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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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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88쪽 | 700g | 152*224*24mm
ISBN13 9791156122746
ISBN10 115612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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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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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지식인 이규보는 자신의 삶과 생각, 그리고 자신이 겪고 보고 들었던 일을 글로 적을 수 있었지요. 그의 글은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800여 년 전의 고려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서요. 이를 깨달은 것, 그것이 바로 《동국이상국집》 속 여러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입니다
--- p.7

이규보는 스스로를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렀다. 시와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끼고 산다는 뜻이었다. 이것만 봐도 그의 성격이 대강 짐작된다. 낭만적이고 섬세한, 그야말로 문인이라 할 만하다. 그는 틈만 나면 시를 짓고 글을 썼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시만 해도 2,000수가 넘는다. 젊은 시절의 글들을 때때로 불태우곤 했다니 아마 평생 1만 수는 족히 짓지 않았을까 싶다
--- p.24

그는 고대의 역사나 철학 같은 거대한 담론뿐만 아니라 작은 벌레나 흔한 술 항아리 같은 주변의 사물에도 시선을 둘 줄 알았고, 깊은 통찰력으로 무신정권이 지배하고 있던 당시 고려 사회의 문제점도 꿰뚫고 있었다
--- p.24~6

이규보는 청운의 꿈을 안고 글을 짓기도 했고, 실의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으며, 늘그막엔 높은 벼슬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벼슬을 얻고자 벌였던 일들은 후세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규보의 시를 짓고자 하는 욕구와 술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그것은 800년 전을 살았던 동네 아저씨 이규보를 대문호이자 시대의 증언자로 만들었다. 술 마시고 글 지으며 고려라는 나라를 살다 간 이규보, 그가 남긴 고려의 이야기는 넓고도 깊었다
--- p.31

〈남헌에서 우연히 읊다〉는 ‘생선회’가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도 평가받는다. …… 선사시대 유적에서 생선을 잡기 위한 낚싯바늘이나 그물추가 적지 않게 출토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날생선을 회로 떠서 먹는 문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나 문헌으로 보이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규보가 살던 13세기 초에는 고려 사람들이 생선을 회쳐서 먹을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 p.49

고려시대 전라도 지역에서는 농게를 젓갈로 만들어 반찬으로 즐겼고, 그 명성이 개경까지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고려 후기 문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도 자신의 시에 지방에서 세찬歲饌으로 올려 보냈던 게를 언급한 것을 보면, 고려시대 내내 게의 인기가 대단했던 듯하다
--- p.54

뭐니 뭐니 해도 이규보에게 가장 중했던 먹거리는 술이었던 듯하다. 실제 그의 문집 속 시문의 3분의 1 남짓은 술 마시고 읊거나 술을 소재로 읊은 것들이고, 문학 교과서에 실려 유명한 〈국선생전麴先生傳〉도 술이 주인공이다. 그에게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날마다 함께하는 친구이자 창작의 촉매였다. 오죽하면 이규보 스스로 자신에게 깃든 세 가지 마魔 중 색마色魔는 떨쳤지만 시마詩魔와 주마酒魔는 버리지 못했다고 했겠는가
--- p.59

이규보는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심했다. 피부병은 물론이고, 생손앓이나 두통, 치통, 천식에 소화불량까지……. 《동국이상국집》 곳곳에는 비루한 몸뚱이를 두고 한탄하는 중년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긴 시가 여럿 실려 있다
--- p.65

과거에 합격하고서도 오래도록 벼슬을 얻지 못하고, 기껏 얻은 지방관 자리도 떼여 끼니를 거를 정도로 고생하던 이규보 선생이 드디어 6품 참상관參上官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마흔여덟 되던 1215년, 곧 고종 2년의 일이었다. …… 그가 이때 지은 시 가운데 얼룩무늬 아롱진 서대犀帶, 곧 무소뿔 허리띠를 두고 지은 시가 전해진다. …… 그저 바라만 보던 서대를 허리에 차게 되니 어찌나 뽐내고 싶었던지, 그 감동을 시로 남겼다
--- p.75~76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게 한다면 버티기 어려운 법이다. 이 진리는 800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규보는 기껏 얻어낸 첫 직장 전주목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와 대판 싸웠다. 그 대가는 파직이었다. 이규보가 개경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와 다퉜던 동료는 이규보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 이규보는 “내가 그때 만일 조금만 참고 그와 사이가 나쁘게 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는 회한의 말을 남겼다. 운명이 자신을 끝내 귀하게 만들긴 했지만 인간관계를 좀 살폈다면 더 순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일 게다
--- p.80~81

