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 동안 스포츠 마케터로 다양한 스포츠 현장에서 일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지 않은 강의를 해왔다. 정보에 언제나 목말라 있는 그들에게 나의 작은 경험과 솔직한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강의인데 어느덧 십 년 가까이 됐다. 그동안 대학, 커뮤니티, 사설 아카데미 등 다양한 곳에서 많은 학생을 만나왔다. 사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던 강의는 언제나 나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이 묻는 말로부터 상기되는 나의 초심, 그들의 초롱초롱한 열정이 부채질하는 나의 에너지 등 늘 내가 배우는 게 더 많은 시간이었다. 강의는 강의 이상의 의미였고, 학생은 학생 이상의 존재였다. 이런 이유로 강의 시간에서만큼은 가감 없이 최대한 솔직하게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했다.
---「프롤로그」중에서
시즌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경기를 앞둔 전날 저녁이었다. 나는 선수들이 묵고 있던 호텔에 수시로 오가면서 선수들과 이야기도 하고 애로사항도 듣곤 했는데, 경기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던 특정 선수가 연락이 닿지 않아서 숙소로 찾아갔다. 숙소에서 기다리면서 여러 차례 전화를 했음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자로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나왔다는 답장만 나에게 보내왔다. 선수단의 규정 위반은 물론이고, 구단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심각한 사항이었는데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서 그 선수의 방에서 선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동틀 무렵 숙소로 돌아온 선수가 나에게 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여자 친구가 보고 싶어서 잠시 나갔다 왔다는 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는 그 일을 함구하는 조건으로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수의 다짐을 받았다.
---「다른 모습의 선수들」중에서
팬들로부터 받는 또 다른 스트레스 중의 하나는 스포츠토토나 사설 토토를 하는 분들의 거친 항의와 욕설이었다. 경기 결과에 따라 배팅 결과가 달라지는 스포츠토토를 하는 분 중에는 경기 결과가 본인의 예측대로 나오지 않으면 경기 중이든 경기가 종료된 이후든 구단으로 전화해서 온갖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화를 내는 분들이 있었다. 감독이 경기 조작하는 거 아니냐부터 선수들이 왜 열심히 안 뛰냐, 이 타이밍에 왜 저 선수를 넣어서 득점을 저조하게 만드냐 등 너무 많은 항의와 불만을 받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다가도, 그래도 팬서비스를 하는 구단 최일선 담당자로서 최대한 상냥하고 친절하게 어르고 달래며 그분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팬들과의 관계」중에서
선수단과 함께 타지역으로 팬 사인회를 갔던 적이 있다. 팬 사인회를 가면 인기 있는 선수들이 보통은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 구단 버스에 집결했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그리고 팬들에게 인기 있는) 선수가 보이질 않았다. 부랴부랴 숙소로 가보니 술에 잔뜩 취해서 인사불성 된 모습으로 자는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선수였는데 일단 출발 직전에 마주한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긴급했던 터라 나도 화가 났다. 작정하고 오늘 팬들을 만나러 가는데 왜 술은 이렇게 많이 마셨으며, 지금도 자고 있으면 어쩌냐고 한소리를 했다. 그러자 오히려 나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얼토당토않은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선수들과의 관계설정」중에서
구단에서는 한 종목만 깊이 있게 파고들면 되는데, 브랜드에서는 담당하는 종목이 3~4개 정도가 되다 보니 깊이보다는 빠르게 쳐낼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좋아 멀티플레이어지 그냥 잠시만 한눈팔아도 각각의 종목에서 사고가 펑펑 터지다 보니 늘 일에 쫓겨 쳐내기 바쁜 게 현실이다. 구단은 비시즌이라도 있지만, 스포츠 브랜드는 동계와 하계의 모든 종목을 후원하다 보니 일 년 365일이 시즌이다. 여러 종목이 일 년 내 내 계속 이슈들이 있다 보니 그에 맞춰서 스포츠 마케팅팀이 해야 하는 일들이 끊임없다. 그래서 늘 바쁘고 여유가 없다
---「멀티 플레이」중에서
수년 전에 스포츠 마케터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나간 적이 있다. 강의 말미에 비인기 종목을 강조하던 나에게 한 학생이 앞으로 눈여겨 봐야할 종목과 선수를 추천해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때 앞으로 눈여겨볼 종목과 선수로 언급한 것이 테니스 종목과 주니어 선수였던 정현이었다. 당시 나의 이런 주장에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년이 흐른 뒤에 정현 선수는 대한민국 테니스를 대표하는 월드클래스의 선수가 되었고, 테니스는 참여 스포츠로
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21년 현재, 테니스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테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가장 핫한 종목이 되었다.
(학생) “비인기 종목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추천해줄 종목과 선수가 있으실까요?”
(나) “저는 테니스가 수년 내에 스포츠 트렌드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선수 한 명이 불씨를 지펴줄 수만 있다면, 테니스는 열풍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성을 가진 선수가 바로 테니스 유망주인 정현 선수입니다. 실력도 좋지만, 기본적인 인성과 노력하는 자세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좋은 스폰서들이 붙는다면 분명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겁니다.”
---「비인기 종목」중에서
스포츠 마케터는 산업의 폐쇄적인 특성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이동할 수 있는 자리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제대로 커리어를 관리하지 못하면 이 산업에서 빨리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배 스포츠 마케터들도 진로에 대해서 고민은 했지만, 결국엔 빠르게 변화를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후회하기도 했다. 스포츠 마케터가 일반적인 마케터 포지션으로 넘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그래서 스포츠 마케터가 되기 전에 얼마만큼 내가 이 직군에서 커리어를 잘 관리할 수 있을지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려보고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가 다시 뒤로 돌아오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안정보다 도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