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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징비록
류성룡이 직접 쓴 서문 징비록 1권 1장 전란 전 일본과의 관계 2장 우리의 국방 태세와 이순신의 기용 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緖戰)의 붕괴 4장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5장 평양성 전투 6장 이순신과 조선 수군 7장 민중의 봉기, 의병 징비록 2권 8장 평양 수복 9장 전선의 교착 10장 진주성 11장 정유재란 발발 12장 이순신의 투옥과 수군의 전멸 13장 이순신 복귀 14장 마지막 전쟁, 노량 15장 구국의 영웅, 이순신 녹후잡기 |
柳成龍,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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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친족들이 합문밖에 모여들어 통곡하면서 한양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으며, 영부사 김귀영은 더욱 흥분하여 여러 대신들과 함께 궁중으로 들어가 임금을 뵙고 끝까지 한양을 굳게 지키자고 청하고, 또 “한양을 버리자고 앞장서서 주장하는 자는 곧 소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임금께서 교지를 내리시기를 “종묘와 사직이 이곳에 있는데 내가 장차 어디로 간단 말이냐?”라고 했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마침내 물러 나갔으나 상황은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 --- 「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의 붕괴」 중에서 이순신이 진도에 이르러 병선을 수습해서 겨우 10여 척을 얻었다. 그때 해안 지방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피란하는 이가 수없이 많았는데, 이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순신이 여러 방면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불러 모으니, 멀고 가까운 지방에서 구름처럼 많이 모여들었다. 이순신은 그들을 군선의 후방에 있도록 하여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돕게 했다. 적의 장수 마다시는 수전을 잘했는데, 그가 함선 2백여 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침범하려고 하다가 이순신과 벽파정 아래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순신이 배 12척에 대포를 싣고 조수가 밀려오는 것을 이용하여 그 흐름을 타고 적병을 쳤다. 적병은 패전하여 달아났으며, 이로부터 이순신의 군대의 명성과 위세가 크게 올랐다. --- 「13장 이순신의 복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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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
1592년 4월 13일, 18만의 일본 대군이 부산 동래로 들이닥치면서 임진왜란 7년의 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은 순식간에 한양까지 진군했고, 선조는 전란을 수습하고 백성을 보호하기보다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백성들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몰래 도망쳤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경복궁을 불태웠고, 의주까지 도망친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류성룡은 ‘조선 땅을 벗어나는 순간, 조선은 더 이상 우리의 땅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반대했고, “나는 이 나라가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한다”라고 통탄하면서 무능하고 질투심 많은 군주를 대신하여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힘썼다. 임진왜란 당시 좌의정과 병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을 역임했던 류성룡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경계, 충고를 담아 『징비록』을 남겼다. 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징비록』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등 참혹한 전쟁과 침략을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위태로운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징비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