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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간화선이다
무비 스님 서장 강설 양장
민족사 201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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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대혜 선사 행장(大慧 禪師 行狀)  

1. 증시랑 천유(曾侍郎 天遊)가 질문한 편지  
2.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1  
3.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2  
4.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3  
5.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4  
6.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5  
7. 증시랑 천유에게 보낸 답장 6  
8. 이참정 한로(李?政 漢老)가 질문한 편지 1  
9. 이참정 한로에게 보낸 답장 1  
10. 이참정 한로가 다시 묻는 편지 2  
11. 이참정 한로에게 보낸 답장 2  
12. 강급사 소명(江給事 少明)에게 보낸 답장  
13. 부추밀 계신(富樞密 季申)에게 보낸 답장 1  
14. 부추밀 계신에게 보낸 답장 2  
15. 부추밀 계신에게 보낸 답장 3  
16. 이참정 한로(李?政 漢老)에게 보낸 별도의 편지  
17. 진소경 계임(陳少卿 季任)에게 보낸 답장 1  
18. 진소경 계임에게 보낸 답장 2  
19. 조대제 도부(趙待制 道夫)에게 보낸 답장  
20. 허사리 수원(許司理 壽源)에게 보낸 답장 1  
21. 허사리 수원에게 보낸 답장 2  
22. 유보학 언수(劉寶學 彦修)에게 보낸 답장  
23. 유통판 언충(劉通判 彦?)에게 보낸 답장 1  
24. 유통판 언충에게 보낸 답장 2  
25. 진국태 부인(秦國太夫人)에게 보낸 답장  
26. 장승상 덕원(張承相 德遠)에게 보낸 답장  
27. 장제형 양숙(張提刑 暘叔)에게 보낸 답장  
28. 왕내한 언장(汪內翰 彦章)에게 보낸 답장 1  
29. 왕내한 언장에게 보낸 답장 2  
30. 왕내한 언장에게 보낸 답장 3  
31. 하운사(夏運使)에게 보낸 답장  
32. 여사인 거인(呂舍人 居仁)에게 보낸 답장 1  
33. 여낭중 융례(呂郞中 隆禮)에게 보낸 답장  
34. 여사인 거인(呂舍人 居仁)에게 보낸 답장 2  
35. 여사인 거인에게 보낸 답장 3  
36. 왕장원 성석(汪狀元 聖錫)에게 보낸 답장 1  
37. 왕장원 성석에게 보낸 답장 2  
38. 종직각(宗直閣)에게 보낸 답장  
39. 이참정 태발(李?政 泰發)에게 보낸 답장  
40. 증종승 천은(曾宗丞 天隱)에게 보낸 답장  
41. 왕교수 대수(王敎授 大授)에게 보낸 답장  
42. 유시랑 계고(劉侍郞 季高)에게 보낸 답장 1  
43. 유시랑 계고에게 보낸 답장 2  
44. 이낭중 사표(李郞中 似表)에게 보낸 답장  
45. 이보문 무가(李寶文 茂嘉)에게 보낸 답장  
46. 향시랑 백공(向侍郞 伯恭)에게 보낸 답장  
47. 진교수 부경(陳敎授 阜卿)에게 보낸 답장  
48. 임판원 소첨(林判院 少瞻)에게 보낸 답장  
49. 황지현 자여(黃知縣 子餘)에게 보낸 답장  
50. 엄교수 자경(嚴敎授 子卿)에게 보낸 답장  
51. 장시랑 자소(張侍郞 子韶)에게 보낸 답장  
52. 서현모 치산(徐顯模 稚山)에게 보낸 답장  
53. 양교수 언후(楊敎授 彦候)에게 보낸 답장  
54. 누추밀 중훈(樓樞密 仲暈)에게 보낸 답장 1  
55. 누추밀 중훈에게 보낸 답장 2  
56. 조태위 공현(曹太尉 功顯)에게 보낸 답장  
57. 영시랑 무실(榮侍郞 茂實)에게 보낸 답장 1  
58. 영시랑 무실에게 보낸 답장 2  
59. 황문사 절부(黃門司 節夫)에게 보낸 답장  
60. 손지현(孫知縣)에게 보낸 답장  
61. 장사인 장원(張舍人 狀元)에게 보낸 답장  
62. 탕승상 진지(湯承相 進之)에게 보낸 답장  
63. 번제형 무실(樊提刑 茂實)에게 보낸 답장  
64. 성천규(聖泉珪) 화상에게 보낸 답장  
65. 고산체(鼓山逮) 장로에게 보낸 답장  

