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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징비록
피로 쓴 7년의 지옥.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은 반복된다, 책 읽어드립니다 EPUB
스타북스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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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책머리에: 오늘에 필요한 반면교사, 류성룡의 『징비록』

류성룡은 어떤 인물인가

류성룡의 일생
전란 직후부터 막바지까지
이순신의 성정 그리고 류성룡과의 인연
전란 중 나온 류성룡의 혁신적인 제안들
류성룡의 성장기와 정치적 입지
징비록을 저술한 그의 말년과 학문 세계
류성룡과 선조의 관계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지난 일을 징계하며 뒷일을 삼가다
재상 류성룡의 참회록
징비록의 생생한 사실 기록
징비록의 간행 역사
징비록이 후대에 주는 메시지
이 글에 덧붙이는 말

징비록 자서

징비록 제1권


01 일본 국사 다치바나 야스히로 다녀가다
02 일본 국사 요시토시 등이 오다
03 우리 통신사 황윤길 등이 일본에 다녀오다
04 명나라를 치겠다는 일본 국서가 말썽이 되다
05 다급한 군비(軍備)
06 이순신의 발탁
07 신립 장군의 사람됨
08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09 영남 여러 성의 함락
10 급보가 연잇고, 신립 등이 달려 내려가다
11 김성일의 논죄 문제
12 김늑의 민심 수습
13 상주 싸움에서 이일이 패주하다
14 서울의 수비와 파천 문제
15 신립이 충주에서 크게 패하다
16 임금이 서울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다
17 왜적이 서울에 들어오고 임금은 평양에 도착하다
18 삼도군(三道軍)이 용인 싸움에서 무너지다
19 신각의 승리와 억울한 죽음
20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다
21 왜적이 함경도로 들어오고 두 왕자가 잡히다
22 이일이 평양으로 쫓겨 오다
23 명나라 사자가 오고, 평양성 수비가 논란되다
24 임금이 평양성을 떠나다
25 왜적이 평양성에 들어오다
26 임금은 정주·선천으로 향하고 민심도 어지러워지다
27 임금이 의주에 이르고, 명나라 구원병을 오게 하다
28 명나라 구원병 5천 명이 먼저 달려오다
29 명나라 구원병이 평양성을 치다가 실패하다
30 이순신이 거북선으로 왜적을 격파하다
31 조호익의 충의
32 전주 방어전과 의병 정담 등의 용맹함
33 평양성을 공격해 보다
34 명나라 심유경의 강화 회담
35 경기 감사 심대의 죽음
36 원호가 왜적을 쳐부수다
37 권응수 등이 영천을 수복하다
38 박진이 경주를 수복하다
39 의병이 일어나서 왜적을 무찌르다
40 이일이 순변사가 되다
41 왜적의 첩자 김순량 등을 잡아 죽이다

징비록 제2권

42 평양성을 수복하다
43 이일 대신 이빈을 순변사로 임명하다
44 명나라 군사가 벽제 싸움에 지고 개성으로 물러서다
45 권율의 행주대첩
46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다
47 심유경의 적극 강화책
48 서울이 수복되다
49 왜적이 바닷가에 진을 치고 진주성을 함락하다
50 임금이 서울로 돌아오고 사신들이 일본에 왕래하다
51 이순신을 하옥시키다
52 명나라 군사의 도움을 받다
53 원균이 패하여 한산도 수군이 무너지다
54 황석산성이 함락되다
55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다
56 왜적이 남원성을 함락시키다
57 이순신이 진도 벽파정에서 왜적을 쳐부수다
58 왜적이 남쪽으로 물러가다
59 명나라 장수들의 전황
60 최후의 결전
61 이순신의 인품
62 군신(軍神) 이순신의 계엄

녹후잡기(錄後雜記)

01 임진왜란의 조짐
02 괴이한 일들
03 왜적의 간사하고 교묘한 꾀
04 지세 이용이 승패를 좌우한다
05 성을 굳게 지키는 묘법
06 진주성 포루의 역사(役事) 문제
07 왜적을 막아 낼 방도를 강구하다
08 임진강에 부교를 가설하다
09 훈련 도독을 설치하다
10 심유경에 관한 이런 일 저런 일

저자 소개2

류성룡

 

柳成龍,유성룡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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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철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꿈이며 또한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저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 매뉴얼』, 『내 안에 적을 깨워라』가 있으며, 역서로 『징비록』, 편역서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 『조조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조조의 용병술』이 있다. 편저로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북경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를 기반으로 중국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을 중국에 소개하는 한·중 문화 교류가 꿈이며 또한 전쟁과 혼돈의 중심을 산 지도자 조조의 삶과 재능에 관심을 갖고 그를 연구하여 복잡한 현대를 사는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다. 전작으로 왕경국 박사와 편저한 『유식의 즐거움』, 『조조 같은 놈』, 『조조 같은 놈 매뉴얼』, 『내 안에 적을 깨워라』가 있으며, 역서로 『징비록』, 편역서로 『삼국지의 영웅 조조』, 『조조는 어떻게 영웅이 되었나』, 『조조의 용병술』이 있다. 편저로는 『단순하고 재미있는 심리학의 재발견』, 『조조의 진면목』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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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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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21.5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2만자, 약 4.7만 단어, A4 약 96쪽 ?
ISBN13
9791157955091

