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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 처음 시작하는 철학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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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구성 소개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_ 진리는 왜 숱한 모험을 거쳐야 하는가

제1부 삶 자체로서의 진리
|1| 플라톤 세계를 두 개의 차원으로 나누다
|2| 아리스토텔레스 현실에서 인식의 열쇠를 찾다
|3| 루크레티우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음을 일깨워주다
|4| 스토아학파 이성이 이끄는 대로 살고자 하다

제2부 인간 내면의 진리
|5| 아우구스티누스 의식과 기억의 미궁 속에서 진리를 추적하다
|6| 마키아벨리 진실의 은폐를 정당화하다
|7| 몽테뉴 순간의 진리를 포착하려 하다

제3부 인간의 진리, 신의 진리
|8| 데카르트 의심의 힘을 확대하다
|9| 파스칼 다양한 영역에서 진리를 고찰하다
|10| 스피노자 신의 진리와 인간의 진리는 같다
|11| 라이프니츠 진리란 신을 계산해내는 것이다

제4부 계몽주의의 진리, 만인을 위한 진리
|12| 볼테르 진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다
|13| 디드로 대중적 사상가가 출현하다
|14| 루소 진리의 목소리를 자연에서 발견하다
|15| 흄 기존 가치들을 통째로 뒤흔들다

제5부 현대의 진리, 불안정한 진리
|16| 칸트 철학 속에 영원한 평화를 구축하려 하다
|17| 헤겔 역사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다
|18| 토크빌 민주주의의 진리에 의문을 품다
|19| 마르크스 정치적 진실의 뒤안을 발견하려 하다
|20| 니체 진리와 단절하고자 하다

맺는말_ 진리의 모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옮긴이의 글_ 철학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
들어가는 말_ 진리는 왜 숱한 모험을 거쳐야 하는가

제1부 삶 자체로서의 진리
|1| 플라톤 세계를 두 개의 차원으로 나누다
|2| 아리스토텔레스 현실에서 인식의 열쇠를 찾다
|3| 루크레티우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음을 일깨워주다
|4| 스토아학파 이성이 이끄는 대로 살고자 하다

제2부 인간 내면의 진리
|5| 아우구스티누스 의식과 기억의 미궁 속에서 진리를 추적하다
|6| 마키아벨리 진실의 은폐를 정당화하다
|7| 몽테뉴 순간의 진리를 포착하려 하다

제3부 인간의 진리, 신의 진리
|8| 데카르트 의심의 힘을 확대하다
|9| 파스칼 다양한 영역에서 진리를 고찰하다
|10| 스피노자 신의 진리와 인간의 진리는 같다
|11| 라이프니츠 진리란 신을 계산해내는 것이다

제4부 계몽주의의 진리, 만인을 위한 진리
|12| 볼테르 진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다
|13| 디드로 대중적 사상가가 출현하다
|14| 루소 진리의 목소리를 자연에서 발견하다
|15| 흄 기존 가치들을 통째로 뒤흔들다

제5부 현대의 진리, 불안정한 진리
|16| 칸트 철학 속에 영원한 평화를 구축하려 하다
|17| 헤겔 역사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다
|18| 토크빌 민주주의의 진리에 의문을 품다
|19| 마르크스 정치적 진실의 뒤안을 발견하려 하다
|20| 니체 진리와 단절하고자 하다

맺는말_ 진리의 모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옮긴이의 글_ 철학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

저자 소개 2

로제 폴 드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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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Pol Droit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국제철학학교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72년부터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Le Monde>의 고정 칼럼니스트로서 철학평론을 썼으며, 시사주간지 <르포엥Le Point> 및 경제일간지 <레제코Les Echos> 등에도 기고한다. 지은 책으로 《처음 시작하는 철학》, 《일상에서 철학하기》,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삶과 죽음의 명장면》, 《사물들과 철학하기》, 《철학자들과 붓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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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카뮈의 『이방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좋은 책을 찾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뻔하지 않은 다양한 상상력이 느껴지는 어린이 책을 좋아한다. 논문으로 「부조리와 신화」, 「카뮈의 반항의 현재성」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처음 시작하는 철학』,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일상에서 철학하기』, 『페르세폴리스』, 『과학자들은 왜 철새를 연구했을까?』, 『목발 짚은 하이진』, 『장미 정원의 비밀』, 『왜?로 시작하는 어린이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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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696쪽 | 1204g | 153*224*35mm

