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뼈의 모습은 사실 건조하고 죽은 상태다. 하지만 뼈도 살아 있다. 뼈를 자르면 피가 나고, 부러뜨리면 상처가 난다. 상처가 나면 원래 모양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치료하려고도 한다. 뼈는 우리와 함께 성장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는 대로 적응하고 변화한다. 인간의 골격은 살아 숨 쉬는 복잡한 기관이다. (...)
법의인류학자의 일은 마치 뼈가 레코드인 것처럼 축음기 바늘을 옮겨가면서 삶이라는 노래 중 그 단편들을 찾아내고, 오래전에 기록된 선율의 단장을 이끌어내어 골격의 뼈를 읽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법의인류학자들의 관심은 그 삶이 어떠했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또 뼈에 기록된 그 사람의 경험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뼈로 그 사람의 사연을 알아내고 죽은 자에게 이름을 되찾아줄 수 있다.
---「시작하며: 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중에서
허스트의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문제에 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이아몬드를 아낌없이 사용했다는 점? 아니다. 그건 내 관심 밖이었다. 문제는 작가가 두개골 원형을 런던 북부의 이즐링턴에 있는 박제상점에서 구입했다는 사실이었다. 유골을 사고팔 수 있다는 점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유골들은 한때 살아 있던 사람이고 누군가의 아들, 딸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내 가족의 유골을 판매한다면 대부분 화가 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연히 다른 유골에도 마찬가지로 예의를 갖춰야 한다.
---「뇌 상자」중에서
본격적인 발굴과 시신 회수 작업이 시작되었고 온전한 상태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그런데 유골에 머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리자 경찰은 나에게 확실하냐고 물었다. 그건 마치 내가 머리를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고, 나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느꼈다.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축구공만 한 것을 어떻게 못 봐요? 나는 빠뜨리지 않았어요.” 4번 목뼈(경추) 아래의 것은 모두 있었지만, 머리, 그리고 1~3번 목뼈는 확실히 그곳에 없었다.
---「창고 속의 머리 살인사건」중에서
시신안치소에서 나는 이 머리 없는 해골이 나이 든 여성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과 발의 관절염과 엉덩관절 치환술까지 여자의 설명에 부합했다.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두개골이 노부인 시신의 일부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DNA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였던 시대다. 그래서 뼈 간에 해부학적 접합, 그리고 머리 부분의 성별과 연령이 시신의 것과 일치하는지에 의거하여 ‘적합’ 판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에게는 두개골과 아래턱뼈, 1번과 2번 목뼈가 있었지만 3번 목뼈는 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 부분이 바로 절단된 곳이며, 3번 목뼈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해부학적으로 시신과 두개골을 연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두개골과 아래턱뼈의 해부학적 특징으로 보아 나이 많은 여성의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창고 속의 머리 살인사건」중에서
‘아하!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네, 왓슨, 이것은 다리를 저는 23세 여성의 제3등뼈의 왼쪽 상판 관절면 조각일세!’ 슬프게도 뼛조각을 들고 이렇게 외치는 셜록 홈즈를 항상 불러낼 수는 없다. 이것은 1000피스 직소 퍼즐 중 한 조각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해부학적으로 똑같은 퍼즐 조각이 두 개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의 조각인가? 패턴이 보이는가? 그 패턴이 있는 위치가 한 곳 이상인가?
우리가 처음부터 분명하게 안 것은 그 조각이 실제로 뼛조각이며 두개골 조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제 퍼즐은 위치상 아닌 곳을 배제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 마지막으로 남은 것 중 가능성 있는 것은 나비뼈였다. (...) 남편은 범행을 저지른 후 피 묻은 자신의 옷을 세탁기에 넣었고, 그때 뜻하지 않게 메리의 나비뼈 조각이 옷에 딸려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효소 세제를 넣고 세탁기를 돌린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DNA를 회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세탁기에서 발견된 아내의 뼛조각」중에서
젊은 연인 두 명이 시골에서 운전을 하다가 외진 시골길 옆 도랑에 버려진 은색 여행가방을 발견했다. 가방은 불룩했고 태그가 달려 있었다. (...) 경찰이 알고 싶었던 것은 나이와 민족적 태생이었다. 나는 시신의 얼굴과 두개골을 살핀 결과 민족적 태생이 베트남이나 한국, 대만, 일본, 중국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얼굴과 코, 눈, 치아의 모양과 머리카락 색깔과 유형 때문이었다. (...)
