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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기억을 통해 본 프랭크 스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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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스코필드의 생애 16
1. 어느 자유 쟁취가의 놀라운 여정: 베슬로로부터 한국까지 _저자 미상
2. 주요 선동가: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 독립운동
_존 프레스코트John F. Prescott, 바바라 리걸트Barbara Legault
3.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인의 민족의식
_도레사 모티모어Doretha E. Mortimore
4.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박사: 몸과 마음으로 한국을 사랑한 서양인
_정운찬
*5. 헌신

2부 1916-1920 70
1. 스코필드 박사와 세브란스 의학교
1918년 한국 내 인플루엔자 유행의 양상과 연구 현황:
스코필드 박사의 논문을 중심으로_ 천명선, 양일석
2. 꺼지지 않는 불꽃
*꺼지지 않는 불꽃 제15장
3. 스코필드와 헨리 미
*자유를 위한 한국의 절규
4. 3·1운동과 제암리, 수촌리 학살
(1) 1919년 3월 1일, 삼일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 (1966)
(2) 제암리 학살 보고서(1919)
(3) 수촌리 학살 보고서(1919. 7. 26)
5. 일제의 식민정책 비판
1) [서울 프레스]The Seoul Press
*(1) 국민 행복이 성공적인 정부의 참된 척도이다 (1919. 4. 1 3)
*(2) 한국에서 일본의 문제 (1919. 5. 10)
*(3)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1919. 10)
(4) 서대문 형무소 방문기 (1919. 5. 11)-[서울 프레스]의 한 기 자
(5) 깊이 뿌리 박힌 부당한 의심 (1919. 5. 1 6)
2) [재팬 애드버타이저]The Japan Advertiser
*(1) 동화정책으로부터의 자유
(2) 한국에 대한 일본제국 조사위원회 (1919. 7. 1)
(3) 한국인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 (1919. 8. 2)
(4)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전-불가능한 정책 (1919. 8. 26)
(5) 캐나다 또는 아일랜드 조사의 필요성 (1919. 8. 27)
(6) 한국에서의 고문: 미즈노 박사가 해결할 문제 (1919. 11. 29)
(7) 한국의 불안 때문에 비난받는 선교 (1919. 12. 10)
(8) 그릇된 한국 보고 (1919. 12. 28)
(9) 새로운 정권에 대한 비평적이고 건설적인 검토 (1920. 3. 12)
(10) 헌병제도의 폐지 (1920. 3. 13)
(11) 실패의 몇 가지 원인 (1920. 3. 14)
(12) 프랭크 헤론 스미스 목사에 대한 답변 (1920. 4. 10)
3) [글로브]The Globe
(1) 한국은 압제자의 멍에 아래 신음하고 있다 (1920. 7. 12)
(2) 한국의 미래: 하라 총리와의 인터뷰 (1920. 9. 4)
4) [뉴욕타임즈 커런트 히스토리]The New York Times Current History
한국에서 죄수들에 대한 고문 (1920. 1)
5)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한국 여성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1920. 6. 7)
6) [동아일보]
(1) 조선발전의 요결 (1920. 4. 1)
(2) 구십도난태심 (1920. 4. 1)
6. 선교 보고서
*(1)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6. 12. 30)
*(2)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이사짐 처리 관계자에게 (1917. 1. 8)
*(3)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8. 12. 3)
*(4)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9. 1. 11)
*(5)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9. 5. 8)
*(6)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9. 8. 7)
*(7)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9. 8. 7)
*(8)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9. 8. 9)
*(9)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9. 10. 25)
*(10)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9. 12. 6)
*(11) 선교본부가 스코필드 부인에게 (1919. 12. 13)
*(12)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9. 12. 23)
*(13)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19. 12. 27)
*(14) 선교본부가 스코필드에게 (1920. 1. 22)
*(15) 스코필드 부인 주치의가 선교본부 어느 사람에게 (1922. 4. 21)


