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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야기 하나. 미서부 대자연 로드트립 #01 결혼식이 끝나고 미국 땅을 밟기까지 #02 최대한 촌스럽게 여행하라 #03 여행길에서 ‘선택’이란 #04 자이언캐니언 중심에 새긴 발걸음 #05 커내브에서의 다소 엉뚱한 로맨스 #06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 #07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여행의 묘미 #08 아름답고도 아찔한 그곳, 말발굽 협곡 #09 여기서 재발하지 말아 줘, 제발! #10 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1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 #12 드디어, 당신과 함께한 그랜드캐니언 #13 지나친 배려는 배려가 아니었음을 이야기 둘.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 #14 추억이 깃든 별나라 라스베이거스 #15 쇼핑 후 얻은 세 가지 깨달음 #16 내 인생, 당신과 함께라면 이야기 셋. 낭만이 깃든 곳, 샌프란시스코 #17 촉감으로 기억하는 샌프란시스코 #18 샌프란시스코 현지인처럼 #19 익숙한 듯,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미국 #20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 #21 지구는 돌고, 해가 지면 마땅히 달이 뜨는 법 #22 마지막 풍경은 이토록 느리게 흘러가는데,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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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까지 와서 너무 초라해진 우리의 피부와, 피로에 퉁퉁 부어 버린 손발을 보며 잠시 상상했다. 휴양지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누군가가 서빙해 주는 칵테일(칵테일을 안 좋아하지만 왠지 이 장면에서는 칵테일이 나와 줘야 할 것 같다.)을 한 잔 마시며 얼굴이 번지르르한 채 여유를 즐기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웃으며 로션을 아끼고 아껴 내 건조한 손등에 정성스레 발라 주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작은 것도 왠지 더 소중해지는 이 여행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값지게 다가왔다. 이 여행을 하며 힘든 일은 계속해서 생겼지만 그 역경을 함께 이겨 내며 우리는 부부로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 p.50~51, 「커내브에서의 다소 엉뚱한 로맨스」중에서 “오빠랑 연애할 때, 같이 속초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 속초에 느지막이 도착해서는 밤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놀았어. 비수기라 꽤 조용했고,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데 그게 또 괜히 낭만적이더라. 그렇게 앉아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캔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올라오는 거야. 나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바닷가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 마치 바다에 홀린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기지? 그래도 다행히 이성은 금방 돌아오더라. 그 짧은 몇 초 동안 ‘아이고, 오빠가 날 엄청 창피해할 거야…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리에서 뒤엉켰어. 그리곤 민망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았는데, 웬걸? 오빠도 나를 따라 나와 내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야.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오는, 달빛 아래서 춤추는 그런 낭만적인 장면은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오빠와 춤을 추는 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쿵 하면 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어떤 모습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아서.” --- p.58~59,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중에서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의 목구멍은 턱, 하고 막혀 버렸다. 벌어진 나의 입은 흙빛의 텁텁한 애리조나 공기를 머금을 때까지도 좀처럼 닫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치 우주에 있는 어떤 별 하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그저 태평양만 건너왔을 뿐인데,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 미서부 자연의 삭막한 아름다움은 푸릇푸릇하게 숨 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확실히 달랐다. 척박한 땅에서 느껴지는 그 숨결은, 매번 나의 장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내 마음을 울렸다. 그 숨결이 지나간 자리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남았다. --- p.95,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중에서 행복했다. 정말 온 마음 다해 벅차오를 만큼 이 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사실 그 뒤엔 불안함도 함께 따라왔다. … 이 상황이 왠지 내 인생과 닮은 것 같아 조금 슬펐다. 난 행복한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순간이 끝난 뒤 언젠가 찾아올 불행을 미리 걱정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역경을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무사히 이겨 낸 뒤에, 꼭 행복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내 인생, 온전히 행복함을 느껴도 괜찮다는 결론 말이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나를 토닥여 주었다. 걱정에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던 모뉴먼트 밸리의 밤, 나는 그 위로에 보답하듯 곤히 잠들었다. --- p.102~104,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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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발하지 말아 줘, 제발!