이규보 집의 쥐들이 엄청나게 극성이었던 듯하다. 오죽하면 ‘장탕의 옥사’를 갖추려고 했다 했을까. 장탕(?~기원전 115)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인물로 어릴 적 아버지가 그에게 “찬장을 잘 간수하여라”라고 했는데, 찬장 안의 고기를 쥐가 물어가 버리자 아버지가 회초리를 쳤다. 이에 장탕은 쥐구멍을 뒤져 그 쥐를 잡아, 법관처럼 논고장을 쓰고 고문을 한 뒤 사형판결을 내려 쥐를 죽였다고 한다. 그런 장탕을 데려와야 할 정도로 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비로소 고양이를 들이고 안도하는 ‘집사’ 이규보의 모습이 훤하다
--- p.88~89

이규보는 바둑도 그럭저럭 두었던 듯싶다. 바둑이 늘 그렇듯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던 모양. 대국에서 한번 크게 진 뒤 상대에게 지어준 시가 전한다. 상대를 ‘어른’이라 한 걸 보면 연장자인 것 같은데, 먼저 시를 지어서 놀리니 백운거사 체면에 가만히 있을쏘냐. 그 시에 차운하여 화답했다. “…… 그대에게 묻나니 이미 판가름 났다고 항복하랴/ 이야말로 진秦나라 군사가 치욕을 씻는 때라오”
--- p.94~95

할 일 없으면 무얼 하는 게 좋을까? 아마 대부분은 낮잠 한숨 자고 싶어 하지 않을까. 적당한 낮잠은 두뇌 회전이나 오후 일 처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 이규보 선생도 낮잠을 퍽 좋아하신 것 같다. …… 8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비 오는 날은 그저 늘어지게 낮잠 자는 것이 제격인 모양이다
--- p.97~99

고려시대에 불교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신앙의 측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 불교가 녹아들어 있었다. 백운거사 이규보도 불교와 가까웠다. …… 《능엄경》은 1권부터 6권까지 외울 정도였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경을 읽은 이유를, 술꾼 이규보는 이렇게 얘기한다. “다 읽었다. 술은 아직 멀었더냐!” 음, 역시 이규보는 술꾼이었다
--- p.101~102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 탐내어/ 물과 함께 한 병 담뿍 길었다네/ 절에 이르면 바야흐로 깨달으리/ 병 기울이면 달빛 또한 텅 비나니” …… 이규보가 남긴 숱한 한시 중에서도 절창으로 꼽히는 시다. 달이 뜬 밤, 스님이 어디선가 물을 길어온다. 은은한 빛이 살짝 밤하늘을 비추는데 쏴아 하는 물소리만 들린다. 병에 담긴 물에도 달빛이 가득할진대, 그 물을 부으면 물 위의 빛은 어디로 갈 것인가. 스님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인의 눈에 담은 정경이 손에서 종이로 옮겨진다
--- p.103~105

이규보는 이른바 ‘금수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흙수저’라 말하기도 어렵다. ‘동수저’ 정도였다고나 해야 할까? 그리 부유하지 않아 어릴 적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벼슬과 거리가 멀지 않은 집안이었으니 말이다
--- p.122

내 공자나 묵자墨子 같은 어진 이가 아니거니/ 어찌 굴뚝이 검지 않고 자리가 따스하지 않으리/ 마누라, 아가, 춥다고 울지 말거라/ 내 약목若木을 베어와 태워 숯을 만들어/ 우리 집과 온 천하를 두루 따습게 해서/ 추운 섣달에도 늘 땀을 흘리게 하리다
--- p.127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시니/ 앞으로 창자가 녹을까 두렵구나/ 네 아비의 늘 취하는 버릇 배우지 마라/ 한평생 남들이 미치광이라 한단다/ 한평생 몸 망친 것이 오로지 술인데/ 너조차 좋아할 건 또 무엇이냐/ 삼백이라 이름 지은 걸 이제야 뉘우치노니/ 아무래도 날로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렵구나
--- p.132

아직 관직에 오르기 전, 젊은 이규보에게 친구가 둥근 부채를 보내왔다. 하얀 종이를 바른 부채를 살짝 부쳐보니 서늘한 가을바람이 분다. 밤도 아닌데 달이 이규보의 손에 떴다. 여름이 다가오는데 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단숨에 떠오른 시상詩想은 이 부채를 영원히 역사에 남겼다. “둥근 부채 서리처럼 깨끗하구나/ 밤이 아니어도 달은 언제나 둥글고/ 가을이 오기 전에도 바람이 절로 나네/ 그대의 마음 참으로 얼음과 같아/ 만나면 울적한 마음 모두 가시는데/ 다시 마음 속 가을까지 보내어/ 두 손에 달을 남겨 주었네”
--- p.139~141

