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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다시 쓰는 만주 기행 … 9

◇ 연길 - 15
연변 조선족자치주/주덕해와 연변대학교/연길감옥/나의 길내 문학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 용정 - 41
해란강은 흐른다/간도파출소/서전서숙과 용정의 학교들/용정의 노래, 선구자/영국더기/두 청년의 우정/3·13 만세운동/15만 원과 20원/선바위 돌아 명동촌/삼합 국경/개산툰 사이섬 ? 41
◇ 도문 - 93
눈물 젖은 두만강/과자도 한 근 술도 한 근/봉오동전투
◇ 화룡 - 115
청산리 가는 길/6일간의 전투/어랑촌 874고지/대종교 3종사 묘역
◇ 량수·훈춘 - 135
버드나무 국경/훈춘사건/일본군 위안소/세 나라 국경/백두산 장백산
◇ 동녕 삼차구 - 159
노흑산령/동녕 요새/후보터강
◇ 수분하·목릉 - 177
유동하를 만나다/분도의 죽음
◇ 밀산 - 193
기차 여행/돌아오지 못한 국경/서일의 최후/도산 들, 여천 도랑
◇ 목단강 - 217
조선민족민속거리/팔녀투강상
◇ 해림 - 225
시야 김종진/백야, 산시에 잠들다
◇ 동경성 발해 - 237
발해를 꿈꾸며/발해농장
◇ 하얼빈 - 249
북국의 도시 하얼빈/1909년 10월 26일/지하 감방/중앙대가 키타이스카야/국적이 다른 두 사람/송화강 편지/마루타 731부대
◇ 흑하·치치하얼 - 291
아무르주 아무르강/자유시참변(흑하사변)/한국 최초 양의사 김필순
◇ 장춘 - 305
괴뢰 만주국/백구은/푸이와 백석
◇ 길림 - 319
의열단 결성지/걸레목자 손정도
◇ 유하 - 333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 집안 - 349
송화강에서 압록강으로/장군총에서 환도산성까지
◇ 단동 - 359
이륭양행과 조지 쇼/그리고 압록강은 흐른다
◇ 심양 - 371
서탑거리/물망(勿忘) 9·18/심양 고궁
◇ 대련 - 385
수상경찰서/일본인 거리, 러시아 거리
◇ 여순 - 399
여순항과 여순역/안중근은 죽지 않았다/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참고문헌 - 417

저자 소개 1

시인, 르포작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1985년 문학무크 『民意』에 시 「남악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즐거운 세탁』, 『팽이는 서고 싶다』, 『해 뜨는 검은 땅』, 『조카의 하늘』 르포집 『그래도, 살아갑니다』, 『두만강 중학교』,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만주의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 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평전 『고 마태오』, 『김경숙』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서간집
시인, 르포작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1985년 문학무크 『民意』에 시 「남악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즐거운 세탁』, 『팽이는 서고 싶다』, 『해 뜨는 검은 땅』, 『조카의 하늘』 르포집 『그래도, 살아갑니다』, 『두만강 중학교』,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만주의 아이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 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평전 『고 마태오』, 『김경숙』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서간집 『국경 마을, 삼차구에서 보내온 이야기』, 『영희가 서로에게』 여행 에세이 『박영희의 항일역사기행 만주 6000km』, 『안중근과 걷다』, 『하얼빈 할빈 하르빈』, 『만주를 가다』 청소년 소설 『운동장이 없는 학교』, 『대통령이 죽었다』 공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민중을 기록하라』, 『길에서 만난 세상』 등을 펴냈다.

