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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삶의 이편과 저편을 바라보다
01_아름다운 아르노 강변에서 02_새로운 삶 03_피렌체의 소용돌이 속으로 04_우월한 고립의 실현 EPILOGUE 별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 단테 문학의 키워드 단테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
朴商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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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학자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언어, 철학, 종교, 정치, 신학,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글을 썼다. 그래서 작가 대신 철학자나 정치학자 단테를 떠올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단연 뛰어난 점은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는 보편타당한 목표를 향한 신념을 견지하는 동시에 늘 변하는 구체적 현실에 스스로 관여하면서 살아갔다.
---「프롤로그」중에서 지옥을 견뎌내는 힘은 지성에서 나온다. 꽁꽁 얼어붙은 지옥의 밑바닥이 표상하는 침묵과 부동의 반지성주의와 대조적으로 지성주의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말하는 가운데 추구된다. 단테는 지옥을 견디는 지성의 힘으로 연옥과 천국으로 날아오르고, 그 여행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프롤로그」중에서 어려서 잠시 불린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지속하다’ ‘견디다’의 뜻을 지닌 두란테는 단테의 삶을 정의하는 데 딱 맞는 단어다. 그는 현실의 상황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가운데 삶을 이어갔고, 『신곡』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지옥의 끔찍한 고통의 현장을 참고 견뎌 연옥에 도달하고 천국에 오른다. ---「아름다운 아르노 강변에서」중에서 단테는 망명과 함께 『신곡』을 쓰기 시작했고 죽음과 함께 끝을 맺었다. 『신곡』을 쓰기 전에 그는 포근한 우리 속에 잠든 한 마리 양이었다. 하지만 그 우리에서 쫓겨나면서 『신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를 쫓아낸 자들이 싸움을 걸었고, 그것에 응전한 방식이 곧 『신곡』 집필이었다. ---「아름다운 아르노 강변에서」중에서 단테는 마치 산타크로체성당 내부에 누워 있는 위대한 인물들을 지키는 파수꾼 자세를 하고 있었지만, 그 근엄한 얼굴은 솔직히 외로워 보였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수시로 단테의 발치에 가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얼굴 위로 보이는 하늘이 때마다 변했다. 말갛게, 환하게, 붉게, 어둡게. 단테는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나도 그 옆에 있고 싶었다. ---「아름다운 아르노 강변에서」중에서 하지만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 더 발길을 옮길 여지도 없는 좁은 실내 공간에 베아트리체와 단둘이 호젓하게 있는 기분이다. 누군가 성당 문으로 들어오면 방해받는 느낌까지 든다. 아버지는 시집간 지 3년 만에 죽은 어린 딸을 이곳에 묻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얼마나 자주 들렀을까? 그들은 아마도 다른 누구도 들이지 않은 채 추억이 서린 이곳에서 오직 베아트리체만 만나고 싶었으리라. 단테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단테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불과 두어 걸음 거리에 연인이 묻혀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새로운 삶」중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초월적 사랑의 표상에 그치지 않는다. 단테는 충동에 휩싸이다가도 이내 절제를 다짐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종교뿐만 아니라 세속의 차원에서 사랑의 실현을 추구했다. 그의 사랑은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가기도 하고 여러 색깔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가슴에 들어와 평생 떠나지 않은 베아트리체는 자기모순적이고 규정하기 힘든 단테의 사랑을 마음껏 펼치는 너른 마당이었다. 그녀는 단테의 사랑을 더욱 포용적으로 만드는 매체였다. ---「새로운 삶」중에서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은총의 매개라면 젬마는 이성의 표지였다. 베아트리체의 죽음과 함께 그에게 찾아온 사랑은 『향연』에서 드러나듯 젬마의 알레고리인 철학이었다. 변함없이 단테의 마음을 채우는 성스러운 베아트리체 옆에 비루한 삶의 그림자가 깃든 세속의 젬마가 자리 잡았다. 둘의 결합으로 단테의 사랑은 이전보다 더욱 깊어지고 오묘해졌다. 베아트리체만 있었을 때 단테의 사랑은 종교적 차원에 머물렀지만, 이제 젬마와 함께 그 사랑은 실존적이고 인간적인 차원까지 펼쳐지게 되었다. 베아트리체는 젬마를 무화하지 않았고, 젬마는 베아트리체를 대체하지 않았다. 둘은 확장의 관계에 있다. ---「새로운 삶」중에서 청신체는 글자 그대로 ‘맑고 새로운 문체’라는 뜻이다. ‘돌체dolce’의 뜻은 달콤함과 부드러움이지만, ‘맑다’는 뜻의 ‘청’으로 옮긴 것은 무난하다. ‘돌체’의 함의는 깊고도 넓지만, 사랑의 태도로 요약할 수 있다. 가슴속에 들어온 사랑은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마음을 모아 그 말을 받아쓰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 이것이 청신체 시인의 시작詩作 방법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내면에 들이는 일이 출발이고, 마음을 모으는 일이 다음이며, 받아 말하고 쓰는 일이 최종이다. ---「새로운 삶」중에서 단테의 평생 화두인 구원은 죽음 이전에 현세에서 우선 이루어야 할 천국과 관련된다. 미완의 인간 삶에서 이룰 천국이란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단테에게 천국은 끊임없이 추구하는 미완의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그는 천국의 모델을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 찾으려 했고, 그것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기에 보완과 발전의 기획을 계속 적용해가려 했다. 피렌체의 산미니아토알몬테성당, 거기에 이르는 계단은 단테의 구원관을 잘 보여준다. ---「피렌체의 소용돌이 속으로」중에서 피렌체의 최고위원으로 활동한 기간은 단테 인생의 뾰족한 봉우리였다. 그야말로 “우리 살아가는 길 반 고비”(「지옥」 1곡 1행)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로 내달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망명의 고달픈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는 더욱 드높은 희망을 찾아낸다. ---「피렌체의 소용돌이 속으로」중에서 나는 쓸쓸한 유랑자 단테를 떠올리며 그의 발길을 따라다녔다. 서쪽 해안에서 눈물을 삼키고, 사람들과 만나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외교와 행정 사무를 보아주면서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가늠하고, 틈만 나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고, 계속해서 길 위에 섰던 단테. 나도 그러했다. 같은 해안에서 같은 별을 보았고, 사람들을 만나 단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가 마주했던 현실을 상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했고, 숙소와 자동차, 식당, 길 어디서든 자판을 두드렸으며, 계속해서 길로 나가 단테를 만났다. ---「우월한 고립의 실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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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단테의 영원한 고향
