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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고독 속에 나를 버려두라: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길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사람의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날마다 피어나는 꽃처럼 새롭게 시작되는 삶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옷을 입으라사람은 성숙할수록 젊어진다지혜의 길과 자비의 길버리는 연습날마다 새롭게 사십시오지금의 업과 인연은 반드시 내일의 결과로 이어진다대지는 다음 생의 내가 살아갈 공간: 생태계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다살 만큼 살다가 돌아가 의지할 곳이 어디인가진달래가 진달래답게 피어나듯, 그대도 그대답게 피어나라육식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가맑은 가난을 살라모자라고 부족한 데서 오는 행복경제 위기와 불황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행복이 찾아온다불교 수업: 부처와 보살, 성현들이 남긴 삶의 비결하루에 한 가지씩 선한 일을 행하라바른 생활 규범으로 삶의 중심을 세우라이웃을 구할 때 나 자신도 구제된다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한 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느니보왕삼매론에 대하여내 안의 부처와 보살을 깨우라당신의 참다운 나이는 몇 살인가?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온다당신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청정한 마음이 머무는 그곳이 곧 청정한 도량: 길상사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가난한 절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보살핀다는 것길상화 보살 49재에순간의 한 마음이 세세생생을 좌우한다맑고 향기롭게 10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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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頂,박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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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청정한 마음이 온 세상을 치유합니다.”: 시민의식을 깨우기 위해 세상으로 한 발 다가선 법정 스님의 발자취대형 음식점이었던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은 1987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불교 도량으로 시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그 청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다가 1995년에 이르러서야 그 뜻을 수락하여 대법사를 열었다. 대법사는 1997년에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고 같은 해 12월 14일에 창건 법회를 열었다.왜 법정 스님은 1995년에 이르러서야 김영한의 뜻을 받아들였을까? 이는 한 해 전인 1994년에 순수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한 일과 무관하지 않다. 1975년부터 송광사 뒷산 불일암과 강원도 오두막에서 은거하며 홀로 수행하던 스님은 ‘생전에 밥값은 하고 가야겠기에 이 일 한 가지만은 꼭 하고 싶다.’는 뜻을 세우고 개인의 청정함(맑음)이 사회적 메아리(향기로움)로 확산되기를 바라며 1994년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고 이듬해에 대법사(현 길상사)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만약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쓴다면, 이 1994년을 일대 전환기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굳이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법정 스님의 법문집인 『좋은 말씀』을 통해 사회운동가로서 발걸음을 시작한 스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며 첫 걸음을 내딛었던 1994년 3월 26일의 구룡사 강연(「지혜의 길과 자비의 길」)을 비롯하여 1997년 12월 14일의 길상사 창건 법회(「가난한 절」), 2003년의 맑고 향기롭게 발족 10주년 기념 법회(「맑고 향기롭게 10년을 돌아보며」) 등의 내용 속에 잘 나타 있다. 『좋은 말씀』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었던 법회와 대중 강연이 실려 있는데, 이 시기는 사회운동가이자 환경운동가로서의 스님 모습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시기와 일치한다.그런데 사실 이 법문집이 이러한 성격의 글로 엮인 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다. 앞서 오래전에 두 권의 법문집을 펴내면서 수록하지 않은 법회와 강연의 녹취를 모았는데,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승려이자 만인의 사랑을 받던 수필가로서만 기억될지 모를 스님의 잔영에 법정 스님의 또 다른 의미와 모습을 보태라는 부처님의 뜻은 아닐까.“삶을 올바르게 이끌고 세상을 치유할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 삶을 새롭게 전환할 명징한 가르침신앙생활을 하는 불자로,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청정한 존재로서 희구하는 올바른 길과 속인으로서 갖게 되는 욕구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구도자의 삶이란 이 숱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올바른 답을 구하는 일이 아닐까? ‘중생이 끝없지만 기어이 건지리다.’라는 원(소원, 발원)을 세웠던 지장보살과 마찬가지로 법정 스님은 개인의 정진을 넘어 중생을 구할 생각과 행(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했고, 『좋은 말씀』은 그 수행의 결과물이다. 법정 스님은 이 법문집에서 올바르게 살아가고 세상을 치유할 명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살아가는 일이란 무언가를 더하고 보태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버리는 것이며, 본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청정함을 캐내는 것이란 가르침은 채울수록 더 큰 공복감과 갈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강대국 중심의 제국주의적 질서 속에서 점점 비대해져 가는 물질 사회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내 삶의 중심을 세울 것인가 하는 경고를 대할 때는 두려운 가운데에도 참된 삶을 향한 의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을 근본 단위는 가정이자 어머니라는 메시지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법정 스님은 현대인의 숙명적인 공허함과 외로움, 자아 상실, 도덕적 해이와 환경 문제, 물질을 숭배하는 세태, 점점 희미해져 가는 행복과 자유, 그리고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법문집에 실린 글들은 미려한 문체로 그린 아름다운 수필인 동시에 혼탁한 세상에 던지는 날카로운 충고이며, ‘나’를 잃어 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깊은 위로다.“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 더 충만해지는 것, 이것이 나눔의 비밀입니다.”: 구도를 넘어 구제의 길로 나아가다『좋은 말씀』을 통해 법정 스님은 시종일관 나눔을 통해 개별적인 자아가 우주적인 존재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신앙생활의 도량이 되는 절과 교회는 호사스러움을 벗고 스스로 청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눔’과 ‘맑은 가난’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이자, 스님이 전 생애에 걸쳐 견지했던 삶의 질서였다. 또한 이 법문집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법정 스님이 환경 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는 점이다. 점점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을 우려하는 차원을 넘어 그릇된 국제 질서와 사회 시스템을 고발함으로써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기업들의 과도한 이윤 추구, 시장 확대를 꾀하는 강대국들의 지배 전략,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 시스템을 꾸짖는다. 사람이 먹어야 할 곡물과 물을 가축에게 먹여서 고기를 취하는 육가공 산업과 육식 위주의 식단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가난한 나라의 식량난과 식수난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고든다. 이런 식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는 우리의 육신이 돌아가 쉴 곳인 고향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일임을 엄중하게 경고한다.“오늘 비로소 우리는 법정이라는 큰 스승을 다시 만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승려이자 수필가, 시대를 밝히고자 했던 어른, 불의한 힘에 맞선 개혁가,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길을 열었던 환경 운동가……. 법정 스님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가 떠났다. 해방과 휴전 이후 거세게 밀어닥친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 사회가 파괴되고 자아를 상실하는 세태를 목격하며 스님은 말과 글과 행동으로 대중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썼다.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법문집에서 법정 스님은 행복과 자유를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어린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 주려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치유하며 인간으로서의 삶을 회복할 명징한 방법을 제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빛을 발하는 가르침을 주었기에 법정 스님은 영원한 스승으로 우리 곁에 지금도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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