박영희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420쪽 | 536g | 146*210*20mm
ISBN13
9788966551323

책 속으로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학철은 개구쟁이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학교에서 통신표를 가져올 때마다 어머니는 ‘넉가래(甲)는 하나 없고 말짱 오리(乙)투성’이라며 혀를 찼다. 가만히 있으면 몸살이 날 것 같은 소년은 어머니의 훈계에도 밖으로 나가 놀기 바빴다. 궁술을 익힌다며 활을 들고 나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이웃집 바자에 열린 호박들이 땅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개구쟁이 소년 김학철의 눈이 번쩍 뜨인 건 열세 살 무렵이었다. ‘원산 청년회관 사건’과 ‘원산 부두노동자 파업’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사오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청년회
관을 깨부수는데도 주재소 순경들은 우두커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이 뒤를 봐주는 일진회 소속 청년들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원산 부두노동자 파업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출동한 일본 경찰대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지켜본 김학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p.30~31, 「연길-나의 길」 중에서

“동주 너는 시를 열심히 써라. 총은 내가 들 테니…!”
난징에 도착한 송몽규는 은진중학교 한 해 선배인 나사행과 낙양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김구와 안공근(안중근의 동생)의 얼굴도 보였다. 김구는 군관학교 운영을, 베를린대학 출신의 안공근은 한인훈련반 교관을 맡고 있었다.
영화 〈동주〉에서 일본 고등계 형사가 송몽규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은 것도 이 지점이다. 산둥성 지난(?南)에서 활동한 송몽규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함경북도 웅기 경찰서로 압송되었다. 거주제한 조건으로 석방된 송몽규는 은진중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자, 대성중학교 4학년에 편입했다.
송몽규의 요시찰 이력은 그때부터였다.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일본 유학길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일제의 마수에 걸려든 건 1943년 7월.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형을 선고받은 송몽규와 윤동주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망했다.
--- p.68~69, 「용정-두 청년의 우정」 중에서

삼둔자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은 병력을 재정비했다. 수비대 병력만으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야스카와(安川二?, 일본군 19사단장) 소좌는 급히 300명 규모의 ‘월강(越江) 추격대’를 편성했다.
“고려령 서쪽 2킬로미터 지점을 향해 전진하라!”
고려령을 넘은 일본군 추격대의 함성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부대원들을 소집한 홍범도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해주었다.
“탄환은 곧 생명이다. 목표물을 겨누지 않고는 함부로 쏘지 마라.”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투에 임할 때는 되도록 말을 삼가는 편이었다.
“총을 쏜 후에는 반드시 자리를 옮겨 사격하라. 적에게 노출되어 당할 수 있다.”
1920년 6월 7일 낮 12시경이었다. 홍범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독립군 700여 명이 잠복 중인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 추격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손을 번쩍 치켜든 홍범도는 사격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봉오동전투는 불과 네 시간 만에 싱겁게 끝이 났다.
--- p.109~110, 「도문-봉오동전투」 중에서

1945년 8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던 량수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때아닌 러시아군이 들이닥친 것이다. 급기야 일이 터진 건 자정 무렵이었다. 군수물자를 빼돌리려다 발각된 일본군 2명이 러시아군 총에 사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는 숨도 크게 쉴 수 없었꼬마. 마우재와 왜놈 사이에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지 뭡네까.”
해방을 사흘 앞둔 저녁 시간이었다. 량수다리 쪽에서 쾅! 쾅!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저녁을 먹다 말고 밖으로 뛰쳐나간 주민들은 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걸 느꼈다. 다리 한가운데가 부러진 채 두만강 강물에 곤두박여 있었다.
--- p.138, 「량수·훈춘-버드나무 국경」 중에서

1933년 9월에 벌어진 동녕전투는 한중연합군이 첫 포문을 열었다. 동녕시 서산(西山)에 위치한 관동군 포대는 다량의 무기를 보유한 무기고였다.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 한중연합군은 서산포대를 습격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한중연합군의 진격은 이튿날 새벽 교착상태에 빠졌다. 장갑차와 함께 대포를 동원한 관동군의 반격이 예상보다 격렬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한중연합군은 퇴각을 서둘렀다. 이틀간 벌어진 전투에서 한중연합군은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독립군을 지휘하던 지청천(27년간 줄기차게 독립전쟁에 매진한 광복군 사령관)마저 큰 부상을 입었다. 항일유격대 대원으로 서산포대 전투에 참전한 김일성은 “항일 전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서산포대전투처럼 이틀이나 끈 일은 극히 드물었다”며 당시를 술회하기도 했다.
--- p.166~167, 「동녕 삼차구-동녕 요새」 중에서