철두철미한 두 남녀가 만난 덕에 PPT까지 만들며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늘 중요한 순간에 터지듯 역시나 계획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신혼여행 3일 만에, 갑작스럽게 과격한 운동을 했을 때 근육이 녹으면서 생기는 질환인, 횡문근융해증이 재발한 것이다. 결혼식까지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결혼식 때 신은 높은 굽의 구두, 스니커즈를 신고 강행한 트래킹 등 며칠 사이에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탓에 다리가 다시금 아파 왔다. 가뜩이나 행복만 누려도 모자랄 신혼여행에서 병이 웬 말인가 싶지만 이럴 때만큼은 무심한 대자연이 이들의 사정을 봐 줄 리 없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절경으로 꼽힌다는 앤털로프캐니언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공연히 미련하게 살아온 자신을 탓해 보기도 앞으로의 불행을 미리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여행의 특장점은 둘이라는 데 있었다. 남편은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며 날마다 성실하게 파스를 발라 주었고, 네 개나 되는 묵직한 캐리어를 도맡았으며, 걷지도 딛지도 못하는 상황이 찾아오자 아내를 업고는 사람이 빽빽한 라스베이거스 중심지를 걸었다. 갑자기 재발해 버린 질환으로 갖은 일을 다 겪었다지만, 그 덕에 우회하여 함께 걷는 법을 배워 갔다. 최대한 안전하게 다닐 것을 다짐하고 강행한 여행이었다. 이제 나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안전은 더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_51~52쪽나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뜨거운 태양 아래 엉거주춤 서 있었다. 미련해서 얻었던 질환이지만, 앤털로프캐니언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미련해지고 싶었다. ‘괜찮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오늘 받기로 한 벌을 내일로 미루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죄인처럼, 찜찜한 마음을 지닌 채 고집을 부렸다. _82~83쪽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날 업고 빙글빙글 돌린다든지, 당신은 전혀 무겁지 않다며, 본인은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며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편을 보며 웃음이 터져 버렸다. 업혀 있느라 삐쭉 나와 있는 내 엉덩이에 뿔이 날지언정, 그 시간은 진정 달콤했다. _154쪽 로맨스, 시트콤, 드라마 이것은 정녕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로맨틱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젠 낭만과 현실을 적당히 넘나들 줄 아는 어엿한 부부였다. 나 몰라라 마음껏 즐기고파도 한 손에는 친정엄마가 쥐여 준 돈에, 다른 손엔 친오빠가 쥐여 준 직불카드가 있었다. 게다가 눈물 콧물 짰던 결혼식을 돌이켜 보자니 고마운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찡해지는 코끝을 부여잡으며 선물도 부여잡으니 캐리어도 빵빵해졌다. 여행도 즐기랴 감사한 지인도 챙기랴 야무지게 시간을 쓰다 보니 정작 결혼을 실감한 순간은 가령 이런 때였다. 초호화 트럼프 호텔에서 화장실 세면대가 무려 두 개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나란히 각자의 동나 버린 빤스를 빨 때랄까. “아니, 오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내가 오빠 옆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내 빤쓰를 빨고 있잖아! 우리 진짜로 결혼한 거 맞나 봐!” 누구도 각자의 신혼여행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무수히 오갔던 여러 빛깔의 감정, 생각, 이야기만은 오롯이 기억하는 여행. 누구나 공감하고 그래서 더 웃긴 그 이야기들을 담았다.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 친정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까지 담았으니 말 다 했다. 두고두고 꺼내는 신혼여행의 기억처럼, 이 책이 두고두고 읽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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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쓴이의 성격이나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려지는 글을 좋아한다. 이러한 글은 어느새 내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마음과 마음이 닿았다고나 할까? 내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글은 이렇듯 '지은이가 보이는 글'이다. 그 이유는 뭐랄까, 그것이 솔직한 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글이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성격을 속일 수 없듯 글 또한 속일 수 없다. 끊임없이 거짓을 얘기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글은 꾸밈이나 기교가 아니라 오로지 진실된 마음으로 써야 한다.
『미서부, 같이 가줄래?』는 오랜만에 작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에 대해 아는 것도, 어떠한 사전 설명도 없이 오직 글로써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종이 위, 단순한 활자의 나열이었지만 그 어떤 글보다, 아니 그 어떤 만남보다 내 가슴에 와닿았다. 일면식 한번 없었던 작가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작가의 솔직한 성격과 뛰어난 글솜씨가 빚어낸 결과물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광활한 서부를 묘사한 장면이나 사진도 당연히 좋았지만, 사실 나는 부부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감동적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을 배경으로 알콩달콩 전해지는 사랑에 웃고 미소 지었으니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미서부의 모습 역시 두 남녀의 사랑 앞에서는 그저 배경 화면 밖에 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여행 서적이지만, 나에게는 에세이의 색깔이 더욱 짙은 책이 되어 버렸다. 책 전반에 진짜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여행 서적을 읽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봐 온 여행 서적은 분명 이 책과 달랐고, 앞으로도 이런 책이 나올 거라 장담할 수 없으니까. 『미서부, 같이 가줄래?』는 설명이나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오로지 가슴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장편의 로드 무비를 본 느낌이었다. 내용과 주제는 달랐지만 영화 「레인맨」을 봤을 때의 잔잔함이 마음속에서 떠돌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섬세한 작가의 성격과 필력이 이러한 감정을 들게 했으리라. 과연 어떤 작가가 이렇게 밉지 않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귀엽고 사랑스러운 에세이의 여운이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속에 머물고 있다. 사진보다 선명한 책, 프롤로그부터 마지막까지 내 입가에 미소가 결코 지워지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마주했던 미서부 여행, 그리고 천생연분 남녀의 신혼 일기가 잠시나마 나에게 여유를 선사해 주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운명을 타고난다고 하는데, 부디 건강한 운명을 타고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책은 물론이고 작가까지 아울러서 말이다. 모처럼 소중한 시간을 선사해 준 작가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김진 (『관계는 습관이다』, 『마흔, 나를 위해 펜을 들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