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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겨울 섬…아이슬란드
꿈의 도중 서툴지만 푸른 빛 아무것도 없다 이름이 자리 잡는 시간 단어만 남은 예술이 뭔지도 모르면서 고마워요, 거기 행복한 사람 아델라 우리는 사리를 겪는 바다처럼 빙산 예술 안쪽 늦은 대답 긴 호흡, 사이 2. 오래된 가을 노래…노르웨이 E10, 북극의 시 노던라이츠 이름에게 나를 멀리 가게 하는 사람에게 너에게 안녕 남자친구 몸살 3. 여름, 물과 공기의 언어…모로코, 필리핀 물 아래의 생 고래상어 바다 유영 골목 풍경 모하메드101 새벽에 바다를 걸어서 모로코에 서퍼 야속한 타진 별과 바다와 반짝이는 아우마르에게 다클라의 축복 광장에서 발견한 굉장한 사치품 세 가지 나는 갇혔다 아미 만세 라이언 4. 봄, 늦은 귀가…미국, 부산 여행 일기 자, 이 길을 따라 마음껏 가장 어두운 밤과 어떤 상처 우리는 단지 햄버거를 먹고 싶었을 뿐이다 혼자 걷는 길을 좋아하지만 당신에게 떠나지 않아도 괜찮아 비행기 우리의 세계 최초의 기억 나만 있어, 고양이 아빠의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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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에는 빙하였던 것들이 이제 막 ‘유빙’이라는 이름을 획득하며 호수에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깨진 조각 사이로 오래되고 불안정하나 싱싱하고 선명한 푸른 빛들이 새어 나와 퍼지며 풍경을 장악한다. 몇 번이고 나를 기절시킬 것만 같았던 그 서툴고 푸른 빛, 문득 나는 그 빛들이 오래전 우리가 매몰시켰던, 허공에 던져진 우리들의 눈빛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p.18 여행은 생의 은유이자 시이며 철학이고 기도, 다른 이를 빗대어 나를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저 사진 몇 장만 남은 여행은 어쩌면 당신을 떠나는 일보다 슬픈 일이었다. --- p.30 아직도 예술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마음이라는 것은 묻어둔다고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오래 외면할수록 되려 뿌리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살며 한 번쯤 이런 감당키 어려운 마음을 쏟아낼 필요가 있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겠다. --- p.37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잠을 자고 무언가를 먹는 일로부터 시작되고 맺는다고 믿는 나는 현지 슈퍼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에서 직접 식사를 만들어 먹는 행위를 사랑한다. 그래서 일부러 조리 공간이 있는 숙소를 챙기는 편이다.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손수 고르고, 계산대에서 점원과 인사를 나누며 구입한 재료로 만든 밥은 호사스럽지는 않지만 좋은 반찬을 함께 먹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 --- p.70 이제껏 수없이 반복했던 행동들이 단지 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유의미가 되는 순간이 좋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 p.72 늘 여행은, 당신은 여전하고 내가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일일 텐데 나는 아직도 내가 아닌 당신 탓을 한다. --- p.82 만나서 굉장히 반가웠어. 남은 여행 잘하고. 건강하길. 굉장한 진심을 담백한 인사로 바꾸면서. 안녕. --- p.155 밤하늘이 감사히 여겨지는 날에는 글을 쓰고, 햇살이 찬란한 날에는 마음껏 슬퍼해야 한다. 한갓 젊음을 탄식하되, 너를 사랑하는 일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 --- p.161 나와 관계없던 존재들이 여행을 이유로 잠시 관계를 맺고, 이는 어떻게든 내 삶 쪽으로 뻗어간다. --- p.184 여전히 혼자 걷는 일을 좋아하지만, 세상엔 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생각한다. --- p.185 여행은 짧고 인생은 훨씬 기니까. 오직 여행만이 당신에게 깨달음을 주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실은 그 무엇도 깨달을 수 없고 또 그 어떤 것도 당신을 구할 수 없을 거다. --- p.191 잠들 수 없는 밤과 이름을 몰라 품지 못하는 별은 형벌이다. --- p.194 지금 바라보고 있는 순간과 마음을 그대로 정지시켜서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할 순 없을까. 잊히지 않도록. 모두에게서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기억하고 싶다고. 어쩌면 어린 나는, 내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 p.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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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소설이라면 여행은 시
