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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 인문고전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발걸음
프롤로그 | 우리는 언제부터 춤추는 것을 멈추었을까 제1장 | 원효, 난새와 송아지의 다빈치 코드를 풀다 제2장 | 원효, 동경 흥륜사 금당 서쪽벽에 앉은 까닭은 제3장 | 원효와 해골물 그리고 일체유심조 제4장 | 원효와 선지식 혜공과 대안 제5장 | 원효와 의상의 낙산 관음보살 친견 이야기 제6장 | 원효의 반쪽 부절, 의상 이야기 제7장 | 사복과 원효가 동행한 연화장 세계 제8장 | 원효, 광덕과 엄장을 서방정토로 가게 하다 제9장 | 원효의 스승 낭지, 원효에게 책을 짓게 하다 제10장 | 원효와 함께한 김유신과 김춘추, 선덕과 진덕의 시대 제11장 | 원효와 설총, 그 너머 요석공주 제12장 | 원효, 일연의 롤모델이 되다 제13장 | 원효, 백제에 가다 제14장 | 원효, 고구려에 가다 에필로그 | 원효의 춤과 Changing Partn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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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그림의 암호 해독문을 원효가 그 자리에서 풀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닌가. 아마도 소정방은 고구려 첩자를 의식해서 암호문을 그림으로 그려 보낸 것이 아닐까. 그 결과 김유신은 속히 군사를 돌려 손실을 최소화하고 그 다음날 고구려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이루었다고 한다.
--- p.33 원효의 난새와 송아지 그림 해독의 스토리텔링 저변에는 반룡사와 요석공주, 설총, 김춘추, 김유신, 경산, 압량국, 불지촌, 원효의 대중 교화들이 인드라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전설이면 어떻고 실화면 어떠랴. 당시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원願이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p.40 분황사에서는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짓고 대중교화에 나섰고 아들 설총이 소상塑像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예경하였더니 고개를 돌려 바라본 채로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아버지 원효가 고개 돌린 채 바라보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해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의 절이기도 하다. --- p.55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 특징은 원효가 창시한 통불교通佛敎로 회자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것은 그의 학문 세계뿐 아니라 신라 불교를 귀족과 왕실불교에서 대중불교로 실현한 데서 더욱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 p.57 우리는 종종 잘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정작 그런가 하고 확인해보면 이렇게 다른 경우가 많음을 목도하게 된다. 가령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누군가 말해보란다면 단박에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까. --- p.63 대안의 추천으로 원효가 쓴 『금강삼매경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 대안은 ‘대안성자大安聖者’로 기록되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구리 밥그릇이나 두드리고 ‘크게 편안하시오’ 내지는 ‘안녕하시기를’이라고 하루 종일 떠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성자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이 작은 실마리에서 엿볼 수 있다. --- p.73 ‘낙산이대성洛山二大聖’은 낙산洛山에 사는 두 성인의 이야기인데 ‘관음보살觀音菩薩’과 ‘정취보살正趣菩薩’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원효와 의상이 관음을 친견하는 극과 극의 첫 번째 이야기인 관음보살 친견 배틀에 주목하고자 한다. 의상과 원효가 듀오를 이루어 출연하는 내용 중 백미를 이룰 만하기 때문이다. --- p.84 11년이라는 시간… 나는 과연 누군가와 11년 동안 한 목표를 세운 적이 있던가. 아니면 이렇게 인생의 장기 계획을 오래 품고 실행해 본 경험이 있던가. 게다가 8년의 나이 차이와 출생 신분, 살아온 경험치를 극복하고 오직 한 마음 11년 동안 쭉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지기지우의 삶. --- p.8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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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춤추는 것을 멈추었을까!
신라의 붓다, 대중 불교의 아버지 ‘원효’의 모습을 되살려냈다. 정진원 교수,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출간!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삼국유사,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의 고서古書에 박제되어 있던 사람들의 역동적인 이야기를 지금의 언어로 풀어냈던 정진원 교수가 ‘원효’를 만났다. 정진원 교수는 『삼국유사』 속에 실린 원효의 열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7세기 신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이자 신라의 붓다로 일컬어지는 대중 불교의 아버지 ‘원효’의 모습을 되살려냈다. 길고 긴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의 중생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그럼에도 내일을 향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신라시대 군상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하이테크 시대에 『삼국유사』라니 하필 『삼국유사』인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 정진원 교수는 철학박사이자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국어학자이다. 저자가 단순히 고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연구할 다른 문헌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더구나 『삼국유사』는 정사인 『삼국사기』와 종종 비교당하며 야사로 치부되는 경우도 흔치 않던가. 정진원 교수가 『삼국유사』에 빠져든 계기는 이국땅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찾아왔다. 저자는 2000년도부터 2002년까지 터키 국립 ERCIYES대학교에 한국어 문학과를 설립하는 일에 참여했다. 돌아와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다시 한국학 교수로 나간 것이 2010년 헝가리 ELTE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였다. “K-Pop 콘텐츠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을 공부했는데 그 다음에는 뭐가 있나요?” 외국 학생들이 던진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한 번도 깊게 생각한 적이 없던 이 화두를 붙들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 철학, 종교를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만나게 되었다. 『삼국유사』, 지금의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고군분투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 원효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며 살 수 있다면 한국인이라면 웬만해서는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원효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들어 익숙하다고 해서 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퍼뜩 떠오르는 것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것 정도, 요석공주와 결혼해 설총을 낳은 파계승이라는 것, 조롱박을 두드리고 무애무를 추면서 저잣거리를 떠돌았다는 데에서 멈출 것이다. 『삼국유사』 속에서 원효가 등장하는 연대는 이야기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617년에 태어나 686년 70세로 입적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가 다채롭게 수놓아져 있다. 저자 정진원 교수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이야기 순서와 [원효불기]조를 통한 그의 생애를 중심축으로 삼고 다른 책의 이야기들을 끼워 넣어 일연이 바라본 원효라는 인물을 재구성했다. 『삼국유사』를 보충해 줄 『삼국사기三國史記』, 『화랑세기花郞世記』, [고선사서당화상비高仙寺誓幢和尙碑]와 『송고승전宋高僧傳』 등을 비롯한 관련 자료와 그의 저서들도 두루 다루고 있다.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를 통해 만나게 되는 원효는 내우외환에 휩싸인 7세기 신라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위대한 수행자의 삶인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인간 붓다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원효는 세상에 태어나 승속을 모두 경험하고 삼국의 각축과 통일로 흡수되는 백성들의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는 손에 닿는 대로 바가지를 두드렸고 염불을 노래했으며 그것을 춤으로 승화시켰다. 울어봤자 찡그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실컷 괴로웠고 실컷 울고난 가엾은 백성들에게 그는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생사가 둘이 아니요 고락이 둘이 아닐진대 기왕이면 살아있음을 기왕이면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질병의 광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2020년의 지금, 대자유를 외치며 어깨춤을 추는 원효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이하고도 경이로운 경험일 것이다. 어쩌면 필연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