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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라는 근대
식민지와 제국의 영화교섭
정종화
박이정출판사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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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 01. 조선영화란 무엇인가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근대
일본영화·일본영화인과의 관계
조선영화 발굴과 연구 동향
이 책의 방향
# 02. 활동사진의 도래
첫 활동사진 공개
극장가 형성
일본인 주도의 영화 흥행
조선인 영화관 등장
무성영화의 목소리, 변사
# 03. 조선영화의 출발(1919~1922년)
1. 서구 연속영화의 유행
2. 조선인 연쇄극 제작
일본에서 기원한 연쇄극
단성사 주도의 연쇄극 제작
3. ‘영화적인’ 연쇄극
영화적(cinematic) 실천으로서의 연쇄극
서구 활극의 미장센과 일본 신파 서사의 결합
# 04. 무성영화의 제작(1923~1925년)
1. 신파영화의 시대
초기 무성영화계
첫 상업극영화
2. 재조선 일본인 제작사
동아문화협회
부산 조선키네마주식회사
3. 조선영화인의 형성
4. 영화극으로서의 표현방법
무대극에서 영화극으로
화면의 연락
클로즈업/대사(大寫)
5. 일본 신파와 서구 활극이 직조된 스타일
일본 신파영화의 조선적 번안
서구 활극과 블루버드 영화의 영향
# 05. 무성영화의 질적 전환(1926~1934년)
1. [아리랑] 전후 무성영화계
2. 일본인 제작사와 조선영화인의 협업
조선키네마프로덕션
덕영프로덕션
대륙키네마프로덕션
경성촬영소의 원산프로덕션
3. 서구영화와 접속한 [아리랑]
[아리랑] 속의 [카추샤]
유럽 예술영화 사조의 영향
서구 활극 장르의 영향
4. 조선 무성영화의 스타일
시나리오와 촬영대본 분석
[청춘의 십자로]로 본 무성영화 스타일
일본영화 스타일과의 접점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청춘의 십자로](1934)
# 06. 발성영화와 영화기업화의 모색(1935~1939년)
1. 발성영화의 시대
서구 토키의 수용
외국영화 상영 제한
2. 조선어 토키 제작
경성촬영소의 ‘협업(協業) 시스템’
조선인 자본의 한양영화사
3. 2세대 조선영화인
일본 영화촬영소 유학파
무성에서 발성으로, 스타일의 변화
4. 조선인 영화기업의 등장
[나그네/다비지]가 촉발시킨 일본영화 합작
최남주의 조선영화주식회사
이창용의 고려영화주식회사
조선영화 이출(移出)과 일본 수용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미몽](1936)
[심청](1937)
[군용열차](1938)
[어화](1938)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1939)
# 07. 조선영화의 전시체제(1940~1945년)
1. 조선영화의 새로운 국면
조선영화령과 영화신체제
전시체제 개편과 영화계
문화영화 제작
경성의 영화흥행
2. 조선영화에서 국책영화로
식민지/제국의 조선영화
조일 영화계의 교류
최인규의 영화
국책영화 제작 시스템
3.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1941)
[지원병](1941)
[반도의 봄](1941)
[그대와 나](1941)
[망루의 결사대](1943)
[조선해협](1943)
[젊은 모습](1943)
[병정님](1944)
[사랑과 맹세](1945)

맺는 말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Chung, Chonghwa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으로 근무하며,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영화사를 가르친다. 한국영화사와 한일 비교영화사가 주 연구 분야로, 2014~2016년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JSPS외국인특별연구원으로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 『韓?映?100年史―その誕生からグロ?バル展開まで』(明石書店, 2017), 『1990년대 한국영화』(공저, 앨피, 2022), 『1980년대 한국영화』(공저, 앨피, 2023)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Mode of Cinematic Plagiarism and Adaptation: How Ishizaka Yojiro’s Novels Laun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장으로 근무하며,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영화사를 가르친다. 한국영화사와 한일 비교영화사가 주 연구 분야로, 2014~2016년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JSPS외국인특별연구원으로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 『韓?映?100年史―その誕生からグロ?バル展開まで』(明石書店, 2017), 『1990년대 한국영화』(공저, 앨피, 2022), 『1980년대 한국영화』(공저, 앨피, 2023)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Mode of Cinematic Plagiarism and Adaptation: How Ishizaka Yojiro’s Novels Launched Korean Youth Film」, 『Korea Journal』(vol. 57, no.3, 2017)와 「The Identity of “Joseon Film”: Between Colonial Cinema and National Cinema」, 『Korea Journal』(vol.59, no.4,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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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902g | 180*235*30mm
ISBN13
9791158485795

책 속으로

‘조선영화는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구체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보자. 이는 조선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면면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가의 문제이고, 엄혹한 일제 강점 치하에서 왜 굳이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의문까지 포함될 것이다. 또한 영화 필름 그 자체로 보자면, 조선영화 텍스트는 기술적으로 또 문법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질문까지 확장될 수 있다. 조선영화는 영화 매체의 특성상 허구의 세계일 수 있지만 식민지적 현실을 투영해낸 결과이기도 하고, 나아가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반영해낸 산물이기도 하다.
--- p.15

이경손의 영화에 출연하며 영화를 시작한 나운규는, 연출의 기회가 오자 ‘신파영화’라는 선배의 길을 따르면서도 할리우드 활극영화의 스타일을 상업적 돌파구로 지목했다. 당시 조선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이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대작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나운규는 이러한 조선인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하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가 고민했다. 이에 더해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정교하게 구축했다.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활극과 비극이 결합된 신파 형태를 취하면서도,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조선인의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1926)은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
--- p.133

