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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_ 귤림서원, 제주의 역사를 품다
1. 고난의 시대에 피어난 유교문화 2. 충암 김정의 제주 유배 생활과 교유 3. 제주에서 만난 유학의 정신 4. 귤림서원 유배 삼현이 남긴 제주 유배시 5. 송시열, 탐라 하늘 끝에서 가족을 그리다 6. 기억, 김상헌과 송시열을 말하다 7. 귤림의 여맥, 제주의 유학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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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륙(海陸) 습합과 귤림서원
제주도는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섬이나, 전통 시대에는 형을 짊어진 자들의 유배지이자 공물 부담에 시달리는 형극의 땅이었다. 귤림서원은 이러한 제주의 역사를 품고 제주 오현을 배향하고 있다. 제주 오현이 제주도로 가는 길은 다양하였다. 김정, 정온, 송시열은 유배의 객으로 험난한 파도를 넘었고, 규암 송인수는 목민관으로, 김상언은 혼란한 제주를 수습하기 위한 안무어사로 각각 인연을 맺었다. 제주가 중앙 정부의 통제권 속으로 편입된 것은 조선 초기였고, 기묘사화에 연루된 김정(金淨)이 죄인의 신세로 발이 묶였을 때 제주의 문명화는 시작되었다. 1578년 김정을 기리는 귤림서원의 출범은 그가 섬사람들을 대상으로 펼쳤던 예교와 문교의 소담한 결실이었다. 제주인은 무척 고집스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유교적 선진화를 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고, 해륙의 습합을 통해 새로운 제주문화를 만들어 갔다. 송인수?김상헌?정온?이형상?김정희?최익현 등 목민관 또는 유배지식인을 통해 주자학적 학풍을 만들어가면서도 혼인?상속?의복 등 생활과 문화 영역에서는 전래의 방식을 고수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