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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제이메르는 꿈에서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라이를 보았다. 그의 날개는 하얗고 아름다웠다. 단 한 번도 라이를 미적 영역에서 관찰한 적이 없는 제이는 한참이나 그 날개의 아름다움에 취해 바라보았다. ‘라이.’ 제이가 불렀다.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입을 틀어 막힌 것처럼 나오다 말았다. 라이는 제이가 빌려줬던 칼을 쥐고 서 있었다. 그의 등으로 죽음을 각오한 결의가 엿보였다. 갑자기 태양이 사라지고 하늘 전체를 어둠이 뒤덮었다. 라이의 머리 위로 검은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단순히 햇빛을 가리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끈적끈적한 물감처럼 호흡마저 가로막는 어둠이었다. 멀쩡히 숨을 쉬면서도 익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제이는 날개를 펼친 검은 짐승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짓누르는 묵직한 존재감에 고개를 들기조차 힘들었다. 그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제이는 라이가 얼마나 무모한 전투를 시작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검은 드래곤, 카-구아닐! 죽지 않는 자들의 군주가 하늘 산맥에 던져 놓은 자신의 복제물. 드래곤이 아니면서 드래곤의 힘을 가진 괴물. 인간을 멸망시키는 전쟁의 선봉장……. ---p.10 11권 패트리샤는 열일곱 살 나이에, 귀족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숙녀였다. 얼굴은 햇빛 한 줄기 받아 본 적 없는 것처럼 뽀얗고, 팔다리는 가늘고, 갈색 머리카락은 비단결처럼 찰랑거리고 반짝였다.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는 언뜻 수수해 보였지만 비싼 게 분명했다.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도 하나씩 하고 있었는데, 드레스의 수수함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화려했다. 그 순백의 미와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게랄드에게 이렇게 선언하는 것 같았다. ‘나랑 동급의 귀족 남자가 아니라면 내 몸에 손끝 하나 댈 수 없음!’ 게랄드는 그녀가 내뱉은 가상의 말에, 가상으로 대꾸했다. ‘아우, 재수 없어.’ 삼십 분 전, 게랄드는 차라리 와인값 백 골드를 물고 이 일을 맡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벽을 치며 후회했다. 그러다 벽에 금이 갔다. 그래서 다른 곳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몰래 걸어 놓았다. 그걸 집사에게 들켰다. 집사는 벽 수리비를 청구했다. 백작이 괜찮다며 용서했다. 이제 게랄드는 이 호위 임무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 p.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