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0 서론
0-1 기획 1 의견 2 출현 3 구별 4 실존 4-1 철학의 실존 5 변동 6 합체 7 주체화 8 이념화 결론 도식들 옮긴이 후기 |
Alain Badiou
알랭 바디우의 다른 상품
서용순의 다른 상품
|
철학을 위한 첫 번째 선언 이후 20년,
도덕의 모조품이 되어버린 철학의 고유한 실존을 되찾아야 한다 이념의 긍정적인 힘이 복귀할 것이고, 이미 복귀했다는 확신 이 책은 그러한 복귀를 향한 헌사이다 과잉실존에 의해 더럽혀지고 도덕적 모조품이 된 철학 철학이 본래의 실존을 되찾기 위한 관건, 탈도덕화 “오늘날 철학은 보수적인 도덕에 얽매여 공허한 과잉실존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철학을 그 도덕적 모조품과 구별하기 위해 철학이 출현의 세계 내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그 본질을 정돈하는 것이다.” 철학은 더 이상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실존으로 위협받고 있다. 미디어 스타들이 철학의 이름을 자신의 브랜드처럼 가져다 쓰고, 카페나 헬스클럽, 금융권 등에서까지도 철학이 호명되고 있는데, 거기서 철학은 도덕이나 윤리 혹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교훈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고대의 소피스트들이 바랐던 것처럼, 다른 담론들과 다를 바 없는 여러 담론들 중 하나로, 도덕의 모조품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또한 이로써 철학은 견딜 수 없는 전 지구적 현상태에 대한 도덕적 묵인에 동원된다.(두 번째 선언이 쓰일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 정부가 들어섰고, 무분별한 다국적 자본의 세계화가 맹위를 떨쳤으며, 미국의 군사주의 및 테러와의 전쟁이 펼쳐지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바디우는 철학의 고유한 실존, 소명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선언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의 ‘탈도덕화’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철학을 탈도덕화(de-moraliser)하는 일이다. 철학을 도처에 편재하는 만큼이나 예속적인 ‘철학들’의 공허함에 빠뜨리는 평결을 뒤집어야 한다. 철학은 보편적인 진리들의 활동을 조명하는 무언가의 최대 실존을 획득할 때 출현한다. 이러한 조명은 철학을 인간의 형상과 ‘인권들’ 너머로, 모든 도덕주의 너머로 이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도덕과 법이, 지배적인 사회들과 그 야만적인 경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단지 ‘자본의 대리인’일 뿐인 국가들이 세계에 부과한 터무니없는 불평등의 폭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이상, 철학은 모든 도덕과 모든 법에 대해 고유한 비실존으로 나타날 것이다.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철학은 모든 윤리와 모든 법에 대해 비실존의 지위에서 벗어날 때 우리 세계 내에 출현한다.” 철학의 실천적이며 혁명적인 정당성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바디우의 주저 『세계의 논리』의 압축판이자 현실적용판 바디우가 세계적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것은 진리 철학의 새로운 전망을 열었던 저술 『존재와 사건』(1988)을 발표하면서였다. 이 책에서 그는 수학의 집합론을 통해 존재와 진리와 주체의 혁신을 꾀했는데, 그 이듬해에 출간한 『철학을 위한 선언』은 이 작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철학적 정세에 개입하는 책이었다. 『존재와 사건』과 『철학을 위한 선언』의 이러한 관계는 『존재와 사건』의 2권인 『세계의 논리』(2006)와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과 2006년에 『세계의 논리』(Logiques des mondes)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존재와 사건’ 2권 사이의 관계는 첫 번째 선언과 1988년에 출간된 ‘존재와 사건’ 1권 사이의 관계와 분명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큰 작품’이 완결적이며 정식화되고 예시를 들며 상세한 형태로 제시하는 주제들을 단순하고 즉각 가동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더 넓게 볼 때, 1988년의 간결하고 명료한 형식은 또한 사유가 암중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며, 2008년의 형식은 틀림없이 사유가 거기서 빠져나올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고도 역시 말할 수 있다.” 즉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선언』은 ‘존재와 사건’ 3부작 중 2권인 『세계의 논리』의 주제를 가지고 당대 철학의 현실을 비판하고 넘어서고자 한 것이다. “『존재와 사건』이 존재-로서의-존재를 비일관적이고 다분히 중성적인 다수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진리의 존재를 긍정했다면, 『세계의 논리』는 그러한 진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진리의 출현에 대한 논리학이다. 바디우는 이 책에서 진리의 출현 과정과 더불어 진리의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동체(몸, corps)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서용순, 『철학을 위한 선언』의 「옮긴이 해제」) 『존재와 사건』이 순수 존재론을 재정립했다면, 『세계의 논리』는 그 이론적 작업들을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실천이론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 연유에서 『두 번째 선언』에서는 철학의 실천적 성격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반동적 정치과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계에서 진리와 존재와 주체가 출현할 수 있는 혁명적인 과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의 혁명적 타당성에 바쳐진 선언이다. “결국 1988년에 『존재와 사건』의 중심 문제가 유(類)적인 다수성 개념을 통해 사유된 진리들의 존재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은 확실히 우연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2006년에 『세계의 논리』에서, 문제는 진리의 몸(corps de verite) 혹은 주체화 가능한 몸이라는 개념을 통해 발견되는 출현(apparaitre)에 관한 것이 된다. 20년 전에 선언을 쓴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철학은 사람들이 철학이란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도록 노력하라.’ 