여성의 이름은 ‘진효정’이었다. 그녀는 영국을 방문한 관광객이었고, 런던에서 한국인 남성이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의 방을 하나 빌렸다. 경찰은 그 아파트에서 ‘길버트와 조지’ 선물 포장 테이프를 찾아냈다. 그 테이프는 집주인의 여자친구의 것이었고 젊은 여성의 얼굴에 감겨 있던 것과 일치했다. 이 테이프는 영국 테이트 갤러리 기념품점에서 아마 850개만 판매되었고, 그 중 이 아파트에서 발견된 테이프에 그녀의 피가 묻어 있었다. 진효정의 피는 아파트와 집주인의 차에서도 발견되었다.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한국인 진효정 사건」중에서
경험 많고 솜씨 좋은 사람이 얼굴 묘사와 복원을 함께 하면 어떨까. 결과물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할 수 있다. 2013년에 일어난 사건에서는 두개골을 촬영한 CT 영상에 의거해 컴퓨터로 피해자의 얼굴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것으로 실종 여성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유해 분석을 통해 피해자의 나이, 성별, 키, 둔기에 의한 외상, 목 졸림이 확인되었다. (...) 컴퓨터를 이용하여 두개골 CT 영상 위에 근육과 연조직을 하나씩 겹쳤고, 뼈대 위에 피부를 덧씌웠다. 팀이 설정한 여성의 나이와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캐롤라인은 언론 유포용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인상적인 초상화를 제작했다. (...) 그리고 실제로 피해자의 가족은 뉴스를 통해 복원된 얼굴을 보게 되었다. 피해자는 아들을 보러 에든버러에 왔었고, DNA로 그녀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그 후 아들은 모친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두개골로 복원해낸 얼굴」중에서
흉부는 아마 두개골과 함께 가장 일반적으로 폭행이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부위일 것이다. (...) 따라서 흉부는 예를 들어 찌름에 의한 예기외상, 발차기 같은 것에 의한 둔기외상, 사격에 의한 탄도외상처럼 다양한 무기와 방법을 써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고자 할 때 가장 빈번하게 선택되는 부위다. 흉부의 뼈는 골절되기 쉽고, 날카로운 도구를 쉽게 찔러 넣을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소아성애범죄를 저지른 리처드 허클도 분명 이 방법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소아성애범죄자 허클의 최후」중에서
빗장뼈(쇄골)는 태아나 어린아이의 나이를 알려주는 신뢰할 수 있는 지침이다. 30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도 나이를 알아내는 게 가능하다. 이 뼈는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형성되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서 마지막으로 성장하는 뼈이기도 하다. (...) 결국 연골이 계속 뼈로 변함에 따라 마개에 있는 빗장뼈는 주요 골간과 융합되기 시작할 것이다. 융합 정도에 따라 15세 미만, 15~25세, 25세 이상이라는 정확히 규정된 범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골격을 보고 어린아이 또는 성인의 연령을 확인하려고 할 때는 제일 먼저 살펴야 할 뼈가 빗장뼈다.
---「베갯잇 속의 아기」중에서
병리학자는 화면에 소년의 상지 X-레이 사진과 하지 사진을 띄웠다. 나는 노뼈와 정강뼈의 아래쪽 끝에서 아주 명확한 해리스선 3~4개를 찾아냈다. 성장이 잠시 중단된 후에 정상적으로 재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이 선들 사이의 공간은 일종의 성장 장애가 간격을 두고 반복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X-레이 사진에서 보였던 선은 아마도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 반응이었을 것이다. 소년은 매년 할아버지의 방문과 부모가 없을 때 견뎌야 할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해야 했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아마도 그는 너무 괴로워서 다시 트라우마에 직면하거나 자신의 어두운 비밀을 누군가에게 알리느니 밧줄에 목을 감아 자살했을 것이다. 이 소년의 끔찍한 이야기는 너무 늦게 밝혀졌다. X-레이 사진에서 나타난 긴뼈의 작은 흰색 선들의 증거 덕분에 명백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친할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해리스선」중에서
살면서 가끔씩 나는 궁금했다. 내가 9살 때에도 내 다리뼈에 뚜렷한 해리스선 한두 개가 생겼을지. 해리스선이 생겼었다면 나중에 그 선들은 뼈의 성장과 재생에 의해 지워졌을 것이고 물리적 증거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방학 중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근심걱정 없던 어느 화창한 날, 내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을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는 더없이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1층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그는 동안 느꼈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와, 수치심과 공포가 뒤섞인 참담함이 기억난다.
나는 옷을 모두 벗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깨끗해져야 했다. 비밀을 지켜야 했다. 엄마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피 묻은 옷을 정말 열심히 빨아봤지만 핏자국을 다 지우지 못했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옷들을 ‘잃어버려야’ 하고 어머니가 그 옷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변명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어른이 되었다. 해리스선 한두 개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을 잃었다.
---「내 인생에 새겨진 가늘고 비스듬한 선」중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 우리 몸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정보가 시신을 식별하는 데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내가 죽은 후, 내게 무엇이 남아 있든 그것을 보고 훌륭한 법의인류학자가 내가 여성이고, 죽었을 때 내 나이와 키, 그리고 빨간 머리카락(그때까지도 여전히 빨간색이라면)을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언제라도 내 유전자 구성에서 빨간색을 찾을 수 있으며, 내 피부색과 주근깨가 있는지 없는지까지(주근깨가 있다) 알아낼 것이다. 또 내 조상이 백인, 전형적인 켈트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며: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