저자 소개 2

대혜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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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종고선사

간화선을 대성시킨 선승禪僧. 속성은 해奚, 자字는 담회曇晦다. 호는 묘희妙喜, 운문雲門, 시호諡號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1164년 송나라 효종에게 ‘대혜선사’의 칭호를 받았다. 1089년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혜제慧齊와 소정, 문준文準의 수하에서 수행하다가, 원오극근과 동경(開封)에 머물면서 크게 깨친大悟 뒤에 원오의 법法을 잇고 인가를 받았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비춰보는 묵조선의 폐단을 타파하고, 오직 화두 참구로 끝내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 선풍을 일으켰다. 북송 말부터 남송 초까지 매우 혼란했던 시기에 스님의 가르침은 지식인들과 수행자를 넘
간화선을 대성시킨 선승禪僧. 속성은 해奚, 자字는 담회曇晦다. 호는 묘희妙喜, 운문雲門, 시호諡號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1164년 송나라 효종에게 ‘대혜선사’의 칭호를 받았다. 1089년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혜제慧齊와 소정, 문준文準의 수하에서 수행하다가, 원오극근과 동경(開封)에 머물면서 크게 깨친大悟 뒤에 원오의 법法을 잇고 인가를 받았다.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비춰보는 묵조선의 폐단을 타파하고, 오직 화두 참구로 끝내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 선풍을 일으켰다. 북송 말부터 남송 초까지 매우 혼란했던 시기에 스님의 가르침은 지식인들과 수행자를 넘어 시대적으로 큰 빛이 되었으며, 한국과 일본 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저술로는 그의 어록을 정리한 『대혜보각선사어록』, 『대혜보각선사보설』이 있으며, 『대혜보각선사종문무고』, 『대혜보각선사법어』, 『선림보훈』 등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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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天無比,무비스님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 졸업. 해인사·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10여 년 동안 안거.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한 후 ‘탄허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동국역경원 원장 역임. 지금은 범어사 화엄전에 주석하면서 후학을 지도하며 많은 집필활동과 더불어 전국 각지의 법회에서 불자들의 마음 문을 열어주고 있다. 1943년 영덕에서 출생하였다. 1958년 출가하여 덕흥사, 불국사, 범어사를 거쳐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역경연수원에서 수학하였다. 10여 년 선원생활을 하고 19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 졸업. 해인사·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10여 년 동안 안거.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한 후 ‘탄허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동국역경원 원장 역임. 지금은 범어사 화엄전에 주석하면서 후학을 지도하며 많은 집필활동과 더불어 전국 각지의 법회에서 불자들의 마음 문을 열어주고 있다.

1943년 영덕에서 출생하였다. 1958년 출가하여 덕흥사, 불국사, 범어사를 거쳐 196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동국역경연수원에서 수학하였다. 10여 년 선원생활을 하고 1976년 탄허 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하고 전법, 이후 통도사 강주, 범어사 강주,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8년 5월에는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춘 승랍 40년 이상 되는 스님에게 품서되는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현재 부산 문수선원 문수경전연구회에서 200여 명의 스님과 300여 명의 재가 신도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다음 카페 [염화실]을 통해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김으로써 이 땅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한다.’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전 81권), 『무비스님의 왕복서 강설』, 『무비스님이 풀어 쓴 김시습의 법성게 선해』,『법화경 법문』,『신금강경 강의』, 『직지 강설』(전 2권), 『법화경 강의』(전 2권), 『신심명 강의』, 『임제록 강설』, 『대승찬 강설』, 『유마경 강설』, 『당신은 부처님』, 『사람이 부처님이다』, 『이것이 간화선이다』, 『무비 스님과 함께하는 불교공부』, 『무비 스님의 증도가 강의』, 『일곱 번의 작별인사』, 무비 스님이 가려 뽑은 명구 100선 시리즈(전 4권) 등이 있고 편찬하고 번역한 책으로 『화엄경(한글)』(전 10권), 『화엄경(한문)』(전 4권), 『금강경 오가해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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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2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616쪽 | 1013g | 153*224*35mm
ISBN13
9788998742089

