게 하는 한 축일 것이다), 남에게 상처받으면 자기 존재감을 금방이라도 상실해 버린 듯 굴곤 한다. 그리고 남에게 자기 존재감을 온전히 의지하기에 자기 존재에 대한 위무도 남에게서 받으려고 한다. 힐링이나 치유 등의 제품 혹은 서비스들을 구매함으로써 말이다. 연구공동체 [남산강학원]과 고미숙의 [감이당]에서 강의와 공부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온 저자 신근영은 이 책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에서 이런 현대인의 ‘자존감’ 낮은 모습에 “그 자신이 걸어다니는 정신병원이자 그 병원을 책임진 의사였던” 칼 구스타프 융의 삶과 사상을 제시하며, 자기 존재를 긍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긍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 조단조단 설명해 간다. 저자의 진지하지만 편안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콤플렉스’를 없애 버리기보다 오히려 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그것을 잘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며, 나 개인만의 경험에서 나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존재해 온 시간 동안의 ‘집단무의식’이 내게 존재하고 있고, 삶은 계속해서 새롭게 생성되어야 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프로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설어서 어렵거나 멀게 느껴지던 융 심리학의 기본 개념을 자기 삶에 대입해 익힐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융과 프로이트가 선 자리가 어떻게 달랐는지 두 사상의 차이에 대해서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융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이해도 이해지만, ‘자기 존재의 대한 긍정’, 그 쉬울 것 같으면서도 삶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긍정’과 ‘감정’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단초와 실마리들일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 없이 외부세계와 만나고, 살면서 겪는 무수한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이미 내 자신 안에 있음을 깨닫는 길, 이 책이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길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