3부 1920-1958 216
1. 세계적인 수의학자 스코필드
*(1) 프랭크 스코필드-저서목록_머피와 헐랜트D. A. Murphy, T. J. Hulland
*(2)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의 뛰어난 학자_로빈 루이스Robin B. Lewis
2. 스코필드 수의학 논문
(1) 손상된 전동싸리: 출혈성 패혈증과 흑갈병으로 보이는 가축 질병의 원인(1924)
(2) 수입된 양에서의 스크래피 사례(1938)
(3) 돼지 위축성 비염의 병리학과 세균학(1950)
3. 한국 관계 활동
(1) 스코필드 박사가 암스트롱에게 보내는 편지
(2) 사랑하는 조선동포 [조선일보] (1926. 6. 27)
(3) 조선의 친구여 [동아일보] (1926. 9. 17; 9. 19)
(4) 나의 경애하는 조선의 형제여 [동아일보] (1927. 1. 5)
(5) 경애하는 조선 형제에게 [동아일보] (1931. 12. 26 )

4부 1958-1970 270
1. 한국 기고활동
1) 3·1운동 회고와 3·1정신
(1) 하나로 뭉친 독립만세 (1969. 2. 28; 3. 1)
(2) 의·용기·자유의 승리 (1960. 4. 28)
(3) 3·1운동은 한국정신의 상징 (1969. 3. 1)
(4) 병상의 3·1운동 ‘제34인’ 스코필드 박사 (1970. 3. 2)
2) 부정부패 비판
(1) 민심은 공포에 잠겨 있다 의사당 앞에 무장경관이라니 (1959. 3. 1)
(2) 내가 보는 한국혁명 (1961. 1. 8)
(3) 나는 이렇게 본다, 한국의 군사혁명 (1961. 6. 15)
(4) 3·15를 말하는 스코필드 박사 (1962. 3. 15)
(5) 뒤숭숭한 제2의 조국, 스코필드 박사 박 의장에 서한 (1963. 3. 23)
(6) 나도 한국의 분신, 할 말은 해야겠다 (1963. 9. 13)
(7) 내핍은 수범에서만 (1964.1 . 16)
(8) 투옥 당해야 마땅한 인물, 재벌 처사에 스코필드 박사 분개 (1964. 2. 25)
(9) 사건의 전모 밝혀야 (1964. 3. 3)
(10) 온통 분열의 와중 (1964. 12. 6)
(11) 한국에서의 불안 (1965. 11. 2)
(12) 정설과 역설과 허영, 서울대의 문제점 (1962. 12. 3)
(13) 한국교회 어제와 오늘 (1961. 3)
(14) 부정부패 근절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1970. 4. 16)
3) 단상
(1) 선과 악 - 시대단상 1 (1967. 1. 24)
(2) 부활 - 시대단상 2 (1969. 4. 2)
(3) 과학을 넘어선 기독교 사상 - 시대단상 3 (1969. 8. 12)
(4) 무신론적 인문주의 - 시대단상 4 (1969. 9. 11)
(5) 추석과 진정한 의미의 감사 - 시대단상 5 (1969. 9. 26)
(6) 한 어린 아이와 예수의 죽음 - 시대단상 6 (1969. 11. 28)
(7) 정직은 번영에의 유일한 길이다 (1961. 4)
(8) 세상에서 가장 큰 힘 (1959. 3)
(9) 어렵고 기나긴 경주
2. 인물양성(고아원, 성경공부, 흥국학교)
*(1) 한국에서 온 추가 뉴스 1 - 존스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1960. 12. 5)
(2) 한국에서 온 추가 뉴스 2 -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1960. 12. 8)
(3) 프랭크 스코필드 서한(고아원 건물 기금)(1966. 5.15)
*(4) 한국에서의 활동(1967. 5. 15)
(5)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1969. 3. 20)
(6)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1969. 5. 4)
*(7) 친애하는 페이즐리와 다른 후원자들께
*(8) 아주 소중한 사람들
*(9) 온타리오 수의과대학 모교 졸업식 축사(1962. 5. 17)

