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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를 독함
양장
최익한류현석 해제
21세기문화원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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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 최익한의 다산 3부작 교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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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교주본을 펴내며 21
창해 최익한의 생애와 저술 33
『여유당전서를 독함』 해제 65
일러두기 105

1. 다산 선생의 애걸哀乞 107
2. 정다산 선생 연보 115
3. 다산 명호名號 소고小攷 134
4. 선생 거지居地 소고小攷 146
5. 선생 저서 총목總目 175
6. 선생의 천품·재덕天稟才德 189
7. 학문의 연원 경로 196
8. 남인·서학·성호학파의 교착交錯 222
9. 당쟁과 척사의 표리적 관계 231
10. 내외의 모순과 서학의 좌우파 237
11. 정조의 복수와 서학파의 공동 전선 248
12. 정조 승하와 서학 좌파의 격화激化 254
13. 과학적 신견해 261
14. 유학의 신견해 272
15. 음양陰陽·오행五行·귀신鬼神 294
16. 치양지致良知·이발기발理發氣發 299
17. 균등주의의 왕정론王政論 303
18. 경제 정책의 몇 예 306
19. 경세經世 제책諸策의 개관 310
20. 벌급閥級 벽파闢破 사상 316
21. 사회·정치철학의 기조 323
22. 다산 사상에 대한 개평槪評 335

『여유당전서를 독함』 원문 교주본 363

○ 부 록 519
[최익한상전간재崔益翰上田艮齋] 522
전통 탐구의 현대적 의의 539
최익한 친일설 557
[창해 최익한 연보] 소고 587
창해 최익한 연보 631
창해 최익한 저술 연보 705

저자 소개 2

崔益翰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7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2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호는 창해滄海, 경상북도 울진 출생. 국학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17세에 영남학파의 거두 면우 곽종석 문하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스승의 권유로 22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을 나온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다니면서 사회주의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 뒤 사상단체 일월회에 가입하였고 조선공산당과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활동하였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32년 대전형무소로 이감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징역 1년이 추가되어 모두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출감한 후에는 국학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글을 실었는데 특히 1938년 말부터는 유명한 <《여유당전서》를 독함>을 《동아일보》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해방이 되자 건국준비워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 등에서 활동하였고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차 월북한 뒤 계속 머물렀다. 그 뒤 북한에서 정치적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역사와 문학 등에 대해 여러 저작들이 나타난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사회 정책사》(1947), 《조선봉건말기의 선진학자들》(공저, 1954), 《실학파와 정다산》(1955), 《조선명장전》(1956), 《정다산선집》(195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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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류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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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鉉碩

호는 운봉雲峯, 녹산鹿山, 푸르뫼 1966 전남 영광 출생 1985 광주고 졸업 1993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2000~현재 21세기문화원 원장 저서 : 시문선 『안개비』(2010), 창해 3부작 교주본(2020)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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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712쪽 | 153*225*40mm
ISBN13
9788995132272

책 속으로

최익한은 「자찬묘지명 총목록」과 「열수전서 총목록」을 실어 비교하였다. 특히 후자는 다산의 최후 수정 가장본手定家藏本인 전서 초본에 달려 있는 총목록을 인록引錄한 것인데, 현재 유일한 자료로서 문헌학적 가치가 상당하다 하겠다. 또 최익한은 신조선사 주간 권태휘에게 주는 편지에서, 신조본 『여유당전서』 76책이 분류와 목차를 「열수전서 총목록」에 따르지 않고, 그 제목도 ‘열수전서’라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데서 고전학자로서 최익한의 높은 식견이 느껴진다.
--- p.93

다산 학설은 수기修己와 경세經世 두 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수기는 경세의 출발이요 경세는 수기의 목적이라는 것이 사상적 지향이었다. 그의 경세사상은 그 체계가 세계주의적 형태에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고, 또 근세의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의 표현도 아니었으며, 끝내는 유교의 중용으로 환원하였다.
--- pp.335-336

「원목」, 「탕론」의 사상은 특정한 사회·정치의 사실에 대한 현상적 설명이지, 일반적 사회·정치의 변천에 대한 보편적 본질을 규명한 법칙론은 아니다. 즉 다산의 하선·상선론下選上選論은 역사적 사실을 추상적으로 분류하는 데만 그치고, 역사적 사실의 사회적·물질적 기초와 동력을 전연 파악지 못하였다.
--- pp.345-346

탁고개제托古改制의 이상적 의식은 신아구방新我舊邦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치열한 동기에서 나온 위대한(개량적―인용자) 사상이다. 하지만 그 탁고의 행위는 고대의 유곡幽谷으로 퇴보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결국 다산의 정치적 포부를 담은 『경세유표』는 본질상 『주례周禮』의 연의적演義的 각주가 되고 말았다.
‘신아구방’은 우리 낡은 나라를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다산이 「자찬묘지명」에서 『경세유표』를 개괄하며 사용한 말이다. 일제강점기 때 ‘아방我邦’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을 가리켰으니 ‘신아구방’은 그 정체가 모호하고 아무런 매가리도 없는 허풍선에 불과하였는데, 1930년대 중반에 이미 안재홍·정인보 등도 주목한 바 있다.
--- p.274, pp347-348

다산은 사회 제도에 대하여 극히 온아한 개량적 공상가였다. 여기에 바로 그의 계급적 지위와 역사적 한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공상가는 진정한 활로를 지시할 수 없으며, 제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 발전의 법칙을 발견할 수 없으며, 새 사회를 창조할 만한 사회적 세력을 결코 찾아낼 수 없다.
--- pp.349-350

다산은 중농론자였다. 그의 경세 이론은 「전론田論」에서 이상적 절정을 표시하였다. 특히 「전론」 제3장에서 전편全篇의 중심 문제로 제창한 여전제閭田制는 독창적·이상적 고안일 뿐만 아니라 조선경제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규모의 대소는 있을지언정 여전법은 촌락 공영共營 농장인 콜호스와 근사하므로 분배의 균평은 물론 생산력의 증진에도 최선의 정책이다. 경제론의 여전법은 정치론의 「원목」, 「탕론」과 함께 다산의 경세사상에서 최대의 철학이다. 『경세유표』의 공전납세론은 당시 현실에 대응하여 구급적 사회 정책을 제시한 것이니, 근본적 이상론인 여전법과는 동일 선상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익한은 『실학파와 정다산』(1955)에서는 ‘여전법이 소련의 콜호스와 비슷하다’는 위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 pp.356-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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