책 속으로

플라톤은 마르지 않는 사고의 향연을 창조해냈지만, 늘 한 발 물러서 있는, 한 마디로 규정이 불가능한 철학자이다. 그렇다고 플라톤을 절대 정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세기를 거듭하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플라톤주의’라는 것을 만들어내거나 이를 공격했다. 그런데 이 플라토니즘은 플라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 몸싸움에 능했던 플라톤은 논쟁에도 뛰어났다. 상대를 잡아채거나 공격을 살짝 피하는 기술, 단 한 방에 상대의 기를 죽여버리는 논쟁의 기술을 그에게 가르친 이는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없었다면, 청년 플라톤은 대화편 《고르기아스》에 등장하는 칼리클레스 같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신중함이라고는 없고, 다른 사람이나 정의 따위엔 조금도 관심 없이, 권력과 쾌락에 열광했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는 철학사 최고의 위험인물로 꼽힌다.--- pp.27-28 「|1| 플라톤 세계를 두 개의 차원으로 나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영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준 영웅적 특수성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이 과거와의 단절이다. 하지만 그의 단절이 보여주는 특이한 스타일 역시 주목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나’라고 말한다. 즉 그는 진리 추구와 주관성을 분리하지 않는다. 자기 사고에 관한 이야기와, 방법론의 구축을 별개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방법서설》에서 자신의 학업과 이 학업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기만이나 환멸을 언급할 때 잘 드러난다. 《성찰》 속의 그는 편안한 노천 탁자 위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구체적인 한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이 ‘나’, 즉 그때까지의 철학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 ‘나’는 아주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pp.134-135 「|8| 데카르트 의심의 힘을 확대하다」

‘근대적 지식인’ 역시 이 페르니 성의 성주[볼테르]가 매일같이 써나간 책 한 권 한 권, 글자 하나하나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개념이다. 이는 분명 철학적 행위다. 개념의 창시자들만을 철학자로 인정할 정도로 철학자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보편적 가치의 이름으로 글과 말로써 대중 논쟁에 뛰어드는 행위 역시 철학자의 속성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태도에 동반될 수 있는 논쟁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원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근대적 지성인의 모습을 구현해낸 볼테르는 철학이 이 땅에 출현한 이후 존재해온 어떤 태도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 볼테르는 자신이 믿는 진리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릇된 믿음을 추방했다. 여기서도 볼테르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임무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왜곡시키는 탈선과 방황을 제거하는 것이다.--- pp.202-203 「|12| 볼테르 진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다」

이전 철학과 비교해볼 때, 루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움은 도덕의식을 이성과 분리시킨 점이다. 도덕의식은 논리적 절차나 이론적 장치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덕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선과 악을 직접 구분하게 해주고, 성찰을 통해서가 아닌, 즉각적이고 자연 발생적으로 우리에게 우리의 의무를 가르쳐준다. 루소에게 있어, 이 자연의 목소리는 곧 신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 말을 우리 마음속에서 읽어낼 뿐,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숙고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도덕적 진리는 증명되기 이전에 느껴지는 것이다.--- p.226 「|14| 루소 진리의 목소리를 자연에서 발견하다」

[칸트는] 서구 철학을 그 근본에서부터 뒤흔든 이 사람은 대기만성형 철학자였다. 전해지는 몇 가지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놀라울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그가 1724년에 태어나고 1804년에 죽었으며 평생 떠나본 적이 거의 없는, 발트 해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 주민들은 매일같이 칸트가 지나가는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이다. 평생 딱 한 번, 그 시간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프랑스혁명 발발 소식을 전해들은 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이러한 이미지는 실제 칸트와는 거리가 있다. 이 이미지는 성인이 된 이후, 특히 유명인사가 된 노년기 칸트의 모습에 해당한다. 그의 저서가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랜 성찰과 복잡한 인생 역정 이후 즉 인생 후반부의 일이고, 우리가 그러한 사실들을 쉽게 간과했을 뿐이다. (…) 따라서 칸트 사상의 흐름은 외고집의 기나긴 여정으로, 대단한 인내력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pp.261-263 「|16| 칸트 철학 속에 영원한 평화를 구축하려 하다」

니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지침과 주의 사항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니체를 나치즘의 기원으로 간주하는 그 해묵은 오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의도적으로 기획된 이러한 오해의 진원지는 바로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폴스터이다. 반유대주의자이며 범게르만주의자였던 그녀는 니체 사상의 체계적 왜곡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니체가 좌익 사상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인종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도 분명 아니었다. 니체의 수많은 텍스트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잠언: 인종차별적 거짓말과 사기에 가담하는 자와는 절대 상종하지 말라》가 그 좋은 예다. (…) 마지막 유의 사항은, 이 반항적 사상가가 선동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선동가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물리의 입자 가속기처럼 니체를 사유의 가속기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니체는 사고를 그 극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그 사고들을 파괴하고, 사고의 에너지를 해방시킴으로써 사고를 분산시킨다.