출판사 리뷰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에 패했을 것이고
류성룡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설가 장강명은 “『징비록』은 정작 일본에서는 『조선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그 시대에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전까지는 잊혀진 책이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한 김상욱 교수는 “도로도 없고, 교통수단도 없었는데 일본군이 부산에서 한양까지 20일 만에 진격했다. 백성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당시의 두려움을 가늠하며 “니체의 말처럼, 『징비록』은 피로 쓰인 책이다. 단순히 읽기를 바라기보다 한 자 한 자, 기억되길 바란 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군사 일을 봄놀이 하듯 한다면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수장의 중요성과 사람을 어떻게 써야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책


『징비록』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순식간에 나라가 부수어지고, 임금은 살기 위해 도망가 굴욕적으로 무릎 꿇고, 백성들은 잔혹한 죽음을 당하고 굶주림을 참다못해 육신을 목구멍으로 넣는 일까지 발생한다. 류성룡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돌이키지 못할 비극이 발생했을 때 단지 ‘참담하다’ ‘분노를 참을 수 없다’라고 심정을 밝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엄 있는 군주가 아닌 불안에 벌벌 떨며 자리에 연연하는 왕, 역시 자기 이익을 채우는 길이 어디인가를 따라가는 관료들, 방위 사업을 귀찮아하는 백성들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으나, 그럼에도 비극의 가장 큰 책임은 최고 결정권자인 수장의 몫일 수밖에 없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기록한 연유는 과거를 회한하며 죄책감을 덜고자 함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를 탓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류성룡이 지은 제목 그대로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징계하며 앞날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외침의 역사는 비단 임진왜란뿐만이 아니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책을 맡아 나라의 요직에 앉았던 인물이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에 『징비록』의 가치가 있다. 류성룡은 왜란이 일어난 원인과 전쟁의 실황, 군사 기무의 정리, 여러 사건의 논평 등을 기록하여 국난을 극복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남겨 놓았고, 거기에 더해 당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문물제도까지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을 남겼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란 발발 이후 7년간의 기승전결과, 그 안에서 오간 대화의 기록들은 전쟁문학의 고전으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하늘이 낸 큰 인물에게 주어지는 신묘함과 그 책임

전란 발발 이전 류성룡이 불길하게 느낀 조짐들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첨단을 달리는 지금의 시대라도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무시해서는 안 될 자연적 암시는 존재한다. 그처럼 류성룡은 하늘의 기미들과 세간에서 드러나는 기미들을 보고 느꼈다.

그중 하나는 류성룡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에 꾼 꿈이다. 경복궁 연추문에 불이 나 그가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다시 지을 때는 조금 높여 인근 산에 가까운 높이로 해야 한다”라고 말해 준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난 류성룡은 이 불길한 꿈 이야기를 차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다가 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온 뒤에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실제로 경복궁·창덕궁·창경궁 세 궁궐이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그리하여 임금이 피란하고, 백성들은 처참히 목숨을 잃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라가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고 여기며 자포자기하자, 류성룡은 지난 꿈을 언급하며 “꿈속에서 궁궐의 고쳐 지을 일을 의논하였으니 반드시 나라가 회복되리라는 뜻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류성룡은 평생토록 꾼 꿈 중에 징후를 경험한 바가 많았음을 스스로 밝힌 사실이 있다.

『징비록』 본문에 나와 있듯이 전쟁이 터지기 전 류성룡을 불길하게 만든 일들은 여럿이고 현실은 이미 끝나 버린 듯 비참했지만, 그날의 꿈은 분명 류성룡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현실을 기어이 헤쳐 낼 수 있게 한 중요한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류성룡의 해석처럼 왜적은 결국 물러갔다. 비록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나라의 패망으로 가는 이런 일 저런 일

우리나라는 태평한 세월이 백 년 동안이나 계속되다보니 전쟁을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왜적이 쳐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온 국토가 넋을 잃고 말았다. 왜적은 파죽지세로 불과 열흘 만에 서울까지 들이닥쳐서,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도 전략을 도모할 수가 없었고, 용감한 사람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민심 또한 무너져 수습할 길이 없었으니 서울을 빼앗는 교묘한 계책이 달리 필요치 않았다.

한심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용궁 현감 우복룡이란 자는 자기 고을 군사를 거느리고 병영으로 가다가 방어사에 예속된 군사 수백 명이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 앞을 지나간단 이유로 모두 죽여 버렸고, 순찰사 김수는 이 행동에 공이 있다고 임금에게 알려서 승진되도록 하였다. 파벌 싸움에 몰두하였던 지사 신잡은 나라를 잃고 임금이 피란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수복할 계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께서는 마땅히 영변으로 떠나셔야 합니다. 그곳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간장이 없는 것이옵니다”라는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말을 하였다.

안타까운 죽음도 있다. 평복으로 바꿔 입고 도망다니는 다른 관원들과 달리, 경기 감사 심대는 위험한 곳을 피하지 않고 왜적이 알도록 먼저 공문을 띄워 알렸으며 내응할 사람도 모집하였다. 그러다 첩자의 말을 진짜로 믿고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참혹함을 겪은 부끄러운 우리의 지난날을 현실에 결부시켜 다시 살피면서, 앞날을 바로잡는 일이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기를 권한다.

“근심하고 두려워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 뒤에 지난 일을 생각하면 황송하고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비록 볼만한 내용은 없지만 이로서나마 간절하게 충성을 바치려는 나의 뜻을 보이고 또 못난 신하가 나라의 은혜에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 _서애 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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