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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입은 옷

책이 입은 옷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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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0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270g | 128*188*20mm
ISBN13 9788960903098
ISBN10 896090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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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때 나는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나의 다른 부분이 옷을 입고 세상에 소개된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내 말에 덧입혀지는 것, 내 책의 표지는 내 선택이 아니다.
--- p.19

책이 완성되고 세상에 입장하려 하는 순간에서야 표지가 나온다. 표지는 책이 탄생했음을 내 창조 과정이 끝났음을 표시한다. 내 손에서 독립해 자신의 생명을 갖게 됐다는 사실을 책에 쾅쾅 도장 찍는다. 작업이 마감됐음을 알려준다. 출판사에 표지는 책이 도착했음을 의미하지만 내겐 이별을 의미한다.
--- p.23

내용에 걸맞은 표지는 내 말이 세상을 걸어가는 동안, 독자들과 만나러 가는 동안 내 말을 감싸주는 우아하고 따뜻하며 예쁜 외투 같다.
잘못된 표지는 거추장스럽고 숨 막히는 옷이다. 아니면 너무 작아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다.
아름다운 표지는 기쁨을 준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보기 흉한 표지는 날 싫어하는 적 같다.
--- p.25

아무튼 표지는 작가와 이미지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강요한다. 강요된 관계이기 때문에 극도의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난 당장 멀어지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표지는 내 말을 만지고 내 말에 옷을 입힌다.
--- p.26

작가로서 나는 이 ‘시각적 메아리’를 찾지만 자주 실패한다. 표지가 내 책의 의미와 정신을 반영해주길 나도 바란다. 날 잘 알고 내 모든 작품을 깊이 이해하며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한 번만이라도 표지를 그려주면 기쁘겠다.
--- p.38

독자와 책의 관계는 이제 책 주변에서 움직이는 열두명 남짓 사람들의 매개를 통해 훨씬 더 많이 형성된다. 작가인 나와 텍스트,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발가벗은 책의 침묵, 그 미스터리가 그립다. 보조해주는 자료가 없는 외로운 책 말이다. 예상할 수 없고 참조할 것 없는 자유로운 독서를 가능케 하는 미스터리. 내 생각에 발가벗은 책도 스스로 설 힘이 있다.
--- p.48~49

나는 웅장한 이탈리아 건물 안에 자리한 로마의 한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쓴다. 이탈리아 도서관인데도 미국 책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이곳을 안 것이 마치 운명의 신호인 듯하다. 이곳에서 영어권 작가인 내가 이탈리아어로 첫 책을 쓰길 꿈꿨고 결국 써냈다.
이 안에서 나는 과거에 둘러싸여 있다. 아버지의 오랜 사서 생활, 어려서부터 드나들던 도서관, 미국에서 내가 사랑했고 다녔던 모든 도서관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이탈리아어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바로 이곳에서 나는 길을 바꾸어 글을 썼다.
--- p.59

평생 나는 서로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둘 다 내게 강요된 정체성이다. 이 갈등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작가로서 나는 늘 같은 올가미에 사로잡혀 있다. 어떤 출판사는 내 이름과 사진을 보고는 인도를 연상시키는 틀에 박힌 것들 즉 코끼리, 이국적인 꽃, 헤나로 문신한 손, 종교적 혹은 정신적 상징인 갠지스 강 등이 담긴 표지를 이내 보내온다. 내 이야기의 대부분이 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며 그래서 갠지스 강과는 큰 거리가 있다는 데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 p.65

완벽한 표지는 뭘까?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대부분은 우리의 옷처럼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 p.79

나는 어딘가에 속하고자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한편으로 어딘가에 속하는 걸 거부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정체성이 날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영원히 이 두 길, 이 두 충동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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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결국 아이덴티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며칠 전 아이덴티티라는 단어를 노트에 메모하던 순간이 떠올라. 나는 누구일까? 너는? 우리가 입는 옷은 내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동시에 감춘다. 책들도 표지라는 옷을 입는다. 책 내용의 ‘시각적 해석이자 번역’인 책 표지가 아름답다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에서 만나는 단어, 문장, 작가의 영혼이 아닐까. “독자가 내 책에서 만나는 첫 단어는 내가 쓴 말이길 원한다”는 줌파 라히리의 바람처럼.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무려 백여 개의 책 표지를 경험한 그녀. 책 표지에 대한 그녀의 유니크하고도 클래시컬한 사색은 ‘얼굴’일 수도 ‘가면’일 수도 있는 표지를 넘기고, 그 너머의 영혼을 만나고 싶은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진실한 사랑을 갈망할 때 그러하듯.
김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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