조선영화계의 발성영화 제작상황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현대극 장르이자 ‘교통선전영화’로 만들어졌다. 흥행계 실력자였던 와케지마 슈지로의 경성촬영소는 1930년대 중반 발성영화 국면을 주도하고 있었다. 김소봉(일본인 야마자키 유키히코), 이필우, 이명우 등 조선영화인과 일본영화인의 ‘협업시스템’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미몽] 역시 녹음은 이필우가 맡았고, [춘향전]에서 사용한 후 개선을 거듭한 ‘노이스레스 P. L. 시스템 조선폰’을 사용했다. 연출은 경성촬영소에서 도제로 성장한 양주남이 맡았다. 일본 쇼치쿠영화 출신의 김소봉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촬영소에서 그들의 도제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촬영 역시 경성촬영소에서 이필우의 도제시스템으로 수련한 황운조가 맡았다. 당국이 의뢰한 선전영화에서 조수급 양주남과 황운조가 데뷔의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선만(鮮滿)교통타임즈사’ 주최,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는데, 1936년 11월 6일 우미관에서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선만교통타임즈사의 순회 행사에서도 상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p.286

영화의 원작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소학생 대상 신문인 『경일소학생신문(京日小學生新聞)』 공모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상(學務局長賞)을 받은 광주 북정공립심상소학교(北町公立尋常小學校) 4학년 우수영 어린이의 작문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은 1939년 3월, 작문집이 발간된 것은 1939년 6월이다. 영화 역시 6월에 바로 착수된 것에서 당시 원작 작문이 큰 화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나리오 작업은 3월 선정 직후 바로 착수되었는데, 일본영화계의 중견 시나리오 작가 야기 야스타로가 맡았다. 제작자 이창용은 일본 ‘내지’ 시장에 통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우선 일본영화식의 시나리오를 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연출과 촬영은 안정 구도에 오른 조선영화계에서 맡고, 역시 취약했던 후반 작업과 ‘내지’ 개봉을 위한 일본어 자막 작업(superimpose)은 일본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 p.358~359

출판사 리뷰

교섭과 경합으로 보는 조선영화 역사
이 책의 저자는 ‘조선영화’가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제작은 무엇보다 자본과 기술이 수반되어야 하는 작업이므로 일제시기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조선영화인들이 식민 당국, 재조선 일본인 그리고 일본영화계를 아우르는 각 주체들과 교섭하고 경합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민지 조선영화계는 조선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그 면면이 조선인만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조선영화 역시 조선인만의 결과가 아닌 일본영화인과 협업한 결과로서 존재했다. 식민지 사회 구조와 상업영화의 제작 논리를 고려할 때 명백하지만 그동안 애써 인식하지 않았던 사실(史實)이다. 조선영화는 이를 한국영화사라는 일국(一國)의 영화사로 소환해 어떻게든 그 범위 안에서 서술하려는 노력보다는, ‘왜 한국영화가 아닌가’라는 존재론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성찰할 때 더 분명히 드러나는 존재이다.

해방 이전의 영화를 조선영화라고 명명한 이유
일제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해 ‘한국영화’라는 이름이 아닌 ‘조선영화’라고 명칭한 것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영화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4년 개봉한 [장화홍련전] 신문 광고에서인데, 이때부터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참가하고 주도적으로 만든 영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의 식민지 경험은 매우 불행한 역사임에 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은 영화를 만들었고, 또 관객들은 그들 자신의 모습과 풍경이 등장하는 조선영화를 지지했다. 조선영화라는 명명은 식민지 사람들이 개척했던 주체적인 근대, 그 자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일군 근대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식민지 조선영화(Joseon cinema)는 조선인이 만들어간 근대의 가장 첨예한 장이었다.

식민지 조일(朝日)영화인의 교류사
식민지 조선영화계는 조선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조선인들로만 구성될 수 없었다. 초창기 조선영화 장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재조선 일본인의 흥행 자본을 이용하고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촬영기사의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에서 출발했다. 엄혹한 일제 치하였지만 조선영화는 만들어졌고,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작업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상호 간의 협업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검열 등 일제 당국과 협상해야 할 문제가 발생하면 조선영화계의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해결해야 했다. 조선영화와 일본영화 그리고 일제 당국이 함께 만들어낸 식민지 영화계의 구도는 서구와 일본의 것이 혼종된 한국식 근대의 원형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특징
학술과 교양 독자를 모두 상정한 이 책은 정보와 지식의 분명한 전달을 위해 통사적 흐름을 염두에 두고 서술되었으며, 귀중한 사진들을 풍부하게 소개하여 자료적 가치 역시 크다. 이 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시기의 영화를 조선영화라 명칭한 점이다. 둘째, 각 시기별로 영화사에 관한 특징을 정리하여 장별로 묶었다. 셋째, 조선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일제와 식민지 조선의 교섭 그리고 조선영화인들과 일본영화인들과의 교류의 역사에 초점을 두고 서술하였다. 넷째, 현재 감상할 수 있는 16편의 발굴된 조선영화에 관한 해설을 따로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다섯째, 저자는 이 시기의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자연스런 질문과 대답하는 방식을 택하여 서술하였다. 필름 아카이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2004년부터 조선영화 조사와 발굴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매체가 조선영화인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통해 ‘조선영화’로 흥미롭게 토착화되는 양상을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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