오늘날 두 번째 선언을 쓴다는 것은 오히려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철학은 당신이 바라는 그것이 될 수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보도록 노력하라.’ “내가 언제나 존재, 주체, 진리라는 삼중항을 강조한다면, 이는 과학주의(대상의 자연 상태만을 인정할 뿐 결코 주체의 영원성을 인정하지 않는)와 도덕주의(법과 질서의 주체만을 인정할 뿐 결코 근본적인 선택과 창조적인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 실존을 부정하려 하는 이상, 관건은 그러한 삼중항의 실제적인 출현과 세계 내에서 관찰 가능한 그 작용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지속적 실존을 위한 선언(철학의 완료라는 파토스에 맞서는)에 이어 철학의 혁명적 타당성에 바쳐진 선언(철학을 서구의 선전을 구성하는 요소로 만드는 비굴한 교조주의에 맞서는)이 이어진다고 말하도록 하자.”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산다는 것이란 더 이상 삶과 이념 사이의 구분이 없도록 행동하는 것 이 책에서(그리고 『세계의 논리』에서) 바디우는 진정한 삶은 이념에 따르는 삶이라고 말한다.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이 선언문은 현재의 조건들 속에서 철학이 이 질문에 하나의 답변을 혹은 최소한 답변의 형식을 제공할 수 있음을 다시 단언한다. 세계의 명령은, 짧은 주이상스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오로지 너의 만족을 위해서만 살라, 따라서 이념 없이 살라.’ 이러한 삶의 사유(pensee-vie)의 폐지에 맞서, 철학은 산다는 것이란 더 이상 삶과 이념 사이의 구분이 없도록 행동하는 것이라 선언한다. 삶과 이념의 이러한 비식별성의 이름이 이념화(Ideation)이다.” “모든 밤은 마침내 새벽의 기약을 간직하고야 만다. 우리의 상황이 더 나빠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말하지만 거기에는 오늘날의 중요한 미덕을 북돋우는 징후들이 있다. 용기와 그것의 가장 보편적인 버팀목인 확신이, 곧 이념의 긍정적인 힘이 복귀할 것이고, 이미 복귀했다는 확신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복귀를 향한 헌사이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따라 구성된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지배적인 의견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모한 시도 진리의 몸에 충실한 주체가 삶과 이념의 일치를 이룬다 이 책에서 바디우는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의 진행 구조, 즉 동굴 밑바닥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인 의견(doxa)으로부터 이념(idea)으로 향하는 상승의 구조를 따라 논의를 진행한다.‘의견’이란 사실이나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특히 정치 영역에서 여론조사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여론조사란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함이 익히 알려져 있음에도 말이다. 바디우는 이런 경향을 의견 물신주의라 비판한다. 또한 다양한 의견들이 중시된다지만, 정작 보호되어야 할 권리들과 의견들이 아닌 자본만이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이익을 얻게 되는데, 이러한 의회-자본주의의 결탁은 민주주의적 유물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원칙 없는 원칙, 어떠한 제한도 규칙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들과 이에 기생하는 위정자들과 미디어이다. “사유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견의 자유가 아니라 진리의 강제적 예외에서 출발하라.”(35쪽) 바디우의 ‘선언’은 바로 이러한 세계에서도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들과 이를 조건으로 삼는 철학의 실존에 관한 선언이다. 그는 진리가 출현하는(apparait) 방식을 논하고, 이어 진리의 출현을 평범한 다수성의 출현과 구별한 후, 철학의 실존을 위한 조건을 검토한다. 철학을 선언하는 순간은 세계 내에 펼쳐진 실존의 강도들에 돌발하는 순수하고 가차 없는 단절 즉 변동이다. 철학에 관련된 어떤 것은 세계 내에 어떤 몸의 생성으로 돌발한다. 조금 전만 해도 비실존이라 불리던 그 몸은 세계 내 과정의 구성요소로 합체되는데, 개인은 이 새로운 진리의 몸에 참여하는 충실한 주체가 됨으로써 이제 삶과 이념 사이의 구분이 없는 참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념이란 개인이 새로운 몸의 촉진자로서 재현될 수 있도록 주체화를 명령하는 것이다.” 되풀이하자면, 진정한 삶은 ‘이념화’의 결과인 것이다. “본래 철학은 그것이 진정으로 출현할 때 무모하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지배적인 의견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젊은이들을 새로운 진리의 지속적인 창조가 결정되는 몇몇 지점으로 소환한다. … 철학은 이 험난한 과정에 전적으로 연루된다.” 이렇듯 이 책은 의견, 출현, 구별, 실존, 변동, 합체, 주체화, 이념화라는 순서에 따라 바디우 자신의 철학 전반을 요약한다.(또한 이 책에서 우리는 『존재와 사건』이나 ‘첫 번째 선언’ 이후의 개념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도착하는 곳은, 철학의 오랜 질문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답변이다. “주체화 가능한 몸들의 창조 과정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일이 삶을 생존보다 더 강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영혼과 몸 안에 있는 진리’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Temps)보다 굳세어질 것이다.” “그 후 결론을 내릴 순간이 올 것이다. 즉 고대인들이 바랐던 것과 같이 ‘불멸자로’ 사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