중동선 철도가 통과하는 목릉은 1925년 김좌진이 ‘신민부(新民府)’를 결성한 곳이다. 자유시참변을 피해 만주로 돌아온 김좌진은 독립군 재건을 위해 목릉에 성동사관학교를 세우려 했지만, 한인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만주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일제가 자행한 간도참변 후유증은 치료가 불가능해 보였다. 독립군이 나타나면 동포들은 몸을 피하기 바빴다. 새로운 근거지를 찾아 해림으로 군영을 옮긴 김좌진은 산시에서 최후를 맞았다. 안중근 가족이 우수리스크로 떠난 뒤였다.
--- p.191, 「수분하·목릉-분도의 죽음」 중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 배후로 지목되었다가 감옥에서 풀려난 도산은 신민회 특사 자격으로 밀산을 답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 거사를 기획한 이강(연해주 『대동공보』 편집장)도 밀산 한인 학
교 설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밀산무관학교 건설이 무위로 돌아가자 도산은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제가 쳐놓은 그물망을 피해 미국에 도착하려면 유럽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다 안전했다.
도산이 떠나고 4년여쯤 지났을까. 연해주에서 밀산으로 건너간 여천(홍범도)은 십리와 청년들과 벼농사를 지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도산이 십리와에 농토를 마련했다면, 여천은 비덕강 물을 끌어와 고랑을 만들었다. 한인촌(韓人村)을 건설해 농사짓고 학교를 세우는 모든 과정이 곧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여천은 청년들을 소집해 군사훈련을 지휘했다.
--- p.214, 「밀산-도산 들, 여천 도랑」 중에서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서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처음 세 발은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배를 관통했고, 나머지 세 발에 이토를 수행한 비서진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려서부터 사격술이 뛰어난 안중근의 총구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꼬레아 우라(Корея Ура)”다. 저격 후 이 외침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세계 언론은 안중근을 단순한 살인범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의 환영곡을 장송곡으로 바꿔놓은 자리에 기념관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함박눈이 내리는 하얼빈역 남문 출구에 ‘安重根 ?士 ?念?(안중근 의사 기념관)’ 안내판이 보였다.
--- p.254, 「하얼빈-1909년 10월 26일」 중에서

혁명의 도시 옌안에 기립 박수가 터졌다. 발표를 마친 식민지 청년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길이 곧 항일의 길이라 믿었다.
항일군정대학에서 합창단 지휘자로 일할 때, 미모의 여대생이 다가왔다. 학우들이 모인 자리에서 딩쉐쑹은 아예 공개 선언을 해버렸다. “오늘부터 정율성은 내 남자다. 그러니 너희들은 함부로 넘보지 마
라!” 며칠 전 딩쉐쑹으로부터 들꽃 한 다발과 함께 『안나 카레니나』를 선물로 받은 정율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연안송가〉로 일약 스타가 된 정율성 못지않 게 딩쉐쑹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해방 후 중국의 첫 여성 대사로 활약한 딩쉐쑹은 중국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총애를 받는 칭니엔퉁즈(靑年同志)였다.

--- p.274~275, 「하얼빈-국적이 다른 두 사람」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반도 동해와 가까운 훈춘에서 한 달가량 머문 뒤, 만주 여행길에 올랐다. 헤이그 밀사 이상설은 안중근을, 항일 명장 홍범도는 안창호를, 아나키스트 이회영은 한용운과 김종진을, 북로군정서를 창설한 서일은 김좌진과 이범석을, 만주벌 호랑이 김동삼은 남자현을, 의열단 김원봉은 이육사와 김산을 불러들였다. 아, 만주가 이런 곳이었구나! 아무라도 한 사람만 찾아가면 점조직처럼 수십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주는 무엇보다 장총으로 무장한 독립군이 항일 전쟁을 펼친 자긍심의 무대였다. 독립운동사에 이마저 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자화상인가.
_‘저자의 말’ 중에서