인생이 짧은 여행이라면, 여행은 영원한 삶 세상의 숱한 여행에는 이유도 많고 목적도 많다. 여기 아무것도 얻지 않아도, 깨닫지 않아도 되는 여행이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지리적으로 가장 북쪽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이슬란드를 동경하게 된다. 몸이 자라는 만큼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삶이 고돼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그저 불가능해 보여서 더욱 소중히 꿈을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아티스트 레지던스 작가로 초청되어 아이슬란드의 시골 마을 스카가스트론드에서 체류하게 된 그는 짧은 사진작가 이력을 가진 자신의 예술 세계가 빈곤하다고 느끼며 좌절한다. 작업실에서의 나날들은 고요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아티스트들은 부지런히 반짝인다. 예술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십 년간 품어온 꿈과 다르다고 어렵사리 고백하자 마침내 자유로운 창작욕이 그의 안에서 깨어난다. 서늘한 풍경에서 자신의 모습을 똑 닮은 고독을 발견하고, 서툶마저 진솔하게 담아낸 글과 사진들은 오히려 성숙에 가깝다. 아이슬란드는 몸서리 날 정도로 심심하고, 사하라사막엔 폭우가 쏟아지고, 서핑을 하러 간 모로코에서는 하염없이 파도를 기다리고, 미국에서는 좋아하는 햄버거 하나 마음껏 먹지 못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소설 속 모습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는 길에서 본 선인장, 조약돌 하나를 두고 마침표를 찍을 곳을 고심하는 시인의 마음을 떠올린다. 오로라 아래에서 7시간 시차를 사이에 둔 남자친구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고,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에서 십오 년 전 헤어진 아버지에게 못 전한 그리움을 회상한다. “끝이 있음을 생각한다. 영속하지 않는 단편적 행위의 끝에서 우리는 여행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야만 하겠지. 여행을 또 다른 짧은 생이라 믿어 본다면 여행의 끝은 그 생의 소멸이라 해야 할까. 어느 날 갑자기 이틀, 사흘, 혹은 일주일, 한 달을 살다가 죽게 된다면…”_18쪽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꿈결 같은 사진을 넘기노라면 이 여행은 끝이 없음을, 그저 살아 있음에 감복하게 한 북극광은 영원히 포착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알 수 없음의 영원함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멀리 떠나게 하는 동력에 대하여 충만하게 하는 외로움에 대하여 작가는 “그저 사진 몇 장 남는 여행보다 슬픈 건 없다”고 말한다. 많은 팔로우를 거느린 SNS 스타인 그가 말하니 더욱 의외다. 그에게 이 여행은 ‘바다’라는 낱말을 여러 언어로 배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은 ‘바이킹’, ‘빙산’, ‘파도’, ‘조금’, ‘사리’ 등 ‘바다’로 대체 가능한 푸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대신, 광활한 자연 앞에 홀로 서 있노라면 마주하기 마련인 화려한 수사의 감탄이나 자기 연민은 없다. 묵묵히 장을 봐 정성껏 밥을 지어먹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를 느긋이 달리고, 엉뚱한 언어로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고독을 용감하게 직면하고, 소외된 것들에 온기를 나누고자 하는 선한 의지를 다진다. 그것 말고도 이 여행 에세이에는 보기 힘든 미덕이 많다. “여행 한 번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지는 않”는다고 폭로하면서도, “희박했던 긍정 한 송이 정도 피울 힘”은 얻는다고 덤덤하게 고백한다. 혼자 걷는 길을 만끽하면서도, “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잊지 말자고 일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행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관둬도 괜찮아’, ‘떠나도 괜찮아’가 범람하는 세상에, ‘떠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고 숱하게 떠나본 자가 말을 하니 마음에 한결 와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