--- pp.333-335 「|20| 니체 진리와 단절하고자 하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행위 속에도 자리하고 있었던 이 놀라움의 위력은 20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삼라만상은 왜 이런 식 혹은 저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수없이 다양한 형태를 통해 현대 철학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그의 ‘평범함’에 놀란다. 이 사람이 잔혹한 살인마라고? 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무개 씨, 애통하게도 지극히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 같은 대조는 놀라움에 뒤이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실 사고한다는 것 자체는 절대 사라질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도 성찰은 계속된다. 철학자들은 언제나 우리의 오류와 우리의 막다른 골목과 우리의 공포까지도 이해하려고 한다. 그 어떤 고립무원 속에서도,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철학은 알고자 하는 욕망을 멈추지 않는다.--- pp.12-13 「들어가는 말」

프로이트의 업적들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분명 무의식의 발견이다. 단, 철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 정신 속에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주장 속에 진정으로 새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조건에서 그러하다. 이 주장은 이후에 정신분석학의 기반과 그 이론적 구상을 형성하게 되는 발견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무의식적 사고’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고 사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주장이 당시 철학자들에게 얼마나 기이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프로이트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무의식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의식의 부재’, ‘사고의 부재’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단순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을 ‘무의식적’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사람은 온전한 정신을 잃고, 주변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사람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도 무의식적이다. 나무 조각은 모든 형태의 의식과 사고가 부재한다. 차원을 달리하여, 도덕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책임감이 없고 자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이라고 판단했다.--- pp.56-57 「|03| 지그문트 프로이트_지식과 진리를 구분하기에 이르다」

옛날에 한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 남자들 중 어떤 이들은 손수 면도를 하고, 어떤 이들은 이발소를 이용했다. 즉 손수 면도하는 사람의 집단, 이발소를 이용하는 사람의 집단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집합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발소의 이발사는 이 둘 중 어느 집합에 포함될까? 이발사는 손수 면도를 하기 때문에 첫 번째 집합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이 이발사이기 때문에 손수 면도하는 행위는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그는 두 번째 집합에도 속한다. 이런 것이 바로 논리적 난관이다.
이 이야기는 1903년, 러셀이 발견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역설에 속한다. 당시는 특히 독일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의 이론에 힘입어 집합론이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논리학에 대한 프레게의 기여도 역시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레게는 위와 같은 난관을 예상하지 못했다. 러셀은 프레게에게 편지를 보내 이 같은 역설을 제기했다. 이는 당시 수학자들 이 구축하기 시작한 논리체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모순이었다.--- pp.79-80 「|04| 버트런드 러셀_진리에 대한 욕구를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다」

러셀은 《기억의 초상》에서 이 독특한 젊은이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좀 특이했고, 그가 알고 있는 것들도 좀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한 학기 내내 그가 비상한 천재인지 아니면 그냥 엉뚱한 괴짜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처음 한 학기를 이수한 그가 학기말에 나를 찾아와서는 ‘제가 완전 바보인지 아닌지 말씀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학생, 나도 그건 알 수가 없다네. 그런데 왜 나한테 그런 걸 묻는 건가?’ 그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제가 백 퍼센트 바보라면 전 경기구 조종사가 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철학자가 되려고 합니다.’ 나는 그에게 방학 동안 한 가지 철학 주제에 대해 뭐든 써오라고 말했다. 그때 가서 그가 바보인지 아닌지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다음 학기 개강 후, 그는 내가 내준 숙제의 결과물을 가지고 왔다. 나는 딱 한 문장을 읽고 난 후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경기구 조종사가 될 사람은 아니야.’ 결국 그는 조종사가 되지 않았다.”--- pp.123-124 「|0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_어떻게 사고를 ‘청소’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렌트가 생각한 인간의 본질은 개인적 천성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장치와 관련되어 있었다. 아이히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부의 공식언어뿐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사고가 국가의 천편일률적인 공식표현 속에 완전히 매몰되고, 언어가 전체주의적 중화작용에 굴복하고, ‘강제추방’ 대신 ‘재편성’이라는 말을, ‘살인’ 대신 ‘특별조치’라는 말을 사용할 때, 세상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혹해진다. 실제로 인간의 조건은 자연적이기 이전에 정치적이다. 만약 이 정치의 공간이 황폐해지면, 인간의 야만성은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수 있다.--- p.143 「|08| 한나 아렌트_폐허 속에서 국가 재건의 방법을 연구하다」

