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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정신분석의 철학자 2부: 혼돈을 사유하다 자크 라캉 연보 옮긴이 해제: 라캉 혹은 주체의 혁명 찾아보기 |
Alain Bad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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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
“라캉, 특히 말년의 라캉은 제게 철학의 영웅입니다.”--- p.40 “저의 해방은 정치적 행동과 사랑을 통한 발견, 연극적이고 소설적인 글쓰기, 수학적 형식주의의 취향을 경유하는 것이었고, 이 모두는 결국 철학 안으로 모아졌습니다.”--- p.41 “라캉은 프로이트를 마르크스에 견주고, 자신은 레닌에 견주었어요. ……레닌은 더이상 코뮌주의를 약속하지 않아요. 그는 결단하고, 행동하고, 조직하니까요. 라캉도 더이상 프로이트처럼 치유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신분석을 사회적응의 시각으로 보는 것에 완강히 반대합니다. ……비록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치장을 하고 나타날지언정, 정신분석은 해방의 매개체입니다. 치료에 대한 그의 시각으로 인해 라캉은, 설사 자신은 사태를 전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도, 68혁명과 1980년대 사이에 우리 젊은이들을 총궐기하게 만들었던 추동적 요인들 중 하나였어요.”--- pp.43-44 “1960년대 라캉주의에 경도되었던 젊은 지식인들이 왜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자들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저 이상한 우연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로 라캉의 주체 개념입니다. 철학을 통해서 이 개념에 정치적 전복의 차원을 부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아주 잘 들어맞기도 합니다. ‘자기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라캉으로부터 ‘반항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마오로의 이행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었어요.”--- pp.48-49 “우리가 무의식의 구조들에 사로잡혀 있긴 해도 자신의 욕망에서 물러서지 않는 지점에 도달한 주체의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면, 라캉은 해방의 사상가로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라캉의 가르침을 활용하는 저의 방식이죠. 해방이, 법을 비틀고 거기에 예외를 만드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p.52 “제게도 라캉은 나날이 우리를 엄습하는 비통한 어리석음에 대한 중요한 치유책으로 보입니다.”--- p.55 “단언컨대, 동시대의 어떤 철학자가 자신이 걸어온 길의 어느 순간에 철학에 대한 라캉의 해석과 씨름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면, 저에게 그는 중요한 철학자일 수 없습니다.”--- p.77 “마법사처럼 라캉이 철학사의 영예로운 단면들을 눈앞에 내보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정신분석적 창조의 위대한 외투 속으로 그것들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p.77 “현대 세계는 불확실성과 방향 상실, 항구적 위기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죠. 그런데 라캉은 위대한 혼돈의 사상가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정신분석을 주체의 혼돈에 대한 정돈된 사유라고 정의할 수 있겠죠. 이 점에서 정신분석은 마르크스주의와 매우 유사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또한 자본주의의 모든 혼돈을 구성하는, 격렬한 혼란과 만족시킬 수 없는 탐욕스러운 모순들 위에 근거한 집단적 실존을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하니까요. 우리가 지금의 위기를 성찰하려면 라캉은 필수불가결한데, 왜냐하면 그가 이 혼돈 자체에서 어떤 내재적 질서를, 상징계의 지평과 연계된 참조틀을 재포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pp.93-94 루디네스코 “라캉은 진정한 혁명, 유일하게 소망할 만한 혁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고 생각했어요. 좌파의 혼란이 결국 도달하는 곳엔 폭정의 부활만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죠.”--- pp.45-46 “21세기는 이제부터 라캉의 세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서 보이는 일탈들은 이미 라캉이 예견한 것들이고, 우리는 라캉의 사유를 통해 그것들과 싸울 수 있기 때문이죠.”--- p.54 “프로이트는 가부장적 권위가 지닌 전능함의 실패를 이론화했죠. ……라캉은 회복할 가능성 없이 산산조각난 권위에 관심을 기울이죠.”--- pp.65-66 “라캉이 말 그대로 프로이트 원전의 엄밀한 의미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신분석의 창시자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그리고 지적인 면에서 철저히 프로이트에게 불충실했기 때문)이었죠.”--- p.73 “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를 라캉에게서 보고 있어요. 통제할 수 없는 일탈에 사로잡힌, 민중도 주체도 없이 비인간화된, 금융 자본주의 말이에요. 이 광기에 대항해 라캉에게서 영감을 얻는 것은 질서 안에 무질서를 심는 일일 수도 있죠. 역사의 전환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적 텍스트인 『사드와 함께 칸트』(1963) 읽기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동일한 문제틀의 상이한 두 측면이 관건임을 보여주기 위해 정언명령을 주이상스의 명령에 결부시키는 일, 이것은 현대사회의 상이한 두 측면인 과학주의와 몽매주의에 맞서 똑똑하게 분노할 수 있게 해줍니다.” --- p.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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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주의자들은 왜 마오주의를 선택했을까?
