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눈」
목공실에서 초록색 물감을 달라는 종구의 말에 석찬이가 선뜻 물감을 건네지 못하고 다른 가구용 물감만 만지작거리자 옆에 있던 민재가 석찬이는 색맹이라고 알려준다. 그럼에도 종구가 개눈깔이라며 계속 석찬이를 놀리고 다그치자 보다 못한 건오가 도와주러 나섰다가 오히려 둘 사이에 큰 싸움이 나고 만다. 친구를 도와주려다 싸움까지 하게 된 건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차근차근 말할 기회를 뺏었다며 자신을 원망하는 석찬이에게 건오는 큰 실망과 섭섭함을 느낀다. 그리고 둘은 더 크게 싸우고 만다. 다음 달에 경주로 이사를 가게 된 건오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둘은 함께했던 놀이와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건오가 이사 가는 날 둘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될까?
「그럴 수도 있지, 통과」
“그럼 할머니는 죽어도 되니?” 할머니가 대뜸 나에게 전화를 해 이런 말을 한다. 그것도 난 학교에 있는데… 동화 속 괴팍한 할머니의 영혼과 우리 할머니의 영혼이 바뀐 것만 같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화를 낸 적도, 엄살을 부린 적도, 협박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할머니가 뇌를 다치셔서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프기 전의 할머니가 그립다. ‘새 보러 가자’ 선생님이었던 할머니. 새에 대해서도, 나무에 대해서도, 나물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던 할머니. 하지만 이제 나는 그동안 내가 알아 왔던 할머니와 헤어지고 지금의 할머니와 새로 만났다는 걸 안다. 편찮으시고 나서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은 ‘통과’와 ‘그럴 수도 있지’다. 오늘은 할머니는 어떤 일에 “그럴 수도 있지, 통과”라고 하실까?
「누가 토요일을 훔쳐 갔다」
어느 주말, 할아버지 댁에 다녀온 날 윤주와 진욱이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번호 키가 고장 나 열쇠로 문을 잠근 게 탈이었을까? 하지만 열쇠로 문이 안 열려 열쇠 수리 아저씨가 오고 급기야 119와 경찰까지 오고 말았다. 다행히 도둑은 엄마의 결혼반지만 가져갔지만 아빠는 자신의 카메라가 그대로 있는 게 어쩐지 섭섭한 눈치다. 문단속을 소홀히 했다며 티격태격하던 가족들은 손님 왔을 때처럼 한방에서 잠들며 도둑이 든 건 싫지만 오랜만에 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하지만 다음 날, 뜻밖의 장소에서 아빠의 비자금이 발견되면서 엄마 아빠의 얼음 전쟁이 시작되고 윤주와 진욱이는 엄마 아빠 눈치를 살피게 된다.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비자금을 모아 둔 걸까?
「잘 헤어졌어」
민채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던 아진이와 헤어졌다. 그러니까 제일 친한 친구랑 헤어진 거다. 게다가 아진이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 특별히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같은 아파트, 같은 동 2층과 12층에 살며 사소한 일들도 쪽지와 편지로 주고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민채와 아진이 모두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편지쓰기에 몰두해 있다. 아진이가 자주 쓰던 ‘난 괜찮아’가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된 민채. 민채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힘들었던 아진이. 이제야 둘은 서로가 너무 달랐다는 걸 알게 되는데… 아진이가 이사 가고 나서도 편지를 쓴 민채는 아진이의 새 주소로 편지를 부칠 수 있을까?
「상태 씨와 이사」
나 손서하는 할아버지 손상태 씨의 손자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누나, 나, 우리는 함께 살았고, 13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엄마, 누나는 아파트로 가는 것에 들떠 있지만 나는 정든 집을 떠나기가 싫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할아버지 방을 떠나는 것도 싫고, 마당을 두고 가는 건 더 힘들다. 마당에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던 앵두나무도 있고, 고양이 ‘까망’이 먹이와 물을 먹으러 오기 때문이다. 이삿날이 가까워지면서 버릴 물건을 정리하기 힘들어하던 서하는 누나에게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결국 이삿날이 다가오고 새집, 새 방에서 서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것은 할아버지의 가방 ‘상태 씨’다. 지금은 서하의 가방이기도 한. 서하는 이제 새집과 인사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안녕? 벽들아. 안녕? 문들아. 우리 잘 지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