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장사꾼밖에 더 되겠는가?’ 하는 자괴감을 숨기려는 허세가 내 안에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어쭙잖지만 늦게까지 공부해서 학위까지 받아놓고 ‘겨우 장사나 하려고 그랬느냐?’는 주변 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 p.11, 「프롤로그」 중에서
오지랖 넓고 세상사 관심 많은 성격이다 보니 손님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많지만 장사꾼은 손님과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속 편하고 적당히 친절해야 스트레스가 없다는 영악한 진리를 깨달았을 정도로 나는 노련한 장사꾼이 된 것이다.
--- p.12, 「프롤로그」 중에서
회사를 운영하며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니폼을 입고 바코드를 찍는 일보다 체면치레는 될지 몰라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과감하게 하던 일을 접었다.
--- p.23, 「동네 가게의 주인이 되는 일」 중에서
온종일 카운터 안에서 벗어날 일이 없는 나는 손님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혼자 웃는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웃고 살 수 있는 것. 가게 안에서의 삶이 그렇다.
--- p.28, 「혼자 웃는다」 중에서
얼굴 빨개진 거 보니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그깟 20원이 아까워서 억울한 건지, 그도 아니면 자기는 빈정거려도 나는 그래선 안 된다는 갑질 정신 때문에 화가 난 건지….
--- p.50, 「친절한 내가 빈정거리면 그건 당신 때문이다」 중에서
우리 가게만의 특성을 이것저것 설명 하면서 덧붙였다. “손님에게 너무 친절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친절은 자존감을 떨어트릴 수 있으니 그저 상식선에서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로만 하면 충분하다고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얘기해 준다.
--- p.53, 「손님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라」 중에서
딸에 대한 자부심으로 엄마가 무심코 뱉은 한마디 말이지만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이런 표현은 그것과 다르게 산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묘한 뉘앙스를 풍겨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 p.61, 「사회적 약자 우선 전형」 중에서
그런데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쓰는 언어가 단순해지는 만큼 사람들과의 단순한 교류가 좋아지는 것을 보니 나는 진정한 ‘편의점 인간’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 p.74, 「편의점 종사자의 언어 」 중에서
나는 친절을 팔지 않는다. 찾아주는 고객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늘 장착하고 있는 내 친절을 돈으로 계산하려는 얄팍한 자본주의자들에게는 돈을 줘도 안 파는 것뿐이다.
--- p.84, 「친절은 판매하지 않습니다」 중에서
세 명의 진상 아저씨가 연달아 들어왔다 나가니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아오, 아저씨들, 당신들 같은 손님들은 안 왔으면 좋겠어요.
--- p.123, 「글을 부르는 손님들」 중에서
“허, 이해요? 아래층 편의점이 왜 망했는지 얘기해 줘요?” “안 해주셔도 돼요.” “엥? 내가 장사 잘하라고 충고하려고 했더니 아줌마 태도도 틀렸네. 내 다신 안 와.” “네, 그러세요.” 이 동네 사람들은 맘에 안 들면 아래층이 왜 망했는지 가르쳐주겠다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 망한 아래층 사장한테 동지적 애정이 솟아난다.
--- p.135, 「충고, 안 들을게요」 중에서
편의점 일은 대충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하루 만에 매대는 엉망이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바로 매출에서도 차이가 난다. 목이 좋으면 좋은 대로 높은 임대료 때문에 고전할 것이고, 목이 나쁘면 부족한 매출 대신 노동 시간을 늘려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 p.188, 「점주라서 좋다」 중에서
저녁 무렵에 편의점에 있다 보면 자주 드나드는 주민들 신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얼추 알게 되기도 한다. 각자 따로 드나들던 남녀가 어느 날부터 함께 와서 물건을 고르다 손을 잡고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두 남녀의 애정 깊이를 가늠해 본다.
--- p.229, 「사랑이 꽃피는 편의점」 중에서
눈을 감기 전까지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는 시골 노인들의 말년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닌지, 오피스텔 노인들을 보며 건강한 노년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 p.24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중에서
군고구마 몇 개를 더 팔겠다고 매일 마주치는 이웃과 경쟁해야 하는 것. 영세상끼리의 싸움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다. 마음이 무겁다.
--- p.260, 「작은 카페와 경쟁하는 대기업 군고구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