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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원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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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노무현이 강금원에게 - 강금원이라는 사람

1부. 별일 아냐!
종양
삭발
사투
영면
마지막 5년 -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단법인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

2부. 그 사람, 강금원
어린 가장
염색을 시작하다
사업의 시작
부산으로 가다
염색 전문가
시행착오들
시그너스 컨트리클럽
노무현을 만나다
사라진 노무현
세 개의 보따리
대통령이 되십시오
YS시계의 낭패
제가 이겼습니다!
경호원 가방의 비밀
호강 대신 감옥
청와대 산책
봉하마을 비서실장
골프장 결혼식
비극의 세월들
‘강용사’의 탄생
미완의 사업들
사무실을 닫다
대법원 재판부에 드리는 말씀 - 대법원 상고이유서

3부. 강금원, 그 사람
사업가의 무기
타협 없는 원칙
인간에 대한 예의
몸 사리지 않는
강도를 잡다
타고난 배짱
취미는 골프?
미소와 의리
결혼식에 왜 가야 되죠?
가족보다 사회
진돗개 이론
그가 꿈꾼 세상 - 강금원 육성 녹취록
“금계국을 보니 그립습니다” -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왜 그는 우리를 버리지 않았을까 - 안희정 충남도지사

책을 마치며: 강금원 같은 기업인을 기다리며 -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저자 소개 2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원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찍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뜬다. 스물세 살에 노무현 국회의원을 만나 정치의 길에 들어섰고, 영광과 시련의 시간을 함께한다.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아 국가 주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다. 세 번의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제35대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한다. ‘최연소 강원도지사’를 비롯하여 이름 앞에 늘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삶을 살았다. 2011년 중국 유학길에 올라 칭화대학교에서 세계를 공부하며 정치의 길을 넓힌다. 이후 싱크탱크 ‘여시재’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하는 데 이바지한다.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원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일찍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뜬다. 스물세 살에 노무현 국회의원을 만나 정치의 길에 들어섰고, 영광과 시련의 시간을 함께한다. 30대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아 국가 주요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다. 세 번의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제35대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한다. ‘최연소 강원도지사’를 비롯하여 이름 앞에 늘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삶을 살았다. 2011년 중국 유학길에 올라 칭화대학교에서 세계를 공부하며 정치의 길을 넓힌다. 이후 싱크탱크 ‘여시재’를 운영하며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하는 데 이바지한다. 지금껏 사회 원로와 전문가, 일반 시민들에게 지혜를 묻고 답하며 함께 생각의 힘을 키우는 저서들을 출간해 왔다.

국가는 왜 흥하고 망하는가에 대한 고찰과 인간 삶의 위기,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번 책 『우리의 봄』이 탄생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 -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꿈꾸었던 길 위에 지금도 서 있다.

오늘도, 모두가 함께 꿈꾸고 만들어 갈 미래를 향한 탐험을 지속하며 부지런히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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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 뜻을 나라와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로 세우고자 2009년 9월 23일 설립한 재단법인.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는 세계 유일의 대통령기념사업단체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념관·시민센터 건립을 비롯해 봉하의 노무현대통령의집과 대통령묘역 및 생태문화공원 운영·관리, 각종 추모기념사업, 사료편찬사업, 노무현시민학교를 주축으로 한 교육연구사업, 장학사업 등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을 모으고 더 크게 키우는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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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46g | 153*224*20mm
ISBN13
9788955616743

출판사 리뷰

우정은 단단하고, 의리는 한결같았다
-고 강금원 회장 소전(小傳)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 강 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씩 다녀갔다.
-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쓴 〈강금원이라는 사람〉

1988년 5공 청문회. 5공화국 주역들과 일부 재벌의 잘못을 낱낱이 예리하게 지적하는 노무현 의원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단박에 정치 스타로 떠올랐다. 그날 이후 그를 주목한 이가 있었다. 강금원이란 사람이다.