그에게 의식이란, 무의 문제, 부재의 문제, 결핍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의식이란 “의식이 아닌 것이고, 의식인 것은 의식이 아니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은 결핍 및 부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카페에 들어가서 “폴 여기 있어요?”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 질문은 내가 그 카페를, 내가 찾는 친구 폴이 없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만약 그 카페를 바라보던 내가 폴이 거기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내가 부재를 표현할 수 있고, 내가 찾는 사람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가 주목한 것은, 그가 말하는 의식의 무화 능력이다. 이것은 부재를 인식하는 능력, 결핍을 알아보는 능력, 부재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환기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러한 의식의 특징은 바로 텅 비어 있다는 점이다. 반면 사물들은 스스로의 충만함 속에, 그 꽉 찬 밀도 속에 자리한다.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했듯이 사물은 의식과는 별개인 ‘즉자적卽自的’ 존재다. 반면 의식은 무엇에 대한 “대자적對自的” 존재로서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이긴 하지만, 본질, 속성, 적극성이 영구히 부재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p.177 「10| 장 폴 사르트르_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다」

부조리를 순간의 쾌락과 무관심을 통해 극복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해야 한다. 이러한 부조리는 반항(카뮈의 두 번째 키워드)을 통해 변신을 꾀한다. 모든 예속과 모든 굴욕과 모든 수치에 맞서는 반항은 인간들의 암묵적 공모, 모든 형제애를 위한 복합적 자양분이다. 《반항적 인간》의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외침은 일종의 새로운 코기토cogito로 울려 퍼진다. 이러한 반항 역시 결코 무절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의 건설을 폭정으로, 희생자를 새로운 압제자로 변화시킴으로써, 반항 그 자체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카뮈의 진정한 위대함이다.--- p.206 「12| 알베르 카뮈_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굽히지 않다」

철학적 관점에서 본 간디의 특수성은 도덕적 진리라는 것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완전히 부정하려고 하는 20세기의 한복판에서 이러한 진리를 되살리려고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도덕의 차원을 힘의 역학관계 속에 편입시키는 것은 세계의 급진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진리 추구가 상대에 대한 폭력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오류는 인내와 연민을 통해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최근의 시위 속에서 사티아그라하를 적용함으로써 깨달았다. 그러한 상황은, 한 사람에게는 진리로 비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그리고 여기서 인내심은 개인의 고통을 의미한다. 요컨대, 나의 원칙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고통을 겪음으로써 진리를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간디는 기록하고 있다.

--- p.225 「13| 마하트마 간디_도덕적 투쟁을 재발견하다」

출판사 리뷰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철학 지식
플라톤부터 니체까지, 한 권으로 보는 철학의 정수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물을 보는 눈, 다시 말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이르는 말의 다름 아니다. 흄은 이렇게 말했다. “철학자가 되어라. 하지만 당신 철학의 한복판에서는 늘 한 사람의 인간이 되어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철학자인 동시에, 철학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철학’ 그리고 ‘철학자’란 무엇인가? 또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 《처음 시작하는 철학》(원제: Une Breve Histoire De La Philosophie)의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말을 빌어 이렇게 답한다.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모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이지.”

이 책은 철학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선 ‘쓸데없이’ 복잡한 용어들을 과감히 삭제한다. 그리고 철학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바로 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이 쓴 글, 그들의 감정을 통해 이 철학자들과 그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은 ‘간략하게 보는 철학사로서’ 철학이,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전개 발전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철학을 해보지 않은 사람, 삶에서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모험이란 걸 감행하고 싶은 사람, 자신의 미래가 전혀 짐작이 안 되는 사람, 이해 못할까 봐 걱정이 되면서도 뭔가 중요한 것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이 본인의 관심사임을 직감하는 사람, 철학을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지나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 요컨대, 과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그러했듯 현재 출발을 앞둔 여행객의 처지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을 시작해보자.

