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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본을 펴내며 21
창해 최익한의 생애와 저술 33 『여유당전서를 독함』 해제 65 일러두기 105 1. 다산 선생의 애걸哀乞 107 2. 정다산 선생 연보 115 3. 다산 명호名號 소고小攷 134 4. 선생 거지居地 소고小攷 146 5. 선생 저서 총목總目 175 6. 선생의 천품·재덕天稟才德 189 7. 학문의 연원 경로 196 8. 남인·서학·성호학파의 교착交錯 222 9. 당쟁과 척사의 표리적 관계 231 10. 내외의 모순과 서학의 좌우파 237 11. 정조의 복수와 서학파의 공동 전선 248 12. 정조 승하와 서학 좌파의 격화激化 254 13. 과학적 신견해 261 14. 유학의 신견해 272 15. 음양陰陽·오행五行·귀신鬼神 294 16. 치양지致良知·이발기발理發氣發 299 17. 균등주의의 왕정론王政論 303 18. 경제 정책의 몇 예 306 19. 경세經世 제책諸策의 개관 310 20. 벌급閥級 벽파闢破 사상 316 21. 사회·정치철학의 기조 323 22. 다산 사상에 대한 개평槪評 335 『여유당전서를 독함』 원문 교주본 363 ○ 부 록 519 [최익한상전간재崔益翰上田艮齋] 522 전통 탐구의 현대적 의의 539 최익한 친일설 557 [창해 최익한 연보] 소고 587 창해 최익한 연보 631 창해 최익한 저술 연보 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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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한은 「자찬묘지명 총목록」과 「열수전서 총목록」을 실어 비교하였다. 특히 후자는 다산의 최후 수정 가장본手定家藏本인 전서 초본에 달려 있는 총목록을 인록引錄한 것인데, 현재 유일한 자료로서 문헌학적 가치가 상당하다 하겠다. 또 최익한은 신조선사 주간 권태휘에게 주는 편지에서, 신조본 『여유당전서』 76책이 분류와 목차를 「열수전서 총목록」에 따르지 않고, 그 제목도 ‘열수전서’라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데서 고전학자로서 최익한의 높은 식견이 느껴진다.
--- p.93 다산 학설은 수기修己와 경세經世 두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수기는 경세의 출발이요 경세는 수기의 목적이라는 것이 사상적 지향이었다. 그의 경세사상은 그 체계가 세계주의적 형태에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고, 또 근세의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의 표현도 아니었으며, 끝내는 유교의 중용으로 환원하였다. --- pp.335-336 「원목」, 「탕론」의 사상은 특정한 사회·정치의 사실에 대한 현상적 설명이지, 일반적 사회·정치의 변천에 대한 보편적 본질을 규명한 법칙론은 아니다. 즉 다산의 하선·상선론下選上選論은 역사적 사실을 추상적으로 분류하는 데만 그치고, 역사적 사실의 사회적·물질적 기초와 동력을 전연 파악지 못하였다. --- pp.345-346 탁고개제托古改制의 이상적 의식은 신아구방新我舊邦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치열한 동기에서 나온 위대한(개량적―인용자) 사상이다. 하지만 그 탁고의 행위는 고대의 유곡幽谷으로 퇴보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결국 다산의 정치적 포부를 담은 『경세유표』는 본질상 『주례周禮』의 연의적演義的 각주가 되고 말았다. ‘신아구방’은 우리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다산이 「자찬묘지명」에서 『경세유표』를 개괄하며 사용한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아방我邦’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가리켰으니 ‘신아구방’은 그 정체가 모호하고 아무런 매가리도 없는 허풍선에 불과하였는데, 1930년대 중반에 이미 안재홍·정인보 등도 주목한 바 있다. --- p.274, pp347-348 다산은 사회 제도에 대하여 극히 온아한 개량적 공상가였다. 여기에 바로 그의 계급적 지위와 역사적 한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공상가는 진정한 활로를 지시할 수 없으며, 제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 발전의 법칙을 발견할 수 없으며, 새 사회를 창조할 만한 사회적 세력을 결코 찾아낼 수 없다. --- pp.349-350 다산은 중농론자였다. 그의 경세 이론은 「전론田論」에서 이상적 절정을 표시하였다. 특히 「전론」 제3장에서 전편全篇의 중심 문제로 제창한 여전제閭田制는 독창적·이상적 고안일 뿐만 아니라 조선경제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규모의 대소는 있을지언정 여전법은 촌락 공영共營 농장인 콜호스와 근사하므로 분배의 균평은 물론 생산력의 증진에도 최선의 정책이다. 경제론의 여전법은 정치론의 「원목」, 「탕론」과 함께 다산의 경세사상에서 최대의 철학이다. 『경세유표』의 공전납세론은 당시 현실에 대응하여 구급적 사회 정책을 제시한 것이니, 근본적 이상론인 여전법과는 동일 선상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익한은 『실학파와 정다산』(1955)에서는 ‘여전법이 소련의 콜호스와 비슷하다’는 위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 pp.356-3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