“검사장 따귀부터 때려야겠다”

정치인 노무현 인생에서 (주)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굳건한 후원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결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덕을 보기보다 오히려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두 차례 구속되었다. 이 때문에 노무현은 2009년 4월 강금원이 두 번째로 구속되었을 때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라며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괴로워했다. 더욱이 당시 강금원 회장은 뇌종양 환자였다. 대전지검은 그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강금원은 회사를 양심적이고 건전하게 운영해 왔고, 노 대통령 재임 기간에 사업을 확장하기는커녕 축소했노라 항변했다. “조금이라도 확장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롯한 노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수사가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대통령 죽이기’ 음모”라는 일침도 잊지 않았다.
강금원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어렵게 학업을 마친 후 입사한 회사에서 염색 기술을 배웠고, 오래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 창신섬유를 설립했다. 2000년대에는 골프장 사업에도 진출해 시그너스 컨트리클럽(CC)을 운영하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나 특혜가 아닌 기술력과 제품 품질로 회사를 성장시켰노라 자부하는 기업인이었다. 이런 사람을, 더욱이 뇌종양을 앓는 환자를 검찰이 다시 구속하자 노무현은 격노했다.

새삼 3년여 전 그의 구속에 격노했던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 모습이 떠올랐다. 눈에 눈물이 가득한 대통령. 화난 목소리가 봉하마을 사저의 천장을 찔렀다. “나쁜 놈들. 성한 사람도 아닌데…… 대전지검으로 가자. 검사장 따귀부터 한 대 때려야겠다. 그러면 누가 답해도 답하겠지. 암환자한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누가 시켜 이 따위 짓을 하는지. 가자.” - p.39

의리를 지킨다는 것

이 책은 2012년 8월 2일 작고한 강금원 회장 일대기를 돌아본 소전(小傳)이다. 생전 그의 육성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쓰였다. 일대기긴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노무현과 강금원이 나눈 의리와 우정에 관한 것이다. 강금원이 노무현을 본격적으로 후원한 건 1998년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다. 그의 첫인상을 노무현은 이렇게 회상한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000만 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 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2009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쓴 〈강금원이란 사람〉

강금원은 노무현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우직함과 일관성을 믿었다. 노무현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실현하려 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지역주의를 넘어서고자 했다. 한국 사회에서 3연(지연, 학연, 혈연)을 극복해서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인과 제품과 기술로 시장을 개척해 성취하려고 했던 기업인이 원칙과 상식이라는 공통의 가치로 의기투합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강금원은 특히,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노무현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강금원은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만석꾼 소리를 듣던 집안이 아버지 사업 실패로 몰락한 후 온 가족이 상경했다. 많은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부산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호남 출신이란 이유였다. 지역주의에 응어리가 맺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 불모지인 부산에서 노무현은 거듭 낙선하면서도 출마했던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호남 사람으로서 부산에 건너와 사업했다. 부산이 나의 제2의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호남에 대한 끝없는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다. 툭하면 사람들은 말했다. 호남 사람 의리 없다. 신용 없다고. 하지만 나는 보여 줄 것이다. 호남 놈이 얼마나 신용 있고 의리 있는지. 부산 사람 노무현이 보여 주었던 호남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면 나 또한 호남 사람으로서 보여 주고 싶다. 권력에 부나방처럼 달려들던 그 많은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가도 내가 대통령 옆에 있음으로써 호남 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고쳐 주고 싶다.” - p.288

노무현만 생각한 사람

강금원은 오직 노무현만 생각한 사람이다. 퇴임 이후 이명박 정부의 서슬 퍼런 위세에 기가 질려 사람들이 점점 발길을 끊어 갈 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봉하마을을 찾은 이도 그였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노 대통령을 지켜 주기 위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라 제안할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앞에 그의 얼굴이 가득했다. 그의 제안은 오히려 뒷전이었다. 대통령이 부러웠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옆에 둘 수 있었을까? 대통령을 향한 끝없는 애정. 그야말로 대통령의 안위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 p.45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본 모습도 다르지 않다.

힘도 없고 백도 없던 민주당의 영남 정치인의 후원자가 되기로 자청한 사람이 그였다. 대통령을 만들고도 지독하게 당하기만 했던 사람이 그였다. 자기 돈 써 가며 감옥만 갔던 사람, (…) “두고 봐라,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 있는지. 아마 나 말고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거다”고 했던 그의 장담이 슬픈 현실이 되었지만, 그마저도 영어의 몸이 되어 우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게 되었다. - p.286

의리만큼 강금원 회장을 특징짓는 것이 웃음이다. 그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웃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 서거 이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2007년 발견된 뇌종양이 악화돼 투병 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존재 이유와도 같았던 노 대통령을 잃은 데서 온 상실감이 더 큰 이유였으리라. 서거 직후에야 보석으로 풀려나온 그는 “내가 있었으면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텐데…… 내가 있었으면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텐데…….” 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3년 뒤 그도 뒤를 따랐다. 오는 8월 2일이 1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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