책 속으로

무비스님의 강설: 이러한 유와 무의 관계를 “마치 등나무가 나무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라고 한 점은 절묘한 비유다. “나무가 넘어지고 등나무가 말라버릴 때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서로 따르느니라.”라고 한 말도 존재의 본질과 실상을 잘 밝힌 말이다. 실로 사람의 삶과 세상 만물 모든 존재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므로 이것도 없다.”라는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절대 진리인 연기법에 근거하고 있다. 비록 세존의 깨달음이라 하더라도 이 진리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대혜 선사는 여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참선을 수행의 제일 덕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의 어떤 선사도 이처럼 존재의 실상에 대해서 그 이치로나 이론으로나 명확하게 체득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잊어서는 안 된다.---p.20-21

강설: 공연히 그와 같은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그 마음을 불법문중으로 돌이켜 지혜의 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번뇌의 때를 깨끗이 씻으라는 가르침이다. 특히 지금 죄라고 여기는 그 생각을 일도양단해서 더 이상 세속에서 살아온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하였다. 그렇다. 그동안 살아온 그 어떤 영광도 오욕도 지금 무엇이 있단 말인가? 모두가 허망한 환영일 뿐이다.---p.42

강설: 불교가 인류에게 끼친 수많은 영향 가운데 내일과 내생을 위해서 꿈을 꾸게 하고 서원을 세워서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살게 하는 점이 가장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몰록 생사에서 벗어나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한다는 말은, 불교의 깨달음은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전 한 구절이나 조사의 말 한마디에 문득 진리를 깨닫고 도를 이루는 일이 허다하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p.45-46

강설: 인간은 누구나 3독과 8만 4천 번뇌와 무명과 6식(六識)의 굴레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그대로 부처로서의 삶이다. 그 삶을 떠나서 달리 부처의 삶은 없다. 선재동자는 진실한 믿음 하나가 갖춰짐으로써 비로소 출발하기 이전의 궁극적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람의 삶 그대로가 부처의 삶이라는 내용이다.---p.52

강설: 총명한 사람들의 병이란 자신을 향해 참구하지 않고 자신 밖을 향해서 깨달음을 구하는 점이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자신을 향해서 참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큰 방편을 들었다. 그것이 화두라는 것이다. 선불교 초기에는 없었던 방법이지만, 근기가 날로 하열해지면서 그 하열한 근기를 무르익고 성숙하게 하도록 만든 것이 간화선법(看話禪法)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불교의 전통이라고 하는 선법(禪法)은 곧 간화선법이다.

강설: “깨달아 증득하려는 마음이 앞에 놓여 있어서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짓기 때문이다.”라는 점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여 그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물론 깨달아야 하지만 깨닫는 나와 깨닫는 대상은 둘이 아니다. 이 둘이 아닌 것을 둘로 나눠놓고 깨달으려고 하니 남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 또한 불교 공부를 깊이 있게 하려는 사람들의 큰 문제점이다. 깨달으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깨닫지 못한다.---p.66

본문: 방 거사(龐居士)가 말씀하였습니다. “오직 모든 있는 것을 비우기를 원할지언정 간절히 바라노니 모든 없는 것을 채우지 마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로지 이 두 구절의 뜻만 요달(了達)한다면 일생의 참선 공부의 일은 다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어떤 한 종류의 머리 깎은 외도는 자신의 눈도 밝지 못하면서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죽은 고슴도치처럼 쉬어가고 쉬어가라.”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만약 이처럼 쉬고 또 쉰다면 1천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더라도 쉬지 못하고 더욱더 마음을 답답하게 할 뿐입니다.---p.78