시험장에서의 득실은 바둑과 같을지니/ 한 번 실패한들 어찌 크게 이길 날 없으리/ 항아가 계수나무 다 나눠주었다 걱정 마오/ 자네에게 줄 가지 내년에 어찌 빠지리
--- p.144

고려시대엔 “술이야말로 겨울 모자”라는 속담이 있었던 모양이다. 없이 살았을 서민들에게 털가죽 모자나 누에고치 솜 넣고 누빈 모자 같은 건 그림의 떡이었을 테고,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없이 외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마시면 머리로 열기가 올라오는 술이라도 좀 먹고 겨울을 날 수밖에
--- p.147

목줄에 묶인 채 울부짖는 원숭이를 보고 알량한 벼슬을 위해 발품 팔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떠올랐는지, 이규보의 붓끝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금세 시 한 수가 탄생했다. “원숭이가 무슨 성낼 일이 있다고/ 사람처럼 서서 날 향해 울부짖는다/ …… 나도 푸른 산에 은거함을 생각하건만/ 부질없이 홍진紅塵의 시달림을 받노라/ ……”
--- p.159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던 이규보에게 후배들이 모이지 않았을 리 없다. 이규보도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같이 술 마시고 시 지으며 노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될 수 있으면 그들의 재능을 꽃피워주려 했다
--- p.164

이규보는 두 살 때 책 속 글자를 짚어가며 읽는 시늉을 했고, 아홉 살 때 처음 글을 지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글짓기에 능했고 또 엄청나게 많은 글을 지었다. 스물두 살 때 하늘의 문장을 담당한다는 별 규성奎星이 “자네는 꼭 장원급제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나” 하고 알려주는 꿈을 꾸고서 이름을 ‘규보’로 고칠 정도였다
--- p.172

옛 분들에게는 선인들의 작품을 베끼거나 비슷한 분위기를 낸 작품을 지어보는 것이 일종의 공부였다. …… 선인의 작품을 익히지 않는다면 표절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익숙하게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면서도 새로운 뜻[新意]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74

이규보는 후다닥 글을 짓는 데 능했다. 그의 별명 중 하나가 ‘주필 이당백’이었고, 〈한림별곡〉에도 주필로 언급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시를 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지간한 한자의 소릿값과 뜻을 꿰고 있어야 하며, 문학적인 향취가 나게끔 그 한자들을 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주필은 대단한 글재주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규보는 그런 주필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주필에 비판적이었다
--- p.189

자료가 부족한 고려 역사, 그러나 아쉬운 대로 고려 사회의 여러 면모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동국이상국집》이다. 한국 도자사 또한 이에 도움받는 바가 적지 않다. 이규보가 읊은 청자나 도기(질그릇)들이 실물로 남아 전하는 예도 있고, 지금은 알 길 없는 물건을 묘사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 p.201

사람들은 고사하고 다른 벌레들마저 다 잠든 한밤중, 이규보는 어쩌다 깨어 있었다. 그러다 문을 열어보니 등불을 켜고 허공을 수놓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있다. 썩은 풀더미에서 태어나 때로 부채에 얻어맞아 납작해지고 주머니 속에서 빛을 억지로 내야 하는 가련한 신세, 하지만 그 등불을 비가 와도 꺼뜨리지 않고 높이 날아오르면 하늘의 별똥별이 될지도 모를 위대한 존재! 이규보에게 반딧불이는 그런 존재였다
--- p.210~211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건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 하더라도 축 처져 있으면 성에 차지 않기 마련이다. …… 이규보 선생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계양도호부 부사로 좌천되어 내려간 이규보, 주변이 죄 바다였지만 일부러 구경 가지도 않았다. …… 2년 후, 다시 개경으로 올라가게 되자 이규보의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그저 다 좋아 보였다. …… 그렇게 바다를 즐기던 이규보,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여기 왔을 때도 저 바다는 바다였는데, 어째서 개경으로 가는 지금 다시 보는 바다는 이다지도 즐겁단 말인가.’
--- p.216~217

“만약 역사의 예원전藝苑傳을 짓는 자로 하여금 신라와 고려에서 세 사람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최치원과 천책天?(1206~?), 이규보가 뽑힐 것이다.”
--- p.229