5부 스코필드 평가와 회고 344
1. 언론들의 평가
(1) 좋은 친구(1964. 4. 8)
(2) 3·1운동 때 마을을 지켜준 스 박사 위해 명복 비는 제암리
2. 국내인들의 회고
(1) 석호필 박사의 최후_백난영, 전택부 [기독교사상] (1970. 5)
(2) 이갑성이 말하는 스 박사_이갑성 [한국일보] (1960. 4. 14)
(3) 나의 은인이자, 스승인 스코필드 박사_이삼열
3. 해외인들의 회고
*(1) 고인의 약력: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1889-1970_스미스D. L. T. Smith
*(2)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 (3) 스코필드 박사에 관한 회고_그웬 노만Gwen R. P. Norman
*4. 스코필드, 잠 못 이루는 호랑이_데이비드 아치볼드David Archibald

미주 410
사진으로 본 프랭크 스코필드의 생애와 관련 행사 418
참고문헌 458
연보 486

저자 소개 2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생화학 전공교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의생명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의생화학을 강의하면서 야생동물과 관련된 보전생물학 및 정책 연구에 주력하면서 「한국표범의 계통 연구」 등 9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사)한국범보전기금 대표와 인간동물문화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언젠가 한반도에 호랑이와 표범이 돌아올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동물을 존중할 때 인간의 건강과 복지 역시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함께 쓴 책으로 『관계와 경계』, 『동물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고요?』(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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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및 동 대학원, 총신신학대학원,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신학대학(철학박사)에서 종교, 역사, 철학을 공부했다. 2004년 인문학연구기관인 키아츠(KIATS)를 설립해 지금까지 원장으로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천상의 위계』(2011·번역), 『기록과 기억을 통해 본 프랭크 스코필드』(2016), 『한국기독교 성지순례 50Belt』(2017) 등이 있다. Dr. Kim studied religion, history, and philosophy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ts graduate school, the Chongshin
서울대 및 동 대학원, 총신신학대학원,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신학대학(철학박사)에서 종교, 역사, 철학을 공부했다. 2004년 인문학연구기관인 키아츠(KIATS)를 설립해 지금까지 원장으로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천상의 위계』(2011·번역), 『기록과 기억을 통해 본 프랭크 스코필드』(2016), 『한국기독교 성지순례 50Belt』(2017) 등이 있다.

Dr. Kim studied religion, history, and philosophy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its graduate school, the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Harvard University and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Ph.D.). He established the humanities research institute KIATS in 2004 and is still its president today. His major works are Celestial Hierarchy (2011, Korean trans.), Frank W. Schofield in Records and Memory (2016), and 50 Pilgrim Belts of Korean Christianit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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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2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694쪽 | 188*257*35mm
ISBN13
9791160370430

출판사 리뷰

한국 사회가 다시 찾은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영국태생의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박사가 1916년, 27세의 나이에 한국땅을 처음 찾은 지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세균학, 위생학 교수로 식민지 한국생활을 시작한 스코필드는 1919년 3·1만세운동의 기록자와 국내외 홍보자의 임무를 감당하며 한국독립의 34번째 민족대표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세계적인 수의학자, 배려와 박애와 사랑을 강조한 기독교적 인도주의자,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대항한 반-부패 비평가, 뛰어난 교육자와 연구자로 헌신적인 일생을 살았다.

20대 후반 자신의 완숙한 청년기를 참담한 상황의 한국에서 보낸 스코필드의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다. 세계적인 수의학자로 캐나다에서 교수 신분의 시대를 보내고, 1958년 한국에 국빈으로 초대받은 스코필드는 남은 생의 많은 부분을 한국에서 보냈다. 1970년 4월 12일, 생을 마친 그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한국의 10대를 비롯한 젊은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멘토링을 한 스코필드 박사는 수많은 인물을 길러냈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앙하고 있다.

