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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본을 펴내며 4
창해 최익한의 생애와 저술 18 『실학파와 정다산』 해제 50 일러두기 95 서문 97 [상편 실학파의 사적史的 발전] 머리말 107 제1장 실학의 술어와 개념 111 제2장 실학파의 선행자들 117 제3장 실학 발전의 사회적 환경―17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조선 ―에 대한 몇 가지 고찰 133 1. 국내적 제 모순의 관계 2. 대외적 제 모순의 관계 3. 영·정 시대 18세기 조선의 신문풍新文風과 그 특징 4. 1801년 ‘사학邪學’ 사건과 그 후 사회적 정세 제4장 류형원·이익 일파의 실학사상 204 제5장 홍대용·박지원·박제가 일파의 실학사상 247 [하편 실학의 대성자大成者 정다산에 대한 연구] 머리말 321 제1부 다산의 사상가적 경력에 대한 사회적 개관 325 제1장 정다산의 약전略傳 327 제2장 다산의 실학적 연원과 경로에 대한 고찰 358 1. 그의 가계와 학파 2. 그의 무학武學과 이술吏術의 전통 제3장 실학파의 서학―천주교와 서양 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376 1. 기독교-천주교의 입국과 그 시대적 변질 2. 동서 문화의 상호 영향과 반기독·반유교의 사상 대조 3. 천주학의 과학적 의상衣裳과 실학자들의 비판적 태도 4. 가톨릭교회의 ‘의례금지령儀禮禁止令’, ‘사학邪學’ 취체의 강화, 실학파-정다산 일파의 배교 표명과 ‘내수외학內修外學’의 의의 제4장 실학파의 발전과 수난에 대한 역사적 고찰 422 1. 남인·서학·성호학파·채당의 교착 관계 2. 당쟁과 척사의 표리적 관계 3. 정조의 ‘벽파’ 퇴치 계획과 서학파의 관계 4. 정조 서거와 서학파의 격화 및 ‘신유사학辛酉邪學’ 사건 5. 서학의 교·학 양파 분열과 학파로서의 정다산의 사상 및 영향 제2부 다산의 철학적 제 견해 463 제5장 과학적 신견해와 일체 미신 타파론 465 제6장 유학 개혁사상과 실용주의 478 1. 유교 경의經義에 대한 신해설 2. 덕치론德治論과 사공론事功論 제7장 인식과 비판에서의 유물론적 제 요소 502 1. 인성론 2. 음양·오행론 3. 왕양명의 ‘치양지致良知’설 4. 퇴계·율곡의 이발·기발론理發氣發論 5. 귀신과 신앙론 제3부 다산의 정치·경제사상 541 제8장 다산의 정치사상 543 1. 균민주의均民主義의 정치론 2. 『경세유표』에 나타난 개신안 3. 문벌·계급 및 지방 차별의 타파와 ‘인재 울흥’의 필요에 대한 강조 4. 민주=민권주의 사상 제9장 다산의 경제사상 593 1. 중농경제사상 2. 농민 문제에 대한 제론 1) 환곡 폐지론 2) 지주의 지세 부담론 3) 공전균세론公田均稅論 3. 신 전제론新田制論 1) 농자득전 불농자부득전農者得田 不農者不得田 2) 여전제閭田制 = 촌락 공동 경작과 노력 보수제 제10장 다산의 「전론田論」 7장 역술譯述 634 제4부 다산의 실학에 대한 간단한 재론 661 1. 그의 철학-세계관 2. 그의 경제·정치사상과 민주주의 3. 그의 애국사상과 민족문화 운동의 선구적 형태 ○ 부록 1 705 1. 다산 연보 2. 다산의 일사逸事와 일화逸話 3. 다산의 저서 총목 4. 종두술種痘術-우두술牛痘術과 정다산 5. 정다산의 이상 사회와 그 역사적 제약성 ○ 부록 2 787 최익한 친일설 789 「창해 최익한 연보」 소고 819 창해 최익한 연보 863 창해 최익한 저술 연보 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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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파와 정다산』은 애오라지 신조본 전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더욱이 전쟁 중에 종이도 넉넉지 못한 산속의 열악한 환경에서 저술되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식량과 건물도 자체 조달해야 하였다.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최익한은 결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필생의 역작 『실학파와 정다산』은 전쟁의 불길 속에서 강철처럼 단련되었던 것이다.
특히 서문은 그의 제일 명문으로서 미제米帝 전쟁상인들을 식인종에 빗대어 견결히 규탄하며 격앙 분발한 필치로 웅위한 포문을 열고 있다.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익한은 김일성대 조선문학과 부교수, 즉 고전문학자이기 전에 애국적 빠포스пафос를 발휘할 줄 아는 위대한 시인이자 문필가였던 것이다. 그는 미군의 맹폭에 의해 무수히 죽어간 인민들을 위로하고 전후 경제 복구에 동원된 인민들을 고무하는 치열한 필전筆戰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는 온실 속에서 안주하는 기능적 아카데미즘만으로는 상상조차 불가한 전투적 진정성이 확고히 천명되어 있다고 하겠다. --- p.58, pp85-86 오늘 미제를 괴수로 한 식인종들은 우리 조선 인민의 영웅주의와 무진장한 역량을 타산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문화적 사상적 전통의 우수성을 또한 바로 보지 못하였다. 놈들이 패배에 패배를 거듭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 p.97 본서는 상·하 두 편으로 나누었다. 1장 실학의 술어와 개념, 2장 조선 실학의 선구자들, 3장 실학 발전의 시대적·사회적 환경?17세기 말경부터 19세기 상반기까지의 조선에 대한 몇 가지 고찰, 4장 류형원柳馨遠·이익李瀷 일파의 실학사상, 5장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일파의 실학사상?이상 다섯 장으로 상편을 구성하여 실학 발전에 대한 사적史的 개관을 준 동시에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丁若鏞의 사상과 학설을 오로지 논술한 하편에 대조하여 놓았다. --- p.107 다산 정약용은 「전론」에서 “선비는 뼈다구가 약하여 힘든 일을 할 수 없으니 교육이나 기술 방면에서 도울 경우 농사꾼보다 양곡을 10배 주어야 옳다”고 여전제의 목적을 ‘언 발에 오줌 누듯이’ 참으로 졸렬히도 밝혔다. 이보다 더 농자의 육체노동을 천시하고 양반의 정신노동을 중시하기도 어려울 터이다. 그러나 최익한은 이 양반 우대론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서, 여전제는 다산의 천재적 이상안이며 농민혁명의 이념이 충만한 이론이라고 고평하였다. 즉 그는 다산이 농업 집단화의 조직을 통해 계급적 착취가 없는 이상 사회로 넘어가려 하였다고 중언부언 왜곡을 일삼았던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당시 북한의 농업 협동화를 비롯한 사회주의 개조 작업과 결부된 정치적 곡해에 불과하다. 환언하면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원류를 조선 안에서 창조하려는 요란한(위대한!) 독법으로 볼 수 있겠다. 최익한은 보수 반동적인 다산을 혁명가로 치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급기야 ‘『경세유표』 별본설’이라는 해괴한 설화적 구성을 취하며 총체적 파국으로 치달았다. 별본설이 가짜라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이른바 그 「명승초의전名僧草衣傳」에는 닥치는 대로 싸그리 다산화하려는 후안무치의 탐욕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그가 이 설화를 가지고 ‘다산 비결秘訣’을 운운하면서 ‘극우 다산’을 조선의 맑스인 양 ‘극좌 다산’으로 개변시키는 모험을 감행한 것은 혁명을 모독하는 중대한 반인민적 오류이다. --- pp.8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