발로 쓴 만주 항일 투쟁사

박영희 시인이 만주에 흩어져 있는 항일 역사 유적지를 샅샅이 답사하고 쓴 책이 새로 나왔다. 저자는 이미 2007년에 낸 『만주를 가다』(삶창)에서 ‘만주 역사 기행’을 중간 결산했지만, 그동안 변한 만주의 구석구석을 다시 살펴보고 새로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물론 전작 『만주를 가다』와 겹치는 면도 없지 않지만, 저자의 말대로 “고속열차가 생기면서 만주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기 때문에 보다 알찬 만주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만주 지역의 인구만 해도 1억 명이 넘으며 저자가 이동한 경로의 길이도 6000km가 넘는다. 가장 남쪽으로는 여순에서 가장 북쪽인 흑하까지 저자는 발로 뛰면서 만주의 모습을 기록했다. 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박영희 시인의 만주 기행은 단지 만주 지역의 풍속이나 풍광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알겠지만 박영희 시인의 발길은 주로 항일 투쟁의 흔적들을 따라갔다.
교과서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만 접했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 독립에 대한 열망, 탄압과 분열 등을 여러 자료와 현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로 전해주고 있다. 아울러 현지 모습을 저자가 직접 찍어 이 책에 수록함으로써 기록의 가치는 더 높다. 예를 들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라든가, 청산리전투의 주요 지점인 백운평, 어랑촌의 사진, 북한 쪽은 내린 눈이 쌓여 있고 중국 쪽은 말끔히 치워진 상징적인 두만강 다리 사진, 수면 위로 아슬하게 보이는 위화도의 사진 등등은 흥미진진한 글을 따라 읽다가 순간순간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 생기를 불어넣은 항일 독립투사들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가난한 역사만은 아님을 깨닫게 하며, 이는 이 책이 이루어낸 가장 눈부신 지점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운명이 섬나라 일본에 놀아나고 있었다. 서전서숙을 나온 안중근은 선바위로 향했다.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듯, 사격 연습을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불안감이 생겼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도 자신을 먼저 갈고 닦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고 비수는 예리할수록 적중률이 높았다. 지금 지나고 있는 선바위 뒷산이 바로 안중근이 사격 연습을 했던 곳이다. 북간도에서 석 달을 머무는 동안 안중근은 틈만 나면 선바위를 찾아 총을 겨누곤 했다.
─「용정-선바위 돌아 명동촌」 중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안중근은 용정에 있는 선바위라는 곳에서 권총 사격 기술을 갈고닦은 이 장면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순간만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다른 실감을 안겨주고도 남는다. 또 도산 안창호와 이토 히로부미의 만남 장면도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만일 일본의 명치유신을 미국이 와서 시켰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일본은 일본인 스스로가, 한국은 한국인 스스로가, 중국은 중국인 스스로가 평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동양평화론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대가 여러 강국의 적이 되고 아시아 여러 민족의 적이 될까 봐 염려스럽다.
─「밀산-도산 들, 여천 도랑」 중

위 발언은 도산 안창호가 “자신과 함께 대업을 이뤄보지 않겠느냐는” 이토 히로부미의 회유를 거절하면서 뱉은 말이다. 이 만남은 안창호 선생이 29세 때 이루어졌다. 이렇듯 만주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의 삶을 가장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듯 전해주고 있는데, 구체적인 장소가 그들의 결단과 행동, 신념을 부각시켜준다.

만주 기행의 필수적인 지참서

봉오동전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독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홍범도 장군은 안중근의 심문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홍범도라는 자를 아는가?”
“알고 있다.”
“그는 뭘 하는 자인가?”
“홍범도는 의병부대 거물이다.”
홍범도와 안중근은 1907년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처음 만났다. 최재형의 집에서 연해주 의병부대가 창설된 날이었다. 크라스키노에서 시작된 홍범도의 무장투쟁은 일본군 관사, 헌병 분견소, 주재소, 우체국, 친일 주구와 친일 부호 등 닥치는 대로 응징하고 닥치는 대로 처단했다. 함경북도 후치령전투를 비롯해 홍범도가 감행한 국내 진공 유격전만 60회가 넘었다.
─「도문-봉오동전투」 중

