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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10
제1장 폭풍 전야 13 제2장 세상을 깨우는 채찍 83 제3장 올가미 185 제4장 쉘라마! 평화의 인사 265 제5장 다시 광야에서 377 이스라엘 연표 448 |
尹錫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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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총독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치안통제를 강화하는 포고령을 내린 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간 예수는 장사꾼과 환전상들을 내쫓고, 제자들은 스승의 위험한 행동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로마군과 성전 경비대는 하얀리본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히스기야를 성전 주랑건물에 내세우지만 하얀리본은 함정을 빠져나간다. 이번 유월절이 정치적 생사의 고비가 된 빌라도는 예수를 빠른 시일 내에 체포할 것을 명령하고, 다른 한편 첩자로 군중을 선동시켜 예수를 올가미에 걸려들게 하려던 성전과 알렉산더의 계략은 실패한다. 그날 저녁, 예수는 아직도 그의 뜻을 모르는 제자들이 극복해야 할 시험이 다가왔음을 실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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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예수를 그린 역작을 또다시 만나다
‘예수는 메시아’라는 종교적 통념에서 벗어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했던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그려낸『소설 예수』 3, 4권이 출간되었다. 2020년 4월 1, 2권을 출간한 지 불과 8개월 후인 12월에 출간되는 것으로, 윤석철 작가는 놀라운 집중력과 내공으로 창작의 강행군을 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3, 4권을 출간하면서 소설의 스케일을 애초 계획했던 전 5권에서 전 7권으로 확장했다. 예수의 마지막 행적을 더욱 밀도 높게 추적하기 위해서다. 이 대하장편소설은 구상에서 출간까지 15년을 쏟은 작가의 역작이다. 2천 년 전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난 예수가 지배체제에 맞서는 길을 걷고 마침내 스러지기까지를 작가 특유의 통찰력과 유장한 필치로 담아냈다. 예수의 처형 전 마지막 7일 동안 숨 가쁘게 펼쳐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가장 낮은 이들의 상처에 가슴 아파했던 한 사람, 지배와 억압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꿈꿨던 한 혁명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 치열해진 대결과 더 절박해진 고뇌, 점점 다가오는 결정적 순간 거대한 체제에 맞서는 고독한 개인의 싸움을 그리는 전 7권의 장대한 스토리는 절정을 향해 치달으며 중대한 고비를 맞이한다. 체제를 흔드는 ‘위험인물’ 예수 대 체제를 수호하려는 지배세력 간의 싸움이 한층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나사렛 고향을 떠나면서부터 세상을 바꾸는 길을 걸었던 예수가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 뜰에 들어와 채찍을 들고 지배세력을 도발하는 순간, 싸움은 숨 막히는 정면대결의 국면으로 돌입한다. 예수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지배세력 진영에서도 각 인물들의 정치적 욕망이 엇갈리면서 내부 갈등의 씨앗이 던져져,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더욱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예수의 내면에도 중대한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예수를 찾아와, 그의 실패를 예언하며 갈릴리로 물러나 때를 기다리라 경고한다. 예수는 자신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깊이 고뇌하지만, 좌절하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투쟁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새 세상을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계속해서 걷고자 한다. 이로써 드러나는 예수의 모습은 불완전하기에 더욱 인간다운 인간, ‘사람의 아들’의 초상이다. 2천 년을 뛰어넘어 오늘의 세상에 질문을 던지다 진보적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오랜 세월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고민해 온 작가는 역사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날카롭게 예수 당대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다. 지배체제의 억압과 수탈, 대중 조작 등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철저하게 밝혀낸 부조리는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 나갈수록 독자들은 2천 년 전의 세상을 다룬 이 소설이 놀랍게도 더없이 시의적이고 현대적인 소설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예수가 그러했듯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뿐 아니라 역사와 허구를 아우르는 소설 속 인물들도 독자에게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질문과 대답을 찾아보도록 이끈다. 예수와 같은 세상을 꿈꾸지만 다른 길을 걷는 예수의 친구 히스기야, 예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예수와 달리 전통적 가르침의 근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랍비 요하난, 패권을 쥔 로마에 적극적으로 복종하며 이스라엘이 처한 험난한 현실을 극복하려 했던 헤롯대왕 등을 보면서, 그리고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길을 걸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가면서 독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오늘의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될 것이다. 새 세상에 대한 예수의 문제의식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약속이 4년 동안에 걸쳐 이 글을 쓰도록 저를 이끌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4년 전 어느 날, 우르르 몰려든 손주들, 만 7살, 6살, 5살짜리 손녀들과 3살 된 손자가 한입으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컴퓨터로 뭐 하세요?” / “너희들이 크면 읽을 글을 쓴다.” “왜요?” / “약속이니까….” / “누구하고 무슨 약속했어요?” “그분하고…. 내가 만난 그분이 나보고 그분 뜻을 깨달았으면 그렇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었거든? 그래서 ‘제가 글을 쓰는 것으로 눈감아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했지.” “그래서 허락받으셨어요?’ / “그냥 웃으시더라.” “그분 어디 사세요?” / “2천 년 전에 멀리 저쪽에 사셨던 분이다.” / “아하!” 손주들은 더 묻지 않고 ‘아하! 아하!’ 하면서 고개만 끄떡였습니다.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2천 년 전 저쪽’에 살았던 분을 만났다는 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실제 있으리라고 믿는 나이였으니까요. 2005년부터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에 빠져 세월을 보내다가, 2016년 5월, 저에게 의미 있는 어느 날부터 실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2천 년 전의 그 땅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호소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언어로 번역해야 했습니다. 그때 거기 살던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는 깊은 산에서 시작한 강물이 흘러내린 하구에 살기 때문입니다. (중략) 2천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 아무 의미 없는, 다만 과거의 옛일이었다면 제가 그 일을 더듬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붙잡고 살아가던 문제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라서 이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거기 살았더라도, 그분이 2천 년 후에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 결말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인류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기술에는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 앞에 서면, 대답하는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 사상에 따라 다른 대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해 오래전에 주어졌던 명확한 대답 대신, 저와 함께 각자의 대답을 찾으러 떠나시기를 권합니다. - 서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