이규보의 지방관 시절 글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읽힌다. 하나는 이규보가 행정실무에 능한 이른바 능리能吏형 인간은 아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시대의 수도 집중이라는 것이 사회 전반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고려 사람들에게 ‘개경’이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서울’보다 더욱더 선망의 대상이었다
--- p.234~235

“옛날 아버지께서 남쪽에 계시고 제가 서울에서 공부할 적엔 300리 길이 비록 멀다 해도 가기만 하면 뵐 수 있었는데, 지금 계시는 북녘 산기슭은 도성과의 거리가 몇 걸음 되지 않아, 잠깐 사이에 갈 수는 있어도 간들 누구를 뵈오리까. 저의 일생이 끝나도록 다시 뵈올 길이 없습니다. 말은 입에서 나오려 하나 목이 메어 사뢰기 어렵고, 다만 이 엷은 술잔으로 저의 속정을 표하오니 아, 슬프기만 합니다”
--- p.253

“신神이 의지할 곳은 이 우뚝한 돌이 서 있는 곳이며,/ 신信으로 받드는 제수는 저 길에 괸 빗물을 떠와서 장만하나이다./ 바라건대 순수한 정성에 흠향하사 더욱 음덕의 도움을 주소서.” …… 고려시대에도 큼지막한 선돌이 고을 단위에서 공공 제례를 지내는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제수가 고작 빗물 한 그릇이라! 선돌에 깃든 신은 퍽 검소한 분이셨던가 보다
--- p.262

《동국이상국집》에는 심심치 않게 원숭이 이야기가 나온다. 기홍수처럼 원숭이를 진짜 기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산천을 지나다가 “저기 원숭이가 우는구나”라고 읊는 경우가 많다. …… 대강 헤아려보니 30여 편은 족히 되는 듯하다
--- p.274

서로 다른 신앙이 만나면 충돌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그런 신적 존재의 역할을 국가가 모두 인정하여, 신앙의 다원성多元性을 보장하는 한편 국가의 권위를 살렸다. 이는 건국 이래 지방 세력을 마냥 부정하지 않고 그들을 체제 안에 포섭하고자 고심했던 고려 중앙의 태도와 통한다
--- p.284

이규보의 신라 인식은 일관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신라를 깎아내리다가 또 다른 때는 긍정적인 점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보인 것이다. 또 고려가 신라를 ‘이어 받았다’는 어조의 글은 확인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 임금이 우리 태조에게 항복했다는 사실, 곧 고려의 신라 흡수를 강조할 뿐이다. 이를 고구려 인식과 견주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 p.288

서희徐熙(942~998)가 거란 장수 소손녕蕭遜寧(?~998)에게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후예요!”라고 일갈한 것처럼, 고려 사람들은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고 인식했다. 이는 적어도 고려 지식인들은 거의 모두 공유하는 사실이었다. 이규보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명왕편〉을 지은 스물여섯 젊은이 이규보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어도 고구려를 “우리 고구려[我高麗]”로 인식하고 있었다
--- p.289

이규보가 단순히 정권의 시녀에 머문 것은 아니다. …… 그가 남긴 다른 작품을 봐도 행간에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어조가 담긴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문인다운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던 그는 당시 고려 사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시하거나 변혁을 선도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것이 잘못이며 그것을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런 의식도 없이 그저 관직만 구걸했거나, 세상을 피해 숨어 지내기만 했다면 오늘날 고려를 알 수 있는 길은 더욱 좁았을 것이다
--- p.294

온갖 재주를 짜내 시를 바쳐도 벼슬을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발품 팔며 다니다 집으로 가는 길, 천근만근의 무게를 짊어진 이규보의 어깨에 노을이 내린다. “늘 벼슬자리 없으니, 언제나 벼슬을 못해/ 사방으로 밥 비는 일 기뻐하는 바 아니나/ 날 보내기 지루함이라도 면하고자 함이라/ 아아! 인생 한 세상, 받은 운명이 어찌 이리 괴로운가.”
--- p.299

논밭은 모두 붉게 타서/ 곡식 싹이 무성한 것을 볼 수 없네/ 부잣집도 벌써 식량을 걱정하는데/ 가난한 사람이야 어떻게 살 수 있으랴/ 명문가에서는 날마다 자리에 술을 토하고/ 백 잔을 마시니 귀가 저절로 뜨끈해지네 …… 단지 문호의 융성한 것만 알고/ 나라가 불안한 것은 근심하지 않누나/ 썩은 선비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눈물을 흘리며 매양 목메어 흐느끼네
--- p.303