강설: 당시 묵조선의 선사들이 공부 방법으로서 “인연을 따라 마음에 지니어 잊지 말 것.”과 또 “생각을 잊어버리고 묵묵히 비추라.”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대혜 선사는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서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하면 묵조선의 공부 방법은 크게 깨닫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간화선에서는 화두 일념의 관문을 지나 크게 깨닫는 계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점이 가장 큰 다른 점이다. 조사가 제시한 깨달음의 방편을 잃어버리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잘못 가르쳐 사람들의 일생을 망쳐놓았다고 꾸짖는 말씀이다.---p.80-81

강설: 만약 고요한 데서만 공부가 되고 시끄러운 데서는 공부가 안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는 공부이다. 이 편지의 큰 뜻은 시끄러운 것과 고요한 것을 하나로 여겨 활구(活句)를 깊이 참구하라는 것이다.---p.93

강설: 참선 공부의 요체는 먼저 밖의 인연을 다 쉬어서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좌선하면서 안으로는 여행 갈 생각, 도반 생각, 신도 생각, 해제비에 대한 생각, 한자리를 얻어 볼 생각, 노후 생각, 토굴 생각 등등 온갖 생각에 이끌리고 있으면 그것은 망상을 피우고 있는 것이지, 참선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다 끊어지고 마음이 꽉 막혀서 마치 담벼락과 같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비록 도(道)는 아니지만, 도에 들어가는 훌륭한 방편적인 길은 되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권하고 있다. 설사 도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와 같은 삶의 자세는 참선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다.---p.101

강설: “맑은 것으로써 맑은 데 들어가 합하는 것〔湛入合湛〕”이란 제7식과 제8식까지 철저히 맑고 텅 비어서 그 텅 빈 자리가 최상의 경지인 줄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 또한 구경(究竟, 최종적인)의 경지는 아니다.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서 온 힘을 다해 보살행으로 인생을 연소시킬 줄 아는 삶이라야 된다.---p.102

본문: 요즘 도가(道家)의 사람들은 온전히 망상심(妄想心)으로 해〔日〕의 정기와 달〔月〕의 정기를 염상(念想)하며, 안개를 마시고 맑은 기운을 삼켜서 이 몸을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기도 하며〔장수〕, 춥고 더움의 핍박을 받지 않는데, 하물며 이 마음과 생각을 돌이켜서 온전히 반야 가운데 있는 것이겠습니까.---p.112

본문: 만약 반야에 깊이 들어가면 저 곳(세속)의 일은 굳이 배척하지 않아도 모든 마구니와 외도들은 자연히 항복할 것입니다. “생소한 것(반야)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세속사)은 생소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위한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공부하는 일에 패병(?柄, 칼자루, 주도권)을 잡으면 점점 힘이 덜 들게 되는데, 문득 이것이 힘을 얻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p.116

본문: “(無를 참구하는 방법은) 있다. 없다.”로 이해하지 말며, 도리가 있다고 이해하지 말며, 의식으로 사량하고 헤아리지도 말며, 눈썹을 치켜들고 눈을 깜박이는 곳에 집중〔?根〕하지도 말며, 언어의 길에서 활계(活計)를 짓지도 말며, 일 없이 껍질 속에 숨어 있지도 말며, 화두를 드는 곳을 향해서 알려고도 하지 말며, 문자를 이끌어 증명하지도 마십시오. 다만, 12시 행·주·좌·와 속에서 순간순간 제시(提?)하고 참구해 보십시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르되, 없다.”라고 한 것은 일상생활을 떠나지 말고 시험 삼아 이처럼 공부를 지어보면 날이 가고 달이 감에 곧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일개 군(郡)의 천 리의 일이 모두 서로 방해되지 않을 것입니다.---p.170