단테를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단테가 망명을 떠나기 전까지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피렌체와 그 주변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산고덴초, 카센티노, 카말돌리, 베네치아, 파도바, 볼로냐, 카라라, 리구리아 해안, 베로나, 라벤나 등 망명 이후 전전했던 피렌체 이북 지역이다. 먼저 피렌체를 찾아간 저자는 미켈란젤로광장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13세기 중후반의 풍경을 떠올린다. 단테가 태어난 1265년 무렵 피렌체는 르네상스 물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일찍부터 면직 산업이 발달하면서 번영의 토대가 되었고, 또한 신에서 인간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문 전통이 다시 소환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테는 대중 친화적인 프란체스코수도회 학교와 연구에 치중하는 도메니코수도회 학교를 오가며 서로 상반된 분위기의 신학적 전통을 익힌 한편, 당시 유명한 학자이자 공직자였던 라티니 밑에서 학문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성을 배웠다. 이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절제와 조화의 미덕을 내면화한 그는, 초월자를 향한 중세적 소망과 근대적 인간의 개별성을 동시에 긍정하고 종합하는 면모를 띠게 되었다. 또한 피렌체는 단테에게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이자, 청신체라는 문체를 통해 새로운 문학 운동을 주도한 곳이며, 정의로운 공동체 수립을 위하여 공직자로서 치열하게 그 길을 모색한 곳이기도 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딱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에 “사랑으로 구원을 행하는 존재”로서 깊이 각인되면서 평생에 걸쳐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마음은 청신체파의 중심 주제인 ‘사랑’과도 직결된다. 가슴속에 들어온 사랑은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데, 마음을 모아 그 말을 받아쓰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것이 청신체의 시작詩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단테가 오직 사랑만 노래하는 탈정치적 시인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며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하여 피렌체 최고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시민들이 이루어가는 공적 정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하다 끝내 추방 선고를 받고 말았다. 저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세월의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성곽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폰테산타트리니타, 단테가 세례를 받은 곳이자 종국에도 돌아갈 곳으로 지목한 산조반니세례당, 베아트리체가 묻혀 있는 산타마르게리타성당, 어릴 적에 공부한 산마르티노성당과 산타크로체성당과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등을 찾아가며 단테의 오래된 숨결을 되새긴다. 길 위의 단테 이제 저자의 발걸음은 방랑자 단테의 뒤를 따라간다. 그 방랑은 단테 나이 서른일곱 살에 시작되어, 끝내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라벤나에 묻힐 때까지 20여 년간 이어진다. 유랑 길은 피렌체 동쪽에 위치한 카센티노의 숲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대부터 은둔의 장소로 유명했던 이곳은 단테에게 어둠이면서도 부드러운 은신처였다. 그가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과 쌓아온 애정을 떠나보내는 지리적 경계 혹은 심리적 문턱이자, 『신곡』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어두운 숲’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숲에서 헤매다 올려다본 별은 구원의 상징처럼 단테를 인도했을 것이다. 카센티노를 벗어난 이후 단테는 베네치아, 트레비소, 파도바, 볼로냐, 사르차나, 루니자나, 루카, 베로나, 라벤나 등지를 전전했다. 더 이상 피렌체 공동체 건설에 참여할 수 없었던 그는 새로운 실천을 구상해야 했다. 처음에는 피렌체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보편적인 차원을, 즉 피렌체를 품으면서도 넘어서는 방식으로 보다 넓은 국면에서 인간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가 그의 강력한 실천 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망명의 회한을 달래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속어의 우수성을 정당화한 『속어론』,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는 것을 추구한 『향연』, 원만하고 정의로운 공동체 실현을 위한 지침을 담은 『제정론』을 썼으며, 궁극의 사랑과 구원을 노래한 『신곡』을 써서 죽음과 함께 끝을 맺었다. 길 위에서 단테는 쓰고 또 썼다. 망명자로서의 삶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불운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히려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 삶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은 망명과 함께 활짝 피어났다. 저자는 망명지를 전전하는 단테의 구부정한 등을 떠올리며 깊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단테의 영혼과 목소리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나날의 작은 국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나 정의 같은 큰 차원에서도 믿음직스러운 지침을 준다. 하지만 그 지침은 정해진 대답으로 안내하기보다는 생각거리를 계속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앞장서서 이끌기보다는 나란히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반자의 느낌을 준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뇌하고 외로워하다 다시 일어선 그의 기록에서 삶의 친근한 동반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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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우리를 저 먼 고대 시인의 신비로움과 가까운 근대 작가의 친근함 사이 어디쯤으로 데려간다. 그는 신비로우면서도 친근하다.
- 박상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