‘사건’의 철학자 바디우와 프랑스 최고의 정신분석사가 루디네스코, ‘해방의 사상가’ 라캉을 논하다 “1960년대 라캉주의에 경도되었던 젊은 지식인들이 왜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자들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저 이상한 우연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바로 라캉의 주체 개념입니다.” - 바디우 라캉 사후 30주기를 맞아 철학자 바디우와 정신분석사가 루디네스코가 나눈 두 번의 대담을 실은 책이다. 68혁명 전후로 마오주의(마오쩌둥주의) 운동에 투신했던 ‘사건’의 철학자는 철학과 정치의 눈으로, 라캉학파의 일원이었고 『프랑스 정신분석사』와 라캉 전기를 집필한 저자는 정신분석의 눈으로 라캉의 현재성을 조명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주체ㆍ욕망ㆍ주이상스ㆍ상징계ㆍ수학소ㆍ매듭 등 라캉 사유의 열쇳말들에 대한 배경 설명, 그리고 국제정신분석협회IPA로부터 ‘파문’당하고 파리 고등사범학교ENS를 교두보 삼아 자신의 학파를 세운 일, 1960년대 구조주의 물결과 68혁명과의 관련성 등 20세기에 가장 치열했던 당대 지식사회의 풍경이 농축되어 있다. 라캉과 혁명 이 책은 단지 정신분석의 혁신가에 그치지 않고 ‘주체의 혁명’을 설파한 ‘해방의 사상가’로서 라캉을 새롭게 조명한다. 20세기 지성사에서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가장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 그만큼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인간 라캉’에 대한 회고이자 그간 간과되어온 ‘라캉의 정치성’에 대한 재발견이기도 하다. 라캉은 사르트르와 달리 사회참여에 무관심했는데도 68혁명의 한 배후로 지목되었다. 당시 라캉은 고등사범학교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었고, 1960년대 초부터 지성계를 뒤흔든 ‘구조주의’의 흐름에 동참해 있었다. 레비스트로스, 알튀세르, 푸코 등이 주도한 구조주의는 68년 학생운동의 주요한 사상적 기반이었으며, 특히 라캉과 알튀세르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잡지 『분석을 위한 노트』는 68혁명 당시 고등사범학교 출신 좌파 지식인들의 산실 역할을 했다. 알랭 바디우를 비롯해 라캉의 공식 후계자인 자크알랭 밀레, 언어학자?철학자인 장클로드 밀네 등이 잡지 편집진이었고 이들은 마오주의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하지만 라캉 자신은 정치적으로 계몽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웠다. 그에게 “진정한 혁명, 가장 소망할 만한 혁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었다. 사르트르처럼 거리시위에 나선 적도 없고 심지어 68혁명 당시엔 운동가로 나선 제자에게 “내가 바로 혁명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라캉은 분명 정신분석의 혁명가였다. 라캉은 철학과 언어학, 구조주의 이론을 접목해 프로이트 이후 점점 교조화되고 치료 중심으로 획일화되던 정신분석을 혁신했다. 그런데 라캉에게 영향받은 일부 라캉주의자들이 급진적 정치 혁명을 꿈꾸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라캉의 이론에 그런 정치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 라캉의 주체: ‘자신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 바디우는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라캉의 주체 개념에서 찾는다. 바디우에게 라캉은 주체의 해방을 도모한 사상가였다. 주체의 혁명과 정치의 혁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공산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자체 혁명이자 청년 반란이라는 점에서 프랑스의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으며 심지어 코뮌주의의 진정한 실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마오주의는 68혁명의 중심 추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자기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라는 라캉의 테제로부터 ‘반항하는 것이 옳다’라는 마오주의 강령을 읽어내는 바디우는 라캉 주체 개념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법’과 아버지의 상징적 규정만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라캉을 반동주의자로 만드는 셈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무의식의 구조들에 사로잡혀 있긴 해도 자신의 욕망에서 물러서지 않는 지점에 도달한 주체의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면, 라캉은 해방의 사상가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라캉의 가르침을 활용하는 저의 방식이죠. 