본문: 확철하게 크게 깨달으면 가슴 속이 환하게 밝은 것이 마치 백천 개의 태양이 뜬 것과 같습니다. 시방세계를 한순간에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털끝만치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구경의 경지와 합일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능히 이와 같이 된다면 어찌 유독 생사의 길에서 힘을 얻는 것뿐이겠습니까. 훗날 재차 국가의 중요한 책임〔鈞軸〕을 맡아서 군주(君主)를 요순(堯舜)보다도 더 높이 올려놓는 일도 마치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쉬울 것입니다.---p.177

강설: 사람은 본래부터 누구나 위대한 인간 부처며, 부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소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백정도 그대로 부처라고 선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견해가 참다운 불교의 견해요, 만약 이 원리와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견해는 삿된 마구니의 견해다. 불교의 견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불교는 이처럼 쉽다. 쓸데없는 방편 불교가 어렵고 힘이 든다. 이 얼마나 통쾌한가.---p.181

참선하는 납자가 불법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선원에 앉아 있는 것은 그야말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짓는 일이다. 만약 돈과 명예가 더 소중하여 해제비나 토굴 주지 노릇 등에 혈안이 되어 있다면 더이상 불교나 참선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세속의 일이요, 불법과는 십만 팔천 리 떨어진 일이다. 불법 공부는 생소한 것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생소하게 하는 일이다.---p.230

불교 공부는 그와 같은 궁극적 차원의 참사람에 접촉하여 불생불멸인 해탈의 삶을 누리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혹은 견성성불이라고도 한다. 한번 궁극적 차원에 접촉〔見性〕하게 되면 그 다음은 그 사람의 모든 역사적 현실의 삶이 궁극적 차원의 삶이 된다. 이미 본래로 궁극적 차원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스스로 그것을 모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본래 저절로 담연(湛然)한 삶이다. 파도는 애를 쓰지 않아도 본래 물이다. 사람은 이미 부처였으며 이미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p.242

출판사 리뷰

대강백 무비 스님의 명쾌한 번역, 통쾌한 해설!
간화선 부흥의 주춧돌로 삼다


화두선(간화선)을 체계화시킨 대혜 선사는 “이 무(無)자 화두야말로 모든 번뇌 망념과 삿된 지견(惡知), 삿된 생각(惡覺)을 타파하는 무기이며 지혜의 칼이라.”고 말하고 있다. 머리에 오직 이 ‘무(無)’ 한 글자만 각인시켜 둔다면 모든 번뇌 망상이 소멸되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무자 화두’를 들고 있지만 다른 여타 화두의 참구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두는 기본적으로 의문형 구조로 되어 있다. ‘뭘까?’ 하고 물음표(?)를 붙여서 의문을 제기하는 형식인데, 요즘의 보편적인 언어로 바꾼다면 ‘탐구심’ 또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두를 참구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왜’ 또는 ‘뭘까’라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마디로 일체의 사량분별심(분별의식)이나 알음알이(분석), 또는 논리적·학문적 접근을 중지하고 오로지 ‘왜 무일까?’ ‘왜 간시궐일까?’ ‘무엇이 본래면목일까?’ 하고 줄기차게 의문만 제기해야 한다. 끝까지 물음표(?)를 던져서 ‘뭘까?’ 하고 탐구(생각, 상념)만 할 뿐, 절대 갖가지로 머리를 굴려서 화두에 대하여 알음알이를 내거나 분석·분별·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절대 사량 분별심(알음알음, 알음알이)으로 화두를 참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유는 화두란 관념적인 이해, 지식적인 이해, 지능적인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직접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비 스님의 명쾌한 번역과 통쾌한 해설이 돋보이는 이 책은 《이것이 간화선이다》 책 제목처럼 그동안 간화선에 대해 명료하게 알 수 있다. 무비 스님은 불교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서장의 내용과 간화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수많은 선사들의 일화와 그때그때 적절한 소재를 인용하여 간화선의 진면목을 드러내 주고 있다.
대혜종고 선사가 제창한 간화선의 원형을 되살리고 선사들의 생생한 일화를 통해 간화선의 진수를 드러낸 이 책은 세계 유일의 간화선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한국 간화선 부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깨달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동하게 하고 타인을 감동하게 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천만 번을 깨닫고 1천 7백 공안들을 마치 염주를 꿰듯이 꿴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면 그는 선(禪)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비 스님의 머리말 중에서

