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라는 망령이 다시 우리 곁에 왔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하다. 지난 10년간 물가가 유례없이 안정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1970년대 이후 최고의 물가상승률을 겪고 있다. 여러 가지 조짐을 볼 때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기업과 경영자들은 지금 매우 생소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슷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지 벌써 40년도 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소비자, 국가, 특히 기업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생하게 보이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여러 관계와 그 결과는 통상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예를 들어, 원가가 올랐을 때 그 상승분을 가치사슬(value chain)의 다음 단계 또는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것은 큰 잘못이 될 수 있다. 경영자는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또 자신의 그러한 결정이 회사 경영에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1. 인플레이션 망령이 돌아왔다」중에서
그러면 적정수준 이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어째서 그렇게 위험한가? 여기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만 샛길로 빠지기로 한다. 인플레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인플라레(inflare)’인데, 이 말의 뜻은 ‘부풀리다, 넓히다, 확대하다’ 등이다. 우리는 흔히 인플레이션이 오면 물건이 더 비싸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건이 비싸지는 것이 아니라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화폐의 아주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가치의 보관’인데 돈이 그 기능을 잃는 것이다. (…) 인플레이션은 궁극적으로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양(quantity)의 상품을 만나기 때문에 생겨난다.
---「1. 인플레이션 망령이 돌아왔다」중에서
실제 독일의 생산자 가격은 곡물은 전년 대비 33%, 감자는 88%, 그리고 우유는 30% 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여 노동조합이 맨 먼저 요구하는 것은 뻔하다. 독일 최대의 단일 노동조합 금속노조(IG Metall)는 2022년 초 8.2%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엄청나게 풀린 돈이 단기간에 많이 회수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면 새로운 위험에 부딪힐 것이라고 보고, 금리인상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인플레이션 신호등은 짙은 빨간색이다. 경영자는 물론이고 가격문제에 책임을 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경고신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자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한편 재빨리 움직이고 올바른 행동을 취함으로써 큰 불편을 상대적으로 덜 겪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지금의 현상을 더 깊이 파고들고, 가격과 인플레이션에 관해 흔히들 하는 피상적이고 현란한 말을 넘어서는 알짜 도움말을 제시하려고 한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보기의 하나로, 우리는 기업이 생각 없이 원가상승분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행위를 언급하고 싶다. 기업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원가, 가격,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상호관계를 철저히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이밍을 정하거나 시행계획을 짤 때 필요한 지혜도 단계별로 갖추어야 한다.
---「1. 인플레이션 망령이 돌아왔다」중에서
더 권장할 만한 방식은 선제적 가격조정(pre-emptive pricing)인데, 〈그림 3-3〉의 아래쪽 그림은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빗금 부분은 가격변경이 늦어질 경우와 견주어볼 때(위쪽 그림) 기업이 건지는 마진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원가가 오르기 전에 미리 값을 올리면 “지금까지의 상황보다 더 큰 마진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명목가치만 보면 그럴 수 있겠지만, 아마도 실질가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명목이익(nominal profit)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거한) 실질이익을 지키려고 하면, 원가가 오르기 전에 값을 올리든가 아니면 원가상승분보다 더 많이 값을 인상해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원가상승 이전 혹은 아주 직전에 값을 조정하는 선제적 가격변경이 매우 중요하다.
---「3.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민첩성」중에서
우리가 경제 전체의 물가상승률에만 주목하면, 업종과 기업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이와 관련하여 해외의 두 대조적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의 텔레커뮤니케이션 산업은 10년 동안 매출액이 명목금액으로 5% 늘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거하면, 텔레커뮤니케이션 요금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10%나 줄어들었다. 갖가지 혁신을 하고 서비스를 상당히 개선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초라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즉, 이 산업은 인플레이션율에 맞춰 값을 올리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똑같은 10년 동안 명목 매출액은 30%, 실질 매출액은 11% 늘었다. 이 산업은 개선된 성능을 바탕으로 자동차값을 물가상승률보다 더 많이 올릴 수 있었다. 지몬-쿠허가 전 세계의 경영자 3,90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각각 1/3씩 인플레이션율보다 낮게, 인플레이션율만큼, (인플레이션율보다) 더 높게 값을 올렸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개별 기업과 산업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서로 매우 다름을 뜻한다. 어떤 회사나 업종은 물가가 올라가는 추세에 올라타서 혜택을 보고, 다른 회사 또는 업종은 실질적인 가격하락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판매가격과 조달가격, 즉 원가에 영향을 미친다. 원가와 고객의 지불용의가격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전개되는가는 한 제품 또는 기업의 이익 상황을 결정짓는 핵심요인이다. ‘순시장포지션(net market position)’이라고 불리는 이 차이는 기업이 떠안게 된 원가상승분을 얼마만큼 (고객들에게) 전가할 수 있었고, 또 얼마만큼 이익을 희생시키는 형태로 스스로 흡수해야 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다.
---「5. 인플레이션 시대의 최적가격」중에서
기업은 또 신호 보내기를 통해 보복조치를 미리 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쟁사가 값을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할 때는 이런 조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임탁욱 부사장은 일본 회사들에게 할인율을 올리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만일 그들이 그런 조치를 하면 현대차는 더 매력적인 할인율로 대항할 것이라고 그는 공언했다. 현대차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한 입장표명은 있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자신들이 할인율을 올리면 현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신호 보내기는 또 다가올 가격인상에 대비하여 고객들에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데도 쓸모가 있다. 회사가 왜 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내용을 고객들에게 사전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 가격협상을 할 때의 그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사전 배려는 고객들이 갑작스레 통보받을 때 느끼는 불쾌한 감정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신호 보내기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또 그것이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시중에 퍼지면 퍼질수록, 기업들의 신호 보내기 활동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와 관련된 어느 업계에서는 이미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업계의 상위 5대 회사들은 아직 가격이 안정된 단계였던 2020년 초부터 2021년 3월까지 회사당 매분기 평균 3건의 가격신호를 내보냈다. 2021년 봄 인플레이션이 예상되기 시작하자, 이 신호 보내기 횟수는 회사당 매분기 3건에서 16건으로 늘었다.8 가격신호가 급격히 늘어난 이 특이한 사실은 다음의 현상과도 상통한다.
---「7. 모두 어려워도 누군가는 승리한다」중에서
그림에서 보듯이, 최고경영자가 관여할 경우 값을 올릴 때의 성공확률과 EBITDA 마진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더 높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회사가 값을 올리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때 최고경영자가 더욱더 스스로 나서서 그 노력을 북돋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에 의한) 영업부서의 지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경영자가 특별한 중요성이 있는 가격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재무관리 분야에서도(예를 들어 투자자들을 위한 설명회 때) 최고경영자가 더 많이 등장하고 또 가격 관련 테마를 다룰 것을 우리는 권장한다.
---「8. 가격결정력의 강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