해방이, ‘법’을 비틀고 거기에 예외를 만드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해방은 어떤 국지적 형상 속에서, 어떤 예외 속에서, 정해진 질서 속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어떤 균열 속에서 돌발하는 겁니다. 사회 전체의 느닷없는 혁명이라는 관념은 의미가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라캉이 총체적 혁명이나 ‘위대한 저녁’을 믿지 않는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옳은 일이죠. 그렇지만 그는 주체의 실천적 해방을 독단적으로 폐기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비판합니다. - pp.50-51 반면에 68혁명과 관련하여 루디네스코는 넌지시 마오주의적 라캉주의자들이 나중에 우파 자유주의로 돌아섰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라캉을 마오주의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와 분명히 선을 긋는다. 라캉에게 68혁명은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운동이었어요. 그것은 일반화된 해방 의지가 아니라, 반대로 좀더 잔인한 노예상태에 대한 저항자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표현한 것이었죠. - pp.44-45 라캉은 오로지 정신분석의 실천에만 투신함으로써, 또 실제로 그것이 정치적으로 재활용되는 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함으로써, 그러한 열망들을 무화시킬 줄 알았던 거죠. 그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함으로써 상징적 울타리 노릇을 했어요. ‘저에게 오세요. 혁명이나 극단적 행동보다는 그게 낫죠.’ - p.47 라캉 개인의 정치적 태도를 바디우도 모르지 않는다. 바디우가 보기에 라캉과 마오주의자들의 관계는 헤겔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계와 비슷하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정상·규범상태 안에 기입된 ‘아무것도 아닌 것의 기호’인 바디우의 ‘사건’은 “정해진 질서 속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어떤 균열 속에서 돌발하는 것”인 라캉의 ‘실재’에 다름 아니다. 젊은 시절 사르트르주의자였던 바디우는 이 공백의 주체가 지닐 수 있는 정치적 능동성을 더 강조할 따름이다. 정신분석의 철학자 바디우와 루디네스코는 라캉이 프랑스 지성계의 중심에 있었던 1960-70년대를 되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라캉은 1963년 정통 프로이트학파가 주도하는 국제정신분석협회IPA로부터 ‘파문’당한다. 그때까지 생탄 병원에서 이루어지던 라캉 세미나도 이후 고등사범학교로 옮겨 진행되며, 라캉은 주류 정신분석계와 거리를 둔 자신의 독자적인 학파 ‘파리프로이트학교EFP’를 세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라캉의 명성과 영향력은 오히려 점점 커져간다. 라캉이 IPA로부터 제명당하는 데는 그의 ‘짧고 가변적인 상담 시간’이 주요한 빌미로 작용한다. 안나 프로이트와 멜라니 클라인 등 자아심리학파가 주도하는 IPA는 엄격한 상담 시간 등 정해진 규칙과 기준을 정해놓고 이를 벗어나는 것은 사변적인 것, 즉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라캉은 이런 기술주의와 관료주의 성향이 오히려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정도를 벗어난다고 보았다. 라캉은 환자들 개개인의 성향을 존중했고 그들의 언어에 주목했으며 분석치료 중 단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정신의 자유로움을 보여주었다. 라캉은 정신분석과 철학의 교차로에 서 있던 인물이다. 바디우는 라캉이 전통적 주체 이해에 대항하는 반란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궤를 같이하지만, 이런 구조주의의 맹공으로부터 주체라는 범주 자체만큼은 지키고 싶어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신에 라캉은 주체라는 범주를 근본적으로 혁신한다. 라캉의 주체는 시니피앙의 연쇄에 예속된 주체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라캉의 혁신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소쉬르의 언어학적 성찰을 결부시킴으로써 현상학의 내밀한 경험성과 구조주의의 과학성 사이에서 주체 개념을 유지하려는 데 있다. 