스코필드 박사의 삶과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과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는 지금까지 학술대회와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그의 내한 100주년을 앞두고, 2015년에는 스코필드박사내한100주년기념사업회를 조직해 2016년 국내외에서 갖가지 기념행사를 가져왔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국가보훈처는 스코필드 박사를 2016년 3월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후 100주년기념사업회 출범식, 스코필드를 박사를 주제로 한 국내외 독후감대회, 전국적인 토크&콘서트, 미국 LA와 캐나다 토론토의 전시회와 기념행사, 스코필드 박사 후손 한국 초대, 스코필드 관련 도서를 한글과 영어로 발간하는 일을 포함해 2016년 한 해를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에 캐나다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스코필드 박사를 널리 기억해 왔다. 1년간 다양하게 진행된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행사는 2016년 12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스코필드 박사 특별전시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기존의 학문적 연구개관, 이 책의 기획과 의도
『우리의 벗, 스코필드』 - 『민족대표 34인 석호필』


지금까지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이장락 교수가 편찬한 『우리의 벗, 스코필드』에 기초했다. 이 책은 2007년 『민족대표 34인 석호필』이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몇 차례 보완되고 편집되었다.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누구보다 스코필드 박사와 가까이서 교제해 온 이장락 교수의 기억과 증언은 내용과 객관성에서 가치가 있었고, 많은 2차 연구들이 이 책을 기반으로 확대 재생산되어왔다. 이장락 교수의 책은 1989년 스코필드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젊은 시절 조교로 박사를 도왔던 최진영 박사가 영어로 번역했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 4월에 드디어 출간되었다.

서울대학교 추모기념강연

스코필드 박사 탄생 100주년 이후 박사의 인류애적,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탐구하는 활동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과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 2003년부터 스코필드 박사의 서거일에 맞추어 진행해 온 추모기념강연을 통해 박사의 제자들과 국내외 학자들이 스코필드 박사의 삶과 사상, 학문적 업적을 회고하는 다양한 논문과 글을 발표해왔다. 2016년 기준으로 총 14회째 주옥같은 글과 논문들이 발표됐는데, 현재는 서울대 추모기념식과 함께 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진행되는 학술강연회를 통해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한층 심화시켜 왔다.

원전연구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한 단계 진전된 연구서가 2012년 『스코필드 박사 자료집: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이라는 이름으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스코필드와 관련된 방대한 1차 자료를 담았고, 영어 원본 일부를 담아 스코필드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와 함께 2014년에 한국고등신학연구원은 『프랭크 스코필드』라는 제목으로 1차 문헌을 중심으로 한글과 영어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기존연구와 번역들을 한 단계 심화시키고, 당시까지 직접 소개되지 않았던 몇몇 원본을 구엘프대학과 캐나다장로교회 기록문서보관소 자료를 검토하여 출간했다. 이 두 책은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원전을 선호한 연구가들의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다양한 선행 연구들에 기초하여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을 앞둔 2015년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와 한국고등신학연구원은 스코필드 박사와 관련된 포괄적인 학술연구를 기획하였다. 이에 정운찬 회장과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지원으로 연구비를 확보하고 학술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스코필드 박사가 평생 출간하기를 원했던 3·1운동 현장을 목격했던 내용을 정리한 “The Unquenchable Fire”의 원본을 일부라도 구입하고자 했다. 다행히 1974년 이후 자취를 감춘 이 자료의 일부가 영국에서 발견되었고, 유진 스코필드기념사업회 전 회장의 오랜 노력과 교섭 끝에 2015년 11월에 이 자료의 마지막 장인 제15장 22페이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당대 영국의 최대 아동 잡지 출판사에 스코필드가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해 직접 작성해 보낸 글 원본을 구입한 것도 큰 소득이었는데, 이 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이다.

둘째, 스코필드에 대한 해외인들의 입장, 특히 구엘프대학에서 스코필드를 가까이서 본 동료들과 학생들의 기록과 증언들을 담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3·1만세운동과 관련된 스코필드의 공헌이 주로 강조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수의학자와 교육자로 자리한 토론토지역에서의 스코필드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번에 구엘프대학과 해외의 여러 연구자와 후손들의 배려로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보다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모습들을 이 책에 담을 수 있었다.