무비 스님이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간화선은 우리 삶의 드러난 작용 그대로가 깨달음이요, 우리 스스로가 그대로 살아있는 부처임을 알고 부처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강조하는 수행법이다. 요즘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간화선이 필요하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고 주체적으로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일깨워주는 수행법이 바로 간화선이기 때문이다. 시대 조류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완전 연소하여 살고 싶은 사람들, 바로 지금 간화선의 교과서요, 가장 올바른 지침서인 이 책 〈이것이 간화선이다/무비 스님 서장 강설〉가 그 꿈을 이루어줄 것이다.


머리말

조주(趙州) 선사가 말씀하였습니다.
“만약 노승으로 하여금 대중의 근기를 따라서 사람들을 교화한다면 스스로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가 있어서 그들을 교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승의 이 자리에는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교화할 뿐이다. 만약 교화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의 근성이 우둔할 뿐 노승의 일에는 관계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서장(書狀)》이라는 책은 대혜(大慧) 선사가 조주 선사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통해서 가고자 했던 본분사(本分事)로서의 교화의 길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혜 선사가 가고자 했던 그 본분사의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대혜 선사가 스스로 게송을 지어 말씀하였습니다.

“연잎이 둥글둥글한 것이 마치 거울같이 둥글고,
마름 잎 모서리는 뾰쪽뾰쪽한 것이 마치 송곳과 같이 뾰쪽하네.
바람이 버드나무 솜을 흩날리니 솜털 공이 굴러가고,
비가 배꽃에 흩뿌리니 나비가 날더라.”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다만, 이 말을 가지고 경전〔3승 12분교〕 위에다 놓아두고, 다시 경문(經文)을 가지고 게송 밑에다 옮겨두면 게송이 경전이고 경전이 게송입니다. 시험 삼아 이처럼 공부를 지어가고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을 관계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경전의 가르침과 본분사가 어찌 다른 것이겠습니까. 경전을 바로 읽은 사람에게는 경전이 곧 본분사이고 본분사가 곧 경전입니다. 또한, 본분사를 바로 안 사람에게는 본분사가 곧 경전이고 경전이 곧 본분사입니다. 즉 보통사람들의 일상사(日常事)가 곧 도인들의 격외사(格外事)이고, 도인들의 격외사가 곧 보통사람들의 일상사입니다.

《서장》의 큰 뜻은 참선 공부에서 삿된 견해를 배척해 버리고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데〔斥邪解 現正見〕 있습니다. 참선 공부의 바른 견해는 곧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는다〔以悟爲則〕.”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는 선적(禪的) 삶이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선의 여덟 가지 정신이 갖춰진 삶으로서 일상에 고고하고, 유현하고, 자연스럽고, 탈속하고, 간결 소박하고, 팔풍(八風)에 부동하며, 변화무쌍하고, 정적(靜的)인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깨달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동하게 하고 타인을 감동하게 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천만 번을 깨닫고 1천 7백 공안들을 마치 염주를 꿰듯이 꿴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면 그는 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에 제일선서(第一禪書)인 이 《서장》을 공부하고 선을 체화(體化)하여 선천(禪天) 선지(禪地)에서 선춘(禪春) 선추(禪秋) 선하(禪夏) 선동(禪冬)의 삶이 되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선의 향기를 한껏 풍기어 진정으로 세상을 선향(禪香)으로 가득 채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10대 시절 강원 생활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애지중지하던 선불교의 제일지침서인 이 《서장》을 부족한 소견으로나마 마음껏 천착할 수 있게 되어 생각할수록 속이 후련합니다. 나의 천착이 선불교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에게 일미(一味)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오랜 세월 병고로 말미암아 큰 장애를 가지고도 이러한 불사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주변의 수많은 인연에 하나하나 뜨거운 감사를 전합니다. 진실로 고맙습니다.

2013년 봄 금정산 범어사 화엄전(華嚴殿)에서
여천무비(如天無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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