반면에 루디네스코는 정신분석이 어떤 철학적 혁명을 담지하고 있다는 점을 철학자들에게 이해시키고, 동시에 정신분석가들을 철학으로 향하게 한 라캉의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라캉적 의미에서의 치료가 가지는 철학적 중요성에 대해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라캉에게 분석의 최종 목적은 회복이 아니에요. 분석은 주체가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서 새로이 살 수 있는 실재의 지점에 도달해야 하죠. 그것은 운명으로 보이는 것을 굴절시키고, 주체의 능력들을 다시 열어젖히는 일입니다. ……그는 치료의 목적이 “무능을 불가능한 것으로까지 들어올리는 일”이라고 했죠. 불가능한 것이란 라캉적 의미에서의 실재, 즉 결코 상징화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분석이란 분석수행자가 느끼는 무기력한 애초의 상황을 타개하도록 하는 일로 간주되죠. 분석이 상상계라는 함정 속에서 질척대는 주체를 자신의 상징화 능력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는 실재의 지점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 p.39 루디네스코는 라캉 사유의 독특함이 그가 걸어온 길과 연관 있다고 본다. 처음에 정신의학자로 출발한 라캉은 현상학의 영향을 받고, 코제브를 통해 헤겔을 접하고, 하이데거에 매료되었다가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 소쉬르로 관심을 돌리며, 때로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프로이트 vs 라캉 라캉은 줄곧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자신의 모토로 삼았다. 자신의 학파 이름도 ‘파리프로이트학교’라고 정했고, 쇠유Seuil 출판사에서 펴내기로 한 자신의 선집 시리즈 이름은 ‘프로이트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라캉이 말하는 프로이트는 어디까지나 라캉에 의해 재해석된 프로이트였다. 바디우와 루디네스코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비시켜 이야기한다. 우선 프로이트가 주로 신경증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라캉은 정신병과 광기, 편집증에 주목했는데, 이는 언어와 철학에 대한 라캉의 관심을 반영한다. 신경증이 기본적으로 임상심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면, 주체를 집어삼키는 광기 같은 종류는 근본적 타자성의 돌발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마르크스에 견주고, 자신은 레닌에 견주었는데, 이에 대해 바디우는 프로이트가 “의학의 치유 논리 안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약속하는 입장에 있는 데 비해, 라캉은 “행동하고 결단하고 조직하는” 인물이라고 평한다.(44쪽) 라캉은 프로이트처럼 정신분석을 치유나 사회적응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해방의 매개체”로 여겼다는 것이다. 즉 기성 사회에 순응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실재를 대면하듯 자신의 욕망을 양보하지 않고 자유를 재구성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정신분석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디네스코가 보기에 프로이트와 라캉의 결정적 차이는, 프로이트가 “가부장적 권위가 지닌 전능함의 실패를 이론화”했다면, 라캉은 “회복할 가능성 없이 산산조각난 권위에 관심”을 기울인 점이다.(65-66쪽) 그렇기에 그리스 비극 가운데 프로이트는 영광과 지혜의 정점에 도달했지만 자신의 오만의 희생자가 되고 만 ‘오이디푸스 왕’을 특별히 선호했고, 라캉은 마지막 순간의 오이디푸스, 모든 빛을 잃고 죽음을 눈앞에 둔 채 자신의 후손을 저주하는 늙은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문체 문제에서도 프로이트와 라캉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바디우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산문이 “아름다운 고전적 언어”로 쓰였다면, 라캉의 글은 “무의식의 물결에 좀더 근접”해 있다.(70쪽) 반면 루디네스코는 라캉이 17세기 프랑스의 모랄리스트들(라퐁텐, 라로슈푸코)의 전통에 닿아 있거나 바로크적이라면, “전형적인 부르주아”에다 “당대 교양 있는 지식인의 취향”을 지닌 프로이트는 빅토르 위고 같은 19세기 낭만주의자에 가깝다고 평한다.(71~73쪽) 이에 덧붙여 루디네스코는 라캉이 프로이트 원전의 엄밀한 의미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신분석의 창시자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그리고 지적으로 프로이트에게 철저히 불충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