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지은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야기는 저의 불안하고 혼란했던 청소년 시절을 지켜줬습니다. 몸은 커졌지만 마음은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을 어색해하고, 날로 커져가는 주변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힘들고 짜증스러운 것은 여러분만 겪는 일이 아닙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그 힘든 시절, 저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은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를 지켜준 것은 이야기로 지은 집, 책으로 만들어진 성이었습니다. 껍질을 벗은 투구게의 허물처럼 지금의 저에게는 추억으로 남은 책들이지만 이제 막 청소년기에 들어선 여러분에게는 자신을 지키고 더 자라게 할 수 있는 갑옷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중에서
생텍쥐페리가 사막에서 만난 왕자는 누굴까요? 그가 지중해와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몇 날 며칠 어두운 밤하늘을 홀로 나는 동안 수없이 대화를 나누던 사람, 아프리카 사막의 기지를 홀로 지키며 수없는 밤들을 함께하던 친구, 다시 돌아간 소행성 B612의 작은 공간. 그것들은 결국 ‘또다른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린 왕자 | 2천 피트 상공의 고독과 위안」중에서
소설이 쓰인 당시 메리 셸리가 염두에 두었던 괴물은 누구였을까요? 물론 자신의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괴물은 무책임한 아버지와 냉담했던 남편, 여성을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당시의 사회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대책 없이 세상에 던져져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괴물의 울분에 찬 말들은 세상에 던지는 메리 셸리의, 그리고 당대 여성들의 함성처럼 들립니다.
---「프랑켄슈타인 | 생명을 지닌 존재의 고통」중에서
어쩌면 행복한 왕자도 서로 돕고 살자는 뻔한 교훈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행복을 추구하는 왕자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이 파괴되는 것도 잊은 채 몸도 마음도 죽어가는 제비의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찾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과 인간,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체온을 나누며 이 추운 세상을 견뎌내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그것이 설령 쪼개진 심장과 얼어붙은 시체로 남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운명으로 귀결되는 것일지라도….
---「행복한 왕자 | 바보 같은 선의」중에서
100년이 넘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입니다. 왼쪽에는 바로 앞 페이지에 웹스터가 그린 표지 그림을 꾹꾹 눌러 인쇄한 흔적이 희미하게 넘겨다 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판권 사항이 조그맣게 적혀 있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책을 누구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아닌 ‘TO YOU’라는 글자만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책이 다른 누구도 아닌 독자 모두에게 전하는 웹스터의 사랑 편지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정말 부르고 싶은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책이 금세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키다리 아저씨 |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애편지」중에서
난파한 배에서 간신히 탈출한 아이들은 섬에 도착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가장 먼저 이 섬을 식민지로 선언합니다. 미국인 한 명, 프랑스인 두 명, 영국인 열한 명으로 구성된 국적을 고려하여 섬의 지명을 정하며 세 개의 곶을 각각 ‘미국 곶’ ‘프랑스 곶’ ‘영국 곶’으로 명명하는 외교적 수완, 일명 ‘나눠 먹기’도 보여줍니다. 소년들이 우두머리를 뽑으며 ‘치프(chief)’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이곳이 제국주의 본국과 연결된 ‘지부’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이 ‘치프’를 뽑을 때 학교에서 배운 문명인의 양식인 투표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흑인 견습 선원 모코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 꼼꼼한 차별 의식입니다. 삽화에서 소년들은 부유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인 반면 하단 중앙의 모코는 초라한 행색이죠..
---「15소년 표류기 | 모험과 도전, 아이들만의 세상」중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천신만고 끝에 나쁜 마녀를 무찌른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다시 오즈를 찾아가지만 결국 강아지 토토의 활약으로 오즈는 마법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허탈해합니다. 그럼 도로시와 친구들의 모험은 의미 없는 헛수고였을까요? 그랬다면 이 책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톱밥 두뇌, 양철 심장, 가짜 물약과 같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오랜 고난과 역경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어진’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오즈의 마법사 | 마법으로 연 20세기의 환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