흉년이 되어 백성은 거의 죽게 되니/ 오직 남은 것은 뼈와 가죽뿐일세/ 몸속에 남은 고기가 얼마나 된다고/ 남김없이 죄다 자르고 쪼개려는지/ 그대 강물 마시는 두더지 보았던가/ 그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묻노니 너는 입을 얼마나 갖고 있길래/ 백성들의 고기를 탐내서 씹어 먹는가
--- p.306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딱따구리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진 않았는지, 이규보가 바로 옆에서 본 듯 딱따구리를 묘사한 시를 남겼다. “나무에 구멍 내 벌레를 찾았는지/ 딱딱 소리 문 두들기는 것 같네/ 너는 오색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어찌하여 벌레 쪼기를 좋아하느뇨” …… 그런데 이 시의 끝에는 이런 내용이 덧붙어 있다. “한 본에는 ‘누가 너의 부리를 빌려/ 사람 중의 벌레를 쪼아버릴꼬’라 되어 있다.” 이 구절을 붙여보면 딱따구리 부리를 빌려 세상의 나쁜 놈들을 쪼아버리고 싶다는 의지 또는 한숨이 읽힌다
--- p.317~319

만국의 삼라만상이 몇 폭 종이에 펼쳐져/ 삼한三韓은 모퉁이의 조그만 덩어리 같네/ 보는 자는 작다고 말하지 말라/ 내 눈에는 조금 큰 편이로다/ 고금에 어진 인재 끊임없이 태어나/ 중국에 견주어도 크게 부끄러울 것 없다네/ 사람이 있으면 나라요 없으면 아니니/ 오랑캐는 땅만 컸지 초개같다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중국 사람이 우리를 소중화라 한 것을/ 이 말은 진실로 채택할 만하다네
--- p.326~327

이규보는 나이 스물여섯 살 되던 해에 〈동명왕편〉을 짓는다. 피 끓던 젊은 시절의 규보 아저씨,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주몽朱蒙의 이야기를 격정적으로 풀어냈다. 이로써 이규보는 한국 고대사에도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 p.331

“대저 곰이나 범이 사람을 물어뜯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나, 다른 것이 물어뜯는다면 사람들은 모두가 매우 이상하게 여긴다.”
--- p.339

고려 사람들은 유달리 송나라의 문인 동파東坡 소식蘇軾(1037~1101)의 문장을 좋아했다. 과거시험 합격자가 발표되면 “올해도 서른 명의 동파가 나왔구먼!”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글 좀 안다는 사람들은 동파 소식, 다른 말로 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즐겼다. …… 심지어 몽골군에 국토가 유린당하는 와중에도 고려의 한 지방관은 《동파문집東坡文集》을 간행해서 사람들에게 배포하고자 했다. ……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의 엄혹함 속에서도 책은 끊임없이 출판되었고, 해방과 6·25전쟁,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면서도 책을 찾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았다. 책이 갖는 힘은 정치권력이나 총칼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p.354~357

한때 〈달마도達摩圖〉를 집에 걸어두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수맥을 차단해 건강에 좋다는 둥, 잡귀를 쫓아준다는 둥 별별 얘기들이 많았다. …… 집에 달마의 초상을 걸어두는 풍습은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규보도 〈달마도〉에 관한 글을 남겼다
--- p.358

지금 우리에게 무궁화無窮花-근화槿花는 ‘나라꽃’이다. 경찰의 계급장이기도 하며, 관공서 지붕을 덮는 기와의 막새 무늬로도 쓰인다.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면 고려 사람들은 무궁화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 고려시대에도 무궁화를 ‘무궁화’라 불렀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무궁화가 무궁화인지는 사람마다 설이 제각각이었다. …… 이규보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 만에 피고 지는 꽃의 삶이 허무하니 도리어 ‘가이없다’고 한 것이라고
--- p.362~365

조선 말 이 땅에 온 서양 사람들의 기행기를 보면, 서울이건 지방이건 벌레가 그렇게 많아 잠도 제대로 자기 힘들었고, 밥도 먹기 힘들었다는 내용이 더러 나온다. 그렇듯 여름이 되면 온갖 벌레들과 함께 살아야 했던 상황은 고려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나 골치 아픈 것은 파리였던 듯한데, 이규보도 파리에 고통 받았던 심정을 시로 생생하게 표출하고 있다
--- p.366

이 몸은 평생 동안 숱한 해를 보냈는데/ 어느 곳에 이 많은 해를 쌓아 놓았는지/ 만약 주머니에 넣어 헤일 수 있다면/ 하나하나 꺼내서 하늘에게 되돌리려네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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