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김명년의 다른 상품
박지훈의 다른 상품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북한군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쳐들어왔고, 국군은 후퇴를 거듭하였습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 군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맹렬히 싸웠습니다. 그 뜨거웠던 한여름, 나야대령은 낙동강에 서 있었습니다. --- p.17 산 너머로부터 매캐한 화약 냄새와 포탄소리가 들려옵니다. 대령은 끊임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지도를 봅니다. “대령님, 현재 저쪽에는 치열하게 전투 중입니다. 대단히 위험한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운전병이 초조한 목소리로 묻자, 대령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무섭고 끔찍한 일들을 세상에 알려야 해. 위험할수록 우리는 더더욱 가야해.” --- p.19 “나야대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사람과 인도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답니다. 특히 인도에 홀로 남겨진 나야대령의 아내는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분은 살아계실 때 이곳을 두 차례나 다녀갔지요.” 민기는 우리나라를 지켜준 나야대령이 고마웠고, 그렇게 돌아가신 대령의 아내가 안타까웠습니다. --- p.27 [인터뷰] 나야대령의 딸, 파바시 모한에게 듣는다! 인도는 무척 넓은데 아버지 故 나야 대령의 고향은 어디인지요? ▶남인도에 가면 운하가 무척 발달해있는 케랄라주가 있습니다. 그곳의 작은 마을 팔리에서 아버지는 태어나셨습니다. 1912년 4월에 출생하셨는데 아홉 형제의 대가족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친척들은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직업군인이셨는지요? 아니면 그때 당시 어떤 일에 종사하시다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아버지는 체나이에 있는 크리스천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다녔습니다. 원래 기자셨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으로 지원 입대하셨지요. 아버지는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훈련 한번 받지 않고 낙하산 점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진급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는 어머님의 유언을 들었을 때 마음이 어떠셨는지요? ▶ 저는 사실 어머니께서 한국을 방문하시고 그렇게 유언을 남기셨을 때 그 동안 내가 어머니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꼭 어머니를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그 뜻을 받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현안장식’을 위해 범어공원을 찾았을 때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2012년 8월 24일, 장대비가 엄청 쏟아졌지요. 그렇게 비가 오는데도 많은 시민이 함께 참석해 주신 정성과 환대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부모님이 더 행복하게 이곳에서 함께 하실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절로 들었습니다. 인도로 돌아가서도 그 고마움이 도저히 잊혀 지지 않아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p.36 |
자유와 평화를 위한 숭고한 희생, ‘우니 나야’를 그리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의 분열과 민족의 비극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기고 큰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UN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고, 3년여 간 21개국, 194만 명에 달하는 UN연합군을 파병하게 됩니다. 그림책 『나야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사명으로 희생한 인도군인 ‘우니 나야’ 대령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운 희생을 마다치 않았던 그의 숭고한 정신과 평생토록 남편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후, 같은 곳에 안장되어 영혼의 결혼식을 올린 나야 부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의미를 전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