셋째, 스코필드의 구제, 장학사업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활동들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자료를 연구해 출간하고자 했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에 독립기념관의 협조를 받아 후원자 및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수록하여 스코필드의 보육원과 고학생 지원 및 과부를 지원한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코필드가 말년에 직접 작성한 자서전인 ‘헌신’의 일부를 처음으로 번역하여 본문에 추가하였다. 이 자료는 캐나다장로교회 기록문서보관소의 선교서신과 함께 스코필드의 개인적인 삶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자료이다. 물론, ‘헌신’의 전체 원고를 찾아 연구하는 일 또한 남은 과제 중 하나이다.

넷째, 스코필드 박사의 다면성을 통합적으로 담아내는 연구결과를 내고 싶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교육가, 수의학자, 의사, 기독교 선교사, 박애주의자, 현실 활동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가, 시대의 예언가, 문장가 등 다양한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다층적 모습을 한 권의 방대한 책으로 정리해 내고 싶었다.

물론 우리의 이번 연구결과는 기존 선행 연구들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다양한 연구를 방대한 한 권에 모아 내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이 “The Unquenchable Fire”를 비롯한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를 한글과 영어로 출간해내는 자체는 이 연구결과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제일 마지막에 담긴 스코필드 박사 탄생 100주년에 공연된 데이비드 아치볼드의 뮤지컬 본문도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감사와 바람

이 책의 말미에 도움을 주신 기관들과 개인들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정에도 스코필드 박사의 유지를 알리는 일에 일선에서 수고하신 정운찬 회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대사와 대사관 직원들,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이사들과 회원들, 한국고등신학연구원의 연구원들(류명균, 최선화, 권영민, 김다미, 전경미, 양찬송, 박송화)의 열정이 더해졌다. 또한 구엘프대학, 캐나다장로교회 기록문서보관소, 영국의 클리프 칼리지, 독립기념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연세대학교, 국가보훈처 등의 친절한 도움이 있었다. 캐나다의 존 프레스코트 교수와 음악가 데이비드 아치볼드, 딘 스코필드와 리사 스코필드를 비롯한 후손들, 영국의 피터 알렌, 스코필드 박사의 유산을 지금도 깊이 간직하고 있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데 애쓴 서울대 수의과대학의 김준, 영문편집에 애쓴 서강대학교 영문과 김명준, 미국 시애틀의 제라 블롬퀴스트, 미국 텍사스의 존 박의 수고도 적지 않았다. 이 모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연구원들이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달려왔지만,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 사회에 보여주었던 헌신을 되갚고,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리는 작업은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우리는 스코필드 박사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올바른 역사를 통해 한국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밝게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꿈을 갖고 있다.

첫째, 대중에게 스코필드 박사의 업적과 사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현재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을 교과서에 싣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연구와 행사를 진행하였다. 특별히 2019년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스코필드 박사를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해 한국 사회와 나누고 싶다. 영화라는 장르가 특정 주제에 대하여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게 만들 수 있고, 동시에 스코필드 박사의 삶은 영화로 제작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 의미 있는 첫 출발점과 대한민국 건국의 기점을 만들어 준 3·1운동 100주년에 스코필드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대한민국을 위해 수고해 온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둘째, 스코필드 박사가 평생 강조한 3·1기념관 또는 회관이 건립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부정부패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점을 늘 한탄하며, 3·1정신으로 한국 사회를 새롭게 하기를 원했던 스코필드 박사는 이 정신을 전승할 3·1회관 건립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셨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때에 스코필드 박사를 추억하는 작은 기념관이나 회관을 지어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역사와 민족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하고 싶다.

셋째, 일제의 만행과 억지를 298페이지로 적어 세계에 알리고자 했으나 끝내 출간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The Unquenchable Fire”의 원본 전체를 찾아내고 싶다. 민족대표 33인과 제암리, 전국의 희생당한 한민족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기록한 스코필드 박사의 역작을 찾아 한글과 영어로 다시 출간해 드리는 작업이야말로 이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자 과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이항,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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