인간의 진리 탐험 역사에 대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
이 책은 복잡하고 난해하기만 하던 철학을 쉽고 명료하게 풀어낸다. 전체 5부로 이루어진 책은 인간의 진리 탐험의 역사를 친절히 안내한다. 먼저 제1부 〈삶 자체로서의 진리〉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크레티우스, 스토아학파를 중심으로 ‘고대 철학자들에게 있어 진리란 인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삶의 지침’이었음을 설명한다. ‘소크라테스와 그 이후 플라톤이 등장하면서 철학의 언어는 변화를 맞이한다. 신화의 언어가 증명과 논거, 개념의 분류와 논리적 절차를 통해서만 가늠되는 진리 추구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때의 진리 추구는 육체를 벗어난 오로지 순수한 정신과학은 아니었다.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에게 진리란 인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이것이다.’(본문 22~23쪽)

제2부 〈인간 내면의 진리〉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몽테뉴를 통해 철학사의 주요 전환점을 이야기한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통해 고대와 달리, 진리가 인간 내면의 문제로 변화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델포이 신전의 유명한 경구 ‘너 자신을 알라’는 ‘너의 내면을 탐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는 필멸의 인간이고,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어다’라는 뜻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제3부 〈인간의 진리, 신의 진리〉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신의 섭리를 서로 접근시키려는 시도를 통한 진리 개념의 변화를 말한다. 여기서는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가 주축이 된다. 먼저 저자는 철학에서 말하는 신이란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무한의 형상화, 즉 사고나 기억, 의지, 행위, 지성의 모든 속성들이 그 극한까지 나아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사에 있어, ‘신뢰할 수 있고 인지할 수도 있는, 안정적인 지위의 진리’는 이들에 와서 가능해졌다.

제4부 〈계몽주의의 진리, 만인을 위한 진리〉에서는 ‘계몽주의 시대 진리는 기만과 전제 정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무너뜨리는 수단이 되었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볼테르와 디드로, 루소, 흄의 업적이다. 저자는 계몽주의 철학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진보는 다 같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학적 진리, 정치적 진리, 역사적 진리들은 공동으로 하나의 동일한 진보를 추구하고 촉진시킨다.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은 하나로 수렴되는 이 진보란 지식의 증대, 도덕적 능력의 증대, 부의 증가, 정의의 가능성의 증가 등과 관련된다. (…) 이를 통해 지식의 공유가 확산되고, 이는 곧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의 박애를 보장한다.’(p.191) 제5부 〈현대의 진리, 불안정한 진리〉에서는 모든 진리를 의심하기에 이른, 다시 말해 시선을 진리의 뒤쪽으로 옮겨 그 감춰진 이면을 들춰보고자 했던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을 살펴본다. 바로 칸트, 헤겔, 토크빌, 마르크스, 니체다. 19세기라는 ‘과학적 진보와 정치적 격동, 미학의 급격한 변화’가 진리 개념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본다.

철학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철학자로 대표되는 각 장을 철학자 개인의 연대기와 진리 개념, 명언 등을 개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저작은 물론 관련 에피소드 등을 살펴보고, 자연스레 후기 철학자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장의 끝은 해당 철학자의 저작물 중 가장 눈여겨볼 것과 더 읽어볼 거리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철학사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사유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섣불리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이를 테면 ‘터놓고 말해서 헤겔의 사상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고, 니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우리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해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올해의 시앙스포 교수 및 컨퍼런스 의장 도서상Livre des Professeurs et Maitres de conferences de Sciences Po’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프랑스 그랑제꼴Grands Ecoles의 하나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Science Po)이 매년 이 학교 교수나 컨퍼런스 의장들의 독창적 저서들 중 하나를 선정하여 수여하는 상이다. 이 책 《처음 시작하는 철학》은 말 그대로, 늘 철학을 알고 싶었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을 탄생시킨
철학자들의 화려한 사유의 향연