저자의 말대로 “아무라도 한 사람만 찾아가면 점조직처럼 수십 명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만주라는 공간이다. 이회영과 만해 한용운의 첫 만남도 인상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하루는 예기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삼십 대 중반의 스님이었다. 신흥강습소를 방문할 때는 본인의 신분을 확인시킬 소개장이 있어야 함에도 스님은 빈손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이회영은 속으로 웃어 넘겼다. 소개장 없이 찾아온 스님을 무작정 내치는 것도 인색해 보였다.
한 달 가까이 머문 스님이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우당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돌아갈 여비 좀 마련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시죠, 스님.”
아침 식사를 마친 스님이 합니하를 떠난 뒤였다. 이회영은 급히 통화로 달려갔다. 굴라제 고개에서 저격을 당한 스님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유하-신흥무관학교」 중

독립운동사를 배울 때 우리는 분열과 반목도 배웠지만 이런 우연한, 그러나 역사적 만남은 만주에서는 거의 일상이었다. 위대한 거인들의 삶이 이렇게 촘촘히 엮여 있었다는 ‘사실’은 만주 자체의 특수성도 특수성이지만 독립을 향한 여정에서는 거의 필연인 것처럼 저자는 이야기를 배치했다. 그렇다고 해서 만주에서 무장 투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을을 만들어 자립의 토대를 쌓는다든가, 교육 운동을 한다든가, 종교 사상운동을 펼친다든가 하는 일상적인 투쟁도 있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무장투쟁의 전설” 홍범도 장군도 밀산의 십리와에서 한인촌을 건설하고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러한 항일 투쟁은 중국의 항일 운동과도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었고, 그야말로 아름다운 국제 연대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봉오동·청산리전투의 패배의 분풀이로 일제가 자행한 ‘간도참변’이라든가, 일제의 무력에 밀려 러시아 영토로 넘어갔다가 러시아 내전에 휘말려서 당한 ‘자유시참변’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도 이 책은 놓치지 않고 있다.
단순한 여행을 위해서든 아니면 조금 진지한 역사 기행을 위해서든 『만주 6000km-박영희의 항일 역사 기행』은 필수적인 지참서가 될 것이다.

책머리에

한반도 동해와 가까운 훈춘에서 한 달가량 머문 뒤, 만주 여행길에 올랐다. 헤이그 밀사 이상설은 안중근을, 항일 명장 홍범도는 안창호를, 아나키스트 이회영은 한용운과 김종진을, 북로군정서를 창설한 서일은 김좌진과 이범석을, 만주벌 호랑이 김동삼은 남자현을, 의열단 김원봉은 이육사와 김산을 불러들였다. 아, 만주가 이런 곳이었구나! 아무라도 한 사람만 찾아가면 점조직처럼 수십 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주는 무엇보다 장총으로 무장한 독립군이 항일 전쟁을 펼친 자긍심의 무대였다. 독립운동사에 이마저 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자화상인가.
만주는 또 고구려와 발해가 태어난 곳이다. 그 중심에 백두산이 자리했다. 고구려와 발해를 건국한 길림성은 두만강 유역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흑룡강성은 송화강 유역에, 항일투사들의 망명 루트였던 요녕성은 압록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23개의 성(省)과 4개의 직할시, 5개의 자치구로 구성된 중국은 만주를 ‘동북3성’으로 분류했다.
(…)
해방 전 만주국 지도와 중국 지도를 벽에 나란히 걸어두었다. 한 달여쯤 지나자 만주의 길목들이 하나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역사는 완성을 만들어가는 글의 초고이자 각주라고 했던가. 십여 년 넘게 여행한 만주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겨울을 씨줄로 삼은 건 네 계절 중에서 겨울이 가장 만주(滿洲)다웠기 때문이다. 만주 여행은 눈 내리는 겨울에 떠나야 광활한 벌판을 만끽할 수 있다.

2021년 겨울 태백에서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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