이 책은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주제로 스무 명의 사유의 스승들을 분류하며, 그들의 철학을 간단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이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마치 전기처럼 풀어놓으면서도 결코 그 뒤에 숨지 않고 적절한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각 부를 간략히 살펴보자. 1부에서 앙리 베르그송, 윌리엄 제임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고대 철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잃어버린 명증성을 찾아 다시 경험으로 돌아온다. 베르그송은 ‘의식의 직접적 소여’로 돌아와서 철학에 있어 이성의 역할을 재고하는데, 이로써 진리 개념을 손에 쥐고 그것을 보증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던 이성은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그 이전까지 간과되었던 꿈, 망각과 같은 경험들을 마침내 무의식과 연결시켰다. 이는 상상과 욕망의 영역에 대한 일종의 과학적 인식이 비로소 사유의 대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2부에서 버트런드 러셀,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는 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과학에 주목한다. 분석철학의 선구자 러셀은 이른바 ‘러셀의 역설’을 고안해내 기존 논리체계를 송두리째 흔든다. 한편 과학의 끈을 놓지 못했던 러셀, 후설과 반대로 하이데거는 “과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며 과학과 철학을 분리시키려 했다. 하이데거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지만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3부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한나 아렌트,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소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언어’에 주목한다. 특히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세상에 악의 평범성을 고발하고 핵심적 정치 용어들이 어떻게 그 의미를 박탈당하게 되는지를 탐구한다.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나치가 ‘강제추방’ 대신 ‘재편성’이라는 말을, ‘살인’ 대신 ‘특별조치’라는 말을 사용했고, 아이히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정부의 공식언어뿐이다”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며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런 말들이 어제는 어떤 의미였는지, 내일은 또 어떤 의미일지 짐작할 수 없게 되었으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4부에서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알베르 카뮈는 세상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고민한다. 카뮈는 자신의 여러 저작을 통해 ‘부조리’, ‘반항’ 등의 핵심 개념을 내세운다. 그가 1950년대에 책을 출간한 이후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핵심 개념들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카뮈가 부조리라 이름 붙인 이 철저한 비합리성, “세계와 내 정신 사이의 단절”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양상으로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5부에서 마하트마 간디, 루이 알튀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정신의 문을 열고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간디는 비폭력 투쟁이라는 자신만의 원칙을 내세워 진정한 해방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저자는 간디의 투쟁에 대한 양면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간디의 비폭력 원칙은 (소크라테스가 확신했듯이) 도덕적 가치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가치들이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면 그의 사상체계는 그 가치를 완전히 상실해버릴 위험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6부에서는 인간 개념의 위기 속에 봉착한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그 위기를 어떻게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7부의 자크 데리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가장 최근의 철학자들로서 합리성에 대한 입장 차이를 사이에 두고 끝없는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로제 폴 드르와는 이와 같이 경험, 과학, 언어, 자유와 부조리, 진리 탐험, 위기, 논쟁 등 일곱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사유의 스승들을 소개한다. 이러한 전방위적 여정을 마치며 저자는 이를 통해 진리를 향한 인간의 모험은 계속되고 있고, 역사의 가능성 또한 여전히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몰랐던 철학자들의
생생한 인생 여정을 만나다

이 책은 거대한 사유의 향연과 함께 철학자들의 흥미로운 인생 이야기 또한 담았다. 감히 가까이 다가가서 만질 수조차 없을 것 같던 대가들의 생생한 삶은 다시 한 번 우리를 강력하게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어쩌면 우리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스승인 러셀을 찾아가 자신이 바보인지 아닌지 얘기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러셀의 대답에 따라 경기구 조종사 아니면 철학자가 될 작정이었다. 이에 러셀은 방학 동안 한 가지 철학 주제에 관해 어떤 글이라도 써오라고 했고, 개강 후 그의 글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는 경기구 조종사가 될 사람은 아니야.” 하마터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사뭇 놀랍다.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서로 정치적으로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수평적 입장을 취했다. 그런 두 사람 가운데 평생을 이어온 로맨스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의외일 것이다. “나는 다섯 개의 살이 있는 빗으로 너의 엉킨 머리카락을 빗어주는 꿈속으로 종종 빠져든다.”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그들은 몇 십 년 동안 이와 같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했다.

한편 철학자, 마르크시즘의 투사, 수많은 지식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공산주의 사상가였던 알튀세르의 뒷면에는 누구보다 어두운 면이 자리했다. 그는 발작적 광기와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 환각으로 고통받았다. 이러한 정신적 불안정 속에서 그는 결국 자신의 부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는 사람들의 넘치는 칭송 속에서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처절한 말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위대한 지성을 탄생시킨 철학자들의 생생한 삶을 함께 담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이 사유의 스승들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성인聖人이 아닌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생각했던 실존 인물로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정보의 홍수, 선과 악의 극단적인 분리, 디지털 치매의 위험 속에서 과연 우리의 사고는 안전한지에 대한 중간 점검을 하게 한다. 사고의 확장과 해체, 무의식, 부조리에 대한 고발 등 위대한 생각들에 대한 탐험은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한 탐험으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한 위대한 사유의 